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기] '유엔사령부'라는 유령의 배회 국제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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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전시작전권의 한국으로의 전환 이후에 대비한 한-미 군사지휘체계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줄을 잇고 있다. 해체하기로 되어 있는 한미연합사령부를 존치시킨다는 미확인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된 데 이어, 한수 이북에 미2사단 예하 화력부대를 평택으로 이전하지 않고 현 위치에서 한미연합부대로 전환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급기야 이달 초에는 한미연합작전기구를 전환 뒤에도 별도로 창설하여 운용한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조만간 실행될 가능성이 희박한 보수언론의 일방적인 주장들이다. 미국 정부가 합의해줄 가능성이 현재로선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엉뚱한 보도가 나온 배경은 명확하다. 이 나라의 자칭 안보세력이라는 사람들은 주권국가로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60만이 넘는 대군을 갖고도 소규모 국지전조차 수행하는 방법을 모르는 미성숙 상태라는 점이다. 이들이 전작권에 대한 한-미의 그간 합의를 재검토하자는 근거는 “아직 한국군이 전작권을 행사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 준비가 되겠느냐”고 반문한다면 이들에겐 답이 없다. 한-미 동맹의 비대칭성이 유지되는 한 우리는 미국에 의존하는 현 상황을 개선하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오직 미국의 품 안에서만 안전하다는 마음의 습관이 형성된 이상 기존의 전작권 합의를 왜곡하고 변형하려는 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유엔사령부를 강화하여 전작권 전환 이후 한반도 위기관리의 기본틀로 삼자는 주장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기로 한 이후 지난 34년간 유엔사령부는 유명무실한 상징적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한미연합사에 실질적 권한을 위임해주는 일종의 깃발이라고 할 수 있는 유엔사령부는 조직도 없고, 정상적인 사령부도 아니며, 유엔 한국전쟁 참전국들이 대부분 철수한 뒤론 서류상의 존재다.

유엔사가 이제껏 유지돼온 유일한 명분은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을 청산하는 평화협정이 아직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휴전협정을 관리하는 법적 주체로서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서 서방 쪽과 공산 쪽이 유엔사를 해체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음에도 궁색하게 명맥만 이어왔으나, 그사이에 한국전쟁 당시 유엔사의 적국인 중국과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여 존립의 명분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유엔사라는 가상의 존재는 그간 남북 화해협력의 장애를 수시로 조장하는 이상한 마력을 발휘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남북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자 국방부는 “육로 연결은 유엔사 관할”이라며 갑자기 제동을 걸었고, 이로 인해 금강산 육로관광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야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국이 유엔사를 통해 제동을 건 사실은 전혀 없었고, 단지 유엔사라는 유령을 등장시켜 남북협력을 지체시키려 한 국방부의 거짓말이 밝혀졌을 뿐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유엔사를 강화하자는 한·미 일각의 주장은 한반도 위기관리의 기본틀을 한국전쟁 당시로 돌려놓자는 발상이다. 냉전의 형성기인 60년 전과 지금은 이미 국제정세가 근원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유엔사령부를 핵심으로 한 한국전쟁 체제는 청산의 대상이지 답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전작권 이후 한반도 위기관리는 지난 60여년간 진행돼온 탈유엔화로 상징되는 한국전쟁 체제의 청산, 즉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부합해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굳이 전쟁 당시로 되돌아가겠다는 건 계속 미국에 매달리면서 현 체제에 안주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국가에는 평화와 번영의 미래가 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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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