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의 창] 차기 전투기에 대한 유감 무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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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말기에 대한 논란


노태우 대통령이 한국형전투기사업(KFP)의 대상 기종으로 F-16으로 기종을 변경한 때가 1991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차기전투기사업(FX-1) 대상기종으로 F-15K를 선정한 때가 2002년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차기전투기사업(FX-3)의 기종을 올해 10월에 결정합니다. 모두 정권의 마지막 시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정권이 임기 말에 해외 무기를 한꺼번에 사들이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목격하여 왔습니다. 이제는 관행이 되다시피 한 임기 말 무기도입에 대해 여론 일각에서는 비판론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과거 정권이 말기에 무기를 도입한 것이 정치논리 때문이었다면, 임기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무기도입을 반대하는 것 역시 정치논리라는 반론이 있습니다. 이제는 중요한 무기도입 사업에 임기 말, 임기 초라는 시기에 연연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군이 미래에 필요로 하는 무기가 무엇인지, 적기에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만 고려하자는 것입니다.

시기에 연연하지 말고 공군이 시급히 필요로 하는 미래 전투기를 계획대로 추진하자는 의견에 저는 찬성합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계획이 잘 수립되어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적기에 조달이 가능한 기종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청와대와 같은 권력기관이 사업의 세세한 영역까지 간섭하면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특정 기종을 밀어주기 위해 사업을 강행하는 것이라면 이는 공군의 차기전투기에 대한 숙원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기 추진의 가장 큰 조건은 공군이 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정권에서 전투기사업이 논란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실제 사용자인 공군이 배제되고 청와대와 국방부가 사업을 좌지우지했다는 데서 찾아집니다.

1991년의 KFP사업 당시에는 청와대가 선호하지 않는 F-18을 요구했던 당시 정용후 공군 참모총장이 기무사령부에 의해 강제로 서울 지구병원에 입원하여 조사받고 전역식도 치루지 못하고 옷을 벗는 수모까지 당하면서 F-16으로 기종이 변경된 사례입니다. 당시 KFP 대상기종의 경제성을 평가하던 국방연구원(KIDA) 연구원들이 F-18과 F-16에 대한 경제성을 평가하여 청와대로 보고서를 올리고, 무사히 평가를 마친 기념으로 저녁에 회식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평가 결과를 받아 본 청와대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이 평가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국방연구원장에게 호통을 치자 회식하던 연구원들을 다시 심야에 다시 사무실로 불러들였습니다. 반쯤 술에 취한 채로 자신들이 평가한 결과를 밤을 새서 뜯어고치던 연구원들은 이미 청와대 의중대로 F-16으로 가기위한 사전작업에 가담한 것입니다.



공군은 항상 사업결정에서 배제

 

2002년의 F-15K 결정 당시에는 조금 더 방법이 세련되었습니다. 이 당시 정책결정 체계를 검토해 보면 당시 사업추진은 6개의 핵심 업무로 구분되는데 그 주요 사항으로는 ① 소요제기 ② 작전요구성능(ROC) 작성 ③ 전력화시기/확보 목표량 결정 ④ 사업추진 방식 결정 ⑤ 경쟁장비 선정 ⑥ 시험평가 순서입니다. 이 중 공군이 ①, ②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공군 정책회의에서 전투기도입사업은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을 추진하기 위한 기술획득의 기회로 활용한다”고 의결하였으나 국방부가 전권을 행사한 ③, ④, ⑤의 업무가 수행되면서 공군의 의결사항은 삭제됩니다. 그 결과 평가배점에서 기술획득 점수가 하향 조정되어 F-15K 도입이 현재 공군이 추진하는 KFX 사업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최근에 와서 KFX의 과도한 개발비와 경제성 논란이 나오는 것은 2002년 당시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군이 수행한 ⑥의 업무의 경우 공군 시험평가 규정에는 “시험평가의 경우 반드시 A, B, C, D 와 같은 9개의 등급을 매기”도록 의무화되어 있는데, 국방부는 이를 무시하고 시험평가는 “적합․부적합”만을 평가하라고 지침을 하달하고, 그 외의 공군 시험평가 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조종사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시험평가 결과가 나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이 당시 국방부 「획득관리 규정」과 2002년 F-X 사업 당시 획득정책에 영향을 미쳤던 주요 의사결정 기구를 분석해 보면 ▲ 군무회의 ▲ 정책회의 ▲ 확대획득심의회의 ▲ F-X사업 추진단 등이 있습니다. 이중 군무회의 구성원을 분석해 보면 당연직 참석 멤버인 의장인 장관(육군), 합참의장(육군),각 군 총장(육군1명, 해군․공군 각 1명), 연합사부사령관(육군), 차관(육군), 기획관리실장(육군), 정책보좌관(육군), 차관보(육군), 획득실장(육군), 국방정보본부장(육군)으로 당연직 위원 12명 중 10명이 육사 출신 선후배 사이입니다. 정책회의의 경우 의장인 차관과 기획관리실장, 정책보좌관, 차관보, 국방정보본부장 및 관련 합참본부장 6명 전원이 육군 출신입니다. 확대획득심의회의 경우 F-X 사업 추진 당시에는 공군 참모차장 1명만 제외하고 의장인 차관과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조달본부장, 국방과학연구소장, 국방연구원장 5명이 육군 출신입니다. 한편 F-X 사업 추진 당시 사업추진단의 인적구성을 보면 총괄담당 사업책임자는 획득실장(육군), 사업추진팀장인 획득정책관(육군), 시험평가팀(공군), 협상팀장인 조달본부 외자부장(육군)으로 전투기 도입 핵심 사업기능이 사실상 육군 출신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다. 획득 사업추진에 영향을 미치는 관련 기관장은 4명인데, 사업의 타당성 분석을 담당하는 국방연구원장(육군), 국방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연구소장(육군), 계약협상의 담당하는 조달본부장(육군), 장비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품질연구소장(육군)으로 전원 육사출신 선․후배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당시 국방 문민화의 기조가 국방 주요 직위자들에게 전혀 적용되지 않고 주로 국방부 획득실 출신의 인사가 산하기관장으로 부임했다가 다시 획득실 핵심관계자로 영전되어 되돌아오는 소위 ‘회전문식 인사’, 육사 선후배간에 ‘밀어주고 끌어주는’ 식의 인사가 당연시 되었고, 이로 인해 내부의 ‘이너 써클’에 포함되지 않으면 획득의 주요 직위에 절대로 진출 할 수 없는 폐쇄형 인사운영이 관행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장관, 총장보다 더 센 방사청장


당연히 공군은 사업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러면 현 정부에서의 사업추진 실태는 과연 어떠할까요? 지난 8월 초, 국방부 기자실에서 김관진 국방장관과 출입기자 간담회가 있었는데, 이 때 FX사업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질문에 김 장관이 말꼬리를 흐리며 “내가 말할 입장도 못되고....”라며 답변을 피하는 모습이 노출되었습니다. 공군의 성일환 총장은 최근 한 에어쇼에서 한 발언이 “아무 기종이나 사 달라”는 뜻으로 언론에 보도되어 곤욕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최근 전투기 기종결정 양상을 보면 공군이 배제된 정도가 아니라 군 자체, 심지어 국방부까지도 기종결정에 관여하지 못하고, 노대래 방위사업청장이 공군총장과 국방장관의 권한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막강한 정책결정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 청장이 각기 기준을 달리하여 미래전투기와 현재전투기를 각기 평가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건 기종결정 사항이 아니라 정책결정 사항입니다. 미래전투기, 현재전투기와 같은 정책을 아무런 전문성이 없는 방위사업청장이 무슨 수로 결정한다는 것입니까? 그건 공군 총장이 결정해야지요.

이렇게 이상한 일이 진행되는 배경은 명확합니다. 그 배후에 청와대가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또 그 배후에는 미국정부가 있습니다. “한미동맹 하려거든 미국제 전투기를 사고, 안 하려거든 마음대로 하라”는 고자세의 미국정부가 소위 정부 간 거래(FMS) 방식을 앞세워 협상에조차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컨대 성능 시험평가의 경우 F-35는 실제비행시험과 원격계측이 전부 거부되었습니다. 더불어 미국 정부는 “F-35의 경우 미국 조종사 외에는 탑승할 수 없다”며 접근을 거부한 데서 그치지 않고, 비행시험 자체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 때문에 군 운용적합성 평가는 비행시험 전부가 누락되었습니다. 절충교역(off-set)의 경우 협상안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다만 한국에 대한 물량이전을 하려거든 “사업비와 별도로 한국정부나 업체가 5000억원을 투자하라”며 우리에게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전투기 가격의 경우에도 2016년 6대 도입 분에 대해서만 가격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이후 도입 분에 대해서는 가격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사업을 하는 셈입니다.  

전 세계에 자유무역질서와 공정한 경쟁이라는 공공재를 공급하여 왔던 세계의 표준인 미국이 오직 한국에 대한 무기판매에서만 패권주의를 고수하며 고압적인 행태를 부리는 것은 매우 이중적입니다. 이걸 두고 일부 미국의 전직 관료들이 국내 언론에 FMS의 장점을 전파하면서 생떼를 부리는 데 방위사업청은 쩔쩔매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진정한 미국적 가치는 합리주의와 공정성, 그리고 기회입니다. 지난 조지 부시 행정부가 한 때 일방주의에 경도되었다가 전 세계에서 역풍을 맞은 사례를 볼 때 진정한 미국적 가치는 하드파워를 초월한 소프트파워에서 나온다는 것이 조셉 나이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전투기 판매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임기 말, 임기 초를 연연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준비되고, 우리가 원하는 조건으로 전투기를 도입하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방위사업청이 그런 노력을 과시할 줄 모르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마당에 애국심에 호소한다 한들 국민이 이를 이해해주겠습니까? 바로 이 지점에서 지지율이 20%대에 불과한 이명박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는 걸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하려거든 제대로 하고, 아니면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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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