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말장난에 무너지는 연평도 위기관리 남북군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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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 Focus 2011년 1월호


청와대의 고장 난 ‘입’에

위기관리가 춤췄다!


 


‘침묵 대통령’과 ‘마사지’ 참모


9․11테러 당시를 살펴보자.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에 여객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충돌할 당시에 조지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 주 초등학교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사건 발생 20분 후인 9시 5분에 최초 보고를 받은 부시는 급히 백악관으로 귀환하면서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한다. 사건의 주범을 모르는 상황에서 당일 날 부시의 행적에는 모두 3건의 성명 발표가 포함되어 있다. 1차는 “미국에 대한 명백한 테러 공격”이라며 사건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데 집중되었다. 2차는 테러에 대한 보복의지를 천명하고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한다. 3차는 테러 공격 배후자들과 이를 보호하는 국가에 보복의사를 천명한다. 이후로 부시는 거의 매일 직접 성명을 발표하는데, 그 내용으로는 ▲ “21세기 첫 전쟁”이라 규정하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의지 발표(9월 12일), ▲ “우리의 책임은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성명 발표(9월 13일), ▲ “악을 제거하기 위한 성전 개시” 성명 발표(9월 17일) 등이다. 이와 함께 국무, 국방, 법무, 보건, 농부 등 각부 장관들이 일제히 자기분야 조치사항과 추진방향에 대해 거의 매일 브리핑을 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사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대응을 보면, 3월 27일까지 4차례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도 대통령의 성명이 나오지 않았다. 3월 30일 대통령이 백령도를 방문하였을 당시까지도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브리핑하거나 발표한 바가 없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사건 발생한 지 거의 2개월이 지난 5월 24일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왔다. 이전까지 정부가 사태에 대해 담화를 발표한 적은 오직 국방장관(3회) 뿐이었다. 사건 발생 초기에 실체가 분명치 않은 점은 9·11테러나 천안함 사건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모호한 사건일지라도 명확한 성격 규정과 대응방향 제시는 즉시 이루어져야 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과도 연관성이 있다. 평소 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을 거의 하지 않는다. 특히 국가 위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더더욱 침묵의 장막 뒤로 숨는다. 천안함 사건과 달리 사건의 원인과 전모가 명확히 드러난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한 시점은 사건 발생 6일이 지난 11월 29일이다. 이것도 대통령이 ‘큰 맘 먹고’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미국의 위기관리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국민을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한국의 위기관리는 청와대 참모와 장관들이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를 보위’해야 할 대통령이 거꾸로 ‘보호 받는’ 존재가 된다. 참모들이 이중 삼중으로 대통령을 에워싼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경우 국가 위기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추락한다. 대통령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위기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초기에 발휘되는 최고지도자, 즉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그런데 아무런 소신과 당당함이 느껴지지 않는 최고지도자의 부재는 국민의 의지를 결집시키는데 실패한다.

빈약한 리더십은 참모들의 ‘대통령 이미지 만들기’로 보완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말을 멋대로 ‘마사지’ 하는 바람에 대통령의 진짜 의중과 관계없이 위기관리는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사건이 발생한 23일 당일 날.  

사건이 발생한 2시 34분으로부터 얼마 후 집무실에서 위기관리센터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이 긴급히 청와대 벙커로 들어 간 시각은 2시 40분이었다. 이 대통령은 즉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합참의장, 각 군 작전사령관으로부터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상황을 보고받았다. 얼마 후 김희정 대변인이 언론 브리핑을 서둘러 마치고 뒤늦게 지하벙커에 들어가니 이미 상황파악은 끝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두고 여러 말들이 참모들 간에 오가고 있었다. 3시 40분경에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이 확전방지를 지시했다”는 메시지가 논란이 되자 이날 저녁 무렵 김 대변인이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전달한 죄 밖에 없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뒤바뀐 말, 뒤바뀐 책임자


오후 6시에 실제로 이 대통령이 이미 내렸던 첫 지시는 '정확한 상황 파악'과 '교전규칙에 따른 단호한 대응'이었던 것으로 청와대는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는 우리 위기관리에 있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3시 11분부터 북한의 2차 포격이 있었고 그로부터 14분 후에 우리 군의 대응포격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확전 방지’ 메시지는 아직 교전이 끝났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표된 것이다. 북한이 도발할 때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남측이 어떻게 대응할까”에 모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에 남측이 공언한 대로 지․해․공 합동전력으로 반격해 올지, 아닌지가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도발의 성공여부를 판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연평해전 당시로 돌아가 보자. 1999년 6월 15일 벌어진 제1차 연평해전은 북 어선 20여척이 꽃게잡이를 위해 북방한계선(NLL)을 월남하면서 이들의 조업을 보장하기 위해 따라온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온 지 9일째 되는 날 일어났다. 이 날 연평도 인근 서해상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 간에 함포사격을 동원한 교전을 벌여 6척의 북한 함정들이 침몰하거나 큰 타격을 입고 2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반면 우리는 5척의 고속정이 약간의 상처만 입었고 부상병도 경상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승리가 가능했을까?

북한이 “확전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우리의 우세한 전력을 동원하여 단호하게 대응한 ‘정보전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우리 해군 고속정이 싸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우리 정보사령부 예하 정보원들이 북한의 내부 통신을 감청하여 북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 결과 군사작전에 전권을 위임받은 국방장관이 주도한 단호한 대응이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북은 추가도발을 하지 않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후방에 대기시켰던 우리 구축함과 전투기들도 출동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전이 벌어질 당시 쌍방은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과연 상대방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1급 기밀’이다. 우선 상대방이 우리의 진짜 의도를 몰라야 한다. 제1연평해전 당시 북한은 우리의 의도를 몰랐으나 우리는 북한의 의도를 알았다. 그것이 바로 전승의 요체이자 비정한 전장의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전 중에 우리의 의도를 다 까발린 셈이다. 만일 청와대가 아닌 군사지도자가 이런 행위를 했다면 군 형법으로 처벌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평양에 ‘승전 축전’을 친 것이나 다름없다. ‘확전 방지’란 북한의 의도를 성공적으로 관리한 결과를 일컫는 것이지, 교전 중에 대외적으로 발표할 메시지는 아니다. 확전 방지라는 위기관리의 원칙이 매우 바람직한 것임에도 이를 먼저 표방하게 되면 군사적 억제효과를 잠식하여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걸 청와대 참모가 했다. 

우리의 대응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 온 북한의 도발에 결국 우리는 완전히 ‘테스트’ 당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위기관리의 뼈아픈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앞으로도 우리 일선의 전투원들, 즉 국군 장병들이 계속 희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관리의 치명적 실수는 추후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특별조사를 하여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발언이 와전되었다”며 궁색하게 변명을 했고, 그 이튿날에 김태영 국방장관과 김병기 국방비서관을 지목하여 경질했다. 명백한 ‘대리 경질’이다. 청와대에서도 김병기 국방비서관이 경질된 데 대해 부당함이 있음을 느꼈는지, “추후 진급과 보직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라”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당부도 있었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임기제 진급을 한 김병기 비서관은 “모든 짐을 혼자 지고 떠나겠다”는 제법 의미있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생뚱맞은 교전규칙 논란


이 일이 있고나서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12월 중순까지 언론사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발 빠르게 접촉하면서 ‘대통령 방호’에 나섰다. 그 내용인즉슨 “연평도 포격 당시 대통령이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는데 군 수뇌부가 만류해서 전투기 폭격을 못했다”는 식이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군 수뇌부에 전가하겠다는 발상이 깔려있다. 모든 정황이 ‘국민 보호하기’가 아니라 ‘대통령 보호하기’로 움직이는 청와대는 위기관리의 본질에 눈을 뜨지 못했다. 이런 고장 난 시스템은 추후 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이어진다.

‘단호한 조치’로 북한의 2차 포격을 억제하지 못한 책임추궁이 청와대로 쏟아질 조짐을 보이자 사태가 종결될 조짐을 보이던 23일 오후부터 24일까지 청와대는 갑자기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중 이 대통령이 언급한 두 가지가 주목된다. 그 첫 번째는 24일 이 통령이 “교전규칙의 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언급이다.

교전규칙이란 1953년 유엔군사령관이 제정하여 현재까지 몇 번 변경되었으나 큰 골격은 제정 당시를 아직도 거의 답습하고 있다. 남북 간에 우발적 충돌이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일선의 현장지휘관에게 하달되는 사전지침이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시에 현장지휘관들의 간편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돕고, 무엇보다 전면전으로 확전을 방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현장지휘관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지도본부, 즉 청와대와 국방부·합참과 같은 전략단위에서 이루어질 일이지 현장지휘관의 소관이 아니었다. F-15K 전투기를 동원한 북한 포대 제압은 합참의장이 충분히 지휘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국군통수권과 군령권은 교전규칙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최고단위의 권위를 갖고 있다. 국군통수권자가 국방장관, 합참의장과 협의하여 전투기나 함포를 동원하여 북한에 단호한 대응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 대통령이 일선 지휘관들이나 거론할 교전규칙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마치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한 원인이 전쟁지도본부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시스템, 특히 현장지휘관에게 있다는 암묵적 책임전가였다. 사실 이제껏 교전규칙이 잘못되어 서북해역에서 북한의 도발에 잘못 대응한 사례는 한 번 도 없다. 제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과 같은 주요 충돌시마다 해군작전사령관, 합참의 지휘 없이 현장 지휘관이 총 한 방 쏜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서북해역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 군은 교전규칙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왔고, 이제는 대통령이 말하는 상황까지 왔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진 설명은 “민간인이 피격되는 상황에서 적에 단호히 대응하는 교전규칙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 말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군이건 민간인이건 공격받으면 군은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상식인데 무엇을 더 세분화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한 말이었다. 아마도 이번 연평도 사건과 같은 특수한 국지도발을 상정하는 것이라면 그건 교전규칙을 논할 바도 아니다. 이것은 이미 합참이 꾸준히 발전시켜 온 ‘국지도발 대비계획’에 다 들어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문제를 제기하려면 교전규칙이 아니라 국지도발 대비계획이어야 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갈팡질팡 문제제기는 마치 공부 못하는 학생이 참고서 타령 하는 겪이다. “군사적 판단은 군에 맡긴다”는 자세와도 한참 동떨어져 있다. 위기관리를 해야 할 대통령이 엉뚱한 문제를 갖고 군에 간섭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식의 잘못된 위기관리는 뒤이어 더 엽기적인 실수로 이어진다.

교전규칙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25일, 이 대통령은 “서북 도서에 세계 최강의 무기를 배치하라”고 말했다. 언론은 뒤이어 연평도에 치명적인 공격무기로 150~300km 사정거리의 지대지미사일, 다련장포를 비롯한 장사정의 화력장비들이 배치될 것처럼 보도했다. 계속해서 서북 5도서가 마치 항공모함처럼 운영되도록 지·해·공 전력들을 배치하는가 하면, 미군을 주둔시키자는 비현실적 주장도 난무하기에 이른다. 이런 주장들은 어업기지로서 평화적으로 관리되는 서북 5도서를 군사전략기지로 성격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초래될 이 해역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그로 인한 현지 주민들의 대량 이주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극히 신중하게 접근되었어야 할 사안이었다.



군사적 판단의 마비


그리고 상식적으로 핵심 무기는 후방에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지 어떻게 적진이나 다름없는 북한의 코 앞에 배치할 수 있겠는가? 연평도 같은 좁은 섬 어디에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것인지, 아무런 검토도 거치지 않은 즉흥적 발언이었다. 더군다나 북한은 광활한 육지인데 반해 우리는 작은 섬 5개가 떨어져 있는 비대칭적 대치상황을 고려한다면, 현장의 전력으로 북한의 압도적 화력을 방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후방의 지원이 있어야만 비로소 방어가 가능한 것이고, 이미 이런 방위개념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아마추어적 군사논리를 대통령이 말하도록 부추긴 당사자로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국방선진화위원회’가 주목된다. 이 위원회가 일견 국방개혁을 위해 문민 전문가 위주로 편성된 것은 바람직했다 할지라도 군사작전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던 것은 한편의 코메디를 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잘못된 여론이 나오게 된 배경도 역시 연평도 사건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마치 현장의 전력배치와 운용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사태를 호도하려는 의도다. 비록 현장의 화력과 레이다에 문제가 있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한 핵심대목은 공중지원이 실종되었다는데서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현장의 해병지휘관은 공중지원이 있을 것으로 믿었으나 배신당했다. 한편 12월 3일 청문회에 출석한 김관진 국방장관 내정자는 신무기 배치를 통한 서북5도서의 군사 전략기지화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명했다. 그는 “서북 도서에 신무기 배치는 군사적으로 옳지 않다”며 이제껏 서북도서 방어는 현장의 재래식 전력과 함께 후방에서 지원하는 지·해·공 합동전력이라는 기존의 군사작전의 기조를 그대로 고수했다. 

그는 이어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앞으로 서북도서 방위의 핵심개념은 교전규칙이 아니라 “자위권 행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위권이란 유엔 헌장 51조에 보편적으로 인정한 국가주권이다. 즉 방위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은 한미동맹에 위배되지 않고 국제법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교전규칙 문제로 촉발된 우리의 대응개념에 대한 혼선은 계속되었다. 급기야 전투기 폭격이 과연 주한미군과 사전협의가 필요한 것인가, 교전규칙 개정은 필요한가, 라는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혼란을 느끼기는 국방부도 마찬가지였다. 12월 초에 국방부는 자위권과 교전규칙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외부의 법률 자문을 구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연평도 사건이 초기의 잘못된 위기관리와 이후 대통령의 이상야릇한 발언으로 인해 일대 혼란이 초래된 점은 현재 군사대비태세에도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의 위기관리에 가장 큰 결함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한 채 실무자 단위에서나 고민해야 할 엉뚱한 문제에 간섭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이 대통령은 자신이 말한 “세계 최고성능 무기 배치”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 한 편으로 서북 5도서의 ‘요새화’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실현 불가능 하기는 요새화 발언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 발언은 대만의 금문도(金門島) 사례를 참고로 한 것으로 보여 진다. 중국 본토와 불과 3km 거리의 금문도는 1949년에 중국과 격렬한 전투를 치루면서 요새화되었다. 지하 3층까지 되어있는 시설과 지하로는 전 섬을 연결하고 있고, 지하에서 비행기 발진도 가능하다. 이런 식의 요새화를 추진한다면 아마도 서북5도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요새화라면 지하 비상시설에서 인간생활의 핵심기반을 다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 통신, 식수, 식량 공급이 모두 가능하여 장시간 은폐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정도의 대피시설은 과거에 소련의 핵 공격에 대비하여 핀란드, 노르웨이, 스위스와 같은 북구라파 국가들에 가면 가끔 볼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지하에 평시에는 축구장으로, 비상시에는 대피소로 활용하는 다용도 요새를 갖고 있다. 서북 5도서 역시 물론 대피시설의 현대화는 필요하지만 작은 섬에 이와 같은 요새를 갖춘다는 것은 전면 불가능하다. 금문도는 길이 22km에 달하는 큰 섬이고 북구라파 요새는 섬이 아닌 내륙이다. 이에 반해 우리 서북 5도서는 요새를 만들기에는 너무 작고, 그 효용성도 낮을 수밖에 없다. 

비현실적인 이 대통령의 위기관리는 대통령의 정치 분야에서도 공백을 노출시킨다. 이번 연평도 사건에서 이 대통령은 여·야에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위기가 발생하면 대통령이 여야 당수에게 전화를 하여 정부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고,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협조를 구하는 것이 관례였다. 예컨대 연평도에서 해전이 발생한 1999년에 김대중 대통령은 즉시 국회에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고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북한이 핵 실험을 한 2006년 10월에 노무현 대통령은 여야 대표 초청에 이어 전직 대통령을 초청하여 협력을 당부했고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그런 적이 없다. 천안함 사건 당시 이 대통령은 사건 발생 20여일이 지나서야 여야 당 대표를 초청하여 천안함 사건 처리에 초당적 협력을 당부한 바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이 북한 핵 실험, 미사일 발사, 금강산 관광객 피격, 그리고 천안함에서 연평도 도발에 이르기까지 유난히 많은 위기를 겪은 이 대통령이 초당적 협력을 구한 단 한 번의 사례였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은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정세를 주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 스스로가 상황에 끌려 다니는 존재이다 보니 위기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다. 결국 대통령이 아무런 자신감, 당당함도 없고,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는 시스템도 부재한 상황에서 이제는 국민이 나서서 대통령을 보호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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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