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반복, 지속의 3원칙 터득하다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3/차향 가득한 요가수련
 

새벽수행 말고도 사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오전 수행이다. 아침 공양이 끝나면 곧장 선방에서 스님과의 차담에 든다. 방안에는 항아리가 몇 개 있다. 항아리마다 가격을 표시할 때 붙이는 딱지가 하나씩 붙어있는데 거기엔 숫자가 적혀있었다. 몇 년산 이라는 뜻이겠지.  나중에 어느 정도 이 절 생활과 출입하는 도반들이 익숙해진 다음에야 안 일이지만 이 단지에는 진짜 오래고 좋은 보이차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훗날 두루한 기행을 통해서 곳곳의 차종과 차맛을 익힌 후에도 이곳 항아리속의 차맛에 비견할 만한 물건을 본적이 없다는 걸 사내는 나중에야 기억해냈던 것이니.      
 
 호사를 누린 것이 어찌 수십 년산 보이차에 그치겠는가만.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스님과 말없는 문답을 주고받는다. 무슨 인연으로 여기에 앉아서 이 좋은 복록을 누리고 있는 것인가. 인연 말고는 뭐라고 설명할 길 없는 소이를 들어 깊은 상념에 젖어든다. 스님은 대체 무슨 까닭으로 여기 이렇게 앉아 계십니까. 짧은 침묵 속에 수많은 문답이 오간 듯 그렇게 스님과 사내는 묵연하게 찻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보이차.jpg » 보이차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삼고 여수와 순천, 성남과 남원 등지를 오갔던 하세월이 부지불식간에 뇌리를 가득 채운다. 지역과 나라를 위해서, 민족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산다는 건 또 무엇이던가, 그 속의 나와 그 속의 가족은 또 무엇이고.  그런 건 다 부질없는 것인가. 개인적인 것과 공공적인 것은 어떻게 화해되어질 수 있는가? ‘흘러간 것’과 ‘다가올 것’과 ‘지금의 것’이란 내게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
 
 차의 향미도 잊은 채 말머리에 젖어드는 ‘일미’를 맛보는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야, 사내는 속의 침묵을 깨고 중얼거렸다. 선방에서의 오전 수행시간은 특별할 것도 없다. 차 한 잔 하고, 요가의 기본 동작 몇 가지를 하고 나서, 그리고 스님이 각별하게 챙기는 참선을 하는 것이 전부겠다.
 
 동작위주의 요가수행을 인도말로 ‘아사나’라고 한다. 처음 사내의 입장에서는 아사나를 계발하고 성취하는 걸 다소 크게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내는 자신이 귀농을 하기 전에 했던 단전호흡의 경험을 통해서, 유연성이야 남보다 크게 뒤질 건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전굴 자세의 기본은 앞으로 굽히기와 다리 벌리기가 전부다. 그리고 후굴엔 아치 자세나 코브라 자세가 역시 문제가 된다. 비둘기 자세까진 보기에는 환상적인 매력이 있으나 사십남지기의 사내의 처지로선 도전의 벽이 높을 수밖에.

 

잔골 자세.jpg » 요가 전골 자세
 
 몸에 대한 스님의 감각은 탁월한 정도를 넘어서 있었다. 모든 걸 경험으로 알고 말하고 있었다. 이론이라면 사내가 뒤질 바가 없겠지만, 스님의 몇 마디 안 되는 말들은 참으로 소중한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내로선 흘려들을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그런 스님만의 방식으로 3주 정도가 지났을까.
 임계치라고 해야 되나, 앞으로 굽히기든 다리 벌리기든 마지막 어떤 지점에서 더 이상 접혀지지 않고 고통의 나락 속으로 빠지게 했던 그 어떤 한계의 지점이 동작을 수행할 때마다 따라붙었었는데, 이날 전혀 예상할 수 없도록, 갑자기 쑤욱 쑥 자세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단 3주 만에, 그 마지막 임계치를 넘어서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후굴자세 copy.jpg » 요가 후굴자세


 나이를 먹었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야 출발선에서 이미 남보다 못잖을 자신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임계치를 넘어서는 건 벌써 전문가의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그것도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 편안하게 도달하다니. 훗날 사내가 요가를 지도할 때면 자주 비유를 들어 이 대목을 설명하곤 했다.
 “철사를 부러뜨릴 때는 한쪽 방향으로만 용을 쓰듯 구부려서는 안 되고, 양방향으로 구부렸다 폈다를 매우 ‘단순하게’ ‘반복해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사내의 양생 공부 비결의 3원칙, ‘단순하게’, ‘반복해서’, ‘지속적으로’는 바로 이렇게 요령을 득한 것이다. 
 글/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 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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