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 논쟁과 부실 덩어리 한미군사연습 국제안보

 월간 신동아 2010년 10월호

점입가격의 전작권 전환 논쟁과

부실덩어리 한미군사연습 

 



 

기무사령부의 반란


오래 전의 이야기다. 때는 1992년 8월 21일 오후. 6공화국의 마지막 기무사령관인 서완수 중장은 대통령에게 정례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의지로 추진되고 있는 평시작전권 환수의 문제점을 보고했다.

서 사령관에 의하면 평시 작통권 환수는 ▲ 육군 참모총장 등 군 지도부 내부에서 조차도 이견이 상존하고 있고, ▲ 우리 군의 준비 및 작전수행태세가 미흡하며, ▲ 평작권 환수 시 북한의 오판 가능성과 함께 강경태도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고, ▲ 한․미 군사관계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평시작전통제권을 93~95년 기간 중 한국군이 환수한다’는 91년 11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 합의는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기무사령관의 이 보고가 알려지자 당시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은 격분했다. 그는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보고 배후에는 군 예비역 장성과 현역들에게 작전권 환수 반대를 사주하는 리스카시 한미연합사령관이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리스카시가 기무사령관 집무실에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대통령 보고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그 증거였다.

청와대는 즉시 합참 전략본부로 하여금 반격을 하도록 했다. 당시 천용택 중장이 이끄는 합참 전략본부와 그 산하 군사전략과장 김관진 대령, 미주전략과장을 맡고 있던 권안도 대령이 주축이 되어 참모총장과 주요 지휘관들에게 작전권 환수의 당위성을 설득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군 내부의 ‘자주파’들이다. 이 중견 장교들이 기무사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노력한 결과 이필섭 합참의장, 김진영 육군총장 등 군 수뇌부는 평시작전권을 반드시 환수해야한다는데 의견통일 이룬다. 창설된 지 얼마 안 된 합참조직의 중견 장교들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무사의 ‘반란’을 진압한 것이다.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는 90년 한미군사위원회에서 “평시작전통제권은 93년까지, 전시작전통제권은 95년까지 환수하자”는 안을 미 측에 제안한 것이 한미 간 논의가 시작된 시초였다. 미 국방부는 80년 광주민중항쟁과 12․12사태 당시 ‘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군이 전방병력의 이동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다. 또한 넌․워너 법안에 의해 주한미군 병력이 축소되고 ‘한국방위의 한국화’가 이루어지는 마당에 작전권을 한국에 되돌려주고 싶어 했다. 애초 미 측은 1991년 1월 1일부로 한국에 평작권을 전환할 의도가 있음을 표명했다. 몇 번의 협상을 거치면서 마침내 미국은 91년 11월, 제2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93~95년 기간 중 평시작전권을 한국군이 환수“하기로 합의해 주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이마저도 성이 차지 않았다. 전시작전권까지 염두에 두었을 때 가급적 빠른 시기에 평시작권을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2년 1월 28일, 노태우 대통령의 국방부 연두순시에서의 발언이다.

“우리의 자주적 방위역량과 태세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의 기본바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평시작전통제권을 93~95년 중 환수하도록 한 합의를 구체화하여, 최단 시일 내 찾아올 수 있도록 협의해야 합니다. 가급적 93년 초에 환수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한데, 잘 검토해보기 바랍니다.”

그러나 안하무인의 리스카시 연합사령관이 문제였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리스카시가 총독 행세한다’며 몹시 불쾌해 했다. 리스카시의 주한미군사령부는 평시작전권을 1996년에, 전시작전통제권은 2000년 이후에 한국으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다. 92년 5월부터 시작된 주한미군과의 평작권 환수 협상은 리스카시의 집요한 방해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국군의 날인 92년 10월 1일 11시 30분,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은 그레그 대사와 리스카시 연합사령관을 청와대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나온 김 수석의 초강경 발언.

“우리는 필요하다면 이 문제를 말이 안 통하는 주한미군과 협의하지 않고 워싱턴 당국자와 직접 협상할 것이다. 나는 이미 7월에 워싱턴에 가서 소코로크래프트 백악관 안보보좌관, 월포위츠 국방부 정책차관, 릴리 부차관보에게 작전통제권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본입장을 전달했고, 이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할 수 없이 리스카시는 절충을 시도했다. 그가 제시한 비밀 문서에는 “늦어도 94년 이내에 평시작통권을 한국 측에 환수할 것을 고려(Envisioned)하며'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러나 김 수석은 ‘고려’라는 표현은 리스카시 사령관의 얄팍한 술수라고 보고 뻘건 싸인펜으로 ’Envisioned'라는 단어에 삭선을 긋고 그 위에 ‘Decided(결정)’이라고 써 넣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그 표현 앞에 나온 수식어가 ‘Barring Military emergency....(군사적 비상사태가 없다면)’이라고 되어 있었다.

“평시 작통권을 주면 주는 것이지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김 수석은 이 구절에 뻘건 두 줄을 그어 버렸다. 전시 건 평시 건 전제조건을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상기된 얼굴의 리스카시가 모자를 집어 들고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고 그레그 대사가 허둥지둥 그 뒤를 쫓아갔다. 약 3시간 후인 3시 30분, 김종휘 수석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리스카시를 완전히 굴복시켜 평작권 환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고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크게 기뻐했다.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17년 후인 금년 4월 28일.

정보기관끼리의 교류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김종태 기무사령관은 워싱턴으로 날라 마이클 메이플스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면담하면서 2012년 4월에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 받기로 한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의 양국 간 합의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그는 ▲ 예비역 장군들이 전작권 전환 및 연합사 해체를 반대하며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한국 내 이견이 상존하고 있고, ▲ 북한의 로켓 발사로 안보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할 경우 국민의 안보불안이 고조되고, ▲ 우리 군의 단독작전 행사를 위한 더 많은 준비기간이 소요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이에 마이클 국장은 “전시작전권은 한국이 달라고 해서 준 것인데 이제 와서 그런 주장을 하면 어쩌자는 거냐”며 김 사령관의 주장을 일축했다. 5월 중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분간 전작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한 청와대와 국방부 지침과 달리 일부 관계자들이 미국에 가서 ‘전작권 전환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발언이 통제되지 않은 채 나오고 있다”고 필자에게 밝혔다. “이렇게 되면 미 측으로 하여금 정부 간 합의마저 준수하지 않는 한국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향후 전작권 전환 문제를 논의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정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2003년 8․15 경축사에서부터였다. 당시 노 대통령의 경축사 중 자주국방에 대한 핵심 부분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자주독립 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10년내에 우리 군이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 국군은 6·25 전쟁을 거친 이후 꾸준히 성장해 능히 나라를 지킬만한 규모를 갖추었음에도 아직 독자적인 작전수행 능력과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다. 6·25 전쟁에서 미군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바쳐 우리의 자유를 지켜줬고, 오늘날까지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있으나, 우리의 안보를 언제까지나 주한미군에 의존하려는 생각도 옳지 않다. (국군의) 정보와 작전기획 능력을 보강하고 군비와 국방체계도 그에 맞게 재편해나가겠다.”

‘자주’와 ‘주권’을 표방한 노 대통령의 연설은 상당부분 노태우 대통령의 발언과 닮아 있다. 한편 이러한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 구상에 따라 당시 조영길 전 국방장관은 F-15K 전투기 추가도입, 핵추진 잠수함 건조, 지대공 미사일 도입 등 전력현대화를 골자로 한 ‘자주국방 추진계획’을 2003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기획예산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민 복지비 1조5천억원을 국방비에 전용되도록 조치하는 등 자주국방에 필요한 비용이 먼저 배정되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참여정부는 역대 정권 중 가장 높은 국방비 증가율을 기록했던 정부다.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국방 중시정책에 탄력을 받아 조영길 전 장관은 2009년에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 전환 받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전시작전권 전환계획’을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원래 조 장관은 2003년 4월과 6월에 청와대에서 열린 ‘자주국방 토론회’에서 전작권 전환 추진에 반대했었으나 결국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첫걸음을 떼는 주역이 되고 말았다.

2004년 7월에 윤광웅 국방장관이 부임하고 나서도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09년경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2005년에 이상희 합참의장이 부임하고 난 뒤 윤광웅 장관은 합참의장 건의에 의해 대통령을 설득하여 전환 시기를 2012년으로 연기되도록 입장을 바꾼다. 이상희 현 국방장관은 당시 합참의장으로서 ‘2012년이 전작권 전환시기로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며 합참 내에 전작권 전환을 준비하는 TF를 구성하여 전환계획을 주도하였으며, 전작권 전환의 당위성을 군 간부들에게 교육하는 등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노 대통령과 윤 장관, 그리고 이상희 합참의장은 미국과 협상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전작권 협상 대책회의를 개최하면서 ‘2012년 전작권 전환’에 대한 완전한 공감대와 의견일치를 본다. 결국 이들이 주역이 되어 국방부는 2006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은 ‘2012년 3월 15일’로 전작권 전환일정을 최종 합의한다.

    


자주국방파 vs 연합방위파


미국으로부터 작전권을 전환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보수주의 대북 강경론자들의 전유물이었다. 1968년 1․21사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의 특수부대원들이 미군을 담당하고 있는 책임지역을 침투했을 때, 한국이 요청한 대북 응징을 미국이 거절하자 격노했다. 이에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의 진정성을 의심한 박 대통령은 미국에 전면적인 작전통제권의 환수를 요구했다. 전에 없이 악화된 한국의 대미 감정을 접한 미국은 한국에 군 장비 등의 특별 군사원조를 제공하면서 이 작전권 환수 요구를 무마한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이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외치며 국방태세의 자주화를 도모하던 90년대와 ‘자주국방’을 외치며 전시작전권을 전환 받으려는 2000년대의 작전권 전환 논리구조는 여러모로 닮아있다. 남북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고 자주외교를 통해 중국, 러시아 등과 균형적 관계를 도모하며 국방에서의 자주화를 이루고자 했던 노태우, 노무현 양 정부의 안보정책은 분명 이전에 비해 진보적이다. 더 이상 한미관계에만 국가의 운명을 맡길 수 없으며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에서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주변국과 공동의 번영을 이루는 새로운 시대를 앞서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 즉 냉전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으로의 전환이다. 주권국가의 상징인 작전권은 ‘한반도 정세를 우리 스스로 주도해보자’는 결의의 상징이었고, 국가 생존을 위한 대전략 차원의 변화, 즉 진보 성향 대통령이 관리하는 정치적 의제라고 할 수 있다.  

두 대통령은 작전권 전환을 통해 군의 전략적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는 계기를 창출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노태우 정부에는 ‘장기국방태세발전연구’, 일명 ‘818 계획’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에는 ‘818계획’의 기본 프레임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국방개혁 2020’이 있었다. 이 두 계획은 우리 군에 면면히 이어져 온 국방선진화의 담론을 구체화하는 작품들로서, 자주적 방위태세 구현을 위한 거시적 국방기획이자 군의 자기혁신운동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러한 자주화의 흐름을 기무사가 견제했다는 점도 거의 비슷하다. 국방기획 및 정책에 밝은 중견 장교들의 국방태세 자주화의 의지를  고취하며 ‘자주국방 세력’을 형성했다면 기무사는 항상 미국과 밀월관계를 형성하면서 ‘연합방위 세력’을 형성하여 대응하려 했다. 한국 안보의 핵심방책이 연합방위력이냐, 자주국방력이냐를 둘러싼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 속에서 한국군의 정신사는 ‘자주국방’과 ‘연합방위’ 사이에서 요동쳤다.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했던 작전권 전환은 김영삼 정부에 들어와서는 94년에 평시작전권을 환수한 이후로는 더 이상의 논의가 중단되었다. 북한 김일성 사망 이후 거듭되는 안보불안과 핵 위기 속에서 주한미군의 추가감축과 작전권에 대한 논의는 거의 묻혀 졌다. 김영삼 정부와 유사하게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대북 강경정책을 선호하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지난 노무현 정부의 전시작전권 전환에 추진을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초에 한국을 방문한 보스워스 대사를 수행했던 미 국무부 고위인사가 한 모교 동문을 만나 “한국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4월 말에 이상한 말을 들었다”며 “한국정부 진의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이상한 말’이란 다음과 같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한․미 양국 공히 다음 정권으로 미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한국은 오바마가 한 번 더 연임하여 8년 동안은 집권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오바마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 2016년이다. 따라서 2017년이 한미 양국의 새로운 대통령들이 전작권을 전환받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에 반드시 전작권 전환을 성사시키겠다고 한다면 임기가 끝나기 직전 해인 2015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미 측 고위인사는 우리 국방부 고위관계자가 오바마 임기 운운하며 하는 발언의 내용에 한마디로 황당했다고 한다. 미국은 정치논리만으로 2015년 이후라고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한국의 일방주의적 행태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아마추어는 협상 불가


적어도 미 측과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재협상을 하려면 미래 안보위협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양국의 공동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동맹의 미래상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 대화가 되기도 전에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나도 한칼 있다”며 아무나 미국에 가서 전작권 문제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이 불쑥불쑥 내뱉는 말은 노무현 정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협상여지를 크게 축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열 받았다”고 말한 이유다.

한편 대통령후보 시절부터 만일 자신이 집권하면 “미국과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를 재검토 하겠다”고 공언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일까? 이 대통령은 당선된 이후 전작권 문제에 대해 “지난 정부의 전작권 합의를 준수한다”는 입장으로 180도 돌아섰다. 그 결정적 계기는 작년 1월 1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국방부를 방문하여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우리가 먼저 전작권 재협상을 거론할 경우 정상 간에 합의된 사항을 번복한다는 점에서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리게 되고, 향후 주한미군 변환과 기지이전,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요구자 부담 원칙‘에 따라 막대한 비용을 한국이 떠안아야 된다’는 설명에서였다. 돈 문제에 민감한 이 대통령에게 김 전 장관의 설명은 잘 먹혀들었다.

김 전 장관의 설명은 최근 예비역 장군들이 “전작권을 전환하면 한국군의 단독작전 수행능력을 갖추기 위해 첨단 현대무기를 추가 도입해야 하기 때문에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 된다”는 주장과 다른 측면의 지적이다. 이렇게 보면 전작권 전환 재검토에 대한 찬․반 양론은 모두 ‘예산부족’을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지난 4월 5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데 이어 5월 25일에 2차 핵실험의 지진파가 한반도를 강타하자 한나라당과 예비역 장군들은 일제히 “전작권 합의 재검토”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미 간의 공조가 절실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한반도 안정의 핵심 억제력이자 상징인 한미연합사가 해체될 경우 북한에게는 한미관계 이완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게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초래된다는 것이 그 골자다. 한나라당은 5월 27일 고위당정협의에서 “정부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검토를 적극 당부했다”고 당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예비역 장군들은 6월 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핵 폐기, 한미연합사 해체반대 1000만명 서명 보고대회”를 열고 “6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작권 전환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6월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심증을 굳힌 것으로 보여 진다. 5월말, 이 대통령은 “보수층의 전작권 재검토 요청을 6월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갖고 이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과 전문가들은 “한미 양국군이 전작권 전환에 대한 전략적 이행계획(Strategy Transformation Plan : STP)의 이행상황을 올해부터 평가하기로 되어 있으므로, 그 평가결과를 근거로 미 측과 전작권 문제를 논함이 옳다”며, “올 10월경으로 예정된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이전까지 전작권 문제를 거론하지 말”것을 건의했다.

이러한 청와대의 신중한 자세는 6월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예비역 장군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부 보수언론은 북한과 대화를 도모하려는 이 대통령에게 ‘변절’이라는 극한 표현까지 구사하며 애초 지지층에게 약속한 대로 북한을 더 강하게 압박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최근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이 대통령이 이 압력을 얼마나 견딜지 의문이다. 집권의 기반이 약화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전작권 자체 논리가 아니라 지지층을 달래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경우 이 대통령의 생각이 바뀔 것인지가 주목된다.



미 측의 철통방어   


최근 미국 대사관과 한미연합사령부에도 한국정부의 진의를 확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미 측은 국가 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뒤흔드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 측은 한국군 내에서 전작권 재협상 논의가 발생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몇 가지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해왔다.

그 첫 번째는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무조건 칭찬하기’다.

지난해 한미 합동군사연습인 을지 프리덤가디언 연습 전후에 미군 측은 “한국군의 작전능력이 정말 훌륭하다”며 갖가지 찬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습 직후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군 성조지와 인터뷰에서 “이번 연습에서 한국군은 전시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를 받았지만 전쟁을 관측하며 적절한 결정을 내렸다”며 “한국은 북한과 전쟁을 이끌어나갈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그는 “전작권 전환 과정이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연합사 한국장교의 소감.

“나는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독재국가 같다. 어쩌면 미군의 모든 장교의 말이 이처럼 완벽히 한 방향으로 통제될 수 있는가? 개인 의견은 없고 오직 한국을 치켜세우라는 미 본토의 지침만으로 움직인다. 올해 8월에 있을 군사연습에서도 미국은 틀림없이 대규모 ‘립 서비스부대’를 한국에 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번째는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국회와 성우회 등을 상대로 한 직접 홍보다. 이미 올해 초 샤프사령관은 재향군인회와 성우회에 전작권 전환의 당위성을 설명했고, 국회 국방위 여야 의원들을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를 시찰하도록 했는데, 이는 다분히 한국에서 연합사가 해체되어도 후방에서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납득시키는 ‘전작권 마케팅 전략’이다. 이 조치는 즉시 효력을 발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외교안보 자문위원과 만난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이 시찰한 유엔사 후방기지가 굉장하다고 들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세 번째는 북한의 재래식 전면전쟁위협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지난 1월에 한국에 들어 온 미 국방정보국(DIA) 관계자들은 우리 국방부가 북한의 특수전 위협을 상향조정하는 등 북한의 재래식 전면전 수행능력을 높게 평가하는데 대해 반대했다. 그들은 결국 “한국 국방부의 북한위협 평가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펜타곤에서도 그런 한국정부 위협판단에는 절대 동의해주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이러한 정보 갈등으로 인해 북한의 지상전 위협을 2년 전에 비해 상향조정한 국방부의 국방백서가 원래 발간되기로 한 1월말에 발간되지 못하고 한 달이 지난 2월말에야 발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의 재래식 전쟁위협에 대해 한미연합사는 “전면전 수행능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며 한국 국방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북한의 특수군 위협 역시 우리가 18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 반도 안 되는 8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샤프 사령관이 3월 19일에 미 상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적시하고 있다.

네 번째는  한국의 국방부를 압박하여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기존합의를 준수한다”는 재확인을 통해 재협상이 없도록 대못 질을 이중 삼중으로 하는 것이다. 지난 5월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8차 아시아안보대화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과 양자회담을 갖고 2012년 4월17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재확인했다.



허구로 판명된 연계전력


리언 라포트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미 육군 4군단장 출신으로 군단장 당시 한국군 1군사령부에 배속되어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수행해 본 경험이 있다. 그 직후 연합사령관인 B. B 벨 사령관은 미 육군 3군단장 출신으로 역시 한국군 3군 사령부와 호흡을 맞춰 전시연습을 수행했었다. 군단장 시절부터 한국군과 합동작전을 경험해 본 호흡으로 연합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 이들은 해외에서 유일하게 재래식 전면적 교리가 완벽히 보존되어 있는 한미연합사령부를 수호하려고 했고, 그 이면에는 럼스펠드에 저항하며 4성 장군 직위를 유지하려는 미 육군의 이해관계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런데 월터 샤프 사령관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은 장성으로 그는 주로 미 합참의 참모부서에서 시스템 분석과 군사변혁에 몰두해 온 전형적인 ‘혁신파’의 색깔을 갖추고 있는 과학자이다. 이러한 샤프 사령관에 대해 연합사 안팎에서조차 펜타곤이 해외에 전개되어 있는 대규모 미군을 구조조정하려는 의도에 복종하는 ‘예스맨’이라는 평가와 함께, ‘주한미지상군을 설거지하러 온 사령관’이라는 소문도 줄곧 따라 다녔다. 

샤프 사령관의 ‘한국군 작전능력 칭찬하기’는 의도된 제스처다. 실상을 한 번 살펴보자.

작년 8월, 한국군이 주도가 되어 실시된 을지 프리덤가디언 군사연습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주한미군에 소속된 한국인 군무원은 그 양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개념적으로 알고 있던 미국의 지원전력은 연습에 전혀 연계되지도 않고 오지도 않았으며, 그럴 계획도 없었다. 괌에 배치된 글로벌호크를 투입해야 할 군사상황이 발생했는데도 미국은 ‘작전반경 밖’이라며 투입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계획상으로는 미군의 지원전력으로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허상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한국 지원이 실행되지 않자 한국군이 필요로 하는 정보의 양이 급격히 감소했다. 지원전력이 대부분 허수에 불과하다는 사을 알게 된 우리군의 수뇌부는 큰 혼란에 빠졌다.”

관계자에 의하면 지상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미8군의 자체계획은 적용되었으나 유사시 증원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미 지상군은 상당부분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에게 프리덤가디언 훈련의 명목은 함께 싸운다는 의미 보다는 “한국군을 훈련시켜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합연습 운영방침은 이미 전작권 전환이 결정되었을 당시인 벨 사령관 때부터 이미 정착되었다고 한다. 해체될 운명의 식물사령부인 연합사에서 미군은 뒷짐만 지고 한국군 훈련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주도․미국지원’이라는 미래 전작권 전환 이후의 실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풍경일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은 연합사 해체 결정이 한국에서의 전쟁억제력을 약화시킨다는 예비역 장성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근거가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동개입이 보장되지 않는 현 한미상호방위조약 하에서 본국에 증원전력을 요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한미연합사령관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한반도 개입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고 미국의 증원전력 지원은 단지 ‘가능성’에 머무르고 만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전시작전권 전환 일정이 연기된다고 해서 이미 떠나고 있는 미군이 되돌아오고, 없던 미 증원전력이 새로 배치될 것인가? 철수한 아파치 헬기가 되돌아 올 것인가? 대부분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미 미국은 자체계획에 한반도에서 발을 빼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작권 여부와 관계없이 한반도 방위에 미국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되돌려 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군 자체 상황은 심각하다. 한반도 전구에 대한 전체적인 전략을 기획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며, 이를 연습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핵심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았다. 그런데 6월에 대통령 재가를 받을 예정인 국방개혁 기본계획에서도 이러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전차 몇 대, 장갑차 몇 대 하는 식의 하드웨어 접근이 주종이다. 빈약한 합참의 워게임 장비로는 사건을 작전부대에 전파할 수 없고 지휘통제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통합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은 아직도 요원하다. 물론 이러한 심각한 상황은 미군 측의 립 서비스에 묻혀 아무런 문제점도 드러내지 않았다.

연습이 종료되고 난 뒤에도 제대로 교훈이 도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희 국방장관은 “핵심전력은 미군이 지원해주기로 했다”는 소위 2006년에 럼스펠드가 말한 ‘연계전력(bridging capability)'을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하며 “계속 미군에 의존하겠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군 주도로 작전을 수행하라”며 핵심전력의 지원 우선순위에서 한국을 하향조정했다. 이미 작년 8월의 프리덤가디언 연습은 ’연계전력‘이란 검증되지 않은 단순한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였음에도 이상희 장관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연합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통령은 이상희 장관이 말한 미국이 지원한다는 연계전력에 대해 “새빨간 거짓말이며, 안보상황을 호도하는 기만논리”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연계전력’이라는 이름하에 한국군이 갖추어야 할 핵심전력을 차례차례 국방개혁 기본계획에서 삭제하거나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래 한국군의 눈과 귀, 신경과 혈관, 정밀한 타격력을 구성하는 미래 군사력의 핵심 전력들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더욱더 확보가 요원해지고, 그 대신 올드 패션, 올드 보이에 의한 복고풍의 지상군 전력에 편중된 계획이 국방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했다. 다련장포(MLRS) 도입에 총29조원을 투입하여 64만발의 로켓포를 보유하고 차기자주포에도 10조원이 투입된다. 포병전력에만 약40조원을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신형전차에 9조원, 미국제 아파치 헬기 직구매를 포함한 헬기 214대 도입 등등, 재래식 지상군 페스티벌은 끝이 없다.

반면 해군 차기잠수함(KSS-Ⅲ),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합동공대지순항미사일(JASSM) 등 정보작전의 핵심전력들은 줄줄이 순연되었다. C4I 등 지휘통제를 위한 시스템 구축도 여전히 미흡하다.

한국군 합동성을 구현하기 위한 는 한편 이상희 장관은 “자군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각군본부에 지시했다. 해․공군 일부 장교들은 “지상군 위주로 기본계획을 수립해 놓고 우리더러 자군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거냐”며 울화통을 터뜨린다. 반면 명백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핵심전력 공백에 대해서는 연계전력이라는 한마디로 처리해버렸다. 그러나 국방부는 우리가 미국에 의존할 수 있는 연계전력이 무엇인지 그 목록조차 국회에 설명하지 못하였으며, 우리가 설정한 연계전력이 실제로 가능한지 그 목록을 미국으로부터 검증받은 적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전병과의 폐쇄성


한편 6월말에 대통령 결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에서도 전략의 기획과 작전계획수립, 군사력 소요를 검증할 수 있는 검증체계와 같은 군사력 운용의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기본계획에서는 미래 합참구조가 1차장 산하의 합동작전본부, 2차장 산하의 전략기획본부와 전력발전본부를 편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합참 조직개편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미래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를 규정하는 한국형 군령체계가 무엇인지, 혼선을 겪고 있다. 합참의장과 합동군사령부의 임무․기능 관계, 대통령 보좌와 작전부대 지휘라는 중첩된 업무를 합참차원에서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는 오리무중인 채 백가쟁명식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국방부의 전작권 전환 TF와 이상희 장관 간에도 상당한 이견이 표출되고 있고, 주한미군사령부와도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이 바로 한국형 군령체계다”라는 답이 속 시원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과연 전작권 전환을 제대로 준비하는 자세인지 의문이다.

합참에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는 계획은 마련되었으나 탑-다운(TOP-DOWN)식으로 각 군의 전략과 전력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미흡했다. 각 군에서도 각 병과별로 경쟁적으로 무기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있으나 전투 모의실험과 소요검증을 할 수 있는 인력과 전문성은 준비되지 않았다. 이렇게 군 조직을 개편하고도 시스템이 없어서 일하는 방식은 과거와 달라질 것이 없다면 전작권 전환 준비는 공염불이다.

94년에 평시작전권을 환수할 당시 그 주축은 합참의 전략본부다. 92년에 국군의 날에 평시작전권 94년 완전환수를 합의할 당시 합참의 천용택 전략본부장과 그 직속의 군사전략과장 김관진 대령, 미주정책과장 권안도 대령 등이 그 주축이다. 또한 이를 청와대에서 이끌던 김희상 장군과 이상희 대령, 윤일영 중령, 장광일 중령 등 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들은 작전권 문제를 작전 자체의 영역을 초월한 큰 틀의 국가전략 속에서 접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전작권에 관한 제반업무는 작전본부에서 업무를 대부분 수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작전본부 장교들 사이에서는 ‘왜 우리가 일을 다하냐?’ 라는 불만이 팽배되어 있다. 그러나 전략분야 장교들은 ‘도대체 누구 통제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 한다. 중장기 군사기획을 지도하는 제대로 된 리더십이 없어 작전본부와 전략본부 사이에서도 혼선이 많아졌다.”

전시작전권이란 용어 자체가 마치 작전만 잘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왜곡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전권은 말 그대로 작전만 잘하자는 취지라기보다는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와서 야전 작전 위주로 인사가 편중되면서 작전이 전략과 기획까지 압도해버리는 이상한 현상이 심화되었다. 원래 작전은 D+10까지를 주된 대상으로 한 업무에 치중하게 마련이고 전략은 D+15, D+30, 그 너머를 내다보는 군사력 운용을 구상해야 한다. 그런데 야전 작전에 편중된 업무에 치우치다 보니 열심히 작전을 하기는 하는데 왜 하는지, 도대체 이 삽질은 어떤 건물을 짓기 위함인지, 그 방향을 알기 어렵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획이 경시되고 현존위협에만 주목하여 현행작전만 잘 하자는 이 이상한 풍조는 돼지 독감과 함께 찾아 온 이명박 정부의 신종 전염병이다. 장차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의 결여, 즉 철학의 빈곤이다.

참고로 주한미군의 경우에는 J5 참모가 기획을 담당하는데, 이들은 장기 부대정책을 수립한다. 가장 파워가 막강한 부서다. 그러므로 현행 작전을 준비하더라도 장기적 안목의 전략에 기초해야 하며 섬세한 프로그램 속에서 진행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여기에는 뛰어난 전문가들의 역할이 보장된다. 그러나 우리는 J3라 할 수 있는 합참 전략기획부장이라는 직위를 만들면서도 작전과 전략을 섞어 버리는 개념의 혼선을 겪고 있다.

지난 4월 군 정기인사에서는 기획과 정책분야의 직능의 장교들이 진급에서 떨어지거나 제대로 보직도 받지 못했다. 이 분야에서 예측 가능한 인사시스템이 급속히 붕괴되어 군심이 이반되는 와중에 뛰어난 정책기획 분야의 우수자원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신 것이다. 야전 작전을 배려하기 위한 동기에서 출발한 이러한 인사의 파행은 국방 전반에 ‘전략의 결핍, 작전의 비만’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국방보좌관을 역임한 바 있는 한국안보문제연구소의 김희상 예비역 장군의 지적이 날카롭다.

“역대 정권마다 미래를 설계하는 기획통이 경시되고 현행 위협에 대한 대응만을 고민하는 작전통만 키우는 경향이 있어왔다. 우리 군의 큰 병폐다. 더 큰 문제는 작전병과의 폐쇄성과 매너리즘이다. 이미 정해진 작전계획상에 어떤 기동을 한다고 할 때, 이것이 돌파냐, 공격이냐 라는 용어와 개념을 갖고 밤새도록 논쟁을 한다. 마치 그런 형식 논쟁이 전쟁을 준비하는 자세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 고정관념에서 정책가, 기획가들을 경시하는 풍조는 개선되어야 한다.”



미래를 보는 눈


전작권 전환 시기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당겼다가 미루었다가 하는 논의는 실제로 국가안보를 증진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정쟁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예비역 장군들이 지난정부가 내세운 ‘자주’, 또는 ‘주권’이라는 용어에 대해 ‘친북좌파의 감상주의’라고 공격하는 것도 역시 ‘우파의 감상주의’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좌파가 자주의 논리에 감상적으로 경도되었다면 우파는 언제나 미국이 우리를 지원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경도되었다는 비판이다. 특히 보수층의 전작권 전환 반대 논리에는 중요한 의문이 있다.

첫 번째는 최근 북한 핵 문제 등 안보위기를 이유로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한다는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뒤집어 보면 이 위기가 해소되었을 때는 당장 전작권을 가져와도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는가, 라는 의문이다. 올 하반기에 북미 간에 대화가 시작되고 한반도에서 해빙의 흐름이 조성될 때도 그런 논리가 설 자리가 있는 것인가?

두 번째는 군의 선진화를 위한 핵심 전력과 시스템은 소홀히 취급하면서 “준비가 덜 되었으니 나중에 전작권을 가져오자”라는 식의 주장을 궁색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무엇을 해 보려는 결의와 자신감, 준비가 부족한 것이 전작권 전환을 연기하자는 주장으로 비약된다면 이는 우리 군에 대한 패배주의와 비관주의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친북좌파 노무현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식의 이념적 접근은 과거 정부에서 계승할 것을 계승하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면서 지혜롭게 국방을 관리하는 자세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정치논리가 과연 국민들 지지를 받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자주가 중요하냐, 동맹이 더 중요하냐 하는 것은 마치 직사각형 면적을 구하는데 가로가 더 중요하냐, 세로가 더 중요하냐를 따지는 소모적 논쟁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군 정신사의 가로축과 세로축에는 자주와 동맹이 각기 하나의 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고, 문제는 이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에 있다. 여기에는 장기적 안목의 대전략과 거시적 기획이 요구된다. 그런데 최근 전작권을 둘러싼 논쟁에는 그러한 노력들이 보여 지지 않은 채 정치 구호가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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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