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어린아이처럼 될 수 있는가? 무위태극선 교실

 민웅기의 무위 태극선 교실 1/능히 어린아이처럼/기세 起勢
         
 하늘과 땅 사이에 ‘내’가 서 있다. 위로는 머리가 하늘 중앙자리에 있고, 아래로는 용천이 땅 깊숙한 지구의 중심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늘의 경계에서 한 줄기 차가운 천기天氣가 머리끝 정수리로 예리한 칼바람처럼 꽂히듯 들어와 임맥을 따라 내려오고, 땅 속 깊은 곳에서는 한 줄기 따뜻한 지기地氣가 발바닥 한가운데 용천혈을 통해 스멀스멀 스미듯 올라온다. 하늘기운과 땅기운은 곧장 내려오고 올라와 아랫배 하단전에서 조우하여, 서로 간에 상면의 기쁨으로 얼싸안듯 회오리바람이 되어 소용돌이치며 합류해 온다. 그리하여 단전丹田에서 일어난 회오리바람은 이내 그 덩어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우주 전체를 가득 채운다. 그 덩어리 속에 하늘도 존재하고 땅도 존재하며 나도 존재한다.
 
 천하만물과 더불어 하나됨이여, 그 기쁨이 가이 없구나!
 
 天上天下  천상천하
 唯我獨尊  유아독존 이라!
 
 다시 덩어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하늘이 나오고, 땅도 나오고, 나도 나와서 이제 덩어리의 자취는 단전에서 사라지고 없다. 본래 있는 그대로 돌아왔다.
 손끝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몸의 피부의 모공이 열려있다. 그 모공으로 풀냄새가 풀풀하게 스며드는 것 같다. 머리가 청량한 것이 마치 속이 텅 빈 호박 속 같다. 전신의 근육은 잘 방송(힘을 빼고 느슨하고 여유있게 만듬·放松)되어 매끈매끈하고 말랑말랑한 오징어 거죽 같고, 오장육부는 탄력 있고 윤기 있는 오이 속처럼 질서 있고 조화롭게 제 자리를 잡고 있다. 관절 마디마디가 잘 풀린 마라토너의 그것 같고, 안과 밖의 합일된 기운이 마치 둥근 태극형상의 에너지 장에 둘러쌓여 있는 것 같다.

기세 사진.JPG » 기세 자세
 
 기세起勢는 세勢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두 발이 평행이 되도록 어깨넓이만큼 벌려 선다. 가지런히 선 두발의 발바닥 용천혈을 통해 대지의 생기生氣를 흡입한다. 발바닥으로부터 올라온 지기地氣가 무릎을 거쳐 회음에서 합하고, 합류된 기운이 다시 하단下丹으로 올라와 모인다. 하단에 일단 모인 기운은 다시 중단中丹까지 인도되어 중단부위의 장기들(심장,간장,폐장)을 정화한다. 정화되어 나온 탁한 기운은 다시 하단으로 끌어내리고, 계속해서 회음에서 나누어진 뒤, 다리 관절을 통과하여 발바닥을 통해 땅속으로 사라지도록 한다.
 바로 이때 아래 땅으로부터 솟아 올라오는 생기에 의해 손등이 저절로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손등의 높이가 어깨높이로 올라와 어깨와 나란해질 때, 다시 발뒤꿈치에서 묵직한 한 기운이 손을 아래로 끌어내린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방송放松이다. 전신의 방송, 그리고 어깨의 방송이 기세起勢의 수련효과를 좌우한다.
 
 기세起勢는 태극선108식의 출발이다. 혼인서약을 하고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신혼부부의 팡파레 울림 같다. 돌 지난 아이가 일어나 첫발을 내딛고 탄성을 내지르는 것 같다. 겨우내 움추린 어깨를 활짝 펴고 동구 밖을 나서는 농부의 활기찬 뒷모습 같다. 동면을 끝내고 어슬렁거리며 믿기지 않는 눈치로 동굴을 나서는 어린 곰돌이 같고,  보드라운 햇살 내비치는 창가에 기대어 봄기운을 맞아들이는 어린 소녀의 수줍은 속마음 같다. 넉살좋고 솜씨 좋은 엿장수 아저씨, 울릉도 호박엿 잘라내는 그 기술 혹시 어디 갈까 조바심 내며 사립문 어귀에서 서성거리는 것 같고, 맛좋고 영양 좋은 칡뿌리 잘 간직했다가 이월 어느 날 새순 틔워내느라 용트름 하는 칡넝쿨나무 같으니…….
 
 태극의 일기一氣가 동動하니 일식一識이 부산하다. 부드러움으로 부드러움에 이르는 태극의 길은 어린아이와 같음에 있다. 108식 무위태극선은 원래 양가태극권을 창시한 양로선楊露禪이 전래되어져온 전통 108식을 유柔, 만慢, 송松의 3대원리로 개편하여 만든 선법禪法이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선법, 이를 일러 고래로 동선動禪이라 하는 바, 태극선을 행공하는 관건은 오직 ‘송松’에 달려있다. 
 그러면 송松이란 무엇인가? 송松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송松을 알면 태극선을 안다. 송松이 아니면 태극선이 아니다. 먼저 송松이란 마음을 텅 비우는데서 찾는다. 그것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다. 아니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어린아이처럼 부드러워질 수 있는가? 노자는 묻는다.
 기를 수련하여 부드러움에 이르게 해서 능히 갓난아기가  될 수 있는가?
 
 專氣致柔 전기치유
 能嬰兒乎 능영아호 (제10장)
 
 그리고 계속해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 부드러움에 이르는 요체임을 설한다.
 
 그 마음을 텅 비우고 그 배를 실하게 하라.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튼튼하게 하라.
 
 虛其心, 實其腹. 허기심 실기복
 弱其志, 强其骨. 약기지 강기골 (제3장)

기세 4.JPG » 태극선 동작
 
 마음에 욕심을 가득 채운 사람이 배가 실해질 수 없고, 마음에 야망에 찬 의지가 강한 사람이 뼈가 튼튼할 수 없다. 마음을 비우고 호흡과 마음이 일치하여 하나로 돌아가는 경지를 말해 ‘심식일여心息一如’라 한다. 본시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기에 마음이 고요하면 호흡이 부드러워지고, 호흡이 느리고 부드러운 지경에 이르면 마음은 자동으로 고요하여 평정상태에 이른다. 심식일여의 경지에서 태극권을 하게 될 때 우리 몸은 지극한 부드러움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도는 항상 함이 없음으로써 하지 못함이 없다.
 무위의 자리에서 행할 때 다스리지 못함이 없다.
 
 道常無爲, 而無不爲. 도상무위 이무불위 (제37장)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제3장)
 
 다스림의 영역에서는 정치나 양생, 어느 영역에서나 무위無爲로 다스림을 최고로 친다. 태극선 수련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수련을 하게 되면 기는 저절로 전일專一하게 된다. 무심이란 마음이 텅 비워진 상태이다. 망심妄心이 아닌 진심眞心의 상태다. 이 진심의 상태가 바로 본성本性에 계합된 상태를 이름이니, 무위란 다름 아닌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계합한 자리에서 행함을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도 무위無爲하여 무불위無不爲한다. 양생養生을 하는 이도 무위함으로 무불위한다. 언뜻 보면 세상인심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정치인들이 역사에서는 허다하다. 통치자의 이데올로기를 억지로 밀어부쳐서 오히려 민심을 잃고 우호적인 지지자들마저 곁을 떠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말로도 비참하게 된 경우가 그러할 것이다. 자기 당대에 뭔가 이루어 보겠다고 욕심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되지 않는다.
 
 권투선수가 주먹에 잔뜩 힘이 들어가면 상대를 잘 맞추기도 힘들 뿐더러 맞추어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래서 힘을 빼라고 한다. 목에 들어간 힘도 빼고, 어깨에 들어간 힘도 빼고, 눈에 들어간 힘도 빼고, 말을 할 때도 힘을 빼라고 하는 것이다. 힘을 뺀다는 것은 마음을 비운다는 말이니, 그래서 외부적 일이나 대상에 잔뜩 채웠던 의지를 약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허기심虛其心, 약기지弱其志의 쉬운 해석이다.
 마음이 텅 비워진 무심의 상태에서 행공行功할 때 부드러움이 극에 이를 수 있다는 노자의 가르침은, 태극선을 수련할 때 특히 명심해야 할 요결이다.

기세 3.JPG » 태극선 동작
 
 비어있으되 그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더 넘쳐 나온다.
 
 虛而不屈, 動而愈出. 허이불굴 동이유출 (제5장)
 
 인간의 작위함은 스스로의 욕망에 바탕한 의지작용에 기인하고 있다. 노자는 천지사이가 풀무처럼 속이 텅 비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작용이 그침 없이 무궁무진함을 역설한다. 비어있음으로 더욱 역동적인 천지의 창조력이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니 뭔가 채우려고 하면 더욱 막히고 경직되나, 비울 때 더 술술 풀린다. 수련은 말할 것도 없다. 수련은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송松이란 이렇듯 마음비움이나 고요함, 마음의 평정심을 뜻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시작하는 기세起勢는 송松으로 들어가고 송松으로 나오는 것으로 전부를 삼는다.
 
 “송松으로 말미암아 유柔로 들어가고
 유를 쌓음으로 강을 이룬다.
 
  由松入柔 유송입유
 積柔成强 적유성강
 
 강은 다시 유로 돌아가니
 유와 강이 서로를 건네주네”
 
 强復歸柔 강복귀유
 柔强相濟 유강상제(태극구결)
 
 나아가 노자는 말한다.
 
 비움의 지극함에 이르고 고요함을 돈독하게 지키라.
 
 致虛極 守靜篤 치허극 수정독(제16장)

민웅기 자세.JPG » 태극선 동작
 
 노자사상의 핵심을 드러내주는 말이 여기 있는 치허수정致虛守靜이다. 세상 사람들은 채우기에 급급한데 노자는 비움의 극에 이르라 하고, 세상 사람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여 뭔가를 성취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노자는 고요함을 돈독하게 하고 있으라 한다.
 
 숨 쉴 틈 없이 내달려온 인생이여, 여기서 잠깐 멈춰 우리의 마음을 잠시라도 비우고, 고요한 상태에서 우리의 속내나 한 번 들여다보고 가세!
 
글 사진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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