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만 수행하라 고수를 찾아서

전통무예 기천문 문주 박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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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무인이라면 몸으로 한번 보여주세요.”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부탁조로 말을 붙였다. 상대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언뜻 보기엔 어린 중학생 같았다. 한 손에 도복을 말아 쥐고 도장을 찾아온 청년 박사규(65·당시 29)는 눈앞에 흰 한복을 입고 자신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작은 체구의 무술인을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 무술인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며 “정 원하신다면 저도 한 수 배우지요”라고 말했다.

 박사규는 당시 합기도 사범을 하는 공인 5단. 어릴 때부터 박사규는 권투와 태권도(5단),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을 익혔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술 고수와 수를 섞어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진도의 여유 있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덩치가 작아(현재 165㎝) 이런저런 무술을 배우며 ‘깡다구’를 키웠던 박사규는 친구로부터 “눈 위를 걸어도 발자국이 남지 않고, 나뭇가지를 뛰어다니며, 장풍도 쓰는 당대 최고의 무인이 출현했다”는 말을 듣고, 서울 왕십리 뒷골목에 있는 도장을 묻고 물어 찾아온 것이다.

 마주서니 상대는 키가 자신보다도 10㎝는 작아 보였고, 대련 자세를 잡기 위해 들어올린 손을 보니 조막손 같았다. 속으로는 “저 정도는 다섯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자신있다”고 생각한 박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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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승부는 순식간에 끝났다. 공격하려고 다가서는 순간 상대는 사라졌다. 잠시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상대는 다시 처음처럼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 단 일 합에 끝났다. 수많은 고수들와 맞붙었지만, 보도 듣도 못한, 그러나 엄청난 위력을 지닌 무술에 압도됐다. 즉시 박사규는 제자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청년 박사규는 전통무예 기천(氣天)의 초대 문주 박대양의 제자가 됐다. 박대양은 어린 나이에 설악산에 들어가 20살 때까지 원혜상인이라는 ‘신선’에게 기천을 익혔다. 그리고 세상에 내려와 전국을 돌 때, 당시 무술 고수들은 그 앞에서 추풍낙엽이었다.

 박대양이 박사규와 맞붙어 풀어낸 무술 기술은 ‘연비파문’(燕飛波紋). 오른손을 크게 밖으로 휘둘러 상대의 관자놀이를 가격한 뒤에 날아올라 360도 회전하며 다시 발로 상대의 얼굴을 타격하는 초절정 무술의 기술. 마치 제비가 자신을 공격하는 덩치 큰 독수리를 향해 쏜살같이 파고드는 형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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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맺은 기천과 박사규의 인연은 끈질겼고, 잔인했다.

 1973년 군에서 제대한 박사규는 결혼하고 3년간 농사를 짓다가 상경해 이대 입구에 있는 의상실에 취직했다. 재단과 디자인 보조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배웠고, 남대문시장에서 의류 도매를 시작했다. 도매사업과 병행해 이태원에 큰 여성복 매장을 운영했다. 의류업계의 신화가 됐다. 당시 하루 5000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자신의 승용차로 박대양 사부를 모시고 효창공원 등 서울시내 공원을 돌아다니며 기천을 전수받았다. 처음 3년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몽둥이로 맞으며 배웠다. 온몸에 피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기천의 첫번째 계율은 ‘기천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아니하고 무게도 형체도 이름도 없으므로 일체 말이나 글에 집착하지 말고 몸으로만 수행하라’였다. 고조선부터 무인집단인 ‘조의선인’들이 익혔고, 그 뒤 기록엔 없으나 산중의 지킴이들에 의해 면면히 전해 내려왔다는 기천은 우선 내공을 강하게 단련한 뒤, 외공을 익히는 무술이다. 특히 손과 발의 근육을 뒤틀어 자세를 오랫동안 버티며 힘을 키우는 ‘역근’(易筋) 동작을 하는 기본 동작인 ‘내가신장’은 기천 입문을 어렵게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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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바닥으로 돌을 박살내는 파석장(破石掌)과 날아오는 화살을 두 손바닥으로 잡아내는 합장공(合掌功)은 물론이고, 몸에서 마음을 분리해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알 수 있는 환영신공(幻影神功)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박사규는 모질게 수련했다.

 기천을 수련하며 한편에선 사업을 키우던 박사규는 1998년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에 빈털터리가 됐다. 주머니에 단돈 10만원을 갖고 그는 계룡산 갑사 입구의 암자로 스며들었다.

 능선 모양이 닭 벼슬을 닮았고, 용이 웅크린 모습인 계룡산은 한국 산 가운데 가장 기가 세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들어온 박사규를 계룡은 포근히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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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양으로부터 기천 문주 자리를 이어 받은 박사규의 하루는 계룡의 정기를 받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흰 한복을 입고 산을 오르는 모습은 사뿐사뿐하기가 날렵한 학과 같다. 산 정상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가슴에 품으며 내가신장을 선다. 땅의 기운과 하늘의 정기가 내 몸을 통해 소통한다. 우주의 기운이 배꼽 아래의 단전에 모인다. 호랑이가 공격을 하는 형세인 ‘범도’, 소가 무거운 쟁이를 끌고 가는 형세인 ‘소도’, 금빛 닭이 한 발을 들고 상대를 덮치는 형세의 ‘금계독립’ 등 기천의 기본 동작을 행한다.

 그리고 무예의 최고 단계인, 무술을 춤으로 승화시킨 ‘기천무’가 중중모리 가락의 거문고 산조 가락과 어울려 자연을 수놓는다. 가벼우면서도 육중하고, 느린 듯하면서도 번개같이 빠른 손과 발동작이 화려하면서도 절도 있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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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기천이 한민족 전통무술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이런 몸동작은 우리 민족에게만 있어요. 몸에서 몸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지킴이의 전통을 강렬하게 느낄 수밖에 없어요.” 행하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行而無跡)는 선가의 불문율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흰 수염과 붉은 얼굴빛이 멋지게 어울리며, 깊은 산속에서 전통무예를 지키고 가꾸는 박사규의 제자들은 매주 일요일 전국에서 모여든다.

 박사규는 50여명의 제자를 연천봉 자락 수련장에서 직접 지도한다. 학생, 대학교수, 경찰, 군인, 무당, 스님 등의 직업을 가진 남녀 제자들은 1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이제는 자신의 몸에 생긴 강한 면역력으로 온갖 질병을 치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올바른 몸동작으로 건강을 되찾고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기천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박사규는 기천명을 읖조린다.

 “수수화영(手手華英·손동작은 화려한 꽃봉오리)이고, 보보비운(步步飛雲·걸음걸음은 나는 구름)이라. 일권타마(一拳打魔·한 주먹은 마귀를 부수고)에, 일검파사(一劍破邪·검의 내리침은 사악함을 가른다)로다. 하하하.”

 

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동영상 이규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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