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400일 유라시아 `미친 달리기' 종착점은 통일 이길우 기자의 기찬몸

통일마라토너 강명구씨

1일 헤이그에서 출발, 매일 마라톤 풀코스 1년2개월 달린다

유라시아 대륙 홀로 달려서 횡단하는 세계 최초 ‘인간 도전’

 

마라톤 풀코스는 약 42㎞. 한번 완주하기도 어렵다. 마음먹고 오랫동안 준비해서 도전하는 거리이다. 하지만 그에겐 아니다. 그가 미친(?) 도전을 곧 시작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데, 매일 풀코스 거리를 달린다. 1만6000㎞. 하루에 평균 40㎞를 달리면 꼭 400일. 약 1년2개월을 그는 매일 마라톤 풀코스를 달릴 예정이다. 더 놀라운 것은 혼자라는 것이다. 차에 먹을 것 등을 싣고 뒤따라 오면서 도와주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달린다.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다. 식량·텐트·옷 등을 실은 대형 유모차를 직접 밀면서 달린다. 만약 성공하면 그는 유라시아 대륙을 ‘걷는 것이 아니라 홀로 달리면서 횡단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된다. 무모하다. 그의 도전은 새달 1일 시작된다. 첫발은 이준 열사의 유적이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 그런데 그의 무모하고 비상식적인 도전은 성공할 것 같다. 왜냐하면 2년 전에도 그는 미국 대륙의 동서(5200㎞)를 같은 방법으로 125일 만에 횡단해냈기 때문이다. ‘통일 마라토너’로 불리는 강명구(60)씨는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일까?

q1.jpg »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앞두고 한강 둔치를 달리며 몸을 다지고 있는 강명구씨.
  

  ‘통일 마라토너’는 그가 2년 전 미 대륙을 횡단하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달렸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그는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출정식을 열고, 27일 출국해 9월1일 오전 9시(현지시각) 유럽대륙의 서쪽 끝인 헤이그를 출발해 독일~오스트리아~터키~이란~중국 등 16개 나라를 통과한 뒤 북한을 남으로 종단해 내년 11월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다. 물론 북한 통과는 아직 희망사항이다.
  지난 24일 한강 둔치에서 만난 강씨는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난 한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키 169㎝에 65㎏, 외모는 평범하지만 단단하다. 눈빛이 매우 강하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백수 생활을 하다가 30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식당과 자동차 부품 판매 등 여러가지 사업을 했지만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50대 중반 심한 ‘사춘기’를 앓았다. “50대 나이는 여행 가방을 풀어서 정리할 때가 아니고 비로소 설레는 마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진정한 인생 여정에 나설 여행 가방을 꾸릴 때라는 것을 느꼈어요. 살아남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그 수단으로 달리기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그가 어려서부터 잘 달린 것은 아니다. 평범 이하의 체력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그 흔한 공책 한 권 상으로 받아본 적이 없고, 군대에서는 10㎞ 완전군장 구보 중 3㎞도 못 가서 구급차에 실리기도 했다. 유격훈련 때는 부대 전체 성적이 떨어진다고 강제 외출이나 외박을 가야 했다. 하지만 50대 중반 나이에 우연히 시작한 마라톤은 달랐다.
  “마라톤은 제초제입니다. 끝없이 몰려오는 고통을 이기고 나면 미움과 우울, 분노, 상실감 따위 잡초 같은 감정이 사라져요. 오래 달리면 마음이 고요한 달빛처럼 잔잔해져요. 그 순간 숨어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거죠.”
  그는 남들보다 잘 달렸다. 첫 마라톤에서 3시간대에 골인(서브 포)했고, 달리면 달릴수록 기록은 단축됐다. 80㎞ 산악마라톤은 두 번 만에 성공했다. 모두 35번 풀코스를 뛰었고, 최고 기록은 3시간35분. 그의 첫번째 미친 짓은 미국을 동서로 달려서 가로지르기였다. “모하비 사막을 3주 만에 건넜어요. 70㎏ 가까운 무게가 나가는 대형 유모차를 밀고 끌면서 말이죠. 그다음엔 로키 산맥을 넘어야 했어요. 생과 사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물었다. 마라톤의 매력이 무엇인가.

 

1503611388394.JPEG » 미국 횡단하면서 텐트와 식량 의복 등을 담아 밀고, 끌었던 대형 유모차. 쌍둥이용 유모차를 개조했다.

미국 1.jpg » 미국 횡단할때의 강명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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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처음으로 곡선의 시간을 즐기면서 내 안으로 휘돌아 들어갈 수 있음을 느꼈어요. 그리고 달릴 때 큰 호흡 하면서 육체에 온 정신을 집중하면 큰 평화가 온다는 ‘하늘의 비밀’을 알았어요. 마치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는 종교적 깨달음과 같을 겁니다.”


  물론 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다리에 큰 부상도 입고, 들짐승의 위협도 받고, 길을 잃고, 눈보라 속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자신감을 갖게 됐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타인의 도움 없이 미 대륙을 횡단한 아시아인이라는 명예도 얻게 됐다.
  2년 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귀국한 강씨는 세계인들에게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유라시아 횡단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강력하게 대륙의 한가운데로 잡아끕니다. 달리면서 온몸의 기운이 소진될수록 정신은 맑아집니다. 신비로운 생명수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짜릿한 기분이 듭니다. 그 힘이 절망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희망을 끌어 올리는 치열한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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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이번 유라시아 대륙 횡단에서 중국을 지나며 7000㎞에 이르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5~6개월에 건너야 한다. 또 북한이 그에게 문을 열어줄지도 부정적이다. 대기업의 지원도 없다. “최악의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달리다 보면 도와주는 이가 나타날 것입니다. 근거없는 자신감은 저의 무기입니다.”
  만약 중국 단둥에 도착한 뒤 북한 쪽에서 그의 신의주 진입을 막는다면 1인시위를 할 작정이라는 그는 “한국인의 눈을 통해 본 유럽의 내밀한 모습을 문학의 틀을 통해 전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의 전공은 국문학이다.

 


   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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