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치 공격헬기 도입, 어이없는 방사청 사업관리 사건내막

월간 <신동아> 2010년 8월호

 

방위사업청의 전문성 부족에

공격헬기 사업, 오락가락 파행

 

 

아파치 헬기 도입은 정치 문제?


“아파치 헬기 도입사업은 정치문제다”

다름 아닌 공격헬기를 운용하는 육군의 대체적인 정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육군 항공병과는 아파치 도입이 숙원이었으나 한미관계와 국내의 부정적 여론에 영향을 받아 그 꿈을 이루지 못해왔다. 육군 정서는 아파치에 대한 육군의 모든 입장은 다 전달되었으니 ‘윗선’에서의 정치적 판단만 남았다는 식이다. 방사청까지 미국의 입김을 의식하여 정상적인 연구 검토를 중단시켰다는 사실은 “‘전략동맹’을 표방하는 현 정부 하에서 무기구매가 어떻게 정치논리로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더불어 그는 “아파치 헬기 도입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소요군과 국방부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아파치 헬기에 대한 언급도 오간 바 없다. 아파치 도입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한다는 정서는 군사 실무자들의 과도한 동맹 의존심리가 빚어 낸 착각이자 돌연변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지난 7월 31일, 한국우주항공산업(KAI)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사천공항에서는 최초의 국산 헬기인 한국형기동헬기(KUH), 일명 ‘수리온’ 시제기 1호 출고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 시작할 때 과연 우리 힘으로 설계와 개발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심도 적지 않았으나 강한 긍정과 도전 정신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이뤄낸 영광의 결실”이라고 관계관들을 치하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기동헬기를 기반으로 한국형 공격헬기(KAH)로 도약하자는 비전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리온 출고식이 열리기 직전부터 미국으로부터 도입하려는 중고 아파치 공격헬기는 25년 이상 경과한 구형 기종이며, 이로 인해 단종 될 부품 30년 치를 미리 구매해야 하고 그 도입비용 역시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국방 당국은 애초 계획했던 미국제 중고 아파치 헬기 도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같은 시기에 국내 언론들은 미국이 한국에서 운용 중인 아파치 헬기 1대대를 철수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 놓았고,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파치 헬기 대대를 완전 철수를 기정사실화한다. 작년 11월에 아파치 2개 대대를 빼내갈 무렵에도 우리 국방부와 미군은 이를 부인하다가 기습적으로 이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국민을 봉으로 아니까 전문가들은 이번에만은 속지 않겠다는 듯, 심지어 관변학자 까지도 ‘철수론’에 합세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군이 미군의 아파치 철수로 초래되는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해 2013년쯤에 공격헬기 부대를 창설한다는 보도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보도의 이면에는 아파치 중고헬기 도입으로 군 작전소요 충족이 우선이냐, 국산 공격헬기 개발로 고용을 창출하는 경제논리가 우선이냐를 두고 물밑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조짐이 느껴졌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주한미군의 마지막 아파치 1개 대대를 철수한다는 이 특급정보를 언론에 흘린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미국 최고의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의 한 간부였다. 그는 한국의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견학시키면서 ‘펜타곤에 직접 확인했다’며 아파치 철수계획을 흘렸다. 그 이유는 얼마 후에 확인됐다. 보잉사의 아파치 헬기에 들어가는 첨단 시스템이 록히드 제품이었던 것이다. 단수가 높은 아파치 판매 마케팅 수법으로 기자들은 이를 해석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은 이 특급정보를 같은 날 보도하기로 하고 그 이전에는 누구도 단독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며 ‘엠바고’를 걸었다. 그 엠바고가 수리온 출고식이 있기 직전에 해제된 것이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대통령 보고


중고 아파치 도입 논란의 한가운데는 방위사업청이 있다. 3월에 변무근 방위사업청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요 획득사업에 대해 보고하면서 중대형공격헬기 274대를 개발하는 현재 헬기 획득방향을 수정하여, 그 대신 아파치급(AH-X) 36대를 해외에서 직구매하고 소형공격헬기 214대를 국내에서 개발하는 2개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중대형 공격헬기는 미 육군이 작년에 한국에 제안한 중고 아파치 헬기 도입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럴 경우 9조원이 드는 한국형 공격헬기 자체개발보다 약 4조원이 절감된 5조원으로 2개 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적이라는 얘기다. 이에 이 대통령은 “경제성 없는 국내개발을 고려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면 해외구매도 고려해 볼 만하다”며 “개발 기간과 비용을 추가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국방부와 합참은 사실상 미국제 중고헬기를 도입할 수 있는 숨통을 터 준 것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변 청장의 보고 내용을 보면 우리 군의 헬기운용은 하이(High)급 중대형 공격헬기와 로우(Low)급 소형공격헬기를 혼합 운용하는 하이로우 믹스(High-Low Mix)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이급으로 도입되는 미국제 중고 아파치 헬기 도입비용이 1조원이 조금 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파치 대당 가격은 약 260억원 정도로 예상되었다. 아파치 헬기 새것에 비해 반값으로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구상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자 비용에 민감한 이 대통령이 이에 호감을 가졌을 법도 하다. 그러나 이 보고가 있고나서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변 청장의 대통령보고는 잘못된 것임이 판명되었다. 단순한 실수 정도가 아니라 헬기도입사업 자체를 호도하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미국이 한국에 제안한 내용을 잘못 이해했거나 제대로 파악을 못했다는 의혹이 드러난다.

미 육군이 중고 아파치 헬기를 한국에 판매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최초로 전달해 온 때는 작년 4월이다. 주한 미 합동군사업무지원단장 명의로 발송된 구매 제의 서한에서 “AH-64D 아파치 공격헬기 블록1, 2를 대당 137억원(블록1 기준)에 FMS(대외군사판매) 방식으로 한국에 판매할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8월까지 구매 여부를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파격적 제안에 합참은 즉시 의견수렴을 거쳐 작년 5월에는 ‘대형 공격헬기 구매 36대, 소형공격헬기 200대 연구개발 방식’의 공격헬기 전력증강계획을 국방부에 보고한다. 국방부는 당시 김종천 차관 주재로 이를 검토하는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작년 8월 29일, 아파치 헬기 구매를 위한 AH-X 사업이 합동참모회의에서 의결되고 9월 5일에는 국방장관 결재를 통과함으로써 대형공격헬기(AH-X)사업 소요를 결정(36대)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들어와서는 합참은 장기전력기획서(JSOP)에 명시된 대형공격헬기사업 추진 조건에 대한 단서조항을 제거하고 정식으로 사업화하는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연말에 국회는 한국형 공격헬기 개발사업 예산을 삭감한다. 그 누구도 아파치 도입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형성되자 이제 도입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비춰졌다.   

국방부와 육군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공격헬기 획득이 가능하고, 그 도입 및 전력화 시기도 블록1의 경우 2011년 5월이면 가능하여 전력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한국형 공격헬기 개발에 6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기에 전력화가 가능한 중고헬기 도입은 놓칠 수 없는 대안이다. 미 측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구형 아파치, 즉 AH-64A는 총621대가 생산되었는데 이중 284대는 엔진과 표적획득지시장비, 조종사 야시 장비를 새로 달아 아파치 롱보우(AH-64D) 블록1으로 1997년부터 운용해 왔고, 337대는 무장체계를 성능개선하고 계기현시체계를 개선하여 블록2로 2003년부터 사용해 왔다. 이 블록1, 2 중 동체까지 교체하여 신형에 버금가는 블록3로 372대를 성능개량하여 미군이 자체적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동체를 교체하지 않는 블록1, 2는 동맹국에 판매를 추진하는 것이 그 골자다. 미 육군은 국방비가 부족하여 동맹국에 중고헬기 판매대금으로 미군의 헬기 성능개량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제안만으로 한국이 1조원으로 신형헬기나 다름없는 우수한 성능의 아파치 헬기를 산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석연치가 않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은 이에 대한 자세한 판단도 없이 올해 3월에는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보고는 뒤에 말하겠지만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중대한 실수였다. 국회 국방위 여권의 핵심관계자의 말.

“올해 초까지 방위사업청은 미 육군이 헬기를 리셋(reset) 한다고 국회에 설명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문제였다. 구형 헬기를 완전히 뜯어서 신품이나 다름없는 헬기로 바꿔서 한국에 제공한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되면 새로 제조(manufacture)된 헬기, 즉 신품과 다름없는 감가상각 제로라는 의미다. 이때까지 방사청은 미국이 말하는 헬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리셋된 제품을 한국에 제안한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엉터리다. 더 심각한 것은 도입 시기도 잘못 파악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산을 1년 늦게 반영하면 도입 시기는 2년이 늦어진다는 식이다. 우리는 빨라야 2010년 예산에 아파치 헬기 도입 예산을 반영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블록2 도입 시기는 2016년이 된다. 그러면 전력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군의 판단도 5년이나 차질을 빗게 된다. 결국 2012년에나 도입이 가능한 블록1이 구매대상 기종이 된다. 즉 가장 구형헬기만 도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면 이제껏 아파치 헬기 도입의 명분이 된 ‘전력공백 조기해소’는 말장난이다. 방사청이 순진한 건지 미국이 장난을 친 건지 뒤죽박죽이 된 것 같다.”

왜 이런 엉터리 보고와 잘못된 판단으로 한국군 핵심무기 사업이 흔들리게 된 걸까?



“파격적 바겐세일에 넋을 잃었다”


그러면 최초에 미 측이 우리 군과 방위사업청은 미국의 파격적인 저가의 헬기판매 제안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4월에 제안하면서 “8월까지 답변을 달라”는 미국의 무리한 요구는 매우 다급한 것이었다. 구매제안 내용에 대한 세부사항을 검토할 수도 없고 관련 절차를 준수할 수 없도록 압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최초 5개월 간 검토하기로 했던 검토기간은 1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면 방위사업청은 충분한 검토 후에 대통령 보고를 추진했어야 하는데 무언가 쫓기듯이 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를 했다.

올해 4월에 아파치 헬기의 가격 및 도입조건에 대한 방위사업청의 질문에 대한 미 육군의 약 60쪽에 이르는 답변서가 도착했다. 그 핵심 내용을 보면 도입 시기는 2010년에 한미 간에 구매계약(LOA) 체결을 전제로 할 때 블록1은 2012~2014년 기간 중 납품이 가능하고 2010년 1월 이후 LOA 체결 시에는 3년 이상 연장된다. 블록2는 2016년이나 납품이 가능하다. 또한 계약체결 이전에는 아파치 성능자료와 개발규격에 대한 자료를 제공할 수 없고 단지 헬기 월간 운용기록과 이력부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측 접근이 전면 차단되어 있다.

더 가관인 것은 블록1 재생헬기는 이미 이라크, 아프간에 참전한 헬기를 다시 파견 가능한 준비상태로 전환하는 수준이라는 것, 즉 성능개량된 것은 없고 엔진과 부품만 교체하고 수리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블록1 재생헬기를 한국의 요구한 30년이 운용 가능한 수준으로 보장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나마도 블록2는 도입가능 시기가 다소 늦어서 한국이 당장 사려면 블록1 밖에 없다. 25년 이상 경과된 최고 구형에다가 몇 가지 장비만 교체해서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수준’, 즉 25년 이상 된 동체에 먼지만 털어서 팔겠다는 식이다. 예비부품 및 수리부속도 블록1은 2017년, 블록2는 2025년까지 미군이 운용할 예정이므로 그 이후 폐기될 부품수가 539개에 이르는데 이를 미리 한꺼번에 한국이 다 사야한다. 한국은 이미 단종 된 17개 품목의 부품을 포함하여 30년 치를 일괄 구매하라는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판매 대상기종들은 한국형 전술데이터 링크체계(Link-K) 적용이 불가능하며, 국산 무전기 정착은 가능할지라도 그 개발비용은 한국 측 부담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한편 미국은 대당 기체비용으로 214억원을 제시했는데 한국군이 요구하는 아파치 헬기 성능 충족을 위해서는 데이터링크, 무장능력과 같은 임무장비를 추가비용 91억원, 후속군수지원(ILS) 비용 155억원, 그리고 숨겨진 비용을 포함할 경우 대당 가격은 461억원+α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들은 3월경부터 미 국방부 무관을 통해 조금씩 파악되기 시작한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미 육군으로부터 4월에 답변서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 때문에 방사청이 6월 정상회담을 앞 둔 5월 중순에 이미 아파치헬기 도입에 불리한 KID의 연구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용역을 중단시킨 것이라는 점은 앞에서 말한 대로다. 미 측의 답변 내용이 방위사업청을 통해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보고되자 이 장관은 이제껏 보고받은 바와 다른데 크게 화를 내었다. 그는 6월에 헬기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합참과 육군에 지시했다. 이에 육군은 8월 말까지 재검토한 결과를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할 계획이지만 부푼 기대를 안고 달려간 바겐세일은 먼지만 날리는 신기루에 불과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제안에 구미가 당긴 군 당국이 향후 한국군이 필요로 하는 공격헬기의 기본 성능과 부수적으로 소요될 비용에 대한 정확한 검토 없이 중고 헬기도입 결정을 먼저 내려졌다는데 있다. 방위사업청의 해외 구매부서는 소요군의 협조를 얻어 미 측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공격헬기 성능과 운영유지에 필요한 각종 가격정보 및 지원여부를 확인 요청하는 자료, ‘비용 및 가용성 자료(Price & Availablity Data : P&A)'를 미 측에 요청했다. 이때가 작년 11월경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면 헬기 도입 사업을 추진하기 한 시점에서 우리가 필요한 세부 항목에 대한 기초적인 데이터를 만들지도 못한 상태에서 소요결정이 먼저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변을 받기도 전에 대통령 보고를 먼저 추진했고, 달콤한 꿈에 젖어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상식적으로 이해하려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


한편 필자는 어렵사리 미군 관계자에게 이렇게 미국이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는 답변서를 보내 온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왜 미 측은 최초 제안과 달리 한국에 불리한 조건을 제시했나?


“그것은 오해다. 우리가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헬기를 업그레이드 해야 할 필요가 생겨났고 그래서 2005년부터 헬기 전력구조를 전부 다시 구상한다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잉여 헬기를 해외에 판매하기로 한 것은 전 세계에 다 오픈 것이다. 그 내용은 군사잡지만 보아도 다 나와 있는 수준이다. 전 세계에는 신형 아파치 롱보우 헬기를 구매하려는 나라도 있지만 구형을 좋은 조건에서 구매하는데 관심을 가진 나라도 있다. 네덜란드도 2006년에 이런 일반정보를 기초로 우리에게 구매의사를 타진해 왔다. 지금은 11개국이나 된다. 한국은 그 중 하나다. 우리는 한국이 요구하는 가격 및 비용정보를 처음에는 구두로, 다음에는 문서로 상세히 제시했다. 어떤 모듈은 어떤 가격에, 어떤 기능은 얼마만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미 육군의 입장에서도 공격 헬기 해외 판매는 중요한 사업이다. 이 때문에 최대한 한국 측에서 문의가 있으면 정확하게 답변을 한다.”


- 그런데 한국은 중고 헬기 36대를 구매하기로 해 놓고 이번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사업을 재검토하려 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아파치 헬기를 운용하는데 소요되는 총수명주기관리(TLCM : Total Life Cycle Management) 비용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자꾸 한국의 방위사업청 실무자들이 이걸 알아듣지 못하고 거듭 질문을 해 왔다. 그래서 작년 4월인가, 5월경에 국방연구원(KIDA)에서 워크숍을 개최해서 TLCM에 대해 설명도 했다. 이런 정도면 얼마든지 방위사업청이 가격과 비용정보를 판단할 수 있었다고 본다.”


- 그러면 한국 국방부나 방위사업청이 제 때 문의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한 것인가?


“그건 미 측으로서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여기서 분명히 강조하는 것은 미 육군이나 한국에 파견된 저스맥(JUSMAG-K), 즉 주한미군사업무지원단이나 주한미군이 한국에 헬기를 마케팅 한 적은 없다고 강조하고 싶다. 한국이 최초 우리 제안에 호감을 갖고 설명해 달라고 해서 했다. 우리는 자료를 제공하고 설명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언론이 마치 올해 5월에 우리가 보낸 서한에서 이제까지의 제안내용을 번복하는 듯이 보도해서 우리도 놀랐다. 또 우리 서한을 보고 한국이 구매정책을 변경시켰다고 하는데, 그러한 주장의 진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이런 식이라면 세계의 다른 동맹국에도 우리가 성의 없이 자료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긴데, 우리가 전 세계를 상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한국 이외의 국가에서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 그러면 4월에 새로운 서한을 보낸 이유는 뭔가?


“그건 한국이 아파치 헬기와 한국군 데이터링크 시스템과의 연동문제를 비롯한 몇 가지 임무수행에 필요한 추가사항에 대해 문의를 해 와서 그 부분을 포함해 다시 답변한 것이다. 작년에 이에 대해 미리 문의했다면 그 때 답변했을 것이다.”


- 그러면 이전에는 그런 문의가 없었나?


“한국 측에서 문의가 없으면 미국은 먼저 확인해주지는 않는다. 한국군이 임무수행에 필요한 성능은 한국군이 결정할 일이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다 판단해서 묻지도 않는 정보를 제공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 데이터링크와 같은 추가적인 문제로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말려졌는데, 이런 문제로 한국과 처음부터 의사소통이 미흡했던 원인은 뭔가?


“미군에서 해외에 장비를 판매하는 부서와 보안담당 부서는 계통이 다르다. 그래서 데이터 링크 문제는 구매협상과 별도의 협의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은 중요한 핵심무기를 해외에 팔 때 암호화된 통신으로 이루어지는 데이터 연동문제는 가급적 미국 것을 그대로 팔려고 한다. 한국은 자기네 것을 쓰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이 문제를 처음부터 협의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미 간의 무기거래 시에 데이터링크 연동문제를 둘러싼 의사소통의 문제점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앞으로 우리도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 그래도 30년 치 부품 일괄구매는 무리가 있는 조건 같은데....


“천만에. 오히려 한국정부의 구매정책에 의문이 있다. 한국은 대부분 미국에서 무기를 구매하면서 후속군수지원에 너무 적은 예산을 편성한다. 우선 무기의 숫자를 중요시하면서 후속군수지원 총비용의 20% 밖에 예산을 책정하지 않는다. 사실 80%는 되어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도입 이후에 가동률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비행기 100대를 사왔는데 가동률이 60%면 60대 밖에 못쓴다. 그런데 80대만 사도 가동률이 80%면 64대는 쓴다. 미국 기준으로는 64대를 쓰는 군대가 더 강한 군대다. 그런데 한국의 기준으로는 100대 숫자를 채우는 군대가 더 강한 군대인 것 같다. 우리는 한국의 F-16 전투기가 가동률이 80%라고 하지만 실제 예산책정 규모를 보았을 때 60%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총 수명주기비용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말했고 도태되는 아파치 블록1의 경우에도 80% 이상은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당연한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 그러면 이런 논란이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좋은 영향이야 없겠지.(웃음)”



경제논리냐, 군사논리냐


이러한 정책 파행에 대해 방사청이 나름대로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정통한 업계 관계자의 설명.

“우리나라 현행 무기획득 체계를 보면 방사청은 구매계약을 하는 집행부서이지 실제 정책결정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아파치 헬기와 같은 핵심무기의 운용상의 문제는 방사청이 아니라 육군 군수사령부가 검토할 의무가 있다. 방사청은 헬기를 사서 육군에 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파치 운용개념이나 임무수행에 필요한 성능을 제시해야 할 의무는 육군에 있다. 육군 항공병과가 아파치 도입에 무리하게 과욕을 부려서 밀어붙이고 방사청이 여기에 끌려 간 측면도 있을 것이다.”

육군이 무리하게 500MD, AH-1S와 같은 주력 헬기의 도태로 인한 전력공백을 부풀려 아파치 도입의 명분을 세우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 결과 한국형 공격헬기의 개발을 무력화하고 해외도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육군 항공병과의 조직 이기주의의 산물이라는 지적이다. 아파치 헬기는 지상군의 지원거리 밖에서 독립적인 종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기종이다. 그러나 2018~2021년 사이에 모두 퇴역하는 500MD, AH-1S 공격헬기는 지상군과 합동으로 전 전선에서 근접전투에 운용되는 전력이다. 설사 아파치가 도입되더라도 36대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 전선에서 아파치 공격헬기를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형 공격헬기를 개발한다고 하지만 성능이 낮은 이 기종은 육군의 기대에 못 미친다.

더 심한 비판도 있다. 걸프전에서 맹활약한 아파치 헬기는 이후 코소보 전쟁,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에서 활약을 한 바 없고 수시로 격추 당했으며 운영비가 많이 들어 미군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지난 이라크 전쟁에서는 24대가 임무수행 중에 16대가 격추 당하거나 고장이 났고, 그 외에도 모래 바람에 견디지 못한 더 많은 헬기들이 정비창으로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군도 새로운 헬기로 업그레이드 하는 마당에 왜 우리가 정비공장에 입고된 재고 헬기를 도입해야 하는가, 라는 비판이다. 

설령 아파치 헬기에 과도한 환상을 갖고 있는 육군의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방사청의 전문성 부족, 그리고 섣부른 업무수행에 대한 비판의 소지는 충분하다. 대통령에게 헬기사업을 보고한 변무근 청장은 무기획득에 관한 한 비전문가이다. 방사청 개청 이래 초대 김정일 청장을 비롯한 이선희, 양치규와 같은 역대 청장은 전부 획득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현재 변 청장은 획득분야에 근무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방사청에서는 실무자들이 청장에게 보고할 때 기초적인 용어 설명부터 전부 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보고 시간이 장시간 소요된다는 불평이 많다. 방사청을 출입하는 한 자문 전문가는 “방사청의 누군가로부터 ‘우리가 고속철도를 만들어 놓았더니 증기 기관사가 뛰어 올라와 엉뚱하게 통제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청 주변 사람들은 변 청장이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실무자들이 청장을 쉽게 기망할 수 있다는 점은 의사결정의 취약점이라고 지적된다.

무기획득을 과학화하고 효율화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기관이 방위사업청이다. 개청 이래 3년이 넘는 시간이 경과하도록 초보적인 시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은 막중하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문제는 국방부와 합참, 그리고 소요군이다. 배경이 의심스러운 미국의 제안 하나만으로 중요한 핵심무기사업에 대한 정책결정이 파행으로 간데는 국방의 이익이 아니라 조직의 이익논리에 휘둘리는 국방의 업무수행 풍토가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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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