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미래] 가부장 사회로 미래를 맞아도 될까 칼럼

family-5549182_1280.jpg » 가부장 사회는 농업과 함께 시작됐다. 픽사베이

아무래도 세상을 지탱해온 기둥뿌리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고쳐 쓸 단계를 지나 새것으로 교체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마초’ 논란을 잇는 저간의 ‘꼰대’ ‘미투’ 논란은 이 기둥이 갈라지는 소리로 들린다. 가장 육중한 기둥이라 할 가부장 시스템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부장 사회는 농업이 시작되면서 등장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공동체가 지켜야 할 자원이 생겨난 것이 가부장 사회를 탄생시킨 동인이다. 이는 인류 문명이 가부장 사회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발전해왔다는 걸 뜻한다.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내 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남성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게 해준다. 영어권에선 `남성다움'을 `맨 박스'(Man Box)라고 부른다. 이 상자를 채우려면 강하고 금욕적이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동서양의 전통적 귀족·사대부 양성기관들은 이 가치를 벼리고 전수하는 게 주된 임무였다.

그런데 이 상자 속 가치들이 예전만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맨 박스’에 담기엔 어딘가 낯설어 보인다. 지속가능한 지구 공동체 달성을 목표로 유엔이 설정한 17가지 어젠다가 그런 사례다. 빈곤퇴치, 불평등, 기후변화, 양극화 등의 세계 현안에는 힘센 추진력보다는 따뜻한 공감력이 해법을 찾는 데 더 유리하다. 공감력은 남성보다 여성한테서 더 잘 드러나는 특성으로 꼽힌다.
때마침 흥미로운 연구가 나왔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에서 여성 지도자 국가가 남성 지도자 국가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는 내용이다. 인구, 경제력, 성 평등도 등이 비슷한 국가 중 여성-남성 지도자 국가를 골라 감염자, 사망자 수를 비교한 결과다. 연구진은 여성 지도자는 생명 위험을, 남성 지도자는 경제 위험을 더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 두 그룹의 성과 차이를 부른 원인 중 하나로 분석했다. 생명 위험 회피가 사회적 봉쇄 조처를 일찍 하도록 했고 이것이 희생자 수를 줄였다는 것이다. 분석 대상 194개국 중 여성 지도자는 19개 나라에 불과하고 각국 상황도 제각각이므로 이런 비교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 방식이 위험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성별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해석에 과학적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 퍼듀대 연구진이 160여편의 성별 리더십 연구를 분석해 ‘남성은 과업 지향적, 여성은 대인 지향적'이라는 특성을 도출해낸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여성 지도자를 선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훌륭한 소통력이라는 연구도 있다. 소통은 위기를 관리하는 데 아주 중요한 수단이다. 성별 우열을 다시 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연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건 바로 오늘의 문명을 이끌어온 가부장 사회는, 그 이면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소중한 반쪽의 잠재력을 억제해왔다는 점이다. 이 점이 왜 중요할까? 21세기 인류 문명은 과거와 같은 성장을 논하기에 앞서 위기 관리가 더 시급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그 시험대다. 아마도 결전의 무대는 인류 최대 과제로 떠오른 기후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려졌던 반쪽의 가치도 전면에 발현시켜 총력 대응해야 할 때다.
인류 역사에서 가부장제는 처음부터 있지 않았다. 농업이라는 새로운 생존 환경에 맞춰 개발한 사회 운영 방식이었다. 호모 사피엔스 20만년을 놓고 보면 5%에 불과한 기간이다. 지금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 족쇄가 되려 하고 있다면? 하지만 수천년 해묵은 가부장 사회의 가치에 젖어 있는 우리의 뇌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5277.html


출처
2016년 성별 리더십 메타 연구
성차별의 기원 가부장제도
남성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
성별 지도력으로 본 코로나19 대응력
팬데믹 대처엔 여성 지도자가 낫다
변화는 개인에게 인지부조화 현상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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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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