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이 빠름을 제압한다 고수를 찾아서

밝은빛 태극권 박종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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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중년의 50대 여인이었다. 중국 베이징 사범대의 찻집 앞에서 수련하는 여인의 태극권 몸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자신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한국에서 온 청년을 의식한 여인은 “관심이 있으면 가까이 오라”고 말했다. 당시 24살의 청년이 내심 바라던 바였다. 여인을 마주하고 두 손을 올렸다. 이른바 태극권에서 하는 대련인 추수(推手·손을 밀어 낸다는 뜻으로 서로 겨루는 것)였다.

 청년은 이미 10여년 한국에서 태극권을 익혔고 이름난 한국의 태극권 고수와의 추수에서 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태극권의 본고장인 중국에 온 것이다. 여인을 마주하고 청년은 힘을 쓰려는 순간, 몸이 ‘붕’ 떠서 뒤로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보니 3~4m 뒤에 있는 화단에 처박힌 자신을 발견했다. 1992년 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힘 한번 못 쓰고 패한 청년은 곧바로 귀국해 짐을 싸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3년간 중국의 태극권 고수를 찾아다니며 태극권을 익혔다.

 한번은 베이징 중앙의 천단공원에서 한 노인과 마주했다. 상대는 오가(吳家) 태극권의 고수. 젊은 시절 유도도 했던 노인은 엄청난 힘으로 청년의 손을 제압했다. 자신의 손을 잡아 위로 올리자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 힘에 빨려들어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는 순간, 청년은 자신의 힘을 모두 뺀 채 한 손으로 노인의 가슴을 가격했다. 공격하던 노인이 오히려 뒤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청년은 태극권에서 이야기하는 사기종인(捨己縱人·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른다)의 이치를 깨달았다. 그 뒤 청년의 태극권은 한 단계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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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동안 청년은 중국 전역을 돌며 무수한 추수를 통해 태극권 각 문파의 전인이 됐다. 느려 보이긴 하나 엄청난 내공을 지닌 진가(陳家) 태극권 19대 전인, 양손의 움직임이 뛰어난 손가(孫家) 태극권의 6대 전인, 빠르고 강한 내공의 양가(楊家) 태극권 6대 전인, 의식의 음과 양을 조절하는 오가(吳家) 태극권의 6대 전인, 태극의 모양처럼 빙빙 돌며 상대를 제압하는 팔괘장(八卦掌)의 5대 전인이 되며 태극권의 일가를 이뤘다.

 1995년 겨울 귀국을 앞둔 청년은 숙소 주변의 공원에서 아침마다 태극권 수련을 하던 할아버지와 마주 섰다. 평생을 수련한 노인은 젊은 청년이 다가서서 배를 힘껏 주먹으로 내질러도 청년의 주먹이 아플 정도로 깊은 내공을 소유하고 있었다. 노인이 먼저 공격했다. 노인의 손을 살짝 옆으로 흘린 청년은 상대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이제 그동안 수련한 발경(發勁·몸 안의 힘을 모아 상대를 순간적으로 제압하는 기술)을 펼치면 노인이 뒤로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노인의 오른손 바닥이 자신의 어깨에 살짝 닿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충격은 마치 척추에 발갛게 달군 인두를 갖다 댄 듯 엄청났다. 푹 고꾸라진 청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수련용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 청년은 스스로 자신의 척수에 입은 내상을 치료하며 중국 전통 건강법인 도인술(導引術)에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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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빛 태극권’을 국내에 보급한 지 25년이 되는 박종구(45) 원장은 중국의 전통 무술인 태극권을 한국화하는 데 노력해왔다. 일곱 형제에서 여섯째로 태어난 박 원장은 부친이 일제강점기 때 학교에서 유도와 검도를 익혀서인지 자식들에게 모두 운동을 가까이 하도록 교육했다. 큰형은 배구 선수를, 둘째 형은 태권도 선수를 했고 셋째 형은 유도와 태극권 고수였다. 넷째 형은 쿵후를, 다섯째 형은 합기도를 익혔다. 박 원장은 자연스럽게 중학교 시절에는 검도를 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태권도를 배웠다. 당시 대만에서 유학하며 태극권을 익힌 셋째 형이 고향(청주) 집에 와서 석양을 배경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태극권을 하는 것에 매료된 박 원장은 태극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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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1시간 정좌해 명상하고, 5시에 산에 올라가 나무를 했다. 밥을 짓고 빨래하며 자신의 첫번째 태극권 사부인 셋째 형에게 태극권을 3년간 익혔다. 그리고 3년간은 혼자 산속에서 태극권을 익혔고, 3년은 전국을 떠돌며 태극권 고수와 추수하며 수련을 했다. 그러나 태극권의 세계는 빠져들면 들수록 의문이 생겼다.

 ‘강한 가운데 부드러워야 하고, 빠르면서도 느려야 한다. 쥐는 듯하다가 펴야 하고, 내려가면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기 어려웠다. 특히 “멈춘 가운데 움직여야 한다(정중동·靜中動)” “힘을 쓰지 말고 뜻을 써라(용의불용력·用意不用力)” 등은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리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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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대만을 오가며 태극권을 수련하며 박 원장은 모든 무술은 네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처음 ‘짐승의 단계’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이기고,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는 단계다. 두번째 ‘초식의 단계’는 무술의 기술이 힘을 제압하는 단계다. 세번째 ‘조화의 단계’는 자연의 힘을 활용하는 단계이다. 네번째 ‘응물자연(應物自然)의 단계’가 되면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는 도리를 알게 된다. 그래서 태극권은 느림이 빠름을 제압한다.


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동영상 박종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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