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끝에 흐르는 눈물은?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의 수련일기 5/오래 잘 앉아있는 능력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한번 튀면 그로부터 또 어디론가 자꾸 튄다. 사람의 인연도 그렇고, 사업 인연도 그렇고, 시절 인연도 그렇다. 마치 사내의 집 마당에 민들레 씨앗이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그 흔한 민들레꽃도 처음 사내가 이곳에 터를 잡을 즈음엔 눈에 띄지 않았다. 중간에 어느 지인이 씨앗을 뿌려놓았다고는 했다. 하여튼 몇 년 새에 종자가 번식되어 지금은 꽃 잔치를 벌여도 될 만큼 화사한 뜨락이 되었다.
 
 길 떠난 사내의 앞에는 다가온 인연의 싹들이 어디로 튀는지조차 알 수 없게 돋아난다. 인연도 그 종자를 잘 틔워서 물과 양분을 주고 잘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오랜 시간 위빠사나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사내에게 그 인연의 때가 지금 왔다. 고엥카 영감님은 미얀마 전통의 세계적인 위빠사나 명상수행 단체를 이끌고 있는 대사(大師)이다. 60여개 국가에서 동시에 명상 세션이 진행된다. 각국에 선사들이 주재하거나 파견된다. 그러나 정작 주도면밀하게 진행하는 실질적인 진행자는 녹음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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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엥카 영감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온다. 주재 선사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이 녹음기를 켜고 끄는 일이 하는 일의 전부다. 물론 긴한 상담은 선사의 몫이지만. 고엥카 영감님은 사내가 처음 이 세션에 참가했을 당시 80세 가까운 고령이었다. 나이에 비해 녹음기를 타고 나온 그의 음성은 카랑카랑했다.
 빨리어 찬팅(예배)을 통해 울려나오는 고엥카 선사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왠지 익숙하지 않았다. 약간 괴기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만 10일간의 집중수행이 끝나갈 무렵엔 묵중한 음성에서 어떤 신비스런 영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내의 가슴속에 어느 새 봄이 오기 시작했던 것일까. 영감님의 깊은 듯 낮게 울려오는 목소리에 빠져들고 있었다.
 
 인도의 성공한 사업가로서 그는 미얀마에서 초기불교의 적통으로 인정되던 자신의 스승 래디 사야도로부터 위빠사나 명상 전통을 이어받았다. 비록 출가자의 신분은 아니지만 그가 자임한 미션은 출가 수행자에 못지않았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붓다의 법의 유산을 다시 불교의 원산지인 인도로 되돌려 전파하는 일이었다. 위빠싸나 수행을 세계인의 가슴 속에서, 삶 속에서 다시 피워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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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자신의 사재를 바쳐 세계적인 위빠사나 명상 세션 라인을 구축했다. 그리고 인도와 세계각지에서 오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수행을 지도하고 상담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단순한 독지가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직접 명상 수행 지도의 길에 나서 법사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이 명상 세션은 충북에 있는 어느 절간을 빌려 진행되었다. 사내는 다른 모든 일정을 거두고 10박 11일간의 집중 수행에 참가했다. 6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전국에서 온 남녀 참가자가 60명에 가까웠다. 생활의 규칙은 다소 까다롭고 엄격했다.
 
 입소하는 순간부터 남녀의 생활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행선지와 식당, 그리고 세션의 대부분의 장소가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남녀를 분리했다. 서로 간에 볼 수도 관심을 가질 수도 없도록 엄격히 통제하였다. 참가자간에 대화와 소통을 위한 어떠한 인사나 몸짓도 해서는 안 된다.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곧 이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입문자, 초보 수행자를 위한 철저한 배려였기 때문이다.
 
 하루 두 끼의 식사, 정확히 말하면 점심 한 끼만 정상적인 식사로 제공되었고, 아침은 몇 조각의 과일로 대신하였으며, 저녁엔 우유나 주스 한 잔, 그리고 간단한 부식이 나오는 것의 전부였다. 남방 수행자들이 지키는 하루 한 끼 식사의 방식과 다름이 없었다.     
 
 만 10일간의 수행 기간 내내 철저히 묵언을 지켰다. 생각조차 금지당하는 그런 어떤 느낌이었다. 번뇌가 일어날 환경 자체를 조성하지 않았다. 앞서 잠재해든 번뇌의 종자는 싹부터 자라나지 못하도록 하고, 이미 자란 번뇌의 싹도, 명상이 하루 이틀 진행되어가면서 저절로 고사될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램이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게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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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반에 기상했다. 4시부터 명상 홀에서 고엥카 영감님의 테이프 집전으로 법문과 명상이 진행된다. 물론 고엥카의 빨리어 집전과 법문은 테이프 안에 통역되어 있어 문제가 없다. 밤 10시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취침에 든다. 수행 중에 수면은 충분히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 졸음과 혼침에 혼이 날 수가 있다.
 이곳에선 다른 전통의 수련법을 섞지 못하도록 한다. 몸을 풀기 위한 요가 동작도 해서는 안 된다.
 모범생 스타일인 사내는 정해진 규율을 잘 따랐으나, 요가 금지는 수용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 10분과, 기상 직후와 취침전의 짬을 이용해서 기본적인 요가동작으로 몸을 풀었다. 어떤 일탈은 자유의 틈을 열어주기도 하니까. 
 새벽부터 밤까지 18시간 이상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행하는 것은 때로 몸에 무리가 되기도 한다. 허리 아프고 다리 저리는 데야 별 수가 없다고, 사내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다른 명상 전통들은 대체로 좌선뿐만 아니고 행선 등을 병행한다. 그해서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고엥카 식의 고통은 없다. 하여튼 사내의 결론에 따르면, 고엥카 프로그램의 성취의 관건은, ‘오래 잘 앉아있는 능력’이었다.
 
 붓다의 초기 경전 중의 하나인 대념처경에는 ‘4념처 수행’이 있다. 이 염처 수행이 고엥카 명상 전통의 줄기가 된다. ‘4념처 수행’이란 몸에 관한 마음 챙김(신념처), 감각에 관한 마음 챙김(수념처), 마음에 관한 마음 챙김(심념처), 법에 관한 마음 챙김(법념처)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각에 관한 마음 챙김 수행을 위주로 짜인 것이 고엥카 명상 수행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말이 10일이지 쉽게 여겼다간 큰 코 다치지, 사내는 처음 3일과 4일 째를 지나면서부터는 극심한 허리의 통증을 견디다 못해 집 생각이 간절했다. 이번 동기들의 경우 참가자 전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완주했다. 주최 측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무나 이토록 밀도 있는 수행을 견디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나빠나 호흡(코끝의 인중에 초점을 맞추어 호흡을 관찰하는 수행법)으로부터 시작했다. 아나빠나 호흡이 어느 정도 밀밀하게 된 후부터는 전신의 부위에 따라 단계 단계 훑어내리며 관찰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훑어 내리고 다시 훑어 올라가는 순행과 역행을 하루에도 몇 차례를 반복했다. 그렇게 반복을 거듭하면서 사내의 알아차림 수행도 일신우일신하고 있었다.
 
 사실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위빠사나 수행을 경험하면서도, 처음 며칠 동안은 육체로부터 오는 통증과 저림의 순간을 이겨내느라 별다른 감동이나 희열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 18시간의 좌선을 견디었다.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가고, 그러던 어느 날, 주어진 절반의 시간이 지나고서였다.     
 
 잠깐 쉼을 하면서 고요히 잠겨있던 시간, 사내의 눈에선 주체할 수 없도록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른 까닭은 없었다. 표층의 의식에 묻혀 들어온 감정의 찌꺼기들은 씻겨 내려간 지 오래다. 처음 이삼일 동안은 밖으로부터 묻혀 들어온 번뇌와 상념의 잔재들이 명상 도중에 의식의 표면으로 틈틈이 올라왔다.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순간 놓치지 않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들은 사라진다. 나타나면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면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것이 명상이다. 지극히 단순하고 맑은 의식 상태에서 주시의 눈길은 더욱 그윽하고 고즈넉하게 된다. 몇날며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명상이 깊어가면서 사내의 마음속은 맑은 샘물처럼 정화되어 갔다. 더 이상 걸러낼 만한 것들이 남아있지 않은 듯 적적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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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름 아닌 감사의 눈물이었다.
 애초에 사내는 불교라든가, 붓다라든가, 위빠사나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종교적 색깔로 접근한 적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지금 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종교적인 감상과는 사뭇 달랐다.
 사내는 우선 고엥카 영감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그의 가르침에 감사했다. 처음엔 적응조차 되지 않았던 그 둔중하고 쩌렁한 법문과 찬팅 소리가 시간이 가면서 좋아진 것이다. 까닭 모를 감동에 젖어 들어갔던 것이다.
 
 고엥카 영감님은 어떤 인연으로 나를 위하여 가르침을 주시는 걸까. 저 양반은 내게 대체 어떤 존재인가. 아무 생각도 없이 눈물이 앞을 적셨다. 고엥카 영감님이 전해준 그 귀한 깨달음의 공덕은 어디서 왔는가, 보리수 아래서 큰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은덕이 아니고 무엇이랴,
 
 5일째를 지나면서는 명상에 들어갔다 하면 적적함의 상태를 유지했다. 순일한 명상의 흐름을 따라 더욱 세미하게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면서 기이한 느낌이 함께 일어난다. ‘氣(기)’ 현상이 틀림없었다. 사내는 내심 기 체험을 반긴다.
 
 사내의 인연이 태극권과 기공 공부에 이르고서야, 이 ‘氣’ 현상이 이해되었다. 기공의 제1요결인 ‘意到氣到(의도기도)’와 제2요결인 ‘氣到血到(기도혈도)’가 감각수관 시 일어나는 기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意到氣到(의도기도)’란 ‘의식이 도달하는 곳에 ’氣‘가 도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의념을 한 곳에 집중하는 순간, 그곳에 ‘氣’도 집중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기공 수행 시 매우 중요한 이론적 실천적 근거를 제공한다. 내가 단전에 의식을 두면 단전으로 기가 모이게 되고, 내가 머리에 의식을 집중하게 되면 기가 두뇌로 집중되어 뇌의 활동이 활기차게 된다. 이것이 意到氣到(의도기도)의 풀이다. 의도기도의 실천적 적용이 된다.
 
 이 요결의 원리를 수련에 잘 적용한 스님이 한 분 있었다. 그 스님은 기를 모으기 위해서, 말할 때나 말을 들을 때, 그리고 걸을 때나 일할 때 항상 단전에 의념을 집중하고자 애썼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의 기운과 저 나무의 기운과 저 바위의 기운과 공기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모두 내 단전으로 모여든다.”
 수련의 세월이 쌓이면서 이 스님의 내공은 대단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에선 ‘타법 수련’의 창시자로서, 또한 기공의 고수로서 내노라 할 그 방면의 기인의 반열에 들었다고 한다.
 
 ‘氣到血到(기도혈도)’도 마찬가지로 “의념이 가는 곳에 氣가 가고, 바로 그 기가 가는 곳에 血이 간다”는 뜻으로 푼다. ‘氣’는 체내에서는 몸의 정수인 精(정)과 血(혈)을 수반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바로 마음을 쓰는 요령에 있다. 기를 쓸 때는 반드시 마음을 통해서 쓴다. 이렇게 움직여진 기는 정과 혈을 동반함으로써 ‘기혈’의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기혈창통’이란 말도 이렇게 쓰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여길 수도 있는 것이 마음작용이다. ‘마음 씀’이 ‘기’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키워드’가 됨을 이 두 개의 기공의 요결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위빠사나는 의도적으로 이 ‘氣’ 현상을 외면한다. 단지 알아차림으로 인해 일어난 ‘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에 기공은 이 요결의 원리를 이용한다. 그리하여 기를 모으고 순환시키는 활용에다 그 초점을 맞춘다.
 
 명상이 무르익어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이 가는 대로 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몸의 거죽에서부터 뼛속까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상하와 좌우를 관통하며 훑어내리는 관찰이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면서, 이 기이한 희열의 느낌이 앉아있는 내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흥미로움에 빠져서 그것에 탐착하는 것도 위빠사나 명상에서의 금기 사항 중 하나다. 사내는 금기를 깨지 않도록 조심하고는 있었으나, 그 기억은 오래갔다.     
 
 집중수행의 기간이 종료되고 참석했던 도반들끼리 함께 자리를 같이했다. 감동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힘든 시간을 극복한 이들의 웃음이 그랬을까, 아니면 수행의 인연과 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 무엇으로 흘러내렸을까.
   
 고엥카 명상 세션의 경험은 이후 사내의 알아차림 수행의 밑거름이 되었다. 10일간의 짧지만 강렬했던 집중수행의 경험은 사내의 몸과 마음의 구석구석에 지워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 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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