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육군 소위 탓하는 국방장관 남북군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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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달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뜻밖의 사례가 소개된다.

이라크 전쟁에서 돌아온 퇴역 장병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치료하는 데 연방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걸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미국의 재향군인회다. 주로 퇴역 장성들이 주축이 된 이 단체가 정부가 PTSD 환자를 지원해선 안 된다는 논리가 독특하다. 바로 “군인이 그런 치료를 받는다는 건 정신이 나약한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란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내야지 전쟁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건 군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논리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 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 재향군인회 사고방식으로는 군인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애국의 표상이기 때문에 이런 정신질환에 걸릴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재향군인회도 연방정부가 퇴직 군인에 대해 참전수당, 연금, 의료혜택, 각종 보훈행사에서 조금만 소홀해도 벌떼같이 일어나 “참전 애국 군인에 대한 예우가 겨우 이거냐”고 항의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신체가 부상을 당하면 당연히 정부가 치료와 보상을 해야 하는데 정신이 다치면 이건 보상해선 안 된다는 해괴한 결론 아닌가?

정전 60주년을 기념하여 전방 철책의 안보현장을 소개하는 KBS 다큐멘타리에 신임 소대장이 “두렵다, 떨린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보도되었다고 국방장관이 직접 나서 이를 질타했다. 이를 시청한 예비역 장성들이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하여 들들 볶으니까 김관진 국방장관이 “군인이 전쟁을 두려워하는 모습처럼 비춰졌다”며 그 경위를 조사하도록 지시했다는 게 최근 언론 보도다. 조만간 징계나 재교육과 같은 후속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미국 재향군인회와 마찬가지로 군인의 사사로운 감정, 즉 두려움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전면전 시나리오대로라면 전쟁이 발발하면 제1방어선(알파)를 방어하는데 최전방 지상군 병력의 40%가 손실되는 소모전으로 계획되어 있다. 그렇게 많이 죽고 다치는 재래식 전쟁 개념을 이제는 바꿀 때도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군부는 이걸 현대적으로 개선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무기체계가 5세대를 지향하는 이 문명사회에서 아직도 낡은 진지전을 고수하는 게 그들에게는 일종의 정체성인 것처럼 보여 진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법한데 우리 군사지도자들은 많은 병력을 사지로 내몰고 이걸 안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일반인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육군 소위의 진솔한 몇 마디도 몹시 신경을 거스른 모양이다.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기로 말하자면 일본 군국주의시대의 “천황의 군대”나 히틀러 총통의 독일군만큼 용맹한 군대가 또 있을까? 강압적 통치의 독재 국가 군대일수록 개인의 목숨 따위는 국가를 위해 더 쉽게 희생하기 때문에 군인으로서의 정신력도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민주국가의 군대는 인간의 존엄을 고려하였기에 어쩌면 나약해보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민주국가의 군대가 전쟁에서 이긴 것은 생명이 더 존중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인본주의가 살아있는 우리가 더 정의롭다”는 일종의 자부심 때문이었다. 육군 소위는 진솔함으로 그걸 일깨워주었을 뿐인데, 왜 그를 처벌해야 할까? 예비역과 그들의 사주에 의해 움직이는 국방장관의 전쟁관이 더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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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