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정수리에 머리도 별로 없는데 뽀뇨육아일기

감기가 든 유현이를 재우고 나도 잠시 잠에 들었다. 첫째는 낮잠 잘 나이가 지났는지 작은 방을 왔다 갔다 했는데 둘째가 깰까봐 신경이 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잠에 들었는데 잠시 후 또 첫째가 와서 코를 만지고 몸을 치대며 깨운다. “아빠, 나 심심해. 나랑 놀아줘”, “해솔아, 유현이 깨면 안되니까 저 쪽으로 좀 가있어”.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빠, 머리에 흰머리 있네. 내가 뽑아줄까.”라고 한다.

딸아이가 흰머리 뽑아줄 나이가 되었나 하고는 옛날 둘리인가 만화책 내용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빠가 흰머리 하나 뽑아줄 때 마다 100원을 준다고 했는데 처음엔 흰머리만 뽑다가 나중에 다뽑고 나니 검은 머리를 왕창 뽑아서 흰 물감칠을 하던 그 장면. 해솔이도 그러는거 아니겠지 하며 웃었는데 아빠, 나 손에 땀이 나서 가위로 흰머리 자르면 안돼?”라고 묻는다.

혹시 아빠 귀를 자르는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머리를 만지는 첫째의 손놀림에 스르르 잠이 왔다. 직접 흰머리를 잘라서 아빠에게 보여주며 안심시키는 뽀뇨. 뽑으면 더 시원하겠지만 짧게 자른 흰머리도 괜찮다 싶어서 오케이 했다.

내 손위에 올려지는 흰 머리들. 나도 이제 늙어가는 겐가 하며 복잡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열 개 정도 잘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딸아이가 기특하고, 너무 기분 좋은 일인지라 아이에게 자리를 옮겨 잘라달라고 했다. “해솔아, 방이 너무 어두워서 니가 눈이 나빠질까봐 걱정인데 우리 밝은데서 할까?”했더니 그래 아빠, 우리 거실로 나가서 자르자”. 둘째가 잠에서 깰까봐서라도 옮기기를 잘했는데 어디가 좋을까 하고 장소를 고르다가 결국 쇼파를 택했다.

아빠, 쇼파에 앉아봐. 내가 흰머리를 잘라줄게”. 왠지 앉으면 이발 기분이 들까 싶어서 알았어. 근데 아빠가 조금 누워있으면 안될까?” 쇼파에 누워서 딸아이의 서비스(?)를 받다보니 봄볕에 졸음이 또 쏟아졌다. 왠지 귀지를 청소하는 듯한 편안함 그리고 졸림이 쏟아지는 일요일 오후. 근데 흰머리가 적어서인지 스무 개 정도 잘랐을까. “아빠, 머리에 먼지(?)가 많아서 이제 못 자르겠어”, “그래 알았어. 고마워”.

요즘 딸아이와 자주 다투게 되고 조금 전 낮잠에서 깰 때만 해도 딸아이 등짝을 하이파이브 하는 꿈을 살짝 꾸었는데 다시 핑크모드로 전환되었다. 밥을 많이 안 먹는 8살 딸, 체중을 재어보니 20키로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얼른 김치찌개 데우고 잡곡밥 새로 하고 계란후라이와 덩어리빵, 쨈을 준비하여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점심때는 방울토마토가 맛있어서 스파게티 하고 돈 등심을 엷게 펴서 오븐에 구워서 먹었는데 잘 먹어서 기뻤다.

둘째가 어린이용 변기에서 을 하고는 혼자서 처리하고 변기를 씻는데 아내가 동화수업을 하고 들어왔다. “벌써 왔어요? 유현이가 글쎄 혼자서 하고 치웠어요”, “그래요? 유현이 잘했어요”. 집에 돌아온 아내가 방바닥을 쓸다가 갑자기 내게 묻는다.

자기야, 방바닥에 왜 이렇게 머리카락이 많아요?”, “? 무슨 머리카락요?”하고는 쇼파쪽으로 가보니.. 잘려진 나의 검은 머리카락이 과장 조금 보태 미용실 바닥수준으로 있는게 아닌가. 분명히 내 눈으로 뽀뇨가 자른 흰머리를 봤는데 싶어 급하게 불렀더니 , 아빠. 흰머리를 자르려고 하는데 잘 안보여서 검은 머리를 좀 잘랐어

 

“(정색을 하며)해솔아.. 아빠 안 그래도 정수리에 머리가 별로 없는데


내가 이 사달이 날지 알았지. 그래도 일요일 오후 춘몽 한번 제대로 꾼 거 아니겠어


<잘려진 내 검은 머리 사진. 다행인 것이 흰머리와 거의 비슷한 숫자로 잘랐다>

머리카락.jpg 


<혹시나 하고 사고(?)후 머리를 촬영해보았으나.. 큰 문제는 없는듯 ㅋㅋ>

회전_머리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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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전업주부가 꿈이었다 현실이 된 행운남,엄마들의 육아에 도전장을 낸 차제남,제주 이주 3년차…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프렌디. pponyopap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