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자각을 초월하는 궁극에 이르다 오종천의 요가 교실

오종천의 요가교실 9 / 긴장과 이완은 대칭
  
 요가(YOGA)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은 이미 요가의 근본경전으로 알려진 <요가수트라>에 나와 있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필자의 눈에 비치는 현실속의 요가수행이 일반체육활동과 구별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일반체육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스포츠종목은 나름 근거와 체계,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그 뿐, 굳이 요가와 비교하여 판단하는 것이 가능 하다해도 유익할 것은 없다고 본다. 다만, 그 차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요가와 일반체육의 가장 큰 차이는 그 지향하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설사 요가자세를 실행하는 모습이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라도 요가는 수행자 자신의 내면을 지향하는 반면 이른바 일반체육, 특히 스포츠종목은 외향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요가수행이 공연무대에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거나 상대방과 경쟁하여 이기고 기록을 갱신하기 위한 대회용 종목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요가수행은 자각을 통해 자신 안에 내재하는 순수의식에 이르기 위한 방편이다.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다루기 용이한 몸(자세수련)부터 시작한다. 몸으로 하는 요가자세수련을 호흡법이나 명상수련보다 더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마음은 존재 안에서 몸과 호흡에 비해 가장 변화무쌍한 것이라 그 만큼 다루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몸으로 하는 자세수련이 가장 쉽다는 말이 이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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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자세수련으로 몸이 확고부동하여 더 깊은 이완이 가능할 때, 그 이완의 깊이에 비례하여 ‘나’라고 하는 존재의 내면의 고요함이 깊어지는 흐름이 나타난다. 이 때 내면의 깨어있는 의식의 집중은 깊어지는 이완의 흐름을 따라 보다 완전한 균형으로 이끈다. 마지막 남은 긴장(내면에 깊어지는 흐름을 타고 있던 깨어 있는 의식의 집중)마저 사라질 때 일체의 자각을 초월하는 궁극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깨어 있는 의식에 대해 설명할 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허상임을, 자신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내면의 그 무엇’이라고 하는 정도로 끝낸다.
 
 지난 시간에 이른바 요가이완법에 대해 알아봤다. 흔히 명상하기 좋은 자세라는 의미로 ‘명상자세’로 불리는 자세들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호흡자세’, ‘이완자세’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몸과 호흡 그리고 의식이 일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른바 ‘삼위일체’의 원리에 따르자면 명상자세 또는 호흡자세를 구별하는데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요가자세를 수련함에 있어 긴장과 이완이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긴장이 수단이라면 이완은 목적이고, 이완은 요가수행 전체를 양분하여 절반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은 다음 설명을 위해서라도 꼭 기억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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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요가를 할 때 혼자서 책이나 비디오, 언론방송 등 미디어 매체를 무작정 따라하지 말라고 말해 왔다. 이 글을 보고 따라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고, 만약 그렇다면 그간의 언행과 모순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혼자서 하는 수련이 가장 좋다. 그러나 매체를 보고 무작정 따라서 하는 것은 혼자 하는 수련이 아니다. 요가를 전문가의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혼자서 하는 수련하는 깊이와 집중에 방해를 느끼는 수준에 이를 때가 있다. 그때 까지는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여하분문하고 요가를 하시는 분들께 각자가 무리하지 않는 다는 전제하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글 사진/오종천(대한요가연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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