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기운이 머리에 올라오다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12/서바이벌 중국어와 108식 순서를 익히다

 

스님은 영어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이제 모든 소통은 중국어로 해야 한다. 내가 중국어를 처음 접한 것은 물론 대학교 때였다. 한 학기 교양과목으로 선택한 중국어 수업은 간단하게 말해 학점만 잘 따면 그만이었다. 중국 수련을 준비하는 기간이라든가, 과정이 따로 없이, 말하자면 좀 무식하게 곧바로 바다를 건너왔다. 중국어에 대한 사전 대비라고 해봐야 달랑 ‘알기 쉬운 중국어 첫걸음’을 한번 읽어본 게 전부였다.
 
 언어엔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곳의 중국 식구들하고 생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중국어 학습 시간이 없었음에도 나는 중국어를 어렵지 않게 했다. ‘서바이벌 랭귀지’가 나의 언어 습득 방식이다.
 
 현지 유학을 온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사업차 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언어는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키면 된다. 그 한 가지는 말할 것도 없이 현지 생활에 필요한 소통이다. 외국 생활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절실하게 느껴보는 문제이나, 쉽지는 않다. ‘현지 적응 언어’, 그것은 여행자의 입장에선 필수적이다. 물론 짧은 몇 마디로도 물건을 사고 깎는다. 그러나 좀 더 긴한 접촉과 교류를 위해서는 언어만큼 절실한 것이 없다. 언어란 인간의 의식과 문화의 산물이자 매개수단이고, 사유방식이며 사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현지 외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여행자에겐 필수적인 지참물이다. 그리고 이 능력을 지참하게 되면 여행에서 두려움이나 불안의 요소는 싹 가신다. 소통에서 오는 즐거움과 재미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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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가지는 책을 읽는 것이다. 피상적인 정보나 상식 정도를 넘어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과 문화를 습득하기 위해선 반드시 언어를 선취해야 한다. 언어 학습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하다. 나로 말하면 그저 닥치는 대로 해나가는 편이다. ‘수련인’이라는 목적의식 때문에 언어를 적극적으로 학습하다가도, 때로는 다 내려놓고 홀로 침잠해서 지낸다.
 
 지인들 가운데 중국어를 배우고는 싶으나 어려울 거라고 염려하는 이들이 꽤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중국어만큼 배우기 쉬운 언어가 또 있겠는가고. 만약에 미국인이나 러시아 사람이 중국어를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 사람들은 한자를 쓰는 것이 아니고 그린다. 물론 그들도 말하기는 잘한다. 그러나 막상 글씨 쓰는 것은 엄청 난감해한다. 마치 명상을 배우는 서구인들이 가부좌 때문에 곤욕을 치르다, 다음 생엔 꼭 인도나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하는 것처럼. 얼마나 명상이 하고 싶었으면 그렇게 말할까 싶다. 가부좌가 익숙한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점을 잘 모른다.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단어다.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말 속에 한자를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중국어 발음과 한자 훈독에는 보이지 않는 법칙 같은 것이 내재해있다. 해보면 금방 눈치 챈다. 일일이 중국어 자전을 찾아보며 글자마다의 병음과 성조를 익히는 것이 바른 학습법이겠으나, 게으른 나는 늘 수련시간을 핑계 삼아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 찾고 있었다.
 
 나는 중국 친구들에게 내가 읽는 책에 중국어 병음과 성조를 표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에겐 매우 귀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의 이 형편없는 부탁을 들어주곤 했다. 그런 다음엔 따라서 읽었다. 그리고 나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엔 혼자 읽어나간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중국 친구들이 셋이면 셋 다, 같은 글자에 단 병음과 성조가 같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로웠다. 말하는 습관대로 하다 보니 그리 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 내가 깨달은 건 원어민들도 대충 하는데, 구태여 외국인인 우리가 너무 정확하게 하려다가 지레 지치느니 보다, 적당히 소통을 위주로 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오래전이었다. 홍콩에서 연수를 받던 중, 한 외국인 강사가 한담 중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외국 여행을 잘하는 데는 세 가지 필수적 요소가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첫째가 국제적 언어(international language)고, 둘째가 국제적 위장(international stomach)이며, 셋째가 국제적 인맥(international relationship)이란다.
 패키지여행을 능사로 하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겐 어떨지 모른다. 난 여행할 때마다 늘 이 말이 생각난다. 언어는 그렇다 치고, 실은 내게 더 취약한 건 두 번째의 음식이다.
 
 오죽하면 ‘국제적 위장’의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겠는가. 돈이 충분하다면 그것도 문제가 안 된다. 어느 나라든 고급한 음식은 먹을 만하다. 그리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나의 경험으론, 홍콩의 뒷골목이나, 필리핀의 저렴한 식당의 토속음식들은, 도전코자하는 의욕에도 불구하고 항상 비위가 안 맞았다.
 다행히 중국의 동굴에선 아이가 해준 음식으로도 견딜 만은 했다. 이미 김치 비슷한 걸 만들 줄도 알았고, 한국에서 날라 온 된장이나 고추장 등이 있어서 괘념치 않을 정도는 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외식을 할 경우엔, 일테면 양고기 샤브샤브, 양 꼬치구이 등을 즐겨 먹었는데, 태극권 수련자에겐 특히 하체의 단련과 양생을 위해  권장되었다. 이밖에도 사천매운탕이나 마파두부 같은 것들도 자주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특유의 향미가 토속적인 취향을 고집하는 내 입맛엔 영 안 맞았다.
 
  지붕 새어 침상 머리 마른 곳 없고
  빗발은 삼 줄기 같이 그칠 줄 모른다.
  난리 겪으며 잠은 적어졌지만
  젖은 채로 긴 밤 어찌 새우리오?
  어찌하면 천만 칸 큰 집 지어
  천하의 가난뱅이 크게 감싸 함께 환한 얼굴 되어서
  비바람에도 산처럼 태연할 수 있을까?
  아아!
  언제든 눈앞에 우뚝 선 그런 집 보이면
  내 오두막 부서져 얼어 죽는다 해도 족하리라
  (띠집(茅屋)이 가을바람에 부서지다, 두보) 
 
 
  바람 급하고 하늘 높은데 슬픈 잔나비 울음,
  물은 맑고 모래 흰데 새는 선회한다.
  가없는 낙엽이 우수수 지고
  끝없는 장강은 도도히 흘러온다.
  만리타향에서 가을 슬퍼하며 늘 떠도는 신세라,
  평생 병 많은 몸으로 홀로 누대에 오른다.
  어려움 속에 서리 앉은 머리털 괴롭고 한스러운데
  지쳐 쓰러져 탁주도 이제 끊는다.
  (높은 데 올라, 두보)
 
 
 언덕 위쪽에 있는 두보 사당 앞의 넓지 않는 공간이 나의 태극권 수련 터다. 시성(詩聖)을 예찬하는 수많은 언사보다, 지금 내겐 두보의 삶의 자취 실린 사당의 소슬한 바람 한 점이 더 와닿는다.
 시선이라 칭송되었던 이백과 함께 성당(盛唐)의 일세를 시로써 풍미함은 물론, 역사를 두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두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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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욕망과 좌절, 그의 이상과 현실은 천년의 세월을 싣고 내게 왔다. 시인의 꿈과 현실에의 갈등과 고뇌가, 어느새 태극과 무극의 세계를 출입하는 이방인의 전신을 타고 스며들어온 듯. 발바닥의 용천을 타고 올라온 땅의 기운이 미려(尾閭)와 협척(陜脊)을 거쳐 옥침(玉枕)에 이르고 다시 니환(泥丸)에 올라선다. 하늘기운이 영접한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의 기운 속으로 갈마든다. 수련자는 점차 허령정경(虛靈頂勁)의 일미에 젖는다. 텅 빈 머리 한가운데 신령한 기운 가득하네.    
 
 애쓴 보람이 있었다. 부실한 하체, 저열한 체력의 한계를 간들간들 이겨내며, 108식 투로의 동작과 순서를 겨우 익혔다. 기뻤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보자. 두보가 그랬듯이, 간단없이 닦고 또 닦아보자.
 
 글/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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