흔들리지않는 외발 황금 닭의 고요함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 29/일삼지 않음으로 천하를 얻는다/좌우금계독립 左右金鷄獨立  

 

 

왼발이 곧게 서있고, 오른 발은 무릎이 직각이 되게 하여 들고 있다. 왼손은 왼쪽 다리 앞에 자연스레 놓이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장심이 바깥을 향해 있다. 눈은 평시로 앞길을 지그시 바라보는 듯하나, 전후좌우에 그 기미가 닿지 않는 바가 없다. 이것이 우식이다. 좌식은 이와 반대로 한다.

 

금계金鷄란 황금빛의 닭으로서 닭 중에서 가장 귀하다. 금계가 홀로 서있음을 뜻하는 초식이 금계독립金鷄獨立이다. 황금빛 금계 한 마리가 외발을 딛고 서 있다. 오른손을 가슴 앞에 내밀고 있는 모습이 흡사 선서를 하는 대통령이나, 혹은 환호하는 대중에게 손을 들어 약속을 하는 대장부 같다.

황금빛 금계가 홀로 서있음(金鷄獨立)은 길을 가는 대장부가 히말라야산의 정상에 이미 올라섬을 의미한다. 곤륜산의 정상에 선 영적 지도자가 하늘을 두고 자신이 증득한 각의 의미를 검증하며 신표를 받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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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가 한 발은 땅위에 딛고 다른 한 발은 하늘에 딛고 있다. 마치 이미 하늘의 경계에 닿은 각자覺者가 이웃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을 못 잊어 양방향에 대한 평등심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금계독립金鷄獨立의 수행은 하늘과 땅, 저 높은 곳의 영광과 저 낮은 곳으로의 만행, 신성의 빛과 세속화, 지혜와 사랑이라는 양방향의 통행을 뜻하는 것으로 읽는다. 장자의 말로 하니 양행兩行이다.

 

[장자, 제물론]에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가 나온다.

정신을 수고롭게 하여 하나가 되려 해도 끝내 하나됨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 조삼朝三이라 한다. 조삼이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원숭이 사육사가 상수리를 원숭이에게 주면서 말했다.

아침에 3, 저녁에 4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벌컥 화를 냈다. 그래서 사육사는 말했다.

그러면 아침에 4, 저녁에 3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한결같이 기뻐했다.

명실名實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기쁨과 노여움이 교차했다. 이 또한 그대로 맡겨둬야 할 따름인 것이다. 따라서 성인은 시비是非를 조화시켜 자연自然의 평등平等에서 쉬게 하는데 이를 양행兩行이라 한다.

 

조삼모사는 싫고 조사모삼은 좋은 것이 원숭이들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원숭이들이 시비是非하는 바는 눈앞의 현실에서 한치 앞도 못 벗어난 세계다. 우리 인간들의 생각도 원숭이들과 별반 다름이 없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다. 우리들이 이것과 저것을 시비是非하고 나와 타인을 시비하고 하늘과 땅을 시비하는 것이 원숭이들이 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작은 물고기가 붕새가 되어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장천을 날아오른다. 대붕이 저 높은 창공에 날아오르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작은 물고기 시절에 보았던 세상과, 지금 대붕이 되어 저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이 판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물고기 시절에 바라본 것은 상대적 앎의 세계이다. 그 물고기가 커다란 붕새로 변화했다. 의식의 대전회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저 높은 곳을 나는 대붕이 바라본 세계는 이미 상대적 세계관을 끊고, 잊고, 넘어선 세계이다. 물고기의 소아적 시각이 아닌 대붕의 대아大我, 무아無我, 온우주적 시각에서 바라본 세계이다.

 

그것을 장자는 소요유逍遙遊라 했다. 그 소요유의 경계에서 바라보니 세계의 양면이 다 보인다. 양방향으로 두루 회통會通하여 아우른다. 그런 까닭으로 초탈超脫의 세계에서는 양행兩行이 원만하게 된다. 조삼모사든 조사모삼이든 마음을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게 하지 않는다. 이른 바 평등심平等心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양행에 도달하는 평등심이 유마경의 주제인 불이不二로 통한다.

 

그 때 유마가 그곳에 모인 보살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불이법문에 깨달아들어가는 것입니까? 모두들 자신의 언변으로 자유롭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대중 속에 있던 법자재 보살이 말했다.

생성과 소멸을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법이 본래 생성이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알게 되면 마찬가지로 소멸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생법인을 증득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어서 덕수 보살이 말했다.

나와 내 것을 분별해서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라는 생각을 짓기 때문에 문득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 없음을 이해하면 마찬가지로 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중 속에 있는 보살들은 각자 아는 바에 따라서 제각기 말을 마쳤다. 그리고는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보살이 불이법문에 깨달아들어가는 것이라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문수가 여러 보살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말한 내용은 모두 훌륭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그대들의 설명에는 여전히 둘이라는 낱말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보살이 일체 모든 법에 대해 말하거나 설할 것도 없고, 가르칠 것도 없다면, 온갖 어리석은 논쟁을 벗어나고 모든 분별도 끊어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에 깨달아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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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수는 다시 유마거사에게 물었다.

우리들은 각자 자기 뜻대로 말했습니다. 이제는 거사께서 말할 차례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 말합니까?”

유마거사는 잠자코 침묵하면서 말이 없었다.

그러자 문수가 말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보살은 이렇게 불이법문에 참되게 깨달아들어갑니다. 그 속에는 언어나 문자에 의한 분별이 전혀 없습니다.”

(유마경, 불이법문품)

 

금계독립의 수행은 사방에 응하나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음을 특징으로 한다. 어떤 시비가 걸려와도 무심한 자리에서 그 시비에 응하므로(應寂)’ 마음의 동요가 없다. 나를 잊음으로써 나를 찾는다. 작은 나를 버리므로 큰 나를 얻는다.

황금의 옷을 입은 지도자가 홀로 고요함을 지키니 하고자 함이 없다. 지도자가 바람이 없이 고요하면, 하늘 아래 인간세도 스스로 질서를 찾아가게 된다.(不欲以靜, 天下將自定. 37)

 

나라를 다스릴 때는 정법으로 하고

무력을 쓸 때는 기법으로 하고

천하를 취할 때는 무사로 하라!

내 어찌 그러함을 아는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늘 아래 꺼리고 피할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이 이로운 기물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나라나 가정은 점점 혼미해져가고,

사람이 기교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괴한 물건이 점점 생겨나고,

법령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도적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함이 없으니

백성이 스스로 질서를 찾고,

내가 고요하기를 좋아하니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삼아 일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부유하게 된다.

나는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백성들은 스스로 통나무가 될 뿐이다.

 

以正治國, 이정치국

以奇用兵, 이기용병

以無事取天下, 이무사취천하

吾何以知其然哉, 오하이지기연재

以此, 이차

天下多忌諱而民彌貧, 천하다기휘이민미빈

民多利器, 민다이기

國家滋昏, 국가자혼

人多伎巧, 인다기교

奇物滋起, 기물자기

法令滋彰, 법령자창

盜賊多有, 도적다유

故聖人云, 고성인운

我無爲而民自化, 아무위이민자화

我好靜而民自正, 아호정이민자정

我無事而民自富, 아무사이민자부

我無欲而民自樸 아무욕이민자박 (57)

 

노자가 말한다. 진정으로 천하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가 있는가? 정치를 바르게 하라(以正治國)! 용병을 기이하게 하라(以奇用兵). 그리고 무사無事로써 천하에 임하라. 그러면 천하는 그대에게 오게 될 것이다.(以無事取天下).

 

지나친 기교, 욕망을 부추기는 기물, 문명의 이기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의 입맛은 까다로워지고 욕망은 눈덩이처럼 자라나 더 많은 것과 더 새로운 것과 더 감각적이고 더 자극적인 것들을 원하게 될 것이니. 다스리는 기교가 너무 발달하고 법령을 더욱 정교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자연성을 억압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만 더욱 강퍅해지고, 기교만 늘게 되며, 도적들만 불어나게 될 것이니.

 

성인은 스스로 자연의 법에 따라 무위한다. 일부러 많은 일을 기획하고 꾸미지 않는다. 그렇게 통치의 기교를 많이 부리면 백성들은 더 혼란스럽고 더 가난해진다.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마음과 함께 존재하면서 그들의 내면의 자연성이 발휘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면 백성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삶의 자연성을 회복하고 원래의 천성을 잘 드러내며 더불어 사는 내면의 질서를 저절로 회복하게 된다.(我無爲而民自化)

 

그리고 성인은 스스로 고요함을 좋아하여, 요란한 정치구호를 남발하지도 않고, 요란한 법령을 제정하고 형벌을 강화하거나 치안을 단속한다고 원천봉쇄를 한다거나 하지도 않고, 군중들을 동원해서 궐기대회를 일삼지도 않는다. 다만 솔선하여 자연의 길의 소리를 듣고 백성들의 마음을 읽어서 한마음이 되니, 일부러 백성들을 강제하거나 선동하거나 교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성인이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에 처하기를 즐기니, 백성들이 스스로 바르게 자기들의 질서를 찾고 규율을 내면화하여 바르게 된다.(我好靜而民自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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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백성들을 현혹시켜 욕망을 부추기거나 공약을 남발하거나 하지도 않고,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는다, 댐을 막는다, 하지도 않고, 강을 정비한다, 운하를 만든다고 야단법석을 펴지도 않으니, 백성들이 저절로 부유하게 된다.(我無事而民自富)

 

그리고 성인은 자기 자신의 사적인 욕망이 없으므로 자기의 권력욕을 극대화하는 정치적 술수를 부린다거나, 부정하게 축재를 한다거나, 가족들이나 친지들이 비리에 개입되어 망신살이를 하는 일도 없다. 그렇게 되니, 백성들도 저절로 통나무처럼 도에 가깝고, 질박한 삶 속에서 행복하게 된다.(我無欲而民自樸)

 

성인의 마음속에는 천하를 취하려고 욕망하는 마음조차 없다. 그러므로 천하가 그에게 다가와서 문을 두드린다. 그로부터 길을 구한다. 함께 그 길을 가는 덕을 나눌 따름이다.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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