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보는 어떻게 실패하였나? 남북군사력

     <디펜스21+>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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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로켓 발사에 대한 의도가 파악되지 않은데 이어 “발사를 내년으로 연기할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판단, 즉 정보의 실패는 정부 위기관리의 커다란 허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발사 하루 전날인 11일에 우리 정보당국의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은하3호를 지상에 내려 수리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발사대에 장착된 1, 2, 3단 로켓을 해체하여 인근 조립동으로 가져갔다”며, “발사대 가림막도 철거”하는 등 북한이 발사를 포기한 것으로 단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국방부는 “북한이 밝힌 기술적 결함은 1단 로켓의 방향을 조정하는 구동시스템”이라며 마치 직 접 본 것처럼 생생한 묘사까지 덧붙였습니다.

우리 정보능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판단에 한계가 있었다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1일에 이어 발사 당일인 12일 아침까지 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은 정보부족의 문제만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일 북한이 “발사 시한을 22일에서 29일로 조정한다”고 발표하고, 발사대 근처에 두 개의 물체 덩어리가 발견됨에 따라 군은 조립된 로켓이 해체되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10일 오후 6시를 기해 군의 경계태세를 2단계에서 평시 수준이나 다름없는 3단계A로 전환하였습니다. 더불어 합참의 통합위기관리 TF를 소장급에서 준장급 직위로 낮췄습니다. 국방부 당국자는 11일에 기자간담회에서 “15일까지 북한이 (로켓을) 안 쏠 것이 확실시 된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궁색한 변명들

 

내일신문 12월 13일자 보도에 의하면 “(북 로켓 발사 전날인) 11일 저녁 검은색 고급 승용차 여러대가 서해위성발사장으로 들어오는 게 영상에 포착됐다”면서 “로켓 발사를 참관하려고 고위직들이 타고온 승용차로 분석되는데, 그때는 이를 긴박한 징후로 판단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은하3호 로켓의 전체 또는 일부를 갈아 끼우는 작업을 해체 후 수리하는 과정으로 오판했습니다. 신문은 계속해서 한 소식통의 “발사 당일 아침은 발사대의 위장막이 걷힌 채 3단 로켓이 뚜렷이 서 있었다”는 증언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김관진 국방장관은 북 로켓 발사직후 열린 12일 국회 국방위회의에서 “북한이 오늘 미사일 발사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발사 임박징후를 읽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11일 오후에 미사일 발사체가 발사대에 장착돼 있음을 확인하고 청와대에 보고했다”며 “발사대에 장착돼 있어 언제라도 발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정보부실을 질타하는 여론에 대한 궁색한 변명으로 들립니다.

이상과 같은 정보의 실패는 향후 위기관리에 있어 중요한 문제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정보수집과 분석, 판단에 중요한 허점이 있다는 점을 북한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발사 전 징후를 파악하고, 발사 이전에 사전에 제압한다’는 대응방침을 천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발사 징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정부가 말한 사전제압이나 억제의 논리는 사실상 공언에 불과한 허세였다는 점을 만천하에 공언하는 결과를 빚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보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영상자료를 확보하고도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보 분석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껏 이명박 정부가 수없이 겪은 안보 실패 중에 가장 치명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도 이상하다

 

둘째, 미국의 정보 분석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지난 이라크와 아프간 전을 겪으면서 미 국방부에 있던 한반도 정보분석관들을 대부분 이라크와 아프간 정보분석 임무로 전환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반도 정보분석 임무에 구멍이 뚫리자 미국의 대 한반도 정보가 분석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한국정부에 제공되었습니다. 그 결과 북한에 대한 표적정보와 핵심 동향이 분석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고, 우리 측 합참의장은 미 합참의장에 두 번이나 서신을 보내 대책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이번 북한 로켓 발사 사태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는 동안에 최첨단 정보자산을 투입했다는 미국도 전혀 징후를 포착하지 못하였습니다.

한미 양국의 정보실패는 우리 정보기관의 운영과 관리의 문제점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합참 정보본부는 2008년부터 조직개편에 착수하여 2010년에 합참 2단계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과거에 단일 기관이었던 합참은 전략정보는 국방부장관실 통제로, 전술정보는 작전본부 소속과 정보본부 소속으로 또 이원화되었습니다. 정보 기능의 삼원화는 정보 조직 내에서 업무혼선, 기강문란, 전문성 부재로 연결되어 정보 본연의 기능을 크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는데, 그 폐해는 바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말로는 정보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작전에 종속된 신세로 전락하였고, 이루 전문성은 크게 약화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로켓 발사 징후에 대한 정보판단의 오류 이전에, 이미 우리 정부의 정보는 북한이 12월 1일에 로켓 발사를 발표할 당시에도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도 북한의 1일 발표 때까지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에서 로켓 발사 가능성을 각기 다르게 판단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국무부는 중국의 시진핑 총서기의 친서를 갖고 북한을 방문한 리젠궈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이 30일에 김정은을 만났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국무부 판단으로는 북한의 로켓 발사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는 시진핑의 친서를 받은 김정은 바로 이튿날에 로켓 발사를 발표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상식 밖이었습니다. 게다가 4월과 8월에 미국 특사가 평양에서 북한과 비밀 접촉을 했고, 2기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모종의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은 시기에 북한이 로켓 발사로 화답한 것에서 합리적인 의도를 도출하기란 어려웠습니다. 역사적으로 북한이 로켓 발사와 핵 실험을 단행하는 배경에는 미국과의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벼랑 끝 외교’의 수단으로서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 반대로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나가기 위한 모색기이기 때문에 과거 발사의 맥락으로는 해석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향후 미국과의 대화 국면을 예상하고 사전에 ‘몸값을 높이는’ 차원에서 미리 발사를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설득력이 없습니다. 로켓을 발사하면 향후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협상이 더 어려워지고, 흥정과 협박에 의한 거래의 여지는 더 좁아지는 것이 최근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쿠바미사일 위기, 한반도

 

한편 미 국방부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미 북한이 로켓 발사를 위한 준비에 착수한 이상 이를 돌이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3단 로켓의 동체를 운반하고 조립하려는 동향이 관찰되고, 로켓 연료주입을 위한 차량이 동창리 발사장에 출현한 것은 누가 보아도 로켓 발사가 임박했다는 명확한 증거였습니다. 다만 겨울이 로켓의 산화제와 연료를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로켓 발사의 기술적 위험이 증가된다는 점은 북한의 발사 결정의 비합리성을 일깨워 줄 뿐이었습니다. 북의 로켓 발사 징후가 명확해 짐에도 미 정부가 북의 로켓 발사 발표에 초기에 우물쭈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바로 북의 의도에 대한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 초기와 아주 유사합니다. 도대체 북한이 왜 이 시점에 로켓을 발사하는 것인지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은 위기관리 전 과정에서 마비와 혼란을 유발하게 된 것입니다. 북의 의도를 모른 채 드러나는 징후마저 잘못 해석했다면 향후 한반도 위기관리에는 상당한 불안이 예고된다고 하겠습니다.

1962년 10월 14일에 쿠바를 정찰하던 미국의 U-2 정찰기는 소련 장거리 미사일 기지가 건설 중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련의 후르시초프 서기장은 그 이전에 쿠바에 중장거리 핵미사일(MRBM)을 배치한데 이어 미 동남부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 미사일(IRBM) 기지를 건설 중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여 소련의 의도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9월까지 “해외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겠다”던 후르시초프가 왜 돌연 장거리 핵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9월에 백악관의 정세평가회의에서도 “소련이 쿠바에 핵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을 내린 터에 갑작스런 미사일 기지의 발견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에 대해 “빌어먹을 미스테리”라고 투덜거렸습니다. 이후 미국의 카리브해에서의 봉쇄와 소련의 미 U-2정찰기 격추, 미국의 쿠바 침공에 대한 최후통첩이 얽힌 13일 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쿠바에서의 분쟁이 베를린으로 확전되고, 미소 간의 핵전쟁 위기까지 순식간에 이어지는 당시의 위기가 잘못 관리되었다면 적어도 1억 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요건이 충족되어 있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위기 이후 “핵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3분의 1에서 2분의 1 사이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시 위기가 대단히 심각했다는 점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소련이 쿠바를 방위하려면 MRBM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IRBM까지 배치하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소련은 미국이 해상봉쇄에 이어 쿠바를 전면침공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혼란스러워 했던 것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정보의 실패에서 시작하여 세계 열핵전쟁의 위기까지 발전한 사례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위기상황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동안 보수와 안보를 외치며 밤낮으로 위기를 관리한다고 해 온 이 정권이 어떻게 안보를 불안하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안보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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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