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적응의 결과일뿐 병이 아니다 장수박사의 건강 삼위일체

장수박사의 건강삼위일체 3/불로장수의 꿈과 노화에 대한 오해


진시황은 복잡다단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만리장성이라는 전무후무한 대역사를 이루었으며, 분서갱유라는 미증유의 문화파괴를 저질렀다. 2천 년이 지나고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규모의 능이 발견되어 그의 신화적 실체가 부각됐다.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것은 불로불사약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서복(徐福)이라는 사자를 동남선녀와 함께 보냈다는 기록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와 일본의 장수지역에는 ‘서복신앙’이 남아 있다. 절대권력 무한능력의 진시황은 몇 살이나 살았던가? 그는 겨우 오십 년을 살았다. 요즈음 일반인들의 평균수명만큼도 살지 못하였다. 천하를 좌지우지하면서도 그는 생명의 엄숙함에는 복종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인간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들의 평균수명도 44세. 구중궁궐의 극히 위생적이고 안전한 곳에서 최고의 보약과 영양식을 섭취한 왕들의 수명이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지금까지 일반인에게 알려진 불로장수의 비방에 허황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늙는다는 것은 병(病)이 아니다
 
 “해가 바뀌어도 꽃 모습은 그대로이나, 사람은 같지 못하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는 옛글의 푸념대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외모도 변하고, 생활패턴도 바뀌게 된다. 바로 이러한 변화가 늙는 과정, 즉 노화라고 정의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늙어 가는 과정에서 초래되는 여러 신체 변화가 병적인 상태인가, 또는 정상적 생리 현상인가는 큰 의문이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해답은 미국 국립노화연구소가 주관하여온 BLSA (Baltimore Longitudinal Study of Aging)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BLSA는 20세부터 90세 이상의 남녀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여 2년마다 각종 신체계측, 생리적, 생화학적, 병리적 및 질병이환 변화를 계속 추적 검사하여 30년간의 자료를 정리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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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결과 사람의 노화현상은 일률적이지 않고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각 개개인에서도 장기별로 늙어 가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개인의 유전적, 또는 생활패턴, 질병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록 80세이지만 신체건강상태가 40대에 못지않은 사람도 있음이 밝혀졌다. 단순한 연령의 증가가 노화의 지표가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하였다.
 
 이들이 발표한 노화과정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간략히 요약하면, 심장의 크기가 증대되고, 운동 중 최대산소 소모량이 일부 감소한다. 혈관의 탄력이 감소하여 혈압이 높아지고 폐기능이 저하되어, 기계적 반사에 의한 불순물 배출이 감소된다. 신경세포가 감소되고 손상을 받으나, 시냅스들이 증가된다. 신장기능이 저하되어 노폐물 처리능이 저하되고, 체지방의 분포가 변한다. 시력과 청력이 감소되고 근육의 운동효율이 저하된다. 피부는 색소가 침착하고, 건조해지며, 상처치유가 지연되고, 피하지방감소에 의한 주름살이 증가하고 거칠어지며, 체온보호 효과가 저하된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각 조직의 기능저하를 가져온다. 특히 단순기능이 아닌 복합기능은 기능 저하율이 더욱 높아진다. 늙는 과정에서 신체 여러 조직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분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아울러 생체는 이러한 변화들에 대응하여 보상성 변화가 유도됨이 밝혀졌다. 생체기능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여 생명을 보위하려는 적응현상이 늙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초래되는 생체의 변화를 병적 현상으로 오해하지 말고 저하된 기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훨씬 보람있는 노후 생활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노화에 대한 오해
 
여러 복잡한 가설들에도 불구하고 생명체의 일반적인 노화현상은 공통적인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종합하여 Strehler는 노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첫째, 노화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초래되는 현상(보편성·普遍性)이며, 둘째, 노화란 생체 내에서 일방적인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변화(비가역성·非可逆性)이며, 셋째, 노화란 생명체 고유한 내재적 변화에 따라 초래되는 현상(필연성·必然性)이며, 넷째, 노화에 따른 변화는 대부분 기능 저하를 동반하는 형태적 변화 현상(퇴행성·退行性)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정의는 이후 노화의 네 가지 원칙으로 널리 통용되었으며, 학계에서 수용해 온 노화에 대한 기본 이론의 배경이 되었다. 노화는 누구나 어쩔 수 없이 돌이킬 수 없는 기능저하와 형태변화가 동반된 변화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에 따라 노화 현상은 필연성과 비가역성을 바탕으로 하는 결정론적인 시각으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노화의 고식적 개념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을 하지 않는 한 노화에 대한 대응 방안은 실천적으로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화의 네 가지 원칙이론에 대하여 최근에 많은 새로운 비판적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노화가 거론되면 무엇보다도 죽음과의 관계를 연상하게 된다. 노화는 숙명적인 과정에 따라 죽음에 이르는 전 단계로 인식되었고, 그 결과 노화동물,노화세포는 외부 독성 자극에 대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젊은 동물이나 세포보다 손상을 많이 받고 쉽게 죽게 될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늙으면 죽는다”라는 명제를 검정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명제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점은 시간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성이란 결국 상대성을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 그래서 이 명제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본다.
 
 “노화 세포 또는 개체가 젊은 세포 또는 개체보다 더 잘 죽는다”
 이를 검정하기 위하여 저자의 연구실에서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을 수행하였다. 인체유래 섬유아세포를 계대 배양하면 세포노화가 초래된다. 그런데 이들 세포에 자외선이나 강한 화학물질을 투여하면 젊은 세포들은 쉽게 세포사멸이 유도되는데 반하여, 노화세포는 강한 저항능을 나타내고 있음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세포 수준뿐 아니라 개체수준에서 비교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동물과 늙은 동물을 대상으로 DNA 손상유도물질을 복강에 투여한 다음 조직에서의 세포사멸유도정도를 비교해 본 결과, 젊은 동물에서는 세포사멸이 왕성하게 유도된 반면 늙은 동물에서는 세포사멸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노화세포나 개체가 외부 자극에 대하여 젊은 세포나 개체들보다 오히려 강한 저항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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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노화현상의 생물학적 의의가 숙명적인 과정에 의한 죽음의 전 단계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생존을 위한 환경에 대한 적응적 변화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노화 현상이 환경의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한 적응적 변화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노화 현상은 생명체가 외적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고 적응함으로써 생존하기 위하여 변화되는 자기 보호적 변화이지, 불가피하게 숙명적으로 정하여진 변화가 아니다 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생물학적 새로운 발견들을 통하여 노화에 대한 근원적인 부정적 퇴행적 시각을 개선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늙으면 죽는다는 또는 죽어야 한다는 명제를 생명체는 강하게 부정하고 있으며 오히려 살아 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노화현상이 초래됨을 밝혀주고 있다. 따라서 첫 번째 제기한 명제인 “늙으면 죽는다”라는 결정론적 시각은 “노화현상의 본질은 생명체의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이다”라는 적응론적 시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노화세포는 세포사멸유도에 대한 저항성과 더불어 성장인자에 대한 반응저항성을 가지고 있다. 세포가 늙어지면 성장인자를 처리하여도 세포증식이 유도되지 않는다는 특성은 노화현상의 비가역성(非可逆性, irreversbility)을 설명하는 주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단계에서 노화세포의 기능저하, 특히 성장인자 반응저하 요인으로 새로운 지견이 제안되었다. 세포막에 위치하는 카베올래(caveolae) 구조의 주성분인 카베올린이 노화에 따라 증가됨으로써, 이 단백질과 결합할 수 있는 각종 신호수용체의 기능을 제어하여 전반적인 신호전달능 저하가 초래된다. 또한 세포막 수용체 의존성 엔도사이토시스의 또 다른 주역인 클라트린 시스템에서는 암피피신(amphyphisin)이라는 인자가 노화에 따라 소실됨에 따라 성장인자들에 의한 세포내 신호전달기능이 이루어지지 못함이 발견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노화세포의 카베올린 저하를 유도하거나 암피피신을 주입하여 보충하여 주었을 때, 노화세포의 기능이 회복되고 형태적 변형도 수복될 수 있음을 보고하였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그 동안 노화세포의 성장인자 반응저하가 비가역적인 불가피한 보편적 현상으로 인식되어 왔던 개념을 바꾸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화세포 기능저하의 수복 가능성은 세포의 노화가 환경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생존수단으로 유도되었다는 시각에서 더욱 나아가 노화세포도 일정한 조건만 갖추어지면 능동적 증식 또는 기능회복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생명체의 생태는 단순한 생존전략을 위한 노화현상이 아니라, 노화세포도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당당한 변화가 유발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실험실적 연구뿐 아니라 인간의 노화종적관찰연구를 통하여서도 분명해지고 있다. 인간의 연령증가에 따라 일률적으로 생리기능이 저하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별로 차이가 현저하며 개인별로 노력에 따라 기능이 회복되는 예가 많이 보고되고 있는 점은 노화에 대한 결정론적인 시각을 벗어나 각 개체의 능동적인 대처가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두 번째 명제는 수정되어 “노화에 따른 기능저하 및 형태변화는 비가역적이거나 불가피하지 않다”라고 표현이 바뀌어야 한다.
 
 일견하면 노화현상이 보편적인 생명현상인 듯하나, 이 명제도 시간성의 측면에서 검토하여 보면 개인별 차이가 심대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노화 종적관찰 연구를 통하여 보았을 때, 노화의 정도가 개인별로도 큰 차이를 보이지만 각 개개인 내에서도 장기별로 노화되는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은 노화현상의 결정론적 보편성에 큰 의문을 제기해주고 있다. 실제로 백세인으로 대표되는 초장수인들을 면담 조사하여 보면 이러한 인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노화 종적관찰연구에서 예견되는 연령증가에 따른 형태 변화, 기능저하의 패턴이 초장수인들에게서는 전연 다르게 표출되기 때문이다. 백세인의 건강상태를 볼 때 일반적인 노인들의 추세와는 달리 매우 건강한 패턴을 보이며, 백세인의 숫자도 지역적으로 또는 성별로 유의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면 호남. 제주 지역은 여성 장수도가 높고, 영동 및 영남북부 지방은 남성 장수도가 높다는 사실은 환경과 문화의 차이가 장수도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장수에 따른 신체적 생리적 기능의 변화를 비교하여 보면 여성은 지속적으로 연령증가에 따라 신체, 생리 기능이 저하 감소되는 패턴이 분명하나 남성의 경우에는 크게 변화되지 않는 양상을 보여주어 문화적 일상 생활패턴의 차이가 매우 중요함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다시 한 번 노화현상의 적응적 특성을 강조해 주고 있으며 노화의 보편적 원리보다 차별적 특성이 매우 강하게 작동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성에는 문화적 환경과 생태적 환경이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세 번째 명제인 “노화는 보편적이다”라는 개념을 “노화는 차별성이 강하다”라는 개념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노화에 대한 대응 방안은 운명이 아닌 선택이다.
 
 노화에 대한 비가역적 결정론적 시각에서 볼 때, 노화현상이 불가피하고 비가역적이며 이미 기능적 형태적으로 변질되고 저하되었다면 이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는 이미 변화된 유전자, 세포, 조직, 장기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응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노화에 대한 대응 방법은 이와 같은 바꾸기 원칙(Replace Principle)에 준하여 추구되었다. 실제로 항노화 요법이라는 미명하에 임상적으로 유전자요법, 줄기세포요법, 조직팻치 이용, 인공장기 또는 장기이식법 들이 개발되어 응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법들은 방법론적으로도 아직 온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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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러한 철학 하에서 사람이 늙어지면 더 이상 효율적인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였을 것으로 가정하여 정년퇴직, 또는 은퇴, 퇴출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악용해오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결정론적 사고개념을 벗어나 노화 현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노화에 대한 대처방안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노화현상이 생존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에 대한 적응적 반응적 대응의 결과로 초래되는 현상이며 기능적 측면에서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규명되면서, 노화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서 바꾸기가 아닌 고치기 원칙(Restore Principle)을 새롭게 제안하였다. 노화된 세포나 조직 또는 장기를 무조건 바꾸어 치는 방법이 아니고 고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필요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이제 노화현상을 새롭게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방법과 개념상의 근본적 전환은 실제적으로 많은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 그 결과 영국의 Aubrey de Grey 박사팀은 적절하게 생활패턴을 보정하고 의료적 중재를 하면 인간의 수명이 180세를 넘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인간의 수명연장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인 노화제어과학(Science against Aging)을 기획하여 수명연장과학(Science for Life Extension)을 추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상철(전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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