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은 비워서 강하게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 교실 2/반대로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좌우람찰의 左右攬扎衣

 예비식은 몸가짐을 바르고 공손히 하여 단정히 서서, 마음속을 텅 비워 고요함으로 태극선에 들어가는 자세이니, 마치 대혼돈의 무극의 경계와 같아서, 무극상형無極象形이라 한다. 이 일물一物도 없는,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는 무주無主의 단계를 지나 태극의 단계로 접어든다. 원래 태극은 무극의 대혼돈 안에 무극과 함께 짝해 있다가 일기一氣가 동한 것이다.미가 동했으나 아직 음양이 나뉘지 않아서, 천지만물과 함께 온전히 하나인 채로 존재하며, 통합적인 음양오행의 기운은 그 안에 이미 다 아우르고 있다. 음양개합陰陽開合의 기미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려 발과 손이 열리어 나누어지니 기세起勢가 시작되었다. 손과 발이 허리의 회전운동과 함께 열리고 닫히면서, 포구抱球를 만들고, 그러다가 다시 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여서 남찰의攬扎衣가 나온다.    

남찰의의 남은 손으로 물건을 쥔 것과 같고, 은 마치 손으로 옷을 젖히듯 하는 것을 연상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번 열리고 한번 닫고, 한번 닫고 한번 열리면서 태극이 동하여 나온 음양의 기운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전개하여, 수없이 많은 태극의 에너지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한 번 합하고 한 번 벌리며,

한 번 비우고 한 번 채우네.”

一合一開 일합일개

一虛一實 일허일실

 

한 번 쌓고 한 번 발하며,

한 번 들이마시고 한 번 내쉬네.”

 

一蓄一發 일축일발

一吸一呼 일흡일호 (태극구결)

 

에너지장은 허리의 선전旋轉운동이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선형(부채꼴 모양)으로 돌면서, 두 손과 두 발이 그 허리를 따라 함께 돌아 움직여 나오는데, 그 모양 없는 모양이 마치 수없이 많고 많은 둥근 태극 형상을 그리는 것 같다. 발바닥 용천을 뿌리로 하고 머리의 정수리를 하늘로 닿게 하며 기둥인 허리를 주재자로 하여, 하늘기운이 머리 위쪽에서 허령정경虛靈頂勁하고, 땅기운이 아래쪽 지구 중심축으로부터 치밀어 올라와서, 온몸을 회오리바람처럼 휘감고 돌아가는 데, 마치 신은 텅 비어 있어 고요하기 그지없으나, 기의 고탕鼓盪됨은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남찰의 2.JPG

 

텅 비운 신령한 기운이 머리끝 정수리에 감돌고, 기는 가라앉아 단전에 자리잡는다.”

虛靈頂勁 氣沉丹田 허령정경 기침단전 (왕종악 태극권론)

 

그 뿌리는 발에 있고, 다리에서 발하며,

허리에서 주재하고, 손가락에서 행한다.”

기는 고탕해야 하고 신은 내렴해야 하리.”

 

其根在脚 發於腿 기근재각 발어퇴

主宰於腰 行於手指 주재어요 행어수지

氣宜鼓盪 神宜內斂 기의고탕 신의내렴 (장삼풍 태극권론)

 

태극의 일기一氣는 뜻()으로 시작해서 동한다. 먼저 하단전의 원기로부터 기미가 동하여 허리를 경유하여 어깨와 팔꿈치, 양손에 도달하면서 식과 세의 형상을 이루어 나오는데, 손의 위치와 활동성에 따라서 지금 위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손을 양, 반대편의 손을 음이라 한다.

이 음양개합에 따라 허와 실이 나누어지는데 손과 발, 곳곳마다 허와 실이 있다. 허란 빈 곳이고, 실이란 찬 것인데, 이는 밖의 형상形象과 안의 내기內氣의 차고 빔을 한데 아울러 말한 것이다.

 

남찰의는 태극이 동하여 나온 음양의 에너지가 손과 발의 개합開合과 허리의 전환에 따라 움직여 나뉘며 음양, 허실의 상호 전화를 반복하는 식이다. 양의 극에 이르러 이미 그 양 안에 음을 배태하여 음을 낳고 전화하며, 음의 극에 이르면 이미 그 음 안에 양을 배태하여 양으로 전화한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반드시 반대쪽으로 돌아간다는 주역의 물극필반物極必反 사상이 노자를 닮아 있다.

남찰의.JPG

 

그 반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약한 것은 도의 쓰임이다.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40)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은 움직임의 주인이 된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26)

 

그런데 반대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태극선의 움직임은 우리네 인생살이의 그것을 닮아 있다. 허리가 주어진 범위에서 왼쪽의 극으로 가면, 더 이상 왼쪽으로 갈 수 없으니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왼쪽으로 가고자 하면 먼저 오른쪽으로 가라고 한다(意欲向左 必先右去).

위로 치솟아 오르고자 하면, 먼저 아래로 누르듯 해야 한다.(上下相髓) 기가 단전에 무겁게 내리 깔림으로써 가벼움을 얻는다. 움직이고 나면 고요해지고 고요함의 극에 이르면 움직임이 생동해 나온다. 숨이 들어와 가득 차면 반드시 내쉬어야 하고, 내쉬어 텅 비우면 다시 들어온다.

 

약한 것이 도의 쓰임이다.”(弱者道之用)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이것은 해체를 말하는 것으로 해독함이 이해가 쉽다. 이 강하고 딱딱하고 고정되어 있으면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부드럽고 약하면 변화가 잘 일어난다. 만약에 사물이나 생각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 작용은 그칠 것이다. 물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작용, 즉 쓰임이 있을 것인가?

이나 물상物象이나 생각은 변화의 도상에서 일시적으로 형성된 것, 즉 가유假有에 불과한 것인 바, 그것들의 약한 틈새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상태나 성질, 새로운 모양으로 바꾸어진다. 그러므로 약함이란 비어있음이다. 자기를 고정된 어떤 상태로 고집하지 않으니 비움이라 할 수 있다. 그 비움으로 인해 해체가 일어난다.

 

태극선의 초식과 세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된다. 이미 완성된 식과 세는 그것들 안에 잠복하고 내재해 있는 틈, 즉 빔의 작용에 의해 부드러움이 나오고 그 부드러움으로 인해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완성된 식과 세는 바로 이어져 나오는 다음 동작 안으로 스스로를 해체해 들어가는 것이니, 여러 물상들이 그 해체를 통해 들고 남이다.

그러므로 해체란 태극권의 식과 세가 출몰하는 문과 같은 것으로 읽는다. 이 문을 통해 뜻과 기와 식이 들고 남으로 끊길 듯 끊기지 않고 면면히 물결치듯 이어진다.

한겨울의 땡땡 얼어붙은 대지 속에서 봄의 새싹이 움튼다. 한여름 찌는 무더위도 한 가닥 살랑거리는 가을의 미풍에게 자리를 넘겨준다.

 

사나운 바람도 아침 한 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강한 소나기도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23)

 

한여름의 무성한 나뭇잎도 가을의 길목에서 노란 단풍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노년기가 되면 우리네 인생도 한 잎 추풍낙옆처럼 떨어져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직장에서 진급을 거듭하던 이들도 그 정점이 되면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고, 그렇게 잘 나가던 사업도 한 순간 쇄락의 길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 인생의 영고성쇄라 할 것이다.

 

어린아이는 이런 이치를 모른다. 봄의 새싹도 가을의 낙엽이 될 것을 알지 못하고,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절세의 미녀도 그 아름다움이 한 순간의 일에 불과함을 알지 못한다. 만남은 그 안에서 이미 헤어짐을 잉태하고 있음이여,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지혜를 아는 것이 태극의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양에서 음을 보면 태극을 보는 것이다. 열림가운데서 합을 보고, 가운데서 실을 보고, 왼쪽에서 오른쪽을 보고, 위에서 아래를 볼 수 있으면 태극을 얻은 것이다. 나아가 태극에서 무극을 보면 불이의 선경仙境에 들었다 할 것이니, 작은 물고기가 변신하고 전회해서 대붕이 되어 하늘을 나는 소요유의 경계를 어찌 달리 논할 수 있으랴

글 사진/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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