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는 4개, 상의는 8개를 껴입었다. 뒤뚱거린다. 북극의 칼날같이 날카롭고 매섭게 찬 공기는 겹겹이 입은 옷의 빈틈을 집요하게 뚫고 파고든다. 장갑도 3개씩 꼈다. 얼굴을 보호하는 마스크는 입김을 그대로 얼려 30분마다 바꾸어야 했다. 영하 40도. 상상하기 어려운 추위다. 식량과 텐트를 실은 무게 15㎏의 썰매를 끌고 달려야 한다.  

 길을 잃거나 졸면 죽을 수도 있다. 10㎞마다 설치해놓은 표지판은 그나마 ‘죽음의 공포’를 덜게 한다. 밤에는 헤드랜턴의 가느다란 불빛만이 유일한 빛이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마라톤’으로 불리는 북극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했다. 멈추면 땀이 식어 몸이 언다. 정신이 혼미하다. 중간 체크 포인트에 대기하고 있던 의사가 체온을 잰다. 33도로 떨어졌다. 저체온증이 왔다. 중단을 권한다. 103㎞를 19시간20분에 뛰고, 포기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이번 도전도 가슴을 힘차게 뛰게 했다. 이 대회 출전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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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캐나다의 북쪽 유콘주 이글플레인스에서 열린 북극 울트라마라톤 참가자는 모두 24명. 전세계에서 ‘마라톤에 미친’ 사람들이 모인 셈인데, 오직 두명 만이 566㎞를 완주했다. 1등을 차지한 참가자의 기록은 158시간25분. 무려 엿새 반나절을 북극의 추위와 싸우면서 달린 셈이다. 완주엔 실패했지만 양유진(28)씨는 아쉽지 않다. “바쁘게 반복되는 건조한 일상 속에서 뜨거운 자극을 맛보고 싶어 참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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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씨는 극한의 사막 마라톤에 익숙하다. 대학 3학년이던 2014년, 휴학한 양씨는 한해 동안 세계 3대 사막 마라톤에 모두 출전했다. 사하라사막 마라톤(250㎞)에 출전해 6박7일간 완주를 했고, 고비 사막 마라톤(250㎞)에도 출전해 여자부 3위(42시간54분)를 차지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에도 출전했다. 겁이 없었다.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은 해발고도 3200m부터 시작한다. 대회 참가자들은 고산병을 대비해 대부분 대회 며칠 전에 도착해 적응한다. 양씨는 경기 당일에 현지에 도착했다. 고산병에 대해 몰랐다. “물만 마셔도 다 토했어요. 고산병 증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코스라 증상은 더 악화됐죠. 오기로 계속 달리다가 결국 145㎞에서 쓰러졌어요.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운영본부에 누워 있더군요.” 완주에 실패한 양씨는 3개월 뒤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다. 고산병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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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여자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남자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했다. 8년간 쉬지 않고 했다. 3단을 땄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2년간 테니스를 배웠고, 중학교 2학년부터 2년간 킥복싱을 익혔다. 달리는 것이 좋았다. 400m 달리기부터 시작해 중장거리 선수로 출전했다. 체육교사가 되고자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마라톤에 빠졌다. 풀코스 20번을 완주했다. 42.195㎞ 최고기록은 3시간53분. 울트라마라톤에도 7번 참가했다. 대부분의 울트라마라톤 참가자들이 30대 이상의 연령대인 점을 비춰보면 대학생인 양씨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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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씨는 무릎 관절의 부상을 줄이기 위해 독특한 달리기 주법을 익혔다. 바로 ‘미드풋 러닝’이다. 일반적으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는 데 비해 이 주법은 발바닥 중간부터 디딘다. 착지 순간 무릎을 살짝 굽혀주는데, 굽혀 있는 무릎이 스프링처럼 완충 효과를 내 무릎과 고관절, 허리를 충격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맨발로 달릴 때는 발가락이 제일 먼저 땅에 닿게 뛰었어요. 운동화가 등장하면서는 뒤꿈치부터 내딛는 주법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뒤꿈치부터 착지하면 자신의 몸무게보다 2~3배 무거운 충격이 발목과 무릎, 고관절까지 고스란히 전달돼 오래 달리면 부상이 와요. 이를 보완한 주법입니다.” 양씨는 이 주법이 발이 땅에 닿는 시간을 단축시켜 기록을 줄이고, 발바닥 전체로 충격이 분산돼 부상 위험도 적게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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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는 단순히 자신의 도전 정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달리지 않는다. 달리기를 사회봉사와 연결시켰다. 2014년에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강릉 경포해변까지 2박3일간 108㎞를 달렸다. 장애인 육상 꿈나무에게 장애인 마라톤 전용 휠체어를 선물하기 위한 기부 달리기였다. 결국 양씨는 1000만원을 모아 휠체어를 선물했다. 아프리카 부룬디의 아이들에게 교복을 보내주기 위해 2015년에는 자전거를 타고 75일간 오스트레일리아 7051㎞ 대륙 횡단을 하며 450만원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며 200만원을 모금해 불우이웃을 위해 쓰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복지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기부와 봉사활동을 꾸준히 한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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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기부는 뛴 만큼 일정 금액을 다른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방식과 내가 운동한 만큼 기부하는 방식 등이 있다. 양씨는 최근 스포츠 기부를 전문으로 하는 ‘드림임팩트’라는 이름의 기업을 창업했다. 직원이 4명이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을 사회적기업으로 연결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올해엔 지난번 완주에 실패한 아카타마 사막 마라톤 재도전할 겁니다. 철인3종에도 출전하려고 해요. 내년엔 남극마라톤에 도전하렵니다.” 162㎝의 키에 55㎏의 몸무게를 유지하는 양씨는 매일 10㎞씩 뛴다. 수영과 자전거 타기, 헬스 등을 하루 2시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2일 정도는 푹 쉬며 몸에 휴식을 준다. 그래야 몸에 면역력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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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