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게이츠의 방한이 반갑지 않은 이유(한겨레) 기고

[세상 읽기] 게이츠의 방한이 반갑지 않은 이유 / 김종대
 
식객이 되어가는 그들이 주인집에
“국방예산 더 증액하라”는
염치없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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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이 최근 한국을 방문하여 쏟아낸 발언들은 독해가 어려운 암호문 같다. 계룡대에서 군 간부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그는 “미국 국방예산이 감축되고 있지만 한-미 동맹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마치 미국이 한국을 특별히 배려하기 때문에 한-미 동맹이 이상 없다는 뜻으로 읽히면 진실을 반대로 이해하게 된다.

올해 1월에 나온 미 태평양사령부의 주한 미군기지 경비에 대한 예산평가를 보자.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 83억달러 중 63억달러가 한국 부담이다. 2사단 이전을 포함하는 연합토지관리계획 비용은 40억달러인데 이 중 36억달러가 한국의 방위비분담금과 정부 보증의 민간사업으로 충당된다. 이 36억달러를 우리 정부가 부담하기 위해 국방부는 국가재정법국유재산법을 위반했다. 미군 부담은 4억달러인데 이를 미 의회는 승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와 별도로 진행되는 주한미군 주둔안정화 사업은 51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미국이 부담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2004년에 50억달러로 예상되었던 한국 정부의 미군기지 지원 부담은 현재 그 3배인 15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8년 전인 2003년 6월에 폴 울포위츠 당시 미 국방차관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주한미군 현대화를 위해 미 정부가 먼저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며 “한국도 국방예산을 증액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미국은 100억달러를 주한미군에 투자한 적이 없고 지금도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 ‘공수표 100억달러’는 한국 국방예산 증액의 미끼였던 셈이다. 반면 8년 전에 17조4000억원이던 한국의 국방예산은 2012년도에 33조1500억원으로 거의 갑절로 뛰었다. 같은 기간에 주한미군의 1개 여단이 이라크로 빠져나갔고, 뒤이어 아파치 헬기 대대도 철수했으며, 미군 정찰기도 다 나갈 예정이다. 미국 국방예산에서 한국 관련 예산은 이미 앙상한 뼈만 남았다. 그럼에도 식객이 되어가는 그들이 염치도 없이 주인집에 “국방예산 더 증액하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게이츠 전 장관은 동아시아 정치에 대한 서구식 편견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한 연설에서 그는 “중국의 지도부가 군부의 동향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 발언했다. 스텔스 전투기 시제품 공개, 또는 남중국해 군 동향을 중국 지도부가 제때 보고받지 못했다는 게 군부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력을 의심케 할 만큼 중대한 것인가? 이제껏 중국 군부가 공산당의 통제로부터 일탈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지만,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중국보다는 미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전임 아프간 미 사령관인 스탠리 매크리스털이 병력을 적게 준다는 걸 불평하면서 “백악관이 공산당 정치국 같다”고 발언하지 않았나? 그런 군부 반발을 체험한 당시 국방장관이 게이츠 아닌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 미 해군이 노골적으로 케네디 대통령에게 반발해서 문민통제의 위기를 겪은 미국이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독선은 투르먼 대통령에게 ‘위협’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미국 정치사는 바로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 간의 갈등의 역사였다.

그런 미국의 정치는 ‘정상’이고 중국은 ‘비정상’이라는 인식은 동양에 대한 서구식 편견, 즉 오래전부터 학자들이 말해온 오리엔탈리즘 아닌가?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이라는 게이츠 전 장관의 ‘희망적 사고’도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펼쳐놓은 암호문 같은 연설 속에 숨겨진 게이츠의 진심이란 서구식 세력균형론에 기초한 중국 견제가 아닐까? 지정학적 현실이 녹록지 않은 우리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은 메시지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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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