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을 씻어내는 토굴 수행을 시작하다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13/종남산 토굴 수행

 

싸부는 거듭 당부를 했다. 이제 겨우 기본 동작과 자세, 그리고 순서만을 익혔다. 혼자 종남산의 토굴로 다시 수련의 여정을 떠나는 제자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던가 보다.
 지필묵을 포함하여, 산중의 토굴에서 필요한 옷가지며 생활용품 등속을 세심히 빠트리지 않고 챙기도록 주문했다. 덧붙여, 태극권의 투로 수행 시 주의해야할 요결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절을 출입할 때는 꼭 잊지 말고 불전함에 다소의 보시금을 넣어라, 토굴 주변에 멧돼지 출현이 잦으니 출현 시 숙지할 요령이라든가, 종남산엔 독사들이 흔하므로 길을 다닐 땐 필히 막대기를 소지하라, 그리고 토굴에서 자취하는 취식이 부실할 것을 염려하여 주 1회쯤 산문 밖 사하촌에 나와서 양고기를 섭취해줄 것 등에 대해서, 경험담을 곁들여 구체적으로 일러주었다.

진가 태극권.jpg » 진가 태극권 무예도
 
 언젠가 싸부가 여기 종남산 정업사 경내에 있는 자신의 토굴에서 제자 한명과 함께 수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화장실을 가려고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왠지 머리 위쪽의 느낌이 야릇해서 고개를 들쳐보았다. 천정 위쪽의 한쪽 귀퉁이에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스님 짓궂게도 자고 있는 젊은 제자를 일부러 깨웠다. 글쎄 그 섬뜩한 광경을 목격한 제자는 사색이 되어 사시나무 떨 듯 하였더란다. 스님은 일없이 다시 잠에 들었고, 제자만 그만 무섬증에 밤을 새고 말았다는.

정업사 2.png » 정업사

정업사 3.jpg » 정업사

 
 싸부의 중국 유학시절 얘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가 난다. 이 양반이 홍콩과 상해, 항주 등을 유람할 적에 종남산 정업사 주지 스님을 만났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곳에다가 자신의 토굴을 하나 지었다고 했다. 자비로 지어서 정업사 측에 기부채납 했다고나 할까. 하여튼 중국에서의 유랑 길에 애착을 두고 자주 들렀던 곳이 바로 이 정업사와 자신의 토굴이랬다.
 
 어느 한때 이곳 종남산의 푸른 언덕 위의 토굴에서 싸부는 득공 수련을 작정했다. 새벽이면 일어나 태극권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싸부는 쓰촨 청두의 모대학교에 태극권을 가르치는 교수로부터 전수 받은 진가태극권 56식을 집중수련하고 있었다.
 싸부는 허벅지의 굵기만으로 북경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얼굴은 전례 없는 미소년의 형상으로 동안이다. 세간을 종횡할 적엔 뭇 여인들의 심금을 꽤나 울리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금상첨화로, 우람한 체격에 훤칠한 키 하며, 무술이면 무술, 공부면 공부, 자라온 세월을 통해 다재다능 팔방미인 절세기인 헌헌장부의 온갖 수사를 달고 다녔다.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다고 했다.

정업사.jpg » 정업사
 
 세 끼 식사는 정업사 공양간에서 해결했는데, 중국의 어느 지역이나 대체로 그렇듯이, 아침식사는 간단히 만두(만토우·우리식 만두와는 다른,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 밀가루빵) 한 개나, 시판(쌀죽)으로 때운다. 나의 경우는 원래 아침식사를 거르던 습관이 있어서 만두 한 개로 족했다. 뭔가 부족하면 쌀죽 한 그릇쯤 곁들인다. 이른 새벽 시간에 기상해서 족히 한 나절 이상의 분량을 수련에 전념하고 나면, 자연 밥맛이 돈다.
 싸부 이야기로는 당시 새벽수련을 마치고 아침식사로는 만두를 여덟아홉 개를 먹었다고 했다. 그것도 대형 만두를. 아 이분은 정말 위대한 분이구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두.jpg » 중국 만두
 
 진가권 56식은 대회용으로 진가 전통식의 다양한 투로를 잘 배합해 만든 ‘진식 표준형’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양가, 오가 무가, 손가 등 모든 전통들은 각기 자기의 표준형 투로를 갖고 있다. 일테면 ‘양식 표준형’은 40식으로 되어 있다.
 양식은 유유해서 연령대를 불문하고 남녀 공히 수행하기가 쉽다. 이에 비해 진식은 부드러움과 강함의 배합과 전환을 잘 구사하지 못하면, 운용이 울퉁불퉁해진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이 수행하기도 쉽지 않고, 힘도 훨씬 더 든다. 
 이 진가권 56식을 매일 새벽 수련 시, 몇 십 번을 반복했다고 했다. 한번만 돌아도 전신에 땀이 범벅이 된다. 그런 걸 하고 또 해서, 내기의 운용이 화답할 때까지 반복했다니, 어찌 그 강한 수련에 적응하기가 수월했겠는가.
 
 타고난 근골에 강한 체력의 소유자인 싸부가 그렇게 투로를 하루에도 몇십 번씩 반복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극한 수련에 몰입해 들어가던 중 갑자기 다음 식으로 이어지는 동작과 세(勢)가 일순 머리에서 싸악 지워지고 말았다. 나도 훗날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 양반 성격에 이대로 가만 두고 말 수가 없었다. 당장 비행기 표를 구매해서 쓰촨의 청두로 날아갔다. 단 1식을 까먹었다는 이유로. 가난한 유학생의 입장에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비행기를 타고 가서 기어코 문제를 해결하고야말았다. 하긴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유서 깊은 고도 장안을 한 아름에 품고 있는 종남산의 초입에 정업사(淨業寺)가 자리하고 있다. 정업사의 산문을 조금 못 미친 도로가의 사하촌(寺下村)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맞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식당들은 대개 두 가지 부류다. 양고기를 숯불에 구워내는 양고기 집들이 그 한 가지였고, 또 한 가지는 사천 요리로 유명한 민물고기 매운탕 집들이다.
 토굴에 입소하는 첫날이니 성페이가 동행해왔다. 서안 동굴에서 약 한 시간을 우리식 군내버스를 갈아타며 덜컹거리며 달려왔다. 도로 밑으로 커다란 계곡이 보인다. 종남산을 흐르는 골짜기의 크기가 몹시 인상적이다.
 
 입구에 정업사(淨業寺)라고 크게 씌어있다. 이곳이 목적지다. ‘淨’자가 특이하다. 절에서 좋아하는 고요 ‘靜’자가 아니고, 깨끗할 ‘淨’자를 썼다. ‘깨끗한 업을 짓는 절’이란 무슨 뜻일까? 나중에 알아본 뜻으론, 이 절은 율종의 창시자인 도선(596-667)이 그의 나이 68세인 만년에 주석했던 인연을 갖고 있었다. 청정한 계율을 수행의 지극한 바탕으로 삼지 않으면 ‘禪’(선) 수행 자체도 위태로울 수 있다. 하여 수행자의 참된 수행의 자세를 바로 잡는 뜻의 ‘淨’자와 바른 행의 도리를 뜻하는 ‘業’자를 써서 정업사(淨業寺)가 되었다.
 
 우리는 정업사로 오르는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체력이 좋은 사내라 할지라도 쉬이 오르지 못할 계단이 보기에도 아득하다. 계단의 끝에 오르니 발아래 지나온 도정이 아스라하다. 큰 숨 들이쉬고 난 뒤 여러 문들을 통과한다. 대웅전이 나온다. 절 삼배를 하고 이곳의 부처님을 뵈었다. 불전함에 시주를 하고 그냥 토굴 쪽을 향해 똑바로 걷는다.
 
 “요즘 말법 중생은 마음이 엷어서 은혜와 절의를 쉬이 배반하고, 쉽게 은사를 싫어해 홀로 지내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구나. 정에 이끌려 법에 어긋나니 네가 악도에 떨어질까 염려된다. 어찌할 수 없어 네가 늘 가까이 해야 할 경계의 글을 지어 안부를 대신한다. 잊지 말지니, 바로 너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오히려 천 마디의 좋은 말을 넘는 것이니라.”

1001.jpg » 태극권 수련하는 민웅기
 
 스승을 떠나간 뒤 나타나지 않는 제자 자인을 기다리는 절절한 심정을 담아, 도선이 쓴 글의 마디마디가 슬픔마저 고이게 한다.
 수행의 길이란 무엇일까? 가슴이 저민다.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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