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래서 생방송이 힘들구나. 뽀뇨육아일기

요즘 새로운 미디어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친구들에게 제주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내가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올린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모습도 간간히 올리다보니 아이들이 원숭이가 거울을 보고 반응하는 것처럼 휴대폰 화면에 얼굴을 들이 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고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요즘 TV가 아니라도 언제든 내 모습을 촬영하고 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다. 일상다반사를 지인들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블로그도 좋지만 정기 뉴스레터도 괜찮은 듯 하여 여러 소식을 정리하고 편집하던 중 제주에 방문한 ‘맥아더스쿨 정은상’ 선배님을 인터뷰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인터뷰 날짜를 잡았는데 멀리 제주시로 갈 여유가 있는 시간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일요일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선배님을 몇 번 만나서 낯설어 하지 않았고, 흔쾌히 오케이 해주었다.

한 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제주시 도두동, 도착하자마자 선배님이 아이들 먹을거리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인터뷰 전에 뭘 좀 먹이는게 좋겠다 싶어서 빵을 좀 샀는데 역시나 선배님도 눈치를 챘는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너희들 아빠 방송할 때 협조 잘 해줘’라는 무언의 뇌물이랄까.

참 조용했던 오후 3시의 게스트하우스. 나는 잔뜩 기대를 하고 소셜미디어 방송 예고에, 노트북으로 테스트까지 하며 차를 달려왔다. 아이들을 충분히 먹이고 난 후에 선배님과 나란히 앉았다. 처음하는 공개 생방송이라 긴장이 되기도 하고 시간이 다 되니 마음이 급해졌는데 인생선배님은 ‘천천히 하라’며 마음을 진정시켜주셨다.

드디어 오후 3시, ‘온 에어’ 버튼을 누르고 대본도 없이 방송을 시작했다.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먹였으니 이제 당분간 조용하겠지 싶었는데, 방송 시작하자마자 뽀뇨가 쉬 마렵다고 내 옆에 바짝 붙었다. 귓속말로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한 3분이 지났을까? 이번엔 둘째 하나가 끙 마렵다고 내게 엉겨 붙었다. 이건 도저히 참으라고 할 수 없어서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생방송은 어떻게 하냐고? 인터뷰이이신 선배님이 혼자 진행하셨다. 화장실에 가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데 둘째는 왜 이렇게 오래 끙을 하는지.. “끙 다했어?”, “아니”, “끙 다했어?”, “아니”를 10번은 반복했을 즈음 끙이 끝났다.

다시 좌석에 앉자마자 이번엔 게스트하우스에 커플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라이브 방송이 중단 되는게 아닌가 하고 땀을 삐질 삐질 흘렸는데 다행히 방송이 끊기지는 않았고 손님1이 우리 뒤를 지나갔다. 몇 분 뒤 손님들이 다시 숙소에서 나가고 방송에 조금 집중하려던 찰나, 뽀뇨가 이번엔 과자가루가 손에 묻었다고 손을 씯어 달라고 왔다. 바로 옆 싱크대에서 손을 씯어 주는동안 내 영혼은 이미 털털 털려있었다.

이제 ‘30분이 3시간 같은 방송’을 마치려고 하는데 둘째가 전화 왔다며 내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이름을 보니 페이스북 친구인 형수님. 왠일일까 하고 방송을 끝내고 모바일로 내용을 확인했는데.. 이럴 수가. 끙 뉘이고 손 씻기고 게스트하우스 손님까지 맞으며 진행했던 방송에 오디오가 빠져 있었다. 아까 형수님이 전화 온 이유가 바로 음향 때문이었다.

당혹감은 선배님도 마찬가지 였을테지만 “그게 생방송의 묘미 아니겠냐”며 다시 방송을 찍자고 하셨다. 이번엔 방송 상태를 잘 확인하고 시작을 했는데.. 역시나 시작하자 둘째는 자기 얼굴을 모니터로 볼려고 방방 뛰었고 첫째도 모니터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아, 이래서 생방송이 힘들구나. 그 모습이 볼만했는지 한 생방송 시청자는 ‘아이들 때문에 방송이 자연스럽다’는 칭찬을 댓글로 남겼다. 30분의 방송 통편집 후, 또다시 30분의 방송을 하며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한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정은상 선배와 함께.jpg » 서귀포관광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님과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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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전업주부가 꿈이었다 현실이 된 행운남,엄마들의 육아에 도전장을 낸 차제남,제주 이주 3년차…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프렌디. pponyopap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