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수련을 견뎌낼 수 있을까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9/동굴 수련을 시작하다 
 

 시안 공항에 당도한 시간은 중국 시간으로 밤 열두 시가 지나서였다. ‘민웅기’라는 팻말을 들고서 삐죽거리며 입국행렬을 내다보는 젊은 친구가 눈에 띄었다. 이국의 공항에서 서툰 한국말로 쓴 팻말이 이리 반가울 수가..... 마중 나온 이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 온다. 낯선 중국 총각이 우리말로 하는 인사를 들으니 대접받는 기분조차 든다.
 
 택시로 시간 반쯤 달려왔을까. 어둡고 칙칙한 비포장도로를 끼고 마침내 다다른 곳은 동굴이었다. 진짜 동굴 맞네. 산기슭에 있는 동굴, 새벽의 희미한 어둠속에서도  얼른 동굴의 개수를 확인한다. 음, 하나 둘 셋 넷, 아 네 개. 여기가 앞으로 내가 새로운 인생의 기초를 정초할 동굴 수련장인 셈이군.
 우리가 도착한 소리를 듣고 동굴 밖에 마중 나온 사람들의 수효가 꽤 많다. 스님을 포함하여 즈나, 성페이, 샤오난, 아이(이모, 아줌마의 뜻)까지, 이렇게 난 환영인파에 싸여 머뭇머뭇 동굴 속을 살피며 들어간다.

화산 4.jpg » 화산

  말이 동굴이지, 동굴의 크기는 나의 상상과는 영판 달랐다. 둥근 아치형으로 된 입구엔 벽돌을 쌓아 견고하게 만들어서 문짝을 달아 놨다. 문 위쪽은 유리로 된 창문이 한 짝 시설되어 있다. 폭은 족히 이삼 미터는 되어보였다. 길이는 한 십 미터쯤 될까. 높이도 키 높이를 훨씬 웃돌고 있다. 좁은 느낌이라곤 전혀 없이 널찍하다. 하여튼 언덕의 기슭을 파낸 것치곤 매우 훌륭했다. 아치형 동굴이 마치 기계가 파낸 것처럼 정교하고 원만했다. 창틀의 빈틈으로 전선이 들어와 있다. 이국의 동굴 안은 도심의 여느 아파트의 실내의 조명에 못잖은 밝기를 비추고 있다.
 역사공부에서 나온 상고 시대의 ‘혈거’ 주택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군.
 
 스님의 소개로 우리는 인사를 나눴다. 즈나는 스님의 요가 제자다. 나의 태극권의 입문 조교 역할을 맡는다. 스무 살 꾸냥(아가씨라는 말보다 더 어리고 청순한 느낌의 말이다)이다. 앳되나 작은 얼굴이 귀엽고 예쁘다. 호리호리한 키에 몸매가 가히 선녀를 연상케 한다. 이 친구의 요가 동작은 중국 오기 전에 스님의 노트북 사진과 동영상으로 벌써 본 적이 있다. 기예단 수준의 유연한 굴신(屈伸) 동작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운 느낌에 들게 한다. 하여튼, 예쁜 꾸냥이 나의 조교 역할을 한다니 설렌다. 띠 동갑이라는 사실도 별난 의미가 있을 테다.
 
 성페이는 즈나보다 한 살 위다. 쓰촨 출신인 건 즈나와 같고, 마른 체형에 키도 크다. 나의 여행길과 생활을 도와주기로 했다. 말수는 많지 않으나 의리형 남자다. 즈나와는 수시로 티격태격하고 친구처럼 지낸다. 나중에 내가 장소를 이동할 때나 여행을 할 때 주로 동반한 이가 성페이다.
 샤오난은 북경의 모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했다는 아가씨다. 나이는 스물다섯, 깜찍한 얼굴에 반짝거리는 눈망울이 한눈에 봐도 지혜 형 인간이다. 티베트불교 수행법을 좋아한다는 이 친구는 모 회사의 경영사장을 맡고 있다. 나의 중국어 학습을 도와준다.
 
 아이는 즈나의 친 이모다. 우리의 삼시 세 끼를 챙겨줄 공양주다. 세탁과 기타 생활과 살림 분야의 일을 도울 거다. 구김살 없는 성격에 매사에 적극적인 전형적인 중국 주부 스타일(?)이라고 할까.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방을 배정 받았다. 나는 가운데에 위치한 동굴에서 성페이와 함께 생활한다. 첫 번째 동굴이 스님 방, 세 번째 동굴이 즈나와 아이 방, 그리고 네 번째 동굴이 주방과 식당으로 정해졌다. 샤오난은 시안이 집이라 출퇴근 하듯 할 거다.
 
 내일부터 한 주간 생활할 시간표가 스님으로부터 주어졌다. 여기서의 모든 일과는 스님이 정한다. 필요에 따라서 의견을 청취한다. 하지만 스님의 결정은 가히 절대적이다. 기상은 새벽 3시에 하고 취침은 저녁 10시에 한다. 3시에 기상해서 차훈과 명상, 요가를 하고, 다음에 참장공 1시간, 이어서 태극권 독습을 한다. 그리고 나서 아침 식사다.
 오전엔 중국어 공부와 노자 경문 암기와 필사, 요가 수련,  다시 참장공으로 채워지고, 오후엔 태극권 투로 배우기, 투로 연습, 그리고 다시 참장공과 요가 등속이다. 한가할 틈조차 없이 빽빽하다.
 저녁 식사 후엔 조금 여유롭다. 스님과 식구들 모두 자리를 함께 하며 차담으로 하루 일과를 평가하며 조정한다. 그리고 노자도덕경 경문 암기와 필사 테스트(중국어로)가 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샤오난과 함께 중국어로 노자도덕경을 읽고 풀이한 후에, 나 홀로 노자 복습과 암기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이 마무리 된다. 물론 일정표는 매주 혹은 필요에 따라서 수시로 바뀐다. 수련자의 적응과 성취 여하에 따라 조정된다.          
 
 섬서 성의 성도인 서안의 변두리 어느 뜻 모를 언덕의 한 동굴 속이다. 나는 누구이며, 또 어디에 있는 것인가?

 서안.jpg » 서안

  한, 위, 서진, 수, 당대를 걸쳐 수도의 역을 잘 소화해낸 서안은 중국의 국도로서 장안성을 그 안에 갖고 있는 유서 깊은 도시다. 당나라 때 인구 100만을 넘는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서 흥기하였던 곳, 서안은 지금 900만 정도의 인구를 갖는 섬서성의 성도이고, 장안은 오랫동안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이름이었다.
 시내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당 현종과 양귀비가 머물렀던 유적지 화청지가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병마용이 진시황 시절의 8천여 병사들의 생생한 표정까지를 그대로 살려 보존한 상태로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당나라 현장법사가 가져온 불경과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대안탑과 소안탑이 있으며, 부근에 2200여기의 능과 묘가 온존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출토된 유물유적이 그 역사의 넓이와 깊이만큼 풍성하다.     
        
 서안을 대표하는 산은 종남산이다. 서안에서 남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져 있다. 무협 영화 ‘신조협려’의 무대가 되었던 산으로도 유명하다. 무림의 구파 일방의 장문인들이 이 종남산에 모여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숫하게 구수회의를 했던 곳, 전설조차 그 역사적 문화적 맥락의 맛을 되살려준다. 현지에서는 취화산(翠華山, 해발 1500m)이라고도 불린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10년간 수도 정진했던 곳이다. 우리에겐 각별한 의미가 더해지는 곳이다.

종남산 2.jpg » 종남산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km쯤 가면 화산(華山, 2100m)이 나온다. 화산 역시 중국 무협에서 빼어난 검술로 유명한 화산파의 활동 무대다. 화산은 중국 오악(五岳: 태산, 화산, 형산, 황산, 숭산) 중 서악(西岳)으로 칭해진 산이다. 거대 화강암으로 된 다섯 봉우리가 온몸을 두드리는 위압적인 절경이다. 이 화산에 올라 진시황을 비롯한 역대 중국의 황제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올렸다. 나는 이 화산을 못 가본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수련에만 전념해야 된다는 각오야 높이 살 만했을 것이다. 기회가 자주 오진 않는다. 광활한 대륙의 어느 한곳인들 가벼이 여길 만할 곳은 없다. 
 
 싸부는 중국 출행을 앞두고 되게 겁을 주곤 했다. 노자 오천 자를 다 외우지 못하면 수백 대의 매를 맞을 거라고 했다. 눈밭에서 태극 참장공 수련을 하다 발이 동태처럼 얼어버린 티베트 승려 제자의 이야기도 공포스러웠다. 뿐만 아니다. 다리에 모래 각반을 두른 채 종남산의 언덕을 하루 몇 시간씩 뛰었다던 비만 수련자에 대한 얘기도 그랬고, 뚱뚱한 보살의 40일 단식 지도에 관한 얘기들도 겁을 먹게 했다. 기발하고 괴이쩍은 일들이 지금부터 어떤 식으로 끼어들까, 궁금했다. 물론 나이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그토록 혹독한 수련을 소화해낼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무협지 속의 어떤 상황, 절박하고 비장한 각오를 요하는 그런 상황이 실제 닥치더라도 한번 해보겠다는 각오도 있었다.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을지도 모를 기회다. 결코 소홀히 보낼 수 없다는.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 저자,송계선원장)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