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 책임회피로 얼룩진 미군기지 이전사업 사건내막

 

D&D Focus 2008년 11월호



미국 입맛대로 이중 보고서 낸 PMC,

그리고 사업단의 국정감사 면피용 거짓말들



서정환 기자(jhsheo@empal.com)



주한미군이 평택기지이전사업 시한을 2019년으로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MBC>가 지난 10월21일 보도했다. <MBC>는 지난 10월3일 ‘연합토지관리협정(LPP) 특별분과위원회’ 실무자인 한미 양측 대령들 간의 대화록을 단독입수·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애초에 연간 6억 달러의 미국 예산을 투입 2015년까지 기지이전사업을 완료한다는 예정이었으나 이 예산을 3억으로 깍기로 하면서 부득이 2019년까지 가게 됐다는 것이다. 또 미국은 2017, 2018년에 각 3억 달러를 투입, 총 6억 달러만 자국 예산으로 쓰고 나머지는 방위비분담금으로 충당할 것으로 분석됐다.

<MBC> 보도의 결론은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기지이전 사업의 기간이 길어지고 그에 따라 엄청나게 불어날 비용은 궁극적으로 한국이 전적으로 부담하게 됐다는 것이다.

마침 이 보도가 나간 지 이틀 뒤인 10월 23일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가 열렸고 국방위 소속 의원들이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이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국방부를 호되게 질책했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미국 측 안대로 2019년까지 기지이전사업이 연기되면 국채 이자 부담이나 환율변동에 따른 비용 때문에 전반적인 사업비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분초를 다투는 일인데도 기지이전사업단 창설 2년 만에 단장이 4명이나 바뀌는 등 조직과 정책의 일관성을 흩트리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도 “어차피 방위비분담금은 LPP에 사용을 하긴 해야 하는데 문제는 도대체 이 전용을 언제까지 인정할 거냐는 것”이라며 “미군에게 ‘당신들은 의회에서 얼마를 얻어 올 것인가’에 관한 확답을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지이전 쓸 돈 없다”는 미국


그나마 유 의원은 ‘미국이 얼마를 부담하게 될 것인지만 분명하면 기왕지사 방위비분담금이 기지이전 사업에 쓰이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는  “방위비분담금이 LPP에 쓰이는 것에 한미가 공감했다는 게 언제 있었던 말이냐”며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지이전에 누가 돈을 내느냐 하는 ‘지갑 논쟁’이나 법리논쟁은 현재 진행 중인 제8차 방위비분담금협상 비준동의안이 외통위에 올라오거나 내년도 예산안이 예결위에서 심사되는 등 의회일정과 맞물려 앞으로도 국회에서 폭넓고 깊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양상만 보면 이 사안은 미군기지 이전사업에 기술적인 갈등이 발생한 것으로 한미협상과 국회 논의를 통해 결국은 해소할 수 있는 일시적 문제다. 과연 그럴까?

저간의 과정을 자세히 뜯어보며 이 사건이 담고 있는 본질적 문제가 뭔지 검토해 보자.

우선 짚어볼 점은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국회의원들이 장관을 야단치고 기지이전사업단장을 ‘깠다’고 해서 국방부가 분하고 우울하겠냐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렇겠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론의 화살이 미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진행 되는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미국이 이번만큼 구체적인 액수를 대며 스스로 ‘우리는 얼마를 쓰겠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 굳이 꼽아보자면 2005년3월 리언 라포트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미 의회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기지이전사업은 총 80억 달러(용산기지이전 포함)가 드는데 그중 미국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하다”고 밝힌 것뿐이다. 그나마 이것도 자신들의 의회에서 한 증언, 즉 ‘내부 보고’였지 한국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전달은 아니었다.

<MBC> 보도는 “우리 측 대표가 당황한 듯, ‘2015년 정도까지만 연기되는 것으로 보고 받았는데 어디서 차이가 나냐’고 되물었다”고 설명하는데, 즉 한국도 그 같은 미군의 입장을 전달 받은 것이 처음이었다는 의미다. 자신들의 부담을 공표하는데 그토록 신중했던 미국이 왜 이 시점에서 떳떳하게 ‘나는 6억 달러만 쓰겠다’ ‘기지이전사업 완료도 2019년까지 늦추자’고 선언했을까.

반추해 보면 원래 2012년으로 예정된 기지이전사업 완료가 예산 지출에 관한 미국의 입장변화 하나 때문에  갑자기 2019년으로 미뤄진 것은 아니다.

그 2019년설(說)이 제기되기 이전, 이 사업을 2016년까지 지연시키게 만든 요인은 바로 한국 국방부, 구체적으로 기지이전사업단에 있었다.

10월23일 국정감사에서 전제국 국방정책실장은 업무 보고에서 “기지이전 사업은 지역주민들의 민원으로 인해 평택지역 부지 매입이 2년 간 지연됐고, 한미 간 시설종합 계획 협의에서도 기간과 비용에 대한 이견이 있어 3년 간 지연됐다”고 밝혔다.

평택미군기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어쨌거나 공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부안 방폐장사건 이래 최대의 경찰력을 동원, 평택 대추리·도두리 부지를 확보하고도 주민들의 민원 핑계를 대는 것은 격(格)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한미 간 이견’이 있어 기지이전이 지연됐다”는 것은 격(格)이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관계와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한미 간 합의’만 제대로 이행됐다면 이미 지난 8월에 공사착공에 들어 갔어야할 ‘파슬2’구역 성토 공사 건은 어땠나.

본지가 7월호에서도 자세히 소개 했듯, 한미는 이미 작년 10월에 ▲설계와 시공을 일괄하여 턴키(Turn-key)방식으로 발주 ▲발주권은 한국이 행사 ▲2008년3월 입찰, 8월 착공 등을 합의 했다.

그러나 올해 4월 부임한 박병희 국방부 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은 부임 즉시 부지조성 공사 중단과 사업방식 변경을 추진했다.

박 단장이 꺼내 든 패는 파슬2 구역을 턴키방식 발주가 아닌 설계와 시공을 분리발주 하는 것. 박 단장은 분리발주를 강력히 지지·추진하며 지난 5월14일 이 같은 입장을 주한미군 공병참모에게 전달했다가 미군 측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나아가 박 단장은 그 이틀 뒤 미8군 예하의 일개 집행기관에 불과한 극동공병단(FED)과  분리발주에 관한 합의를 맺어 버렸다. 이전 황희돈 중장이 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으로 있을 때도 FED와 직접 대금지급 문제를 협의하다가 나중에 조지프 필 미8군 사령관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은 사건이 있었던 터라 미국의 화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한미는 이제부터 다시 입찰공고를 하고 공사발주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서 버린 시간이 1년. 이 사안만 놓고 본다면 적어도 기지이전 사업이 연기된 3년 중 1년은 ‘한미 간 이견’이 아니라 ‘한국의 변심’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한국이 패를 꺼내 들었으나 ‘개패’가 됐으니 미국이 ‘꽃패’를 아낄 이유가 있었을까. 마침 미국의 금융위기까지 덮쳤으니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기에 이보다 적기는 없었던 것이다.

최소한 주한미군 기지이전 사업에 관해서 만큼은 한국과 미국은 신뢰와 협력 관계가 아니라 불신과 ‘눈치 보기’ 관계가 되어버린 모양새다. 이를 뒷받침 하는 정황은 더 있다.



‘개패’든 한국, ‘꽃패’든 미국


사실 기지이전 완료시기를 한국이 2015년으로 주장하는 것이나 미국이 2019년으로 주장하는 것이나 모두 다 같은 PMC(종합시설관리업체)가 작성한 보고서를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PMC는 한국과 미국이 함께 선정하고 비용을 대는 용역 컨소시엄으로서 한미 어느 한 쪽의 입장을 더 반영하거나 덜 할 수 없는 기관이다. 당연히 기지이전 완공에 관한 PMC 보고서도 한국과 미국에 주는 보고서가 각기 다른 내용일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2019년이라고 명기된 보고서는 우리 국방부 기지이전사업단에 제출된 내용이 아니다. 우리 측에는 지난 7월 최종보고서를 제출하면서 ‘2016년’으로 명기되어 있었다. 물론 한국에 제출된 보고서조차 현재 기지이전사업단은 철저히 은폐하고 있다. 7월에 박병희 단장은 “8월에 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엄연히 7월의 PMC 최종보고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업단은 국회에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했다. 명백한 거짓말이고 위증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에는 2016년으로 명기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뒤로는 미국 측의 압력을 받은 PMC가 2019년으로 새로운 검토보고서를 올렸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기지이전사업단 내부에서조차 이번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PMC가 제정신인가”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PMC의 JTO-5(Joint Task Order 과업지시5)가 바로 기지이전사업의 기간과 비용에 대한 공동과업이다. 이 공동과업을 수행하는 PMC 업체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의 입맛에 맞게 조종되고 있다는 의혹이 국방부 내에서조차 강하고 일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2019년’ 보고서가 그러한 정황을 뒷받침한다.

게다가 PMC의 용역비 정산방식을 놓고 기지이전사업단과 PMC 간에도 알력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PMC의 용역비는 총3000억원 정도 지불되는데 우리가 1600억원을 부담하고 미 측이 1400억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이번에 드러난 미 측의 이중적 태도는 지탄받아 마땅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측이 그동안 공사를 차일피일 지연시킨 책임마저 면제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지이전사업단의 난맥상이 미 측이 공사비를 부담하지 않으려는 의도에 힘을 실어주는 빌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 때문에 우리 국방부나 기지이전사업단에서도 PMC에 2016년에서 더 공사기간을 앞당기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지난 10월17일부터 시작된 제4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은 정확한 미군기지 이전사업 완료시점을 논하기 꺼려했다고 한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SCM 참석차 출국에 앞서 기지이전사업을 완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점을 2014년이라고 결론 내리고 이를 미 측에 제안했으나 구체적인 대답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제40차 SCM공동성명과 지난 해 개최된 제39차 SCM공동성명에서 기지이전 관련 부분만 추려 비교해 봐도 이 사업에 관한 양국의 공감대가 적잖이 퇴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박스 시작)

2008년10월17일 제40차 SCM공동성명 제12조양 장관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 및 반환 이행의 진전을 점검하였으며 상호 협력에 기초한 공동 노력의 성공적인 완수가 양국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 하였다.


2007년11월7일 제39차 SCM공동성명 제10조

양 장관은 주한미군 기지이전 및 반환이 진전되고 있는 점에 대해 만족을 표명하였다. 게이츠 장관은 이와 관련하여 한국정부가 기울여준 적극적인 노력에 대해 사의를 표명하였다. 양 장관은 기지이전 및 반환의 진전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하였다.

(박스 끝)


지난 해 SCM공동성명에서는 ‘만족’ ‘한국정부의 노력’ ‘사의’ 등 긍정적 함의를 담고 있는 용어가 다수 사용됐는데 반해 올해 SCM 공동성명에서는 이 같은 단어를 찾아 볼 수 없다. ‘점검’ ‘공동의 노력’처럼 원론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용어만 사용됐을 뿐이다. 특히 ‘한국정부의 노력’이라는 구절이 올해 공동성명에서 빠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기지이전이 지연되면 ‘이것을 위해 싸우겠다’던 미국(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이제 기지이전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 측 기지이전사업단은 주한미군과는 물론이고 내부적으로도 손발이 전혀 맞지 않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역시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피로감, 그리고 재정압박으로 인해 더 이상 주한미군 변환에 소요되는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다. 특단의 전환점을 만들지 않는 한 기지이전 사업이 늘어지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 되어 버렸다.



한미 간 합의서는 와해 직전


PMC의 석연치 않은 행보는 앞에서 말한 것 뿐 만이 아니다. 국방부가 작년 12월 주택공사와 맺은 ‘기부양여협약’에 의해 주택공사가 현물로 미군에 기부하기로 되어 있는 병원, 통신센터와 같은 특수시설 문제만 해도 그렇다. 병원과 통신센터 건립은 약55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병희 기지이전사업단장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PMC가 이 시설에 대해서는 미군이 발주하는 좋겠다고 해서 특수시설 공사를 주택공사가 아닌 미군에게 발주권을 넘겨주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주택공사와의 계약과 협정이 파기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사업단은 주택공사에 이 공사를 포기하되 그 대신 주택공사는 공사비를 대라고 압박하고 있다. 주한미군 반환기지 땅을 주택공사가 가져가는 만큼 특수시설에 대해서는 현금으로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주택공사가 공사비를 주면 이를 미군 측에 다시 제공하여 특수시설을 짓도록 하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이는 주택공사와 맺은 협정에 위반되므로 실현 불가능하다. 기부-양여의 기본정신은 현금이 아닌 땅과 시설을 현물로 맞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국방부와 주택공사 만의 협약에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미 간의 기지이전의 기본협정인 UA(Umbrella Agreement)나 e-MOU 상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현물, 즉 시설을 미군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의 방위비분담 협정에서도 한국 측은 미국에 현금이 아닌 현물로 일정부분을 제공하겠다고 협상하는 중이다.

이러한 모든 협정이 존재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PMC가 주택공사의 특수시설 제공에 브레이크를 걸고 현금 제공을 권고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국익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현금이 아닌 현물”이 우리의 국익이라는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PMC가 법이나 협정을 몰라서 이런 일을 했을 리는 없다. 그 배후에 어떤 압력이 존재하는지 의혹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군에게 특수시설 발주권을 넘겨주기로 박병희 사업단장이 미군에게 덜컥 서명을 해 준 9월 이후부터 미군은 우리 측에 연일 “돈 내놔라”고 압박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박 단장이 특수시설 발주권을 미군에게 넘겨준 것은 법적으로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법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주택공사가 돈을 낼 수없는 상황에서 특수시설에 대한 공사비를 부담할 기관이 어디에도 없다. 주택공사가 아니라면 우리 국방예산에서 이에 대한 공사비를 편성해야 하는데 내년도 예산편성은 이미 끝난 상황이다. 결국 내년에도 공사비 문제로 또 사업이 지연되는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박 단장의 국회에 대한 위증에 대한 시비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는 “미군에게 일부 시설의 발주권을 넘겨주는 대신 미군이 하기로 되어 있는 다른 시설 발주권을 우리가 받아 온다”고 말한 것이다. 서로 공사권을 주고받는 것을 실무자들 표현으로는 ‘스와핑(Swapping)'이라고 한다. 우리 측에 유리하게 공사권을 가져오겠다는 박 단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일부 언론은 박 단장이 마치 미국을 상대로 국익을 증진하는 인물처럼 묘사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애초 박 단장이 미 측에 특수시설 발주권을 넘겨주겠다고 서명한 문서는 PMC 보고서에 의해 SOFA 위원회에 올릴 ‘권고안’ 성격의 문서다. 그런데 이 문서 어디에서도 ‘스와핑’을 한다는 대목은 없다. 미군이 자신들의 공사권 일부를 한국에게 양보할 뜻이 정말 있는지 알기 위해 본지는 다각도로 관련 기관을 통해 미군 측 의도를 파악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박 단장의 논리를 긍정하지 않았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미 측은 여러 협상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공사권 일부를 한국에 주겠다고 공언한 없다. 우선 미 측이 한국에 양보할만한 ‘물건’이 없다. 주고 싶어도 줄 것이 없다는 얘기다. 미군은 이미 한국에 ‘NO'라고 답변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미군으로부터 스와핑에 대해서는 부정적 피드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의 관계자 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관계자들 말이 사실이라면 박 단장은 무얼 믿고 이렇게 엄청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또한 PMC는 이미 한미 간 협정이나 정부 기관끼리 협정까지 무시해버리는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압력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다.    



C4I는 돈 폭탄!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C4I 이전 및 현대화 비용은 기지이전사업의 난맥상을 이루는 백미다. 8월 1일, 한미 공동작업반(JWG)의 C4I 반장을 맡고 있는 기지이전사업단의 김 모 대령은 C4I비용으로 7억5600만달러를 제시한 PMC 권고안에 동의한다고 서명했다. 언론에는 이 금액이 7600억원으로 보도되었으나 최근 환율상승까지 고려하면 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로 인해 참여정부 시절 480억원으로 예상되었던 C4I는 무려 20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런데 김 대령이 미군과 협상을 하면서 자신의 독단으로 PMC안에 서명을 하자 사업단 내부에서도 자중지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희 단장 마저도 회의 시간에 김 대령으로부터 서명한 액수의 엄청난 규모에 놀란 나머지 “너 나가”라며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회의장에서 쫓겨난 김 대령은 “내가 전문가인데 대령이 이정도도 서명할 권한이 없냐”며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두 달 후인 10월 15일은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특히 23일로 예정된 국방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지이전사업단은 어떻게든 C4I 문제에 대한 국회의 공격으로부터 빠져나갈 경로를 찾고 있었다. 이 날 사업단은 미군과 김 대령이 서명했던 액수보다 약 1억불이 삭감된 액수로 다시 서명을 한다. 그리고 23일 국정감사에서 박 단장은 “실무자가 임의로 서명한 액수를 바로잡았다”며 국회의 공격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으로 재협상을 거쳐 미군과 서명된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었다. 즉 국정감사 면피용이다. 8월에 김 대령이 미군과 임의로 서명하자 박 단장은 김 대령을 배제하고 총괄장교인 최 모 중령을 시켜 미군과 재협의를 하도록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0월 15일의 최 중령과 미군 측의 C4I 반장인 서명된 문서다. 그런데 한미 간에 합의되어 있는 기지이전사업 협상체계를 명기한 e-MOU에 따르면 최 중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서명 권한이 없다. 따라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미 측이 기지이전사업단의 입장을 고려하여 일단 서명을 해주었다 하더라도 그 문서의 성격이 불명확하다. 이후에도 미 측이 “공동작업반(JWG) 장이 서명한 문서가 있는데 권한이 없는 사람이 서명해 준 문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나설 경우 최 중령이 서명한 문서는 공수표가 된다.

김 대령 업무를 정시킨 상태에서 C4I 문제를 최중령에게 위임한 박 단장의 일방적 지시를 과연 미군 측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애초 C4I 문제는 한국이 서명을 해주기에 앞서 C4I에 대한 정확한 실사가 전제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실사는 필요 없다”며 이를 막고 협상에 임하도록 지시한 당사자가 다름 아닌 박 단장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최근 사업단은 C4I에 대한 실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일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면서 사업이 파행으로 가는 것은 현 정부 들어와서 새로 부임한 사업단 내 주요 직위자들이 이전에 진행된 내용에 대해 무지하거나 사업단 내부의 소통부재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도대체 미군이 갖고 있는 C4I가 뭐 길래 고무줄처럼 비용이 늘었다 줄었다 하며 사업단을 헤매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도 C4I를 새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전비용에 9000억원이 넘게 든다는 황당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군은 그간 한국 내 C4I에 많은 투자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범세계적, 또는 아시아-태평양의 첨단 네트워크에 깊숙이 들어가는 더 발전된 지휘통제체계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미군의 C4I는 한국군에게도 공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군은 물론 기지이전사업단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미군이 갖고 있는 C4I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 한국은 모른다는 점이다.

그런 와중에서 C4I는 미군이 부르는 게 값이다. 한국의 위치가 대단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군은 기지이전을 하면서 C4I의 이전비용 뿐만 아니라 현대화 비용까지도 한국 측에 부담시키려는 것으로 보여 진다. 실제로 총 9000억원의 이전비용 중에서 약 30~40%는 현대화 비용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실사가 무엇보다 긴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지이전사업단은 이를 등한시함으로써 제대로 된 협상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사업파행의 피해는 누구에게?

    

눈을 잠시 돌려보자. 미군기지이전이 지연되면 과연 어떤 손해가 우리에게 닥치는 것일까.

당장 금전적인 손해가 막대하다.

한국은 전체 미군기지 이전사업 중 서울지역 미군기지이전에 관해서 비용을 부담하는데 그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 크게 보면 주공과의 ‘기부’ 대 ‘양여’ 계약에 의해서다.

주공이 용산기지 등 서울지역 미군기지에 해당하는 시설을 일단 지어주고 나면 그 값만큼 국방부가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 받은 땅을 주공에게 주는 식이다.

그 사이 실질적인 기지건설 비용은 채권을 발행해서 마련할 수밖에 없는데 올 6월 국방부 감사를 통해 밝혀진 대로 한국 측 부담이 4조8천억이라고 한다면 연리 5%만 계산해도 연 2400억이 이자로 붙는다. 기지이전에 10년이 걸린다면 2조4000억을 추가로 부담하는 것이며 복리로 계산하면 이 금융비용은 더 커진다.

그런데 미군은 자기들의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이전공사를 자꾸 늦추고 있다. 방위비분담금으로 자신들의 공사비를 약 10년간 축적함으로써 미군 부담액을 모두 해소하겠다는 계산이다. 미국으로서는 앞으로 방위비분담금이 다소 증액된다고 가정할 때 매년 4천억원 이상을 기지이전 LPP에 전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총 6조원의 미국 부담금 중에서 2조 넘는 금액은 민간사업방식(BTL)로 털어내고 나머지는 이미 적립되어 있는 1조1천억원의 자금과 10년간 적립되는 방위비분담금 전용액을 합치면 자신들의 국방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될 때 장차 중국을 견제하는 동북아 전초로서 꿈의 기지라 할 수 있는 평택의 ‘500년 전략기지’를 얻게 된다. 다만 기지이전 사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주한미군 장병의 한국 주둔 기간이 1년에서 3년으로 연장됨에 따라 필요한 동반가족의 주거 숙소와 각종 부대시설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전임 라포떼 사령관은 미 의회 증언에서 “주한미군 주둔기한 연장에 따라 앞으로 10~15년간 추가 소요될 비용을 한국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도대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평택기지에 대한 가공할 비용! 그 와중에서도 공사지연이라는 폭탄의 뇌관이 터지는 초읽기가 이미 시작된 마당에 그 피해가 과연 어떻게 드러날지 관심거리다.

경기북부 지역의 경우 ‘2019년까지는 지역 경제가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특히 동두천시의 경우 영글어 가던 신도시의 꿈에 서리가 덮친 격이다.

동두천시 생연동의 ‘ㅇ’부동산 관계자는 “애초에 미군이 2012년까지 가는 걸로 예정돼 있었고 지하철도 연계되다 보니까 외지 투자자들도 조금씩 동두천으로 모이던 참이었다”며 “그런데 2019년 얘기가 나오니 시민들도 사업자들도 불안해 한다”고 전했다.

그는 “반대로 이곳에서 미군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먼저 평택으로 자리를 옮겨 미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남아있는 사람들이나 옮겨 간 사람들이나 동두천 사람들은 양쪽으로 타격을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도 “2015년 정도면 그래도 실감이 나는데 2019년이라 하면 그 보다 더 될 수도 있고 해서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며 “도로망과 지하철이 뚫리고, 인접한 양주가 신도시로 지정되고, 미군이 떠난 자리에 공공시설이 들어온다는 지역 개발 그림이 딱딱 맞아 들어가고 있었는데 이게 어긋나면서 동두천은 또다시 낙후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눈에 보이지 않은 기회비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86년 아시아 올림픽, 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서울시내 지하철 공사가 약 10년 간 중단됐다. 그에 따라 서울 시민들은 예정됐던 것 보다 훨씬 나중에야 값싸고 빠른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됐는데 그 사이 이동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들의 자동차 보유대수가 늘어 교통난과 배기가스에 의한 공기오염이라는 파생효과도 낳았다.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10년 늦어지면 그에 따른 어떤 기회비용과 파생효과가 발생할 것인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다.

한 가지 더. 한미 간의 협력과 신뢰에 금이 간다는 것은 곧 기지이전 사업의 모멘텀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비단 한국의 잘못만은 아니다. 

기지이전 사업은 본디 이른바 ‘럼스펠드 독트린’을 구현하기 위한 세계미군재배치계획(GPR)과 맥을 함께한다. 군을 첨단화·경량화·기동화 해서 ‘양’이 아니라 ‘속도’로 작전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기지’가 아니라 ‘거점’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지난 2006년1월19일 반기문 당시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과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 사이에서 합의 되었다.

그런데 경제위기에 다시 놓인 미국은 미국대로 엄청나게 비싼 군 운영체제인 ‘럼스펠드 독트린’을 내 팽개치고, 한국은 한국대로 기지이전에 어깃장만 놓는다면 13조5000억짜리 10년 사업이 제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는 뜻이다.

지난정부 말까지 그런대로 순조롭게 유지되던 한미 간의 모든 합의가 현정부 들어와서 몇몇 사람의 독단으로 허물어져 가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2019년까지 한국에는 두 번의 총선과 대선이 있다.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와 6자회담 진전, 미국의 경제위기와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 등 한반도는 물론이고 지구적 안보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한미 간에 손발이 척척 맞아도 기지이전 사업이 무탈하게 완료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2005년까지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의 논은 평택시 80만 인구가 일곱 달을 먹을 수 있는 쌀 생산지였고, 그 논은 또 해당 지역 주민들이 맨손으로 갯벌을 메워 다진 곳이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국방부가 수용한 그 땅은 3년이나 놀리고 있다.

논도 아니고 기지도 아닌 땅 약 300만 평이 10년 이상 방치되어 있는 황량한 광경을 두고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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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