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곧 사람, 생명을 살리는 활인검 고수를 찾아서

한민족 전통무예 두람 전인 김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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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칼끝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본다. 단 일합에 승부가 나는 진검이다. 칼은 철로 만들었지만 칼을 든 사람에 따라 운명을 함께한다. 그래서 칼은 곧 사람이다. 눈이 밝아야 손도 빨라진다.

 그의 눈빛은 무섭다. 문득문득 스치는 그의 눈빛은 오금을 저리게 하기 충분하다. 한창때의 그와 눈을 마주치면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18일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는 늦가을의 북한산 자락. 태산을 제압할 듯 묵직한 심호흡과 준비동작을 한 그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허리의 칼집을 나온 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앞에서 뒤로 살아 움직인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벼락같이, 때로는 죽일 듯이, 때로는 살릴 듯이. 그의 칼끝은 360도 모든 공간을 꽉 채운다. 칼날이 땅 위를 둥글게 스치며 선을 긋자, 이번에는 땅 위의 낙엽이 ‘훅’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동시에 그의 몸도 솟구친다. 오른손에 있던 칼은 허리와 목을 빙그르 돌더니 왼손으로 옮겨진다. 굳이 손잡이만을 잡지 않는다. 때로는 칼날의 중간을 잡고 가공의 적을 공격하고 방어한다.


중심이 안정돼 있지 않은 허공에서도 칼은 그의 몸을 중심으로 춤을 춘다. 엄청난 기세를 뿜어낸다. 기세가 없는 기술은 광대들의 검술 놀이일 뿐이다. 하늘도 그의 신기에 가까운 검술에 화답하듯, 햇빛을 숨기고 짙은 구름을 보내더니 끝내 하얀 눈을 뿌린다. 세찬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눈 속에서 그의 몸놀림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간결해진다.

 그의 스승은 한밤중에 산속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 12살. 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에서 평생을 무술을 한 고수는 그 어린 소련을 마구 공격했다. 온몸에 쏟아지는, 뼛속 깊이 파고드는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서 소년은 두 손을 들어 막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사부의 공격을 조금씩 막아낼 수 있었다. 청각은 사부가 휘두르는 목검의 끝과 주먹이 공기를 가를 때 내는 파열음을 들을 수 있었다. 피부 역시 미세하고도 예리한 공기의 떨림을 감지해냈다. 후각도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간파할 만큼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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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한민족 전통무예인 ‘두람’의 전인 김재철(47)씨가 두람을 만난 것은 5살 때.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철원 산속에서 살던 어린 김씨는 관사 주변의 산속에서 살던 두 명의 노인과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한다. 한 노인은 90이 훌쩍 넘었던 초당 선생이었고, 한 분은 80대의 도막지 선생이었다고 한다. 두 노인은 몸이 빠르고 총명했던 김씨에게 그 이후 25년간 틈틈이 두람을 가르쳤다. 초당 선생은 오른 팔뚝 길이의 부러진 칼(소리도)로 검술을 가르쳤고, 젊은 시절 괴력을 뽐냈던 도막지 선생은 권법을 가르쳤다. 수련은 하루 8시간씩 9년을 한 주기로 진행됐다. 검을 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가 내리는 간단한 동작을 하룻밤에 2만번씩 반복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문자 그대로 ‘백련천련기입신’(百練千鍊起入神·백번을 익히고 천번을 단련해야 신의 경지에 이른다)이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무사로 29살까지 66차례 목숨을 건 진검승부에서 단 한 차례도 지지 않았던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도 ‘조단석련’(朝鍛夕鍊)의 시간을 가졌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단’(鍛)은 1000일의 수련을, ‘련’(鍊)은 1만일의 수련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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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정을 거쳐 검의 고수가 된 김씨는 ‘나를 먼저 죽이는 검법’을 강조한다. 남을 먼저 공격해 살인을 하는 살인검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활인검인 것이다.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칼을 뽑기 전에 세상의 모든 생명을 아끼고 존중하는 상무정신을 몸에 깊숙이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의 사부인 초당 선생이 들려준 한 전설은 그런 검의 정신을 잘 이야기해준다. 7살 때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 20년간 검술을 갈고닦은 칼의 고수는 드디어 그 원수를 만나기 위해 산을 내려온다. 그런데 산 밑 계곡에 한 소년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그 고수는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물에 뛰어들어 그 소년을 구해낸 검의 고수는 원수를 향해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게 바로 검객의 길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검술의 기본인 치고(격·擊), 찌르고(자·刺), 베는(세·洗) 동작을 무수히 하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사념이 없이 하는 끊없는 반복 동작이 고수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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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닌 80년대, 당시 군사독재 타도를 위해 시위 현장의 선봉에서 몸을 날려 공안당국으로부터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요원’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 김씨는 한때 고문의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되기도 했다. 김씨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배운 두람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알음알음으로 김씨를 찾아온 제자들은 대부분 다른 무술을 오래 했던 고수들. 그들은 김씨 무예의 깊이에 매료돼 제자가 됐다. 제자를 받아들일 때도 까다롭다. 최소한 3년은 기초를 열심히 배워야 제자로 인정한다. 인연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순수 우리말인 두람은 ‘너르다’라는 뜻. 김씨는 두람은 “낭만이 없는 무예”라고 규정한다. 검술과 장술(권법)을 수련하고, 그리고 내경(몸 내부)을 단련하는 두람은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한다. “몸은 ‘모으다’라는 말에서 왔고, 마음(맘)은 몸의 다른 발음일 뿐입니다. 몸을 바로 쓰면 건강해지고, 자연스럽게 정신도 건강해집니다”고 말하는 김씨는 특히 ‘집중’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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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운동은 단기적으로는 운동의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해가 된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몸과 끊임없이 명령을 하고 달래기도 하는 ‘대화’를 해야 진정한 건강이 온다는 것이다. 특히 몸을 쓰지도 않으면서 약과 음식으로 건강을 찾으려는 ‘게으른 현대인’을 경고했다.

 칼을 들고 금초지세를 잡은 김씨는 허공을 향해 깊은 숨을 토한다. 비록 체구는 작지만 큰 바위처럼 다가선다. 조선 최고의 검객이 시간을 뛰어넘어 나타났다.


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동영상 박종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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