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으며 배우다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10/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찾아라


 첫날은 어딜 가나 예외속이 있는 법이다. 스님은 도대체 어떤 생각인지 내게 첫날부터 강행군을 명령했다. 다만 그날 기상 시간만은 예외적으로 아량을 베풀어주었다. 실컷 자게 했다.
 실컷 자랬다고 실컷 자지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성질머리가 느긋하고 넉넉한 편이  아닌 탓도 있겠다. 사람이 긴장을 하면 잠도 마음대로 자지 못한다. 어두운 땅굴 속에서 자는 잠이다. 너무 긴장했나, 아직 이른 시간이다. 소변을 보러 주섬주섬 옷가지를 걸치고 나온 것이 싱거운 첫날의 기상이 되어버렸다.
 
 동굴엔 화장실이 따로 없다. 단지 공동 화장실이 있을 뿐이다. 하여튼 아이가 가리켜 준 대로 길 돌아 언덕 위로 올라가 봤다. 동굴 위쪽에 외따로 허술하게 놓인 형편없는 몰골의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저건가 보다. 떠나오기 전부터 중국의 화장실에 대한 온갖 상식들을 들어왔다. 일을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보지만 왠지 꺼림칙하다. 일단 작은 건 간단히 처리하고 보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안의 외곽 변두리의 하늘이 온통 회색빛이다. 날씨가 흐린가, 아니, 황사가 있다더니. 주변의 풍경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아침을 재촉하는 듯 새들의 재잘거림이 청량키도 하다. 언덕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소슬하다. 이제 막 가을의 초입인가, 9월초니까 아직은 늦여름이 맞을 거야. 아침으로 제법 날씨가 차가운 것이 수련의 때로선 괜찮을 것도 같다. 
 한가로운 걸음을 옮기던 중, 전통미가 풍기는 건물의 담과 대문이 바로 앞에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두보(712-770)의 사적지다. 아, 두보라면....., 천재 시인 이백과 함께 쌍벽을 이루면서 일세를 풍미했던 당나라 때의 거장 시인이다. 시성(詩聖)이라 일컬어졌던 그는 훗날 사회주의 중국정부에 의해서도 중국 인민의 위대한 친구로 후한 대접을 받았다. 호기심이 없진 않았다.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려온다. 시선을 강탈해가는 장면이 하나 등장했다.
 
 어느 도인(?)일까. 완만한 경사길 위를 사뿐한 나비처럼 오가며 스텝을 밟는다. 눈이 번쩍 뜨인다. 바로 저게 태극권이 아닐까. 가만있자, 의상도 매우 익숙한 듯 도복 같은 걸 착용했다. 꼿꼿한 허리에 낮은 자세로 좌우를 도는 품새가 매우 유연하다. 초로의 연배로 보이는 이 양반은 언덕 위의 공간에서,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권법에 이어 선법(부채로 하는)과 검법까지를 유유하게 시전해 간다.
 
 확실히 중국 맞군. 실감이 났다. 그땐 그 양반의 실력을 가늠할 밑천이 없었고, 게다가 변변한 중국말 한 마디도 붙여볼 능력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쯤해서 부리나케 내려오고 말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상당한 실력자인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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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은 우선 영어로 했다. 즈나는 한국어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 특히 신나 했다. 과묵한 성페이완 손짓발짓으로 해보다가 그도 저도 안 될 때는 글씨를 썼다. 그러고 보니 영어에 한국어에 중국어, 그것도 모자라면 바디랭귀지까지 세상의 모든 언어를 동원했다.
 
 스님의 분장표에 따라 일정은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나의 지대한 관심사는 태극권 학습에 있었다. 나의 태극권 수련 조교인 즈나가 어떻게 나오나 궁금했다. 다음 주부터 종남산으로 옮겨갈 나의 수련 안배에 맞춰 불이태극권 108식 투로를 그 이전까지 최대한 빨리 전수하라는 스님의 주문이 있어, 즈나도 몹시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태극권 학습에 긴장한 건 오히려 내 쪽이다. 태극권은 동중정(動中靜), 즉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을 추구한다. 태극권은 한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특유의 느릿한 움직임을 끊임없이 계속한다. 마치 장강대해의 잔잔한 물결처럼 유유하게 움직인다. 이 간단없는 움직임은 나선형의 동선을 펼쳐 움직여 나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부채춤의 맵시와도 비슷하다. 오른쪽 왼쪽의 극과 극을 돌며, 미는 듯 당기고 당기듯 미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 모든 동작과 자세는 무릎을 굽혀 낮게 땅에 깔린 듯이 하는 데 요령이 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서두르기까지 하니 동작의 좋고 나쁨은 고사하고 수시로 순서를 까먹기 일쑤다. 그런데다 아직 단련되어 있지 않은 하체를 집중적으로 쓰게 되니, 무리가 되기도 했다. 갓 초보다. 시나브로 단련이야 될 것이지만, 조급증이 난다. 나 어린 꾸냥 앞에서 허약한 하체의 실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처참함이라니.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기분이다.
 저녁의 차담 시간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스님의 핀잔까지 더해지니 상한 자존심에 덧칠을 하는 격이었다. 즈나가 나의 부실한 하체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를 했던 모양이다. 도대체 그동안 뭘 어쨌길래 하체가 그토록 허약하냐? 는 물음을 나는 심각한 추궁으로 바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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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부턴 참장공 수련을 집중적으로 하도록 주문 받았다. 참장공은 훗날 나의 무위태극선 체제에서 오선법(五仙法, 입선, 동선, 행선, 좌선, 혜선), 즉 다섯 가지 선법 중 하나다. 태극권 투로가 동선(動仙)에 해당한다면 가만히 서서 자세를 낮추고 하는 참장공은 입선(立仙)이 된다. 참장공은 내기(內氣)를 쌓는데 최적이고, 태극권은 기혈의 창통에 맞춤이다. 그러므로 훗날 자신 있게 말하길, 정력이 약한 사내들이 필히 닦아야 할 제일 수련이 바로 이 참장공이다.
 
 좋다, 할 테면 해보자. 이왕 시작한 거 갈 데까지 가보자.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살아온 자취들이 몸의 곳곳에 배어 있을 터다. 숱한 방황과 좌절, 그리고 투쟁이 남긴 상흔이 누적되이 쌓인 몸뚱이다. 타고난 강골체질이거나, 유복한 환경에 자라서 잘 먹고 잘 살아온 내력이라도 있다면 또 모른다. 하여튼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문제는 지금부터다.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정작 문제가 된 건 저녁 차담 후에 치러진 노자 시험이었다. 암기하면 소싯적부터 한가락 했다. 기껏해야 한 장 분량의 노자 본문 암송과 필사쯤이야 누워서 떡먹기다. 순식간에 중국어로 암송과 필사를 해치웠다. 모두들 혀를 내두르는 가싶었는데, 스님의 예리한 눈꼬리가 가볍게 한번 흔들리는 가싶었다. 글자의 두 군데서 지적 사항이 났다.
 
 간체자로 써야 할 것을 번체자로 썼다는 것 등이 지적사항의 전부였다. 속으론 불편했다. 어떻든 스님은 중국어 교학의 담당자인 샤오난과 학생인 나의 종아리를 걷어놓고, 가르친 이와 학습한 이의 허물을 동시에 묻는 경책의 뜻으로 죽비를 들어서 보란 듯이 각각 두 대씩을 쳤다.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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