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찾아온 엄마의 자유 시간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시간2.jpg » 육아의 고통은 끝이 없을 것 같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모가 느끼는 육아의 부담도 많이 줄어든다.

 

*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아이들이 크니 이런 날도 오네~”
요즘 내가 달고 사는 말이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불현듯 찾아올 줄이야. 무슨 말이냐면, 아이들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던 내게 드디어 자유 시간이 생겼다. 주말에 하루 3~4시간 집을 비우고 찜질방에 가서 찜질을 하며 ‘멍 때릴 자유’가 생겼고, 두 아이가 블럭방에서 노는 사이 남편과 함께 커피 한 잔 마시고 장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두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만들기를 하면서 거실에서 놀면 나는 옆에 앉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보거나 안방에서 낮잠도 잘 수 있다. 9살, 7살 두 아이는 이제는 엄마가 아니라도 자신들과 함께할 어른·친구가 있거나 자신들이 놀 수 있는 안전한 장소라면 엄마에게 굳이 매달리지 않는다. ‘엄마 껌딱지’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로부터의 분리’가 진행되고 있다. 가끔은 누구 누구 엄마라는 삶이 답답하고 부담스러웠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떨어지는 때가 오다니!
 
“아야, 애들 다 컸다. 이제 에미 너는 훨씬 수월하겄다. 뭐 성가실 것이 없겄다. 엄마가 없어도 아이들 아무렇지도 않고 밥도 잘 먹고 잘 놀더라. 엄마는 아예 찾지도 않더만. 앗따, 진짜 신기하다. 옛날 생각해봐라. 화장실 가려고 바닥에서 네가 궁둥이만 떼도 애들이 너한테 찰싹 붙고 난리 아니었냐. 네가 친구 만나러 가면 현관문에 나가서 같이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였고. 오메오메. 그런데 이제는 안그러드라. 네가 나가든 말든 들어오든 말든 상관도 않더라. 진짜 우리 애들 다 컸다. 다 컸어.”
 
시어머님이 ‘오메, 오메’라는 감탄사를 남발하며 밤늦게 귀가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번 설날에는 고향에 내려가 아이들이 시댁 식구들과 노는 사이 결혼 이후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에 나갔다. 명절마다 고향을 찾아도 내 시간은 사실상 없었다. 명절 음식 만드는 것 거들고 설거지하고 차례 지내고 식구들과 좀 이야기하고 아이들 보살피다보면 어느새 서울에 올라갈 시간이 됐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을 잠시 만나거나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들때문에 부랴부랴 차 한 잔 마시고 아쉽게 헤어져야 했다. 친구를 만나더라도 자유롭지 않았다. ‘혹시 아이들이 나를 찾지 않을까’‘집에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핸드폰을 수시로 쳐다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의 질’이 달랐다. 아이들을 떼놓고 나왔지만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잘 놀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누구 누구 엄마가 아니라 온전히 양선아 개인으로 돌아가 친구들과의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만난 친구부터 드문드문 만났던 친구들까지 뒤섞여 옛 추억을 안주 삼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키는 맛이란!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시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자리 저 자리 옮겨가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친구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들로 명절 스트레스를 날려버렸고, 집에 돌아온 나는 하하호호 웃으며 설거지며 음식 만드는 일까지 척척할 수 있었다. 

 

민규 만들기.jpg » 시댁에서 노는 아이의 모습. 신문지 하나로도 신나게 논다. 양선아 기자

 

영유아를 키우는 친구·동생들은 내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한다.
“언제쯤 아이에게 내 손이 덜 들어갈까? 아이를 키우면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기는 할까? 아이가 초등학교 가면 좀 괜찮아지니?”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자신있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신경써야할 일, 챙길 일들이 많아서였다. 육아의 부담은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때만 해도 “영유아 시기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다른 육아의 부담이 생기더라. 알림장 확인, 숙제 도와주기, 아이 친구관계 등등 또다른 일들이 생기던데…. 그래도 한결 나아져.” 정도로 답했었다. 그런데 이제 첫째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이 끝나고 나니 한결 육아의 부담이 줄어든 느낌이다. 아이도 학교 생활에 적응했고, 학교 생활의 패턴도 파악했다. 친구들도 생겼다. 이제는 조금만 옆에서 도와주면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도 늘고 있다. 아이는 서서히 부모로부터 독립해가고, 대신 그만큼 내가 활용 가능한 시간도 늘고 있다. 아이가 둘이다보니 놀 때나 공부할 때 서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아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때도 많다. 남편도 육아에 동참하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이제는 지인들이 같은 질문을 하면 그들에게 “육아의 고통,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다고 할 때면 선배들은 “딱 10년만 버텨라”라는 말을 종종 해주었다. 요즘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힘들 때, 슬플 때, 답답할 때, 랜터 윌슨 스미스의 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읽으면 힘을 얻었다. 영유아를 키우느랴 잠도 제대로 못자고, 껌딱지 아이들에게 묶여 자유 시간을 박탈당한 영유아 부모들과 이 시를 함께 읽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고통 또한 분명히 지나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즐기면서 잘 버텨내면 오늘의 나처럼 “아이들이 크니 이런 시간도 오네~”라며 웃을 날이 온다고 말이다. 딸이 9살이 되니 확실히 알겠다. 부모들과 아이들이 가장 끈끈하고 밀착된 시간을 보내는 시기는 영유아 시기임을. 이제는 딸과 아들의 볼살이 오동통했던 영유아 시기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때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힘들고, 아이들에게서 묶여있는 것만 같던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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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는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 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순간에 불과함을 기억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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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