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유년시절 우리 가족 네 식구는 여섯 평도 채 안 되는 단칸방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 단칸이라는 말 그대로 거실도 없고 그렇다고 부모님 방 하나 없었던 그런 집이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문을 열고 한참을 걸어가면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옛날 변소 하나에 네 사람은 생리 현상을 해결했다. 겨울이면 잠을 자다가 어머니께서 일어나셔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그 이유가 연탄 불을 갈기 위해서라는 사실과 함께, 연탄으로 인한 사고가 많다면서 조심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어야만 했다. 모두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주인집에 사는 사람들만이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도 가난이 부끄러워 대문에서 “남구야 놀자”라는 친구의 말이 들려오면 성급하게 단칸방 집을 빠져나와 주인집 현관 앞에서 걸어나오는 시늉을 했다.

 

 소설 ‘원미동 사람들’에 나오는 원미동이 김포공항과 맞닿은 동네라는 걸 안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 소설은 1970년 대를 배경으로 서울로 가고 싶은 꿈을 꾸며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미처 서울로 진입하지 못한 채 서울 경계가 마주한 경기도 부천 원미동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도 소설 속 원미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철역이 다니는 지금의 사당동과 달리 유년시절을 보냈던 사당동은 서울에서 밀리고 밀려 경기도와 맞닿은 경계 끝자락으로까지 몰린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원미동 사람들은 서울과 맞닿은 경기도에 살았다면 우리 가족은 경기도와 맞닿은 서울의 끝에서 그것도 모자라 단칸 방에서 생활을 한 셈이었다. 

어느날 무심코 주인집 아이가 먹는 사과가 맛있어 보여 어머니께 사과를 먹고 싶다고 말한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께서는 무릎을 꿇고 내 어깨를 감싸안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사과 하나 못 사주는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냥 맛있어 보이는 사과여서 무심코 한 그 한 마디가 어머니의 가슴 속 상처를 몹시 건드린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가장 큰 한(恨) 중에 하나는 바로 남들 다 다니는 유치원조차 보내지 못했던 가난이라고 하셨다. 이제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남들이 다 다니는 유치원을 보내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이 대충 느껴지기도 했다. 미안함과 죄책감. 아마 어머니께 나의 유년시절은 그런 감정들을 매일 차곡차곡 쌓게 했던 날들이었다.

 

 그랬던 과거는 내게 선물이란 기대를 일찌감치 포기하게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연필 10여 개가 담긴 선물이 전부였다. 산타할아버지를 꼭 보고야 말겠다면서 잠든 척만 하고 잠을 자지 않으리라 라고 다짐을 매년 했건만 나도 모르게 잠에서 화들짝 깨고 나면 성탄절 아침이 밝았다. 그 아침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선물이 아니어서 실망감에 휩싸이곤 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다락방에 일본 장난감인 마징가 제트를 보며 무척 신기했던 건 그런 장난감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다락방에 올라가 그 장난감을 찾았다. 성냥팔이 소녀가 쇼윈도에 비친 빵을 바라보는 심정처럼, 나에게 장난감은 그저 바라만 보며 좋아만 할 수밖에 없는 대상일 뿐이었다. 남동생이 마흔이 다 된 나이에도 레고 장난감을 가끔씩 사모으는 게 취미라고 말하면 그렇게 말하는 남동생이 철이 없어보이기보다는 어린시절 가난의 흔적이 남긴 취미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좋은 장난감을 본 경험도 없었으니 뭐가 좋은지도 잘 몰랐다. 다만 학용품이나 공책과 같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두 가지 실망감을 심어주었다. 하나는 그런 선물들은 집앞 문방구에서도 구할 수 있는 흔한 물건이었다라는 사실 하나와 다른 하나는 산타할아버지가 놓아둔 선물이 아닌 부모님이 가져다 놓은 선물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만화나 영화에서 산타할아버지는 크고 리본이 달린 예쁘고 멋진 선물만 가져다 놓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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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IXABAY )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아이 손을 잡은 채 대형매장 장난감 진열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에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건 선물 하나가 생긴다는 걸 의미했다. 어린 아이도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매년 관심이 가는 장난감들이 달랐다. 아이는 장난감 진열대에 놓인 장난감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어른이나 아이나 좋아하는 대상 앞에선 별다른 말이 없다. 여성들이 예쁜 가방을 둘러보는 시선처럼, 오래된 자동차를 탄 남성들이 자동차 쇼윈도를 한참 쳐다보는 것처럼, 아이도 자신이 마음에 드는 코너에 머물며 장난감을 한참 쳐다봤다. 그런 민호를 바라보며 크리스마스 선물만큼은 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꼭 사주고 싶었다.

 한 달쯤 전부터 아이는 ‘부지런함’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는 미리미리 하는 게 좋다고 했잖아.”
 아이가 평소에 하지 않던 바른 소리를 하면 그때부터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의도를 파악해야만 했다. 의심스런 말이니까. 아이는 아침마다 조금 일찍 서두르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과 달리 꼭 시간이 다되어서만 등교를 했다. 그런 아이를 모습을 보면서 ‘미리미리’란 잔소리를 했으니 미리해서 좋다는 건 아이의 생각이 아니라 아빠의 생각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왜 너는 미리하지 않고 꼭 시간에 맞추려고 하느냐 라고 하는 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꾸지람이기도 했다.
 “미리미리 하면 좋지. 여유가 생기니까.”
 “그럼 미리미리해서 나쁠 건 없지?”
 민호가 등교시간이나 숙제를 하는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면 반가웠겠지만, 민호는 부지런함을 강조할 때에는 대개 마트에서 장난감 코너를 지나갈 때였다. 뻔한 의도가 보여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면 아이는 재차 같은 질문을 했다. 미리미리해서 나쁠 게 있느냐는 질문. 그러다가 머뭇거리면 민호는 감춘 의도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선물 미리 사주라.”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일 년에 한 번뿐이라는 건 슬픈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기까지는 꼭 1년이 걸리니까. 그래도 견디고 기다리는 것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가 미리 선물을 사달라고 할 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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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 친구들이 놀러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아이들의 관심은 이번에 받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댁 다락방에서 마징가 제트를 찾아 가지고 놀았던 것처럼 민호는 요즈음 ‘건담’ 조립식 장난감에 시선이 자주 머물렀다. 나의 유년시절 외할머니 다락방에서 찾은 마징가 제트는 상상 속에서 하늘을 날았고 악당들을 무찌르는 로켓주먹과 눈에서는 뜨거운 광선이 나갔다. 그런 아빠를 둔 아이는 상상 속에서 우주를 나간 건담이 적을 쳐부수며 손에 잡은 무기를 휘둘렀다. 가지고 있거나 앞으로 갖게 될 물건을 두고 자랑을 하고 싶은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인 것만 같았다. 민호는 친구들에게 크리마스에 갖게 될 조립식 장난감을 설명했다. 두 손을 허공에 둥그렇게 그리며 장난감의 크기를 설명했다. 오랜만에 친구분들을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와 손녀 자랑을 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질세라 자신들이 받게 될 크리스마스 선물 자랑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자신이 받게 될 선물을 자랑하던 민호 친구가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그런데 민호야 내가 말한 거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돼.”
 “왜?”
 밝았던 친구 표정이 갑자기 어둡게 변하면서 시선이 땅을 향하자 아이가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그거 비밀이거든.”
 “뭐?”
 “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사줬는데 절대 친구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
 그게 그렇게 큰 일인가?
 “엄마랑 그렇게 약속했어.”
 그 말을 들으며 왜 친구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지 그 약속이 의미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아이들은 서로 통했다. 그렇게만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민호는 다 이해를 했다는 듯 알겠다 라고 했다. 뭐를 알겠다 라는 건지.

 미리 크리스선물을 사 놓은 채 꺼내보지 못하는 민호 친구는 그 장난감을 몹시 가지고 놀고 싶어했다. 한숨까지 쉬면서 앞으로 일주일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더니 민호가 반응을 했다.
 “맞아. 볼 수 없으면 더 보고 싶거든.”
 민호는 친구에게 볼 수 없는 건 더 보고 싶다면서 친구의 마음에 공감을 해 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의 입에서 나온 “볼 수 없으면 더 보고 싶다”는 그 표현에 놀랐다. 정호승 시인이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고,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는 사람이 있다”고 한 것처럼, 역설이 갖는 간절한 느낌이 아이의 말 속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볼 수 없을수록 더 보고 싶다는 그 말, 곁에 없을 때 더 그립다는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민호 친구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물었다.
  “민호야, 아까 민석이에게 한 말 있잖아. 볼 수 없으면 더 보고 싶다는 그 말. 민호는 언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묻자 마자 민호가 대답했다.
  “엄마가 그렇잖아.”
 설마 했는데 예상했던 말이 들려왔다. 우리 두 사람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그 침묵이 어색해 민호에게 물었다.
  “민호는 언제 엄마가 보고 싶었는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엄마 생일이 되면 보고 싶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 생일이 언제느냐고 물었다.
  “12월 31일.”
 그러고보니 1년의 맨 마지막 날이 민호 엄마의 생일이었다. 12월의 마지막 날이 32일이냐고 아이가 물었다. 12월 31일은 한 해의 끝이기도 하면서 12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예전엔 민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글자가 이응 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응이 슬픈 이유는 발음을 할 때 이응의 자리에 받침 글자가 올라와 발음을 할 때면 사라지니까 이응이 가장 슬픈 글자라는 설명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그리움에 대해 빨리 알아버린 건 아닌가 란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다. 민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민호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민호야, 엄마를 볼 수 없어서 많이 보고 싶지. 그건 민호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럴 거야.”
 그리고 다시 잠깐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지나고보니 내게도 없는 건 더 애틋하고 그리웠다. 유년시절 크리마스 때엔 내가 가질 수 없는 장난감들을 갖고 싶어했고, 주인집 아이 손에 있던 사과도 그랬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날리는 동그란 딱지와 남자아이들이라면 으레 한 번쯤은 손에 쥐고 싶은 야구글러브도 내게 없어 더 만지고 보고 싶은 물건들이었다. 성탄절에도 길거리에 차를 몰고 나가보면 늙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옷을 위 아래로 겹겹이 껴 입은 모습을 봐야지만 내가 가진 게 얼마나 많은지를 가끔씩 확인할 뿐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내 삶에서 소중했던 한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떠난 사람이 얼마나 지난 나의 시간 속에서 소중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이제 아홉살 난 아이야 오죽할까. 얼마 전부터 아이는 다시 은하철도 999를 흥얼댔지만 아이가 알아차리지 못한 인식 아래 저 심연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자리잡은 듯 했다.

 

 그냥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마 아이는 크리스마스 때 아빠의 손과 할아버지 할머니 손뿐만 아니라 엄마를 마주보고 손을 잡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캐롤을 부를 때에도 엄마의 빈 자리가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남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어린이날이며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들이 다가올 때마다 민호는 보고 싶은 이름을 마음 속으로만 불렀을 테지만 최근 대학원 학기말 보고서 때문에 정신이 없어 그런 아이의 마음을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어린 아이에게 그 대상이 엄마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 민호가 볼 수 없어 더 보고 싶은 사람에 매달리기 보다는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어 더 행복하기를 바랐다. 떠난 아내는 남은 남편에게 바로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라는 걸 가르쳐주었다. 언젠가 좀더 나이가 들면 그 때엔 아빠도 항상 가질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볼 수 없는 아픔 때문에 그리움이 컸다고 고백을 하고 싶다. 그리움이 주는 아픔이 가르쳐 준 건 볼 수 없어 속상한 게 아니라 이미 내가 볼 수 있는 것들을 향한 소중함이라는 것도 함께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매일 볼 수 있고 매일 쓰다듬을 수 있는 ‘너’였다고 아이에게 들려주겠다. 이 세상에 내가 볼 수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낯설게 보는 것. 바로 그렇게 세상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살아 숨쉬고 나무를 보고 새들의 소리를 듣고 땅을 밟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선물이라는 걸 아이도 언젠가 느끼를 바랐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침묵이 흐르자 이에겐 어색했는지 민호는 마치 아빠를 아이 다루 듯 달랬다.
 “아빠, 그냥 유쾌하게 살아.”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니?
 “그냥 속상하려고 할 때 재밌는 일을 하면 속상한 게 없어지거든.”
 내가 아홉 살 때 철이 없었던 건지 요즈음 아홉 살은 다 이렇게 빨리 철이드는 건지, 내 평생 크리스마스 선물인 민호의 말을 듣고는 우리는 2016년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다음날 민호가 원했던 장난감을 산 뒤 민호의 품에 안겼다. IMG_222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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