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난아기의 부드러움과 기운을 찾아서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태극선 교실/하늘문을 열고 닫음에 능히 암컷처럼 할 수 있겠는가?/정천당주 頂天当住   

 

좌우루슬요보와 수휘비파 그리고 백학량시가 어우러져 이어져 나온 마지막 루슬요보에서 오른손의 장이 옆날의 수도(손날)자세로 왼쪽으로 돌아 내려오는데, 내려와서는 일그러진 권모양으로 변화하여 아래쪽 하단전 앞에 놓이고, 왼손은 머리의 정수리(니환궁) 위쪽에서 손바닥이 하늘을 향해 올려다본 형세다. 오른 다리는 들려 발끝이 왼쪽 수평으로 감겨있는 것이 일각장천의 다리 모양과 같다.

왼손의 장심이 하늘을 향해 떠받치고 있는 형세가 하늘기운을 내려받는 것 같고, 오른 손의 일그러진 권이 단전 앞에서 땅을 향해 내려온 기세가 땅기운과 접속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마리의 고고한 백조가 외발로 땅을 딛고 서 있으니, 늠름하여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나 되는 것 같다.

 

정천頂天이란 머리끝 정수리가 하늘과 통해 있음이고, 당주当住란 바로 그곳에 머무른다는 뜻이니, 정천당주頂天当住식은 하늘 문(天門)’이 열린 바로 여기, 이 순간에 머물러서 하늘과 인간이 하나로 통하는 초식이다. 이 식은 왼쪽 다리 하나로 균형을 잡고 선 채로, 오른손과 왼손이 대칭으로 원형을 만들어 위와 아래를 취한 형세인데, 들고 남이 상당히 난해하다.

 

발이 땅속 지구의 중심에 그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어야 하며, 미려가 반드시 정중이 된 바탕에서 허리의 감고 풀림이 봄바람에 얼음 녹듯 해야 하는 것이다. 한 뜻이 움직임에 따라 일기가 동해 나오는 바, 그 기운이 허리를 중심으로 좌우상하가 하나로 관천貫串되어 일어나야 한다. 특히 방송放松이 요체이고 그 방송이 골절 마디마디에 스며들고 훈습되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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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안정되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허리의 선전운동은 영활해야 하네.”

 

足定根基 족정근기

旋轉靈活 선전영활 (태극구결)

 

뼈 마디마디가 부드럽게 열려있고,

위와 아래가 서로를 따르네 .”

 

骨節鬆開 골절송개

上下相隨 상하상수 (태극구결)

 

정천당주 초식을 행공함에 따라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척추를 통해 위와 아래에서 내려오고 올라와서 하단전에 모인다. 위쪽에서는 머리끝 정수리에 있는 니환궁이 열림으로 하늘 기운(天氣)과 소통하고, 아래쪽에서는 발바닥 용천혈을 출입문으로 땅 기운(地氣)이 들고 난다.

하단전에 모여 회통한 하늘기운과 땅기운은 태극 수련자인 안에서 융합하여, 천지인天地人이 합일한 태극의 일기一氣로 화하니, 이것이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정기이다. 이렇게 원융회통한 천인합일의 일기, 즉 태극의 기운이 다시 척추를 통해 오장육부와 머리, 두 손, 두 발에 이르기까지 전신에 배급되고 순환함으로써, 온몸의 세포와 골수에까지 미치게 되니 이를 세수洗膸라고 한다.

 

세수洗膸란 골수를 씻어내림으로써 온몸을 정화시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특히 척추를 중심으로 한 중맥(스슘나 나디)과 좌우 양맥(이다, 핑갈라 나디), 그리고 그 속의 차크라(척추에 있는 에너지 센터)를 막힘없이 열고 정화시킴으로써, (에너지)의 배급과 순환이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달마의 [세수경]의 요지이다. 다시 말하면 뇌 속의 골수와 척추 안의 골수를 깨끗이 청소하여 기가 다니는 길(나디 혹은 경락)이 막힘없이 통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인도에서 온 달마는 숭산의 소림굴에서 9년 면벽을 마치고, 몸으로부터 입문해서 본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역근경][세수경]을 제자들에게 전수했다. 역근경이 근육과 뼈의 힘을 이용해서 신체를 단련하는 것을 위주로 한 것이라면, 세수경은 운기運氣해서 금강불괴지신에 이르는 부드러움의 길을 제시한다. 이 세수의 이치가 훗날 장삼풍 도인에 의해 태극권의 원리에 흡수되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수는 우주의 지리至理()와 우리 몸 안의 원기元氣의 합일,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도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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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세수洗膸의 주인은 마음이고 뜻이다. 태극권은 일식一式 일식이 전신의 기혈을 운행하고 통창시키는 원리에 의해 잘 짜맞춰져 있다. 처음에는 몸이 호흡을 이끌어가는 자연스런 호흡에 의지해 수련하다가, 숙련되어감에 따라 점차 몸의 동작과 호흡이 일치하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내기의 축적과 운행이 마음과 뜻에 따라(用意)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뜻이 움직이므로 기가 가고, 기가 감으로 혈(, )이 가는 기공의 이치에 따라 매우 유기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단계에서 복식호흡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데, 만약 몸이 아직 충분히 단련되지 않고 순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복식호흡을 하게 되면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떨어질 위험성이 있다. 주화走火란 잘못된 호흡이나 수련으로 기가 막히거나 상기되어 화가 위로 치솟는 현상 등을 뜻하는 말이고, 입마入魔란 부작용의 결과 정신착란이나 정신분열과 같은 정신적 이상상태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혹시 호흡이 거칠거나 상기 증상 등이 일어나면 복식호흡을 중단하고 자연호흡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천당주頂天当住는 불교의 정천각지頂天脚地를 닮았다. 정천각지頂天脚地라는 말은 머리는 하늘에 두고, 다리는 땅에 붙인다.”는 뜻이다.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각지脚地나 지금 여기에 머무른다는 의미의 당주当住는 그 뜻이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정천당주와 정천각지는 하늘과 땅의 양 방향의 길을 (인간)’ 안에 통일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하니 그 뜻이 높아 우주에 닿아 있다. 그 우주란 나를 있게 한 모든 것이요, 내가 관계한 총체적 관계망이요, 나의 생명을 낳아주고 받쳐주고 주재하는 근원이요, 나의 생명이 돌아갈 귀의처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마루()이다. 이 마루로부터 명을 받아 나온 것이 의 본성이니 는 본래 하늘이요, 부처다. 그러므로 머리를 하늘에 둔다함은 하늘이 내린 본성을 회복함, 내안에 모셔진 하느님(侍天主)을 깨달음, 혹은 본래면목’, ‘본래부처를 깨달음이다.

발을 땅에 붙이고 있다함은 현실, 즉 실용의 세계에 기반하여 살아감을 의미한다. 땅은 든든하고 안정되이 모든 생명체를 길러주는 토양이다. 땅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풍성하게 하는 모든 조건과 방편을 제공해준다. 인간은 마땅히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 도피할 어떤 핑계도 용납되지 않는다. 가족이 있고, 생계가 있고, 사업이 있고, 관계망이 있다. 이웃이 있고 유정무정의 중생이 있는 곳이 바로 이 땅이고,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천頂天이 도의 본체에 들어가는 공부라면, 당주当住는 도의 실용에 드는 공부이다. 정천이 화광和光이라면, 당주는 동진同塵이다. 정천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면, 당주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정천이 저 높은 하늘로 오르는 것이라면, 당주는 저 낮은 중생의 바다로 내려가는 것이다. 정천이 아름다운 연꽃이라면, 당주는 연못의 혼탁한 물이다. 정천이 하늘문을 열고 닫는 공부라면(天門開闔), 당주는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愛民治國). 그리하여 정천당주는 불이不二 공부의 모범식이 된다.

 

오늘 아이들은 아침부터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표정들이 어수선하다. 왜냐하면 오늘은 아이들의 시험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험은 평생 네 번 있다.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각각 한 차례씩 있다. 그 중 봄에 보는 시험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독립심을 다 키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을 끝내고 이제 성인이 되기 전에 그들이 제대로 인생을 준비하고 공부하고 있나 점검하는 시간이니, 더 그러할 것이다.

노자 할아버지의 가슴까지 드리워져 긴 수염이 가볍게 흔들렸다. 표정을 알 수 없도록 감추인 깊은 눈매로 아이들이 다 자란 모습을 훑어보는 할아버지의 입가에 자애로운 미소가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이 마을에서 할아버지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모친의 뱃속에서 80세가 되어서야 나왔는데, 나올 때 이미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치렁치렁하게 드리워져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기이한 모습으로 나와서 아이 때부터 노자老子(할아버지)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노자 할아버지로부터 배우고 공부하는 분야는 세 분야이다. 첫 번째가 견지見智를 세우는 공부인데, 여러 종교들의 주요 경전들과 동서양의 인문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고전들을 배우고 사유하는 공부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까다로운 것이 경전공부였다. 노자, 장자, 주역, 유마경은 소의所依 경전으로서 선생님이 가장 중시하고 까다롭게 다루는 경전이다.

 

둘째가 수증修證하는 공부인데, 닦고 경험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을 닦고 다루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워 나갔다. 처음엔 가부좌를 틀고 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몸부림을 쳤던 아이들도 어른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은 한번 틀어 앉으면 세 시간 이상을 꼼짝도 않고 족히 앉을 수 있다.

참장공 수련도 처음엔 10분만 세워 놓아도 좀이 쑤시던 아이들이 지금은 두 시간씩 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운기 위주의 태극선 수련은 식과 세가 단정하고 깔끔해서 군더더기가 없고 하체의 힘이 단단한 것이 믿음직스럽다. 장공108식의 행공은 처음엔 모양내기에 급급한지라 울퉁불퉁해서 그 자연스러움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장강대해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것처럼 면면히 이어지는 품새가 요철凹凸 없이 부드럽고 아름답게 변해갔다.

 

셋째는 행원行願인데, 아이들이 평생을 두고 자신의 인생을 펼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들이 세운 견지(知慧)와 그들이 쌓은 수련경험(修證)이 바탕이 되어 자연스럽게 순리를 따라 나오게 될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곳은 하늘이 아니고, 바로 그들의 발로 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있는 것이니, 가족들과 이웃들, 그리고 때로는 경쟁자들과 협력자들, 그리고 온갖 사건들과 함께 그 속에 묻혀 더불어 살게 될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게 될 현장은 더 이상 온실이 아니라 바람 거센 들판이며, 때론 사막이고, 도전과 창조가 넘실대며 출렁거리는 파도 위가 될 것이다.

 

노자 할아버지가 운을 떼었다. 시험 문항은 전부 6개다.

혼과 백을 싣고서 하나를 껴안아

능히 떠남이 없을 수 있겠는가?

 

載營魄抱一, 재영백포일

能無離乎! 능무리호

 

은 혼으로 읽는데 정신의 동적이고 뜨는 측면을 말하고 백은 정신의 정적이고 가라앉는 측면을 말한다. 사람의 생명체는 죽으면 혼은 영혼으로, 백은 육체에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혼을 정신으로 백을 육체로 이해하는 것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혼과 백을 싣고서 하나를 껴안는다(抱一)는 말은 인간의 전인격적인 온전함(心身合一과 같은 의미)을 이루어 하나()와 합일한다는 말로 풀이될 수 있다.

하나는 무엇이던가? 바로 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하나를 껴안아서 이 하나로부터 이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묻고 있는 뜻이 된다. 따라서 첫 번째 문제는 너희들이 몸과 마음이 합일된 전일한 생명체로서 하나인 도로부터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기를 오로지하고 부드러움을 이루어

능히 갓난아기가 될 수 있겠는가?

 

專氣致柔, 전기치유

能嬰兒乎! 능영아호

 

기를 오로지한다(專氣)는 말은 기를 다스려서, 즉 몸과 마음을 닦아서 생명체 안의 작용이 순일해지는 것을 말한다. 생명체는 우주안의 원기元氣로부터 일기一氣를 품부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 기가 정미한 것을 정이라 하고, 그 기의 마음작용을 신이라 하는 바, 신은 생명체 안에서 하나로 돌아간다. 이 기가 흩어지면 생명체는 해체되는 것이니, 기를 전일하게 하는 수련은 몸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의 주인은 마음, 즉 이이다. 이는 기의 체요 기는 이의 용이므로 이에 의해 기가 인도되고, 에 의해 이가 나타난다. 따라서 기수련의 요체는 마음()으로 기를 잘 인도함에 있으며, 그 마음을 텅 비우고 배를 실하게 하는데 있게 되는 것이다.(虛心實腹)

 

기수련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첫째, 양기養氣이다. 양기란 간단히 말해서 우리 몸 안의 에너지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우리 생명이 원래 부여받은 기운을 원기元氣라 하는데, 이 원기는 갓난아기 때 가장 큰 상태(원래 부여받은 그대로의 상태)로 있으나, 성인이 되어 성생활을 영위하면서, 그리고 노쇠해감에 따라 점점 고갈되어 진다. 그래서 도가道家의 양기수련은 원기를 회복하여 갓난아기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이러한 양기수련의 대표적인 것이 정좌명상과 참장공 수련이며 정공靜功(정적인 수련)을 위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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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운기運氣이다. 운기란 몸 안의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양생의 요체는 두 가지로 줄여 말할 수 있는데, 바로 에너지의 크기에너지의 소통이다. 만약 몸에 힘이 없어 늘 현기증이 나고 의욕이 없을 정도라면, 먼저 몸을 보양하고 에너지를 강화함이 우선이 될 것임은 뻔한 이치이다. 에너지의 크기란 원기를 말하는 것이니 원기를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함은 수련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중요한 것이 운기인데, 막힘이 없도록 에너지의 순환경로를 잘 청소하고 깨끗이 관리하는 것이 요체이다. 양생 격언에 통즉불통痛則不通이라는 것이 있다. ‘아프다는 것은() , 소통되지 않음(不通)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운기의 요령은 호흡으로부터 나오고, 그 호흡을 인도하는 것은 마음이다. 운기수련의 대표적인 것이 태극권, 기공수련 등이며 동공動功(동적인 수련)을 위주로 한다.

셋째는 통기通氣인데, 기가 몸의 안과 밖으로 환히 통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의 종류는 많지만, 세 가지로 줄여서 말해 기혈氣血의 기와 경락經絡의 기, 그리고 중맥中脈의 중기中氣가 있다. 기혈의 기란 혈관을 따라 흐르는 기운인데, 혈액을 밀고 당겨서 순환시키는 작용을 하는 기다. 모세혈관을 보면 심장의 압력으로 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혈관 그 자체의 기운이 피를 밀고 당김으로써 혈액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기혈의 기란 혈액과 함께 혈관 속을 운행하는 기라고 할 수 있다.

경락의 기란 기의 통로(요가에서는 나디라고 함)라고 할 수 있는 몸 안의 경락(정경 12맥과 기경 8)을 통해 도는 기운을 말하는 것인데, 작은 낙맥絡脈까지 말하면 우리 몸 안은 기의 길이 아닌 것이 없이, 전신이 다 기의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경락의 기는 혈관과는 독립적인 기의 길, 즉 경혈락맥을 따라 운행되는 기가 되고, 우리 체내에서 도는 기운이 된다.

 

앞의 두 가지 종류의 기가 몸 안에서 형성되고 운행되는 제한성을 갖는데 반해, 중기中氣란 몸의 제한성을 넘어서 밖의 기운과 교류하고 통하는 기운을 말한다. 기공에서 발산하는 기운이나 태극권을 할 때 발경하는 기운 등이 이 중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앞에서 분류한 세 가지 종류의 기라는 것도 본래는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기운작용을 편의상 알기 쉽게 나누어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몸 안과 밖이 일기로 통해 있어 안팎의 기운의 교류가 가능한 상태가 통기이다. 그러므로 통기 상태가 되면 수련자의 몸에 후광이 나거나 광채가 난다고 하는 것이다. 노자 할아버지가 던진 두 번째 질문은 너희들이 지금까지 열심히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심신합일을 이루었으니, 이제 기를 바르게 키우고 다스림으로써 갓난아기의 상태처럼 기가 충만하고 부드러울 수 있느냐?”라고 묻고 있는 뜻이 된다.

현묘함을 보았다는 자취를 씻어내어

능히 흠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滌除玄覽, 척제현람

能無疵乎! 능무자호

척제滌除씻어낸다는 말이고, 이란 현묘한 경지를 뜻하는 말이며, 이란 보다의 뜻이다. 현묘한 경지를 체험하니 그 즐거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경지를 도달했다는 성취감이나 자만심도 생길 수 있다. 그런데 현묘한 경지란 무엇이던가? 도의 본체라 할 수 있는 무의 경지이다.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고, 하고자함도 없는 그런 경계, 그것이 무이다. 욕망도 없고 분노도 없고 도 없는 그런 경계가 바로 무의 경계이다.

 

이란 그 무속에서 유가 생성되어 나오고 유가 다시 무로 숨어들어가는 그런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경계이다. 이름 없는(無名) 시원에서 이름 있는(有名) 것들이 들고 나니, 함과 요함이 둘이 아닌(不二) 경계, 그것이 현이다. 따라서 현람玄覽은 현의 경계를 보았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현의 경계에 든 사람의 마음에 가 그것을 보았다는 자취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아직 덜 본 것이다. 아직 덜 간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진정한 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보았다는 흔적마저도 씻어내야 한다(滌除)고 말하는 것으로 풀어진다. 그것이 척제현람滌除玄覽의 뜻풀이가 된다.

 

그런데 세상에 도 닦는다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자기가 도달한 경계를 홍보하는데 열을 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해탈했다. 내가 불이不二 법문에 들었다. 내가 도통했다 라고 말이다. 도에 갈급한 사람들이 도사 임직한 이들에게 미혹되어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들도 허다하니 노자의 노파심이 여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너희들이 현의 경계를 본 사실이 있다면 그것마저 씻어내어 아무 흠도 없게 할 수 있겠느냐?” 고 세 번째 물음을 묻고 있는 것이다.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림에

능히 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愛民治國, 애민치국

能無爲乎! 능무위호

애민愛民이란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말하고, 치국治國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하니, 애민치국은 네가 견지를 쌓고 수행을 해서 증득한 것을 이제 백성들을 위해, 네 이웃들을 위해 쓸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과 같다. 노자는 애민愛民을 매우 중시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천하를 위해 귀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고(貴以身爲天下者, 可以寄天下),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천하를 위해 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천하를 의탁할 수 있다.(愛以身爲天下者, 可以託天下. 13)”고 했다.

 

애민愛民이웃사랑을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성서의 말과도 같다.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의미로도 통한다. 안으로 성인의 도를 닦았으니 밖으로 중생들에게 되돌리라는(廻向) 말이다. ‘회광반조廻光返照와도 같은 뜻이다. 진리의 빛을 보았으니 이제 그 빛을 돌이켜 중생을 살피고 돌보라는 뜻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성서의 말과도 뜻이 통한다. 수신修身했으니 제가齊家하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라는 유가의 말이 역시 같은 뜻이다.

 

아이들의 공부를 견지見智, 수증修證, 그리고 행원行願의 세 과목으로 정했으니, 애민치국은 그 중 행원에 속하는 인생살이다. 배우고 깨우쳤으면 삶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이 진정한 행원이다. 네 번째 물음은 그러므로 그렇게 애민치국 하되 무위함으로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 된다.

 

하늘의 문을 열고 닫음에

능히 암컷처럼 할 수 있겠는가?

 

天門開闔, 천문개합

能爲雌乎! 능위자호

 

하늘은 도, 즉 큰 길이고, 그 도가 생명체에 내재해 있는 것이 본성이니, 노자의 언어로 하면 이다. 도교는 성명쌍수性命雙修의 내단 수련(5단계)을 통해 하늘 문을 연다. 그중 하늘 문에 들어선 단계가 연신환허煉神還虛이고 연허합도煉虛合道이다. 축기築基로 정의 기초를 쌓은 다음, 연정화기煉精化氣를 통해서 정을 기로 바꾸고, 연기화신煉氣化神을 통해서 기를 신으로 변화시킨 다음, 연신환허를 통해 신을 텅 빈 허무虛無의 상태로 화하게 한다. 그런 다음에 그 허무마저 도와 합일시켜 도달하는 경계가 연허합도가 된다.

에서는 본성에 계합함으로 본래면목’, ‘본래부처를 깨닫는 것을 견성見性 성불成佛이라 하는데, 하늘 문에 들었다함은 바로 견성을 말함이다. 불가佛家의 용어로 하면 해탈解脫이고, , 무상無相, 무원無願이 대승전통에서 말하는 해탈의 세 관문이 된다.

요가에서는 명상으로 사마디에 들어 물아일여物我一如,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그 관문에 해당하는 자리가 사하스라라 차크라이고 하늘 문에 해당한다. 사하스라라 차크라는 도가道家의 니환궁(머리의 정수리)과 같은 지점이고, 상단전이라고 불리는 기의 센터(혹은 영적 센터)이다. 이 하늘 문은 인간의 의식 중 가장 지고한 의식이 열리는 자리라 불린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의 의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리가 된다. 요가는 이곳을 1000개의 연꽃이 피는 곳으로 형상화 한다. 모든 차크라를 다 열고나서 마지막으로 여는 영적 센터이니, 이 문이 참나로 드는 관문이 된다.

 

그런데 이런 하늘 문을 열고 닫음에 암컷처럼 하라(爲雌)’는 말은 무슨 뜻일까? 노자에게 암컷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암컷은 비움, 관계성, 포용력, 창조성, 수동성을 아우르는 말이다. 노자의 암컷은 무위나 자연의 뜻에도 가깝다. 그러면 한번 암컷의 수동성을 감응해 보자.

 

봄은 꽃들의 계절이다. 꽃이 화사하게 피고 진한 향기를 내뿜게 되면 처녀들의 마음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산란한데,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벌 나비들이 떼거리로 날아든다. 벌 나비들은 이 꽃 저 꽃들을 바삐 옮겨 다니며 열심히 꽃들을 수정시켜 주는데, 기실 꽃들은 별로 한 일이 없다. 예쁘게 피었을 뿐이고 향기를 좀 내뿜었을 뿐이다. ‘수동적 함혹은 함이 없는 함이라고나 할까!

토종닭을 키우면 재미있는 일이 많다. 애들은 몸매가 날씬해서 한번 뜨면 지붕 높이로 50미터쯤은 일직선으로 날아가버린다. 알을 낳으면 스스로 품어서 예쁘고 깜찍한 병아리들을 까서 몰고 다닌다. 이 병아리들이 자라나면 암컷은 우아하며 수컷은 화려하고 용맹스런 어른 닭이 되는데, 이들의 모이 먹는 풍경이 흥미롭다. 수컷이 놀다가 벌레(먹이)를 찾아내면 갑자기 꼬꼬꼬하면서 암컷들을 부른다. 수컷이 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어디선지 요염한 암컷들이 순식간에 모여든다. 그러면 수탉은 그중 맘에 든 암탉에게 그 벌레를 물려주고, 잠시 후에 그 암탉 위에 올라가 일을 치룬다. 암탉은 별로 한 일도 없이 아주 쉽게 밥도 얻어먹고 알도 깐다. 일거양득이 되는 셈이다. 암컷의 수동성의 위력이라 할까?

 

진돗개를 키우면 암컷은 집을 잘 지켜서 좋다. 그런 암컷이 낳은 지 일 년이 넘으면 발정이 난다. 개는 청각도 발달했지만 그중 후각이 기가 막히다. 수캐는 반경 20리 안의 발정난 암캐의 냄새를 놓치지 않는다. 이놈들은 근방의 암캐들 돌보는 것을 도의 명령으로 받았던 모양이다. 암컷이 냄새를 피운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 수컷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차례로 몰려든다. 몇 마리가 되든 암컷이 수컷의 눈치를 살필 일은 없다. 다만 지 좋은 파트너를 골라 짝짓기를 청할 뿐이다. 암컷은 다만 가벼운 냄새만 피웠을 뿐이다. 매우 수동적일 뿐이다.

 

암컷은 늘 고요함으로써 수컷을 이기고, 고요함으로써 자기를 낮춘다.(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61)”고 했다. 노자에게 암컷은 도에 가까운 덕성을 지녔다. 그런 까닭에 노자는 다섯 번째의 물음을 묻는다. “너희들이 하늘 문을 열고 닫음을 자유자재로 하되, 암컷처럼 할 수 있는가?”

 

밝고 또 밝아 사방을 비추면서

능히 지혜롭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明白四達, 명백사달

能無知乎! 능무지호(10)

명백明白이란 밝음이다. 밝고 밝아 사방을 비추니 어둠의 구석이 없다. 노자는 밝음을 참된 지혜를 뜻하는 말로 쓴다. 그런데 그 밝음은 어둠을 배제하고 어둠과 구분되는 그런 밝음이 아니라, 어둠 속에 있고 어둠과 동거하는 밝음이다.

 

밝음()’을 술회하는 노자의 경문을 한번 살펴보자.

그 위에 있는 하늘의 해와 달이 아무리 밝아도 더 이상 밝게 할 수가 없고, 그 아래에 있는 어둠이 아무리 어두워도 더 이상 어둡게 할 수도 없다.(其上不皦, 其下不昧. 14)

자기 스스로 본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밝게 된다.(不自見故明. 22)

밝음을 이어감’(襲明, 27).

타인을 아는 것을 지혜롭다 하고, ‘를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知人者智, 自知者明. 33)

아직 드러나지 않음 가운데서 기미를 보는 밝음(微明. 36).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다.(明道若昧. 41)

작은 것,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밝음이요.(見小曰明, 52)

그 밝음으로 돌아간다.(復歸其明. 52)

조화로움을 아는 것을 상이라 하고,(知和曰常)

을 아는 것이 밝음이다(知常曰明. 55).

 

여기서 밝음을 나타내는 것은 드러나지 않음 가운데 있는 기미()’, ‘작음()’, ‘되돌아가는 그 곳(復歸)’, ‘항상됨()’, ‘내면을 보는 것 등으로 모두 노자의 도를 은유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므로 밝음()은 도를 보고’, 도를 경험하고’, 도를 알고’, 도로 되돌아감을 뜻하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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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를 가지고 있는 밝은 이는 모든 것을 하나로 감싼다. 명백사달明白四達은 도의 체를 체달한 길가는 이의 밝은 능력, 즉 도의 실용을 말하게 되고, 능력이나 공력을 말하게 되는데, 도술道術이 이와 같다. 이렇게 밝은 도의 술을 체득해 사통팔달하는 능력을 가졌으니 장자가 말한 신인神人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신인은 겉으로는 공이 없는 듯하다.(神人無功)

이토록 밝은 지혜의 옷을 입고서도 능히 그 지혜를 없게 할 수 있느냐?(能無知乎)”고 묻는 것이 마지막 여섯 번째 질문이다. 여기서도 노자의 없음()’은 분별의 세계를 넘어섬(超越), 상대적 세계가 끊어짐(絶對)으로 읽어야 한다. 즉자적 무가 아닌 한번 자기부정을 거친 이다. 그렇게 없고’ ‘넘어서고’ ‘끊긴세계가 궁극의 세계요, 진리의 세계요, 항상()된 도의 세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자의 무지無知는 그 안다고 하는 알음알이를 넘어서고()’, 알음알이가 주된 무기로 삼는 분별의 독을 끊어서()’, 그 알음알이의 흔적조차 없는()’ 그런 뜻으로 읽힌다.

 

아이들은 봄을 보내고 이제 인생의 여름을 맞을 것이다. 충천한 에너지와 열정을 불사르며 그들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므로, 성인이 된 그들의 앞날에 인생의 봄에 닦은 공부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의 어깨는 세상과 겨루어도 지지 않을 만큼 넓고 단단하며, 그들의 배는 세상을 다 들이켜도 차지 않을 만큼 실하며, 그들의 하체는 튼튼하므로 세상 끝까지 한걸음에 달려도 지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가슴은 따뜻하여 얼음장 같이 차가운 이들의 닫힌 마음도 다 녹여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는 지혜로워 비움과 고요함으로 대립과 갈등, 증오를 털어내고, 조화로운 가운데 사랑과 평화, 행복의 기운이 넘쳐나도록 인도할 것이니!

 

인생의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아 한 매듭을 짓는 그들의 눈매가, 노자 할아버지의 깊고 그윽한 그것을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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