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노벨상을 받는다구요? 과학칼럼

미국 대학 연구팀, 네티즌 참여 게임 '폴드 잇' 통해

'단백질 구조분석' 성과 <네이처> 자매저널에 발표


00Foldit» '폴드잇' 게임을 실행한 장면(왼쪽)과 이런 폴드잇 프로젝트를 통해 찾아낸 단백질의 3차원 구조.


 

네 오락실에서 게임에 열중하던 아이들을 꾸짖으며 끌고 나오는 1980, 90년대의 어머니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국내에서만 연간 6조 5천억원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요즘 시대 게임산업의 위상은, 게임에 대한 시대적 관심과 기술적 배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지난 2008년 미국 워싱턴대학의 한 단백질 구조 연구팀이 ‘게임에 참여해서 노벨상에 도전하세요’ (Win a Nobel Prize for playing a computer gam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폴드잇(Fold it)’이라는 이름의 게임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제 아무리 게임의 위상이 달라졌다 한들 설마 게임만 한다고 진짜 노벨상을 받겠냐며 웃어 넘긴 이들도, 이 게임으로 인해 만들어진 단백질 구조가 며칠 전 과학저널 <네이처 구조&분자생물학>에 실렸다는 소식 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것 같다.(관련 기사: <게임 조선> 9월20일 '게이머가 암/에이즈를 치료 실마리 3주만에 찾았다')

 

 

세계적인 석학, 세계적인 아이디어

 

‘폴드잇’ 개발팀을 이끄는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백질 구조 예측 시스템인 ‘로제타(ROSETTA)’를 개발한 생화학자다. 그는 2000년대 중반에, 단백질 구조 예측에는 고도의 성능을 지닌 컴퓨터 시스템 자원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관념을 뒤엎고, 세계 네티즌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개인용 컴퓨터(PC)들의 남아도는 자원을 짬짬이 활용하는 ‘로제타엣홈(Rosetta@home)’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공 사례는 많은 전문가들이 베이커 교수를 왜 이 분야의 세계 최고라고 일컫는 데 주저함이 없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독특한 아이디어와 이를 통한 실제 성과를 선보이며 주목받은 그였기에, 이러한 ‘노벨상 게임’ 제작과 발표는, 세계 관련 과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이용해 HIV 같은 난치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프로테아제 효소의 구조를 밝혀냈다는 이번 <네이처> 논문은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검증 결과가 확연한 성공을 가리키고 있음을 보여주어 다시 한 번 놀라움과 함께 그가 개발한 게임을 주목하게 하고 있다.

 

 

의외로 쉬운 원리의 ‘노벨상 게임’

 

예상과 달리 폴드잇 게임의 기본 원리는 상당히 단순하다. 단백질 구조는 알파 헤릭스와 베타 시트,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루프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의 구조 예측 방법은, 각종 환경 변수와 에너지 함수의 복잡한 관계를 컴퓨터로 계산해 이들 세 가지 구성 요소들을 입체 공간 안에 실제와 가장 유사하게 배치하는 것이었다.

 

지만 폴드잇은 이런 접근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즉, 이들 각 구성 요소의 위치를 전 세계에서 자원하여 참여한 네티즌 게이머들로 하여금 직접 예측해보게 설계했다. 단백질 구조를 모르는 게이머들을 위해 알파 헤릭스는 스프링 모양으로, 베타 시트는 지그재그 모양의 화살표로, 루프는 단순한 선으로 바꾸어, 참여한 게이머들이 마우스를 사용해 이들을 쉽게 움직이게 만들어 놓았다.

 

이리 저리 움직여가며 최적의 에너지값을 가지는 위치, 곧 ‘가장 안정된 입체 구조’를 찾는 순간에 게임은 종료되고 하나의 단백질 구조 예측이 끝나게 된다. 이런 새로운 접근 방식이, 복잡한 형태로 인해 지난 10여 년 동안 그 내부 구조를 알수 없었던 난치병의 원인 단백질을 단 3주 만에 밝혀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저력은

 

이디어는 단순했을지 몰라도,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여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단백질 구조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게이머들을 보이지 않게 안내하는 수천 가지의 함수들이 필요했으며, 갖가지 돌발 변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정교한 프로그래밍의 배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베이커 교수가 이를 구현해 내기까지 세계적인 인재들로 구성된 개발팀이 중추적 역할을 해냈지만, 이들의 든든한 재정적 배경이 된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미국과학재단(NSF) 같은 정부기구들과, 마이크로소프트나 어도비처럼 미국에 근거를 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의 다양한 협력도 뒤에 있었다.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과 인적 자원, 재정과 사회적 지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게임 하나를 통해서도 노벨상을 노리게 만드는 이들의 모습은,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국내 과학계와는 어디에서 차이가 시작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한 가지 사례가 되는 듯하다.


BY 조태호   l  (한겨레 사이언스온 기고 칼럼, 2011.09.30)

원문: http://scienceon.hani.co.kr/3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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