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전차 파워팩 논란: 기약 없는 국산화냐 제때 전력화냐

차기 전차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던 K2(흑표)전차 사업은 파워팩(엔진+변속기) 국산화에 관련된 잡음으로 국정감사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서있었다. K2전차의 초도 양산분 100대에 대해 독일제 파워팩을 수입하여 장착하는 것에 대한 방위사업청의 주장과 변속기를 제조하는 S&T중공업의 주장이 상이하여 벌어진 일이다. 양쪽의 주장이 너무나 달라 방위사업청과 업체 관계자들은 11월 5일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예산 심의에도 출석하여 국방위원들의 질의에 답해야 했다.

국정감사 즈음부터 국산 파워팩이 여러모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리고 지난 4월부터 이 사안에 대해 진행 중이던 감사원에서 방사청 관계자를 형사 고발할 방침이라는 한국일보의 보도(11월 2일자)는 특히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징계나 시정 요구도 아닌 고발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결정된 사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감사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문제는 '수입 대 국산'이 아닌 '국산화 대 전력화 시기'

그러나 최근의 언론 보도는 국산화라는 매력적인 기치에 홀려 사실관계를 흐리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K2전차 파워팩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어느 순간부터 '수입 대 국산화'의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으나 그 실상은 많이 다르다. ▲국산 파워팩은 성능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신뢰도(reliability)가 독일제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데 반해 ▲독일제 파워팩을 탑재한 K2전차는 이미 2008년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으며 ▲특정 업체의 일방적인 주장이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유통되고 있고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도 이러한 일방적 주장으로 인한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여 심히 우려스럽다. 작금의 상황에서 논의의 적확한 프레임은 ‘수입 대 국산’이 아닌 ‘국산화 대 전력화 시기’여야 한다. 국산화를 위해 전력화 시기를 기약 없이 늦출 것인가? 아니면 먼저 전력화를 시키고 차후에 국산화를 꾸준히 추진할 것인가?

사업 최초부터 파워팩은 수입으로

K2전차 사업의 소요가 결정된 것은 92년 5월로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연구개발을 담당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전차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부품은 국산화가 가능하나 파워팩은 자체 개발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개발에 필요한 이론적인 기술은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기반 시설과 경험적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차체는 국내 개발을 하되 파워팩은 해외에서 도입하여 체계통합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그런데 2003년에 파워팩도 국산화를 추진하기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사업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최초의 어긋남은 체계개발(전차)과 핵심기술개발(엔진 및 변속기) 집행승인의 이해할 수 없는 시차였다. 핵심기술을 먼저 개발한 다음 그에 맞추어 체계를 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또한 상식적이다. 전차의 차체는 완성되었는데 엔진이 없다고 뒤에서 사람이 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체계개발은 2003년 7월에 승인이 났고 핵심기술개발은 2005년 4월에 승인이 났다. 이때부터 사업의 관리가 일관성을 잃고 있었음을 읽을 수 있다.

파워팩(핵심기술개발) 사업은 방사청과 국과연의 통제 및 감독 하에 엔진 개발은 두산인프라코어가, 변속기 개발은 S&T중공업이 설계 및 개발 책임을 지는 것으로 계약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업체는 전차 차체를 관리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체계개발을 담당한 현대로템이 2008년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을 때 사용한 K2시제전차를 갖고 시험평가를 지원하는 계약을 따로 맺었다.

독일 파워팩, 이미 '08년에 전투용 적합 판정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한 체계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2007년부터 시험평가에 들어가 2008년 9월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국산 파워팩의 개발이 계획대로 완료되면 체계통합작업을 거쳐 2011년부터 K2전차가 야전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년 늦게 개발에 들어간 국산 파워팩은 본래 계획된 2010년까지 개발이 완료되지 못했다. 2009년에는 엔진에, 그리고 2010년에는 변속기에 결함이 발견되어 전력화가 두 차례나 연기되어야 했다. 그럼 그동안 2008년에 이미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은 K2전차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본래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하여 전력화 될 계획이었으나 갑자기 계획이 바뀌면서 국산 파워팩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내구도 시험을 위해 기준인 9,600km 이상을 운행한 상태였다. 가끔 국군의 날 행사나 외부 귀빈의 방문이 있을 때면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한 상태로 행사에 동원될 때가 유일하게 흑표가 기지개라도 펼 수 있는 때였다.

국산 파워팩이 시험평가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파워팩을 장착할 차체가 필요한 것이었다. 국산 파워팩 개발을 주관하고 있던 국방과학연구소는 여기서 이미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고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K2전차의 차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국과연에서는 기존의 차량을 활용하여도 평가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산 파워팩에만 ‘중고 전차’를 사용하게 했다는 최근의 주장은 바로 여기에서 연원하나 이는 위와 같은 속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전력화 계획을 두 차례나 연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파워팩의 결함이 끊이지 않자 결국 2012년 4월에 열린 제57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1차 양산분에 대해서는 해외 파워팩을 적용하고, 2차 양산분부터 국내 파워팩을 적용하기 위해 국내개발을 계속 추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통보받은 체계개발 업체인 현대로템은 1차 양산분을 위해 즉각 독일의 MTU(엔진)와 RENK(변속기)와 협상에 착수하여 엔진 및 변속기 도입계약을 체결했다.

석연찮은 감사 결정, 줄이은 언론 보도

이때 감사원에서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감사에 착수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는 몇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먼저 국방분야에서 사상 최초로 '공익감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공익감사란 성인 300명 이상이 서명하여 청구하는 감사이다. 지난 6월 1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K2전차 문제에 대해 500여 명이 서명을 했으며 감사 청구인 측은 "국산 개발 모델의 문제점이 왜 확대 해석됐으며 이에 비해 독일산 수입제품은 왜 장점만 부각됐는지 가려 달라"고 했다 한다. 보도에서 한 관계자는 이해관계가 있는 업체와의 연계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를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시점이다. 방추위가 수입 파워팩 사용을 결정한 것은 4월 2일인데 감사 청구는 이보다 이른 3월 30일에 이루어졌다. 

국산 파워팩 문제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한 것은 국정감사가 시작된 10월이었다. 당시 개발비 전용, 핵심 프로그램의 무단 변경, 독일산 장비결함 축소, 평가 방법의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국산 파워팩이 독일제에 비해 불공평한 판정을 받았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힘을 얻었다. 청장을 비롯한 방사청 고위관계자들이 국산 파워팩의 성능을 "95점 이상"이라고 극찬하더니 갑자기 독일제에는 하지도 않은 8시간 연속주행 시험 등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감사원에서 관계자를 형사 고발까지 할 방침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정말로 독일제를 채택하기 위한 조직적인 시도가 있던 것 아니냐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뒤늦게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11월 7일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자청한 방사청은 도리어 기자들에게 "국산 파워팩만 가혹하게 평가했다는 또다른 사실들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날 브리핑 이후 독일제 파워팩과는 달리 국산 파워팩은 이미 9,600km 이상을 주행한 '중고 전차'에 탑재하여 평가되었으며 독일제 파워팩에 양산 실적이 없다는 주장 등이 새롭게 보도되었다.

논란 끝에 11월 8일에 열린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국회 국방위는 예정대로 파워팩을 수입하되, 시험평가 보완요구사항을 수락검사 과정에서 확인하고 초도양산시험시 국산 파워팩이 받은 것과 같은 100km, 8시간 연속주행시험을 하는 조건으로 K2전차 사업 예산을 승인키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다. 현재 K2전차 사업의 예산 배정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국산 파워팩과 관련된 잡음으로 예산이 제때에 배정되지 않아 1천 개가 넘는 협력업체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사업의 경과를 살펴보고 나면 궁금증이 쏟아진다. 과연 국산 파워팩은 부당한 평가를 받았나? 독일제 파워팩의 결함은 어떻게 된 것인가? 왜 국산에만 독일제에 하지 않은 평가 기준을 제시한 것인가? 왜 국산만 '중고 전차'에 실었나? 별도 기사로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Q&A를 따로 마련했으니 여기서는 이 논란의 핵심만 우선 살펴보도록 하자.

'문제는 신뢰도야, 바보야!'

국산 파워팩의 성능은 훌륭한 편이다. 이미 방사청장도 이러한 취지의 발언을 작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바 있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독일제에 비해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이다. 신뢰도는 작전장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산 파워팩의 '성능'을 강조한 이들이 신뢰도를 언급하는 것은 볼 수 없었다. 기자에게 아무리 속도가 빠르고 정교한 컴퓨터를 준다고 하더라도 1시간에 한 번씩 먹통이 된다면 결코 쓰지 않을 것이다. 순조롭게 작성하던 글을 저장도 못한 채로 날리는 기분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하물며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작전장비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방위사업에 있어서 신뢰도는 그 무엇보다, 심지어 가격보다도 중요한 평가 요소이다.

신뢰도는 통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총주행거리를 고장(신뢰도 고장) 발생 건수로 나누면 된다. 이것이 신뢰도 평가의 주요 단위 중 하나인 MKBF(Mean Kilometer Between Failure: 고장간 평균 주행거리)이다. 내가 사려는 자동차가 테스트 결과 총 1,000km 주행을 하면서 10건의 고장이 났다면 우리는 평균적으로 이 차량이 100km를 갈 때마다 한 번 꼴로 고장이 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차량을 비싼 돈 주고 구입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산 파워팩과 독일제 파워팩의 신뢰도는 얼마나 될까?

먼저 2008년에 이미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은 독일제를 보자. 독일제 파워팩은 총 16,184km를 주행하면서 11건의 신뢰도 고장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평균적으로 1,471km를 운행할 때마다 고장이 한 번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산 파워팩은 어떨까? 사실 지금까지 국산 파워팩의 주행거리는 파악이 가능했으나 신뢰도 고장 발생 건수를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11월 5일 국방위에서 김진표 의원의 질의에 국과연 소장이 국산의 신뢰도 고장이 51건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계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8,463km를 주행하면서 51건의 신뢰도 고장이 발생했으므로, 따라서 평균적으로 166km를 갈 때마다 한 번씩 고장이 발생하는 셈이다.

서울-평양 진격 중에도 고장날 국산 파워팩

국산 파워팩의 신뢰도는 독일제에 비해 8배 이상 떨어진다.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약 200km인데 국산 파워팩의 현재 신뢰도는 서울에서 진격하면 평양에 닿기도 전에 고장이 나는 수준에 불과하다. 57회 방추위에서 "국산 파워팩을 적용하기에는 신뢰성과 내구성을 확신하기 어렵고, 단기간 내 개선, 보완이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국산 파워팩이 만족할 만한 신뢰도를 보일 수 있으려면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의견이다.

국산 파워팩만 부당하게 '중고 전차'에 탑재되어 그런 것은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먼저 국산이 '중고'에 탑재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위에서 밝혔다. 이미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한 차체는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는데 뒤늦게 개발에 착수한 국산 파워팩을 시험평가할 차체가 없어 국과연 결정으로 창고에 보관 중이던 (독일제 평가용으로 쓴) 차체를 다시 꺼내어 여기에 국산을 장착한 것이다. 주행거리가 상당한 차체에 시험평가를 한 것은 사실이나 근래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국산에 불리하도록 고의적으로 '중고'를 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논란에 대해서 엔지니어 출신의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평했다. "차체와 파워팩은 서로 발생시키는 진동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달고 있다. 차체의 진동이 파워팩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게끔 하는 장치(현수장치의 스프링 및 댐퍼)도 있지만 파워팩의 진동이 차체의 전자장비 등에 미치지 않도록 하는 댐퍼가 엔진 및 변속기에도 장착되어 있다. 파워팩을 보호하는 장치는 파워팩 개발업체의 몫이고, 차체 보호 장치는 체계개발업체의 몫이다. 차체 때문에 파워팩에 고장이 난다고 말하는 것은 파워팩 개발업체가 자사 제품을 보호할 능력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기호 의원 “S&T, 욕심 그만 부려야”

여기서 국회 국방위원인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월간 <국방과 기술>과의 인터뷰에서 한 의원은 K2전차 사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미 흑표(K2전차)는 2008년에 전투적합판정이 끝났다. 당시에는 파워팩이 독일제였는데 국산으로 개발해 넣자면서 문제가 생겼다. 국산 개발이 자꾸 지연되자 일단 100대는 독일제로 가자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여기에 S&T가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 야전에서는 미군이 쓰던 장비를 도태를 시켜야 하는데 물량이 없어 억지로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전투력이 없는 장비이다. 전력화가 자꾸 늦어지니 야전의 전차부대에 전차가 없는 부대가 생긴다. 그렇다면 독일제라도 넣어서 보급을 해주고 나중에 국산이 개발되면 국산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이건 S&T에서 자기 욕심만 부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차를 생산하기 위해 현대로템과 협력업체를 포함하여 4만 명의 종업원들이 매달려 있다. 그런데 납품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회사가 위기에 빠지고 있다. 종업원들은 어떻게 하나? 더는 사업을 이렇게 둘 수 없다. 조금씩 양보를 해서 진행해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 방식에 대한 비판

감사원의 감사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 보도와 감사 청구측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이고 당사자인 방사청, 국과연 관계자들의 해명에는 귀를 별로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감사원의 고압적인 자세가 업무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고 한다.

과거 전두환 대통령 시절,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와 통일중공업(S&T중공업의 전신)이 장갑차 변속기 전문업체 선정을 두고 다툴 때에도 감사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사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국방부에서 장갑차 사업을 담당했던 관계자는 감사원의 감사 방식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했다. "한 해에는 대우종합기계 측에서 감사를 요청하면 대우 측에 유리하게 전문업체를 [대우로] 선정하고, 이듬해에 통일중공업 측에서 감사를 요청하면 이번엔 통일 측에 유리하게 전문업체를 [통일로] 선정했다." 감사원의 결정에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감사원의 실적주의를 그 주된 이유로 꼽았다. 실적부터 올리고 보자는 욕심에 사업을 둘러싼 전반적인 맥락이나 역사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미 결론을 내린 다음, 거기에 맞추어 감사 대상을 압박하고 원하는 답만 얻어갈 뿐이라는 것이다.

방사청의 <체험! 업체의 설움>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구도 아닌가. 방사청이 업체들에게 취해 오던 태도가 바로 이와 닮았다. MB정부 이래로 방사청은 업계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줄곧 압박과 제재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방사청이 이번에는 똑같이 '일부러 독일제에 유리하게 시험평가를 했다'는 선입관을 갖고 접근하고 있는 감사원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다. 관계자들이 앓아눕고, 심지어는 감사원에서 청장 인사 조치를 건의할 거라는 소문까지 나돈다. 이번 기회로 방사청도 그간 업체들이 겪어 왔던 설움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방사청이 업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말도 나온다.

이번 K2전차 파워팩 논란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방사청의 총체적인 사업관리 부실은 국산 파워팩 사업이 난맥을 거듭 드러낼 때 적절하게 개입할 시점을 놓치고 또다시 국민들의 불신을 조장하고 말았다. 이는 국과연도 마찬가지다. 사업당사자인 관계로 업체의 근거 없는 주장에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논란이 거세지는 것을 방치했다. 근거가 없는 주장을 국정감사에서도 버젓이 하고 있는 업체도 문제이지만 당초 600~780대를 생산하기로 한 K2전차 사업이 MB정부 이후로 390대로 축소되고 또다시 예산 삭감으로 인해 200대로 축소되어 설비투자한 본전도 회수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무작정 업체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도한 계획, 부족한 예산… 국산화와 전력 충원 아우르는 지혜 필요

1차 대전 때부터 전차 개발 경험을 쌓아온 전통의 전차 강국 독일에서도 1500마력 엔진을 개발하는 데 13년이 걸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단 5년 만에 개발할 것을 업체에 주문한 것이다. 게다가 장비의 신뢰성과 기술 성숙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제품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산 문제로 매우 적은 물량의 시제품만 생산되어 충분한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은 장비들이 실전에 배치되고 있다. 근래에 보도된 국산 무기체계의 결함 사례들을 보라. 

적어도 20~30대의 초도소량생산품(LRIP: Low Rate Initial Production) 생산을 사업 설계 때부터 반영해야 이러한 결함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제언이다. 여기에 드는 예산 부담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뢰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장비들이 실전 배치되었다가 심각한 결함을 일으켜 발생하는 전력의 공백과 국민의 신뢰 추락을 고려해 보면 이는 결코 손해 보는 투자가 아니다.

한편, 방위사업의 특수성과 사업의 전반적인 진행 경과를 살피지 않고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감사원이 만일 기존의 방위산업추진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하는 결론을 내릴 경우, 이미 체결한 독일제 파워팩 수입 계약의 파기로 인한 법적 소송, 1천 개가 넘는 협력업체와 4만 명의 근로자들이 입는 피해, 그리고 국제적인 신뢰도의 추락으로 인한 국격 손실 등이 우려된다.

무엇보다도 물량 부족에 시달리는 일선 부대를 보라. 당초 계획대로였다면 이미 지금쯤 실전 운용을 하고 있었을 K2전차 사업이다. 그러나 사업이 벌써 1년씩 두 차례, 별다른 성과 없이 2년이 연기되면서 우리 육군의 전력에는 이미 심각한 공백이 생겨나고 있다. 국산화가 당장의 예산 부담은 과중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유지비 절감 및 수출 등으로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편익 또한 크다. 꾸준히 국산화에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전력의 공백을 신속하게 보완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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