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tv] 3분평화칼럼-평화의 길은 고난의 길 편집장의 노트

2013. 10. 16 방송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70년대 제4차 중동전쟁의 영웅입니다. 그런 그가 이슬람권의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이스라엘 의회의 연설에서 그는 이스라엘 국민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의 신은 우리와 싸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사다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째 되던 해인 1981년 그는 군 사열 도중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로부터 암살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평화주의자는 라빈 전 총리입니다. 그도 역시 1, 2차 중동전쟁의 영웅이었는데 요르단 강 서안의 점령지를 팔레스타인에게 양도하기로 한 제2차 오슬로 협정을 간신히 성사시키고 1991년에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의장을 만나 평화협정을 체결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전역에서는 라빈 반대 시위가 벌어집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 노 정치인은 “내가 국민을 직접 설득하겠다”며 대중 집회에 참석합니다. 어느 날의 대중 집회에서 그는 평화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평화의 날을 기다리지 말고 그 날을 향해 나아가요.” 이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 쪽지를 양복 위주머니에 넣는 순간 총알이 날아가 그곳을 뚫어버립니다. 암살 얼마 후 피에 절은 이 종이쪽지 사진이 공개되자 세계는 전율합니다. 이때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지 3년째 되던 1994년입니다.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80년대 후반부터 일방적 군축과 평화노선을 채택하여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입니다. 이 위대한 혁신가는 “인류가 전쟁과 영원히 결별하는 것이 미래의 길을 여는 토대다”라며 전 세계에 평화를 정착시킵니다. 이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3년째 되던 1991년에 소련 연방을 회귀하려는 군부 일각의 군사 쿠테타로 실각하고 맙니다.

전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는 1968년에 신동방정책으로 동독과 화해협력을 도모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동독과의 평화공존을 정착시키려는 이 신념가는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오랜 여행 끝에 아름다운 날을 맞이했으나 아직도 목표지점은 멀기만 하다”고 말합니다. 이 평화정책 때문에 독일의 보수파로부터 공격받은 그는 그로부터 3년 후인 1971년에 자신의 비서가 동독의 간첩이라는 이유로 총리직에서 물러납니다.

20세기 지난 백년의 역사에서 평화를 구현하려던 정치지도자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임기를 마친 사례가 있었습니까? 그런 만큼 20세기는 평화 지도자들의 수난사였던 폭력의 시대였습니다. 에릭 홉스 봄에 의하면 20세기 전쟁으로 사망한 총 인원이 1억8천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폭력의 1백년을 거쳐 온 인류가 각종 대립과 반목을 부추기는 광신주의, 분열주의, 이데올로기에 자유를 빼앗겼고, 이에 저항을 하면 어김없이 죽임을 당했던 것이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사다트, 라빈, 고르바초프, 간디가 추구했던 평화정책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는 20세기 마지막 평화정책이자 21세기의 첫 번째 평화정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으며, 그 후임자가 정책을 계승함으로써 무려 10년이나 살아남은 사례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의 20세기 노벨 평화상을 수상 받은 비운의 지도자들 처럼 그 놀라운 성취가 이적과 반역으로 낙인찍히고 또다시 한반도는 분열과 전쟁의 논리로 치닫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비극의 순환구조는 지금 이 순간에 한국정치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 NLL 영토포기 논란과 대화록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화를 향한 우리의 노력은 언제든 국가주의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오늘의 수난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내일의 역사에서 승리하는 불굴의 신념가를 이 시대는 필요로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번 평화와 공존의 새질서를 향한 우리의 꿈을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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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