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영] 미래학과 역사학, SF의 공통점은? 벗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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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과학기술 발전이 SF 발흥의 원동력

 

 SF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배경은 19세기 말의 과학기술의 발달에 대한 합리성에 대한 기대감이었습니다. 웰스가 과학기술 기반의 미래학자 출현을 예측한 것도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과학적 합리주의와 이에 대한 기대는 과감한 미래예측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에서 2000년도의 세계를 상상하기도 했는데요. 위 그림은 자동청소기입니다. 청소기와 세탁기의 등장이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준 주요 동인임을 생각한다면, 당시의 상상력이 환상적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은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상상했는데요, 당시의 기술수준을 생각한다면, 말 그대로 순수한 상상력으로 21세기를 그렸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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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이태리에서 20세기 초 ‘Futurism’이라는 예술사조를 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과학적 발전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미술의 주요 소재로 한 것인데요. 1930년 이탈리아 화가인 데페르도의 그림은 고층의 건물이 낙관적으로 솟아 있는 그림을 그렸지요. 
  

ag.jpg »  Fortunato Depero, Skyscrapers and Tunnels (Gratticieli e tunnel), 1930 (detail)

 미국 SF 드라마 <스타트렉>은 다양한 미래기술을 상상력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리플리케이터, 트라이코더, 인공 눈, 인공지능, 광속 우주선, 물질이동기, 가상현실 등이 그것인데요. 이중에 리플리케이터인 3D 프린팅, 의료진단기인 트라이코더, 인공 눈, 인공지능, 소립자 수준의 물질이동기 및 가상현실 등은 실험실 혹은 현실에서 현실화되었습니다. 의료진단기인 트라이코더는 휴대용 스캔으로 모든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기인데요. 무선통신 칩을 개발하는 퀄컴은 2015년 트라이코더 개발 경진대회를 열어 10개 팀을 선발하기도 했습니다.
 

af.jpg » 엑스프라이즈재단의 트라이코더 경진대회. http://tricorder.xprize.org/
 

 미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웰스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닥터 모로>인데 유전자 공학을 배경으로 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닥터 모로는 몇 차례 영화화되기까지 했었지요. 가장 최근작은 1996년에 고 말론브란도가 출현한 <닥터 모로의 섬>이었습니다.
 20세기의 SF 4대 작가는 사람에 따라 달리 선정합니다. 저는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필립 K 딕이 아닐까 합니다. 아서 클라크는 ‘상상력의 실패’를 언급했는데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상상력 실패에 대한 경고와 짐 데이터 교수의 ‘터무니 없는(Ridiculous) 미래’는 일맥상통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수립했지요. 로버트 하인라인은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실사판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스타십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의 원작가이기도 합니다.  필립 딕은 암울한 SF 소설로 미래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끊임 없는 경고를 던집니다. 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 스크림,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이 필립 딕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흔히 클라크, 아시모프와 하인라인을 3대 거장이라고 합니다.
 SF 소설이 가치 있는 것은 인류의 상상력을 무한하게 확장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둔 상상력은 공상이 아니라 현실화의 힘이 있습니다. 미국 드라마인 스타트랙의 많은 상상이 현실화되고, 웰스와 쥘 베른의 상상력이 실현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철완 아톰으로 인해 일본의 로봇공학이 세계적  수준이 되었지요. 제약없는 상상력의 장으로서 SF는 충분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미래 연구자에겐 양날의 칼이 될 수도
 

 공상과학소설은 미래학계에서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웰스를 미래학의 아버지라 하고 쥘 베른을 어머니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학자인 토머스 롬브라도(Thomas Lombrado) 박사는 특히 공상과학소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그는 SF 소설과 미래학에 관련된 책도 썼습니다. 그는 ‘현대 미래학자의 사고들’이라는 책에서 1개 장을 SF 소설에 관한 것으로 할애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상준 대표가 SF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SF와 관련해 다양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지요. 저도 미래연구자로서 SF와 다른 분야를 접목하는 연구를 필요에 따라 수행했었는데요. SF 영화와 소설을 통해서 의료의 미래에 대해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SF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가진 미래연구자도 있습니다. 미래학의 대부이신 짐 데이터는 SF 소설에 반대를 하는데요. 이는 상상력에 오히려 반대가 된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SF 소설이든 영화이든 시장에서의 흥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스러운 상상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SF에 무조건 반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 SF  드라마인 <닥터 후>는 세계 최장수 TV 드라마인데요, 데이터 교수는 닥터 후의 자문을 맡기도 했었습니다.
 SF에 대해서 경계를 하는 미래연구자는 데이터만은 아닙니다. SF가 지나치게 기술과학 중심이기도 하고, 소하일 이나야툴라(Sohail Innayatullah)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미 사용된 미래(the used futures)’가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래란 우리의 것이지 남들이 상상한 것을 이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연구자 출신이 다양한 것도 SF에 대해 미래연구자의 일부가 불편해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과학기술, 사회학, 역사, 철학, 법학, 환경운동자, 정치학, 정책학, 경영학 등 모든 학문에서 미래연구자가 나타납니다. SF는 과학기술로 인한 디스토피아 혹은 유토피아를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인문학에서 출발한 미래연구자는 과학기술 낙관주의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출현은 SF의 좋은 소재가 되지요. 그러나 많은 미래연구자는 인공지능 자체보다는, 이로 인한 사회, 정치 및 경제에 대한 미래를 고민하고자 합니다. 또는 인공지능이라는 트렌드에 기반한 미래예측보다는, 우리 사회가 무엇이 더 바람직한가 하는 가치관적 고민을 하는 것이 미래연구자입니다. 그러니 SF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필자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미래연구자는 SF가 상당한 통찰력을 주거나, 혹은 제약없는 상상력을 펼치기에 좋은 수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필자 같은 경우에는 SF에서 만들어진 미래 이미지가 워낙 명확해서, 이를 기준으로 미래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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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칙하고 자유로운 상상이 미래 역량의 기초
 
 페퍼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공상과학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미래연구의 필요성과 동일합니다. 기존의 가설을 넘어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미래학의 필요성이며 공상과학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역사가인 유발 하라리는 역사의 필요성을 정확한 미래예견이 아닌, 시각의 다양화와 기존 역사에서 벗어남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연구, 역사학 및 SF에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전환의 시대, 변혁의 시대에 우리는 공상과학소설을 읽던 혹은 진지하게 미래연구를 하던 기존의 사고의 틀을 전환시키고 변혁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경영자, 국가의 정책담당자, 비정부기구의 의사결정권자와 개인 모두 해당되는 것이겠지요. 자녀들이 발칙하고 자유로운 상상을 하는 가요? 그렇다면 미래역량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괘씸하고 발칙한 상상력을 보이는 직원이 있는가요? 그들이 미래성장을 위한 핵심 인적 자산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발칙하고 자유로운 상상을 하기를 권합니다. 우리 모두 SF 하시지요.
 
 윤기영, Futurist, FnS Consulting 대표
 synsa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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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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