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수혁 전 국정원 차장 인터뷰

 <북한은 현실이다> (전 6자회담 수석대표가 말하는 통일외교전략)

21세기북스, 371면

   

          대북정책, 외교는 사라지고 이념만 남았다!

대담 및 정리 김종대 편집장

2011년 10월 17일.

우리가 속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은 모든 창의력의 원천이다. 새로운 맥락 속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우리의 고정관념을 부수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 6자회담 전 수석대표였던 이수혁 전 국정원 차장이 최근 펴낸 <북한은 현실이다>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던 북한 문제를 낯설게 인식한다. 이 책은 역사학, 진화생물학, 게임이론, 카오스, 천문학과 같은 다양한 창문을 통해 북한을 들여다본다. 그만큼 북한이라는 실체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남다르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 사유의 속살을 헤집기 위해 디앤디는 저자인 이수혁 전 국정원 차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진 북한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을 고발하기 위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보셨는지요. 저는 이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프로들의 치열한 자기 노력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프로 외교관들끼리 정책대안을 갖고 토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 라는 자문을 했습니다. 우리 외교는 지적 분위기가 형성 안 되어 있다는 데서 무언가 지식의 욕구에 목말라 있습니다.

- 지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이념화된 풍토 때문 아니겠습니까?

과거 김대중 노무현 밑에 있었으면 진보, 한나라당 밑에 있으면 보수, 뭐 이런 식으로 편 가르기 되고 말았어요. 예컨대 보수층에서 북한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어도 ‘나도 보수여야 하니까 옳소‘하고 박수치고 쫓아가는 식 말입니다. 진보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집단사고(Group Think)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북을 마주한 현실에서는 외교가 종교나 이념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나? 현실로서의 북한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에서 책을 썼습니다.


이수혁 전 대사가 이념화된 북한 인식에 대해 도전하는 방식은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가지 가설을 검증하고 벼랑 끝에 서 있는 북한에 대응할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방법이다. 그 세 가지 가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

둘째,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셋째,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이념인가, 현실인가?


- 현실로서의 북한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핵심은 권력입니다. 북한의 권력에 대해서도 그 속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권력을 추구하고 국가를 유지하고 하는 실체로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덤벼야지, 그걸 인정하지 않고 우리 입장에서만 북한을 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권력의 속성을 무시하고 ‘김정일이 3년 안에, 또는 5년 안에 죽고 그러면 통일이 된다’는 식이 한국 내 집권층의 인식이었습니다. 그러한 붕괴론에 입각한 대북 강경책이 압도적이었고, 대북 협력도 중단되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가 무슨 성과를 냈습니까?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설이나 체제위기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보아야 합니다. ‘이게 과연 정확한 정보냐’는 거죠. 저는 정보를 취급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외교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정보의 과장이나 축소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보에는 과장, 즉 부풀리고자 하는 속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정보를 마치 과학의 중력이론처럼 진실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이런 정보의 속성, 즉 생산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권력은 정보를 소비하면서 왜곡 당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마치 북한이 붕괴될 것처럼 많은 정보와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마침내 우리에게는 또 다른 불안이 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김정일 유고설, 사망 임박설 등을 보면 정말 정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정말 별별 것 들을 가지고 다 분석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런 북한 관련 보도내용을 자세히 보면 우리에게 결정적인 정보는 많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김정일의 건강 전망에 대해 전직 통일부 장관이 미국 측 주요 인사에게 이야기한 것이 위키리크스에 나오더군요. 정보는 순환합니다. 내가 제공한 정보가 내일이면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정보가 되어 내 귀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보의 써큘레이션(순환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북한이 현실적으로 생존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당면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왜 북한을 생존에 신경 안 쓰는 국가로 보느냐는 거죠. 북한은 생존이라는 명제를 위해서는 무정부적인 국제사회의 속성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내 멋대로 하겠다는 것이죠.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거죠.


한편 책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북한에서 세습제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또는 세습제가 타파될 경우, 체제가 변화할 경우, 변화하지 않을 경우, 북한이 소멸될 경우, 소멸되지 않을 경우를 모두 대비해서, 이 6가지 경우의 수에 대비한 계획을 가지고 그에 따른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성적이다. (…)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개인의 판단의 문제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복잡한 동기들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정일의 유고가 발생한다고 해서 북한 핵 문제가 바로 해결될까? 외교안보 문제가 지도자 개인이 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개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국가 체제의 문제이며, 동시에 국제 체제, 국제 질서의 문제인 경우도 허다하다.” (30쪽)

모든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고려하는 현실주의에 충실해야 함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합리적 태도가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은 상황 탓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의 행동은 기질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상황을 무시하고 김정일의개인적 기질을 강조하며 개인의 영향력과 장악력에 중점을 두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 충실하다면 북한 문제는 김정일이 죽어 새로운 체제가 도래할 때를 기다려야만 한다”.(21쪽)


북한은 수소폭탄까지 시도할 것

- 북한의 핵 개발이나 강경한 대남 정책도 생존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자는 말처럼 들리는 군요.

국가 간의 협력을 강조한 것은 자유주의 사상입니다. 약육강식만이 아니고 윈윈하는 경로를 찾아내는 것이 자유주의입니다. 북한은 사상적으로나 철학적으로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본능적인 생존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성숙단계에 관한 문제입니다. 생존(서바이벌)이 문제일 뿐 아직 발전이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은 발가벗지 못합니다. 먼 미래를 위해 협력하고 교류하지 못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협력의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상적철학적 단계가 다른 거죠. 지금 북한의 빈곤이나 위기는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아직 생존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고 우리도 핵을 개발하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핵 주권론을 주장해서 북한과 똑같은 존재가 되자는 것과 같습니다. 북한 때문에 우리도 국제사회와 협력을 깨버린다는 주장인데, 국제정치의 사상적철학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북한과의 핵 경쟁이라는 닫힌 공간에 갇혀있다는 인식 착오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국제협력구가하며 이익을 보고 있는데 북한 때문에 우리도 핵을 보유하자는 것은 엉뚱한 주장입니다. 그보다 북한에게 우리와 같은 길로 오라고 해야 합니다.


- 이명박 정부 들어서 북한의 핵개발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차기 정부에서는 이 문제가 어떻게 된다고 보십니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시도할 것에 대해서도 예상을 해야 합니다. 수소폭탄은 미국이나 소련이 더 이상 실험을 못할 정도의 공포였습니다. 그래서 소련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고 난 후 사하로프가 반체제 인사가 된 것 아닙니까? 북한은 이제껏 플토늄을 추출했고, 우라늄 농축을 했거나 시도하고 있지만 파괴력의 최종단계라고 할 수 있는 수소폭탄 실험까지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상황을 진단할 수는 있는데 처방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핵 문제의 딜레마입니다. 그러나 처방이 없다고 해서 명의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진단만 잘해도 명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북의 핵 개발이 성숙단계가 아니었을 때,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막지 못한 것 아닙니까?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했을 때 외교안보 부처 책임자를 문책하고 팔을 걷어 부치면서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겠다고 나섰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도 그런 말을 못했습니다. 핵실험을 했을 때 우리의 대응이 낳은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유엔 안보리 결의는 두 번째 핵실험을 막지 못했습니다.

6자회담에 대한 회한이 누구보다 많은 저자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6자회담의 초기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 첫째, 북한이 핵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 둘째, 북한이 미래 언젠가는 핵실험을 하고 말 것이라는 점이었다. 6자회담 초기에 한·중·미 정책은 상당 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3개국이 일치단결하여 북한에게 핵 포기를 요구하고,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면 북한은 지정학적·정치적·경제적 이유에서 동의하리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북한에게 이러한 결과에 승복하도록 설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중·미 3국이 북한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117쪽)


우리 외교는 의전 외교

- 북한의 핵에 대해 체념적인 분위기는 진보,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일반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이런 말도 있습니다. 앞으로 북한이 핵실험 자주 할수록 좋다는 거죠. 핵 물질을 소모해야 하니까요.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핵 실험을 몇 차례 한다는 건 핵무기 제조 기술이 정교해지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핵무기가 점점 더 소형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핵 실험을 하면 핵무기를 더 많이 생산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시키지 않으려는 책임회피가 만연된 것입니다. 핵 문제는 연평도 사건하고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연평도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핵이라는 것은 남북한 간의 군사적 균형의 문제를 바꾸는 것이고 통일이 될 때까지 이어질 장기적 문제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이 핵을 폐기할 의사만 있으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년의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한다고 했는데요.


김정일을 핵정상회의에 부르자는 발상 자체가 이상합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부르자는 것인가? 핵 폐기를 결심하고 오라는 것인가? 선뜻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런 정책이 어떤 정책결정 과정을 거쳐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김정일이 참석해서 핵 보유 당위성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면 핵 정상회담에서 핵 포기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일까요? 북한에 대한 비현실적인 정책선언의 효과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 그런 점에서 우리의 외교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라기 보다 무언가 국내정치의 연장선에서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과거 유럽의 세력균형 외교는 치국의 전부였습니다. 국가가 팽창하고 생존하는 것은 전부 외교문제였습니다. 당연히 외교가 국내 문제에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 현상으로 가고 있는 거죠. 외교가 절박하다는 인식이 없어지고 외교가 국내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으로 달라졌습니다. 문제는 큰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아직도 우리에게는 분단과 통일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외교가 절체절명의 숙제라는 겁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외교가 경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 정도로 격하되었는지 몰라도,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끼어있는 우리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러한 지정학적 맥락이 살아있는데 우리 외교부가 주로 방문외교, 정상외교, 의전외교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통일의 전망에 아무런 진전이 없고, 대북정책은 김정일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식의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치국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을 관리함에 있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북 경제 지원은 그 과정에서 한국의 요구나 기대가 직접적으로 북한 체제에 작용하고, 또 간접적으로 북한 주민에 작용함으로써, 북한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 가장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북한의 변화가 필연적인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북한의 변화는 일면 불가해한 정치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우리 생각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북한에 불이익이 갈 것이고, 반면에 호의적이고 협력적인 행동을 보이면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320-321쪽)


중국은 패권이 될 이념 부재


-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는데, 중화세력의 부상은 무언가 새로운 불안정성을 불러일으키는 불안정 요인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스파르타의 관계도 그렇고 근대 사회에서 유럽에서의 독일의 부상,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중국의 부상도 불확실성의 확산이라고 보시는 거죠?

G2라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에 있어, 중국은 아직 패권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양극화 시대와 동일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이 세계에 전파하는 이데올로기가 공산주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를 중국이 수출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을 많이 인용하지만 이데올로기 면에서 아직까지는 자유민주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중국이 전파할 가치를 중국 스스로는 무엇이라고 생각할 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으나, 자유민주주의를 떠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선린우호로만 있겠냐는 것입니다. 권력에는 무언가 힘이 생기면 힘을 쓰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중국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 지지만, 아직은 이를 전적으로 수용할 시기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민주주의로 가는데 장애가 될 복잡한 내부 상황도 있고 주변을 단속해야 하는 여러 선결조건이 있습니다.


- 그래서인지 중국은 북한을 조용히 단속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에 대해서도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북한을 단속하는 것은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라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어 통일 한국에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앞으로는 이런 말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도 한반도 통일에 개입하지 않을 테니 미국도 하지 말라고 말이죠.

중국은 한미동맹을 지지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중국도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이를 견제하는 한미동맹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서 과거 미국과 일본 간에 비밀리에 맺었던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같이 중국과 미국 간에 심리적 묵계 같은 것이 형성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한반도 분단은 필요악이라는 거죠. 결국 영구분단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미국도 중국을 자극하면서까지 한미동맹을 강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이 참을만한 수준에서 한미동맹의 수준이 조정될 것입니다. 옛날처럼 무조건 한국의 국방력을 강화시켜 주는 식으로 한미동맹이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세기쯤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에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날 것입니다. 미국식 먼로주의를 아시아에 적용하겠다는 거죠. 국제적 개입은 왜 미국만 하나? 이제는 중국판 먼로주의를 할 때가 되었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며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미국의 월가 시위 같은 미국의 불안 요인을 중국이 이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미국식 자본시장이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며 ‘아시아인들이여, 아시안들끼리 해보자’는 슬로건이 나올 지도 모르겠지만.


중국에 관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제 중국은 깨닫기 시작했다. 북한의 붕괴는 자칫 중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한반도에 생각보다 빨리 통일이 와서 자유민주주의체제로서 7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통일 국가가 들어설 경우, 중국은 그런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국에 정치적 개혁·개방의 목소리가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는 자연스럽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이 끝내 스스로 서지 못하게 될 정도로 수액이 다 빠지게 되면, 북한을 도와 북한이 진정 중국에 의지하게 만들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이상으로 강화되고, 북한의 민족주의적 자긍심과 중국에 대한 역사적 저항감은 둔화될 것이었다.” (182쪽)

이 전 대사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중국이 북한에 우월하다는 욕망을 채우고, 북한에게는 빌어먹는 것과 같은 열등의식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것이 바로 중화사상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역시 북한에 우월의식을 과시하기 위해 “때로는 북한에 경제지원을 하는데, 더더욱 고약한 것은 한국이 이 시혜를 철회하여 북한에게 굴욕감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168쪽)


중국식 먼로주의가 출현할 것


- 그러면 우리의 외교가 모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통일에 대비하는 큰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통일이라는 비전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독일 통일 이야기를 책에 썼습니다. 독일은 40년 동안 분단되었지만 동서독의 경제력 차이가 1:3밖에 안되었습니다. 남북한의 경제격차는 1:20,또는 1:30정도로 벌어졌습니다. 그러면 지금 북한을 지원하지 않으면 북한의 미래세대가 영양실조에 걸려 자포자기하게 될 텐데 어떻게 통일이 됩니까? 병약한 북한 주민들에게는 의료보험 안 해줄 건가? 의료보험 하나만 해도 엄청난 통일비용인데, 이런 것 다 빼고 산출하는 통일비용이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통일 당시 독일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통일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렇게라도 통일된 것이 낫지 않습니까?

통일의 확신과 당위, 추진력이 조화된 리더십에의 염원이 절절하다. 이에 대해 이 책을 출판한 <21세기 북스>에서는 다음과 같은 서평을 올리고 있다.

“2010년에 있었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이후 협상의 실타래가 꼬여가는 형국이다. 또한 어떻게 통일에 이를 것인지, 남북관계를 풀어갈 해법은 무엇인지,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첨예한 논쟁과 대립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딜레마 속에서 이 책은 왜 통일이 되어야만 하는 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와 우리가 간과했던 외교의 맹점들을 짚어가며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본질은 무시한 채 좌우이념 논쟁으로만 번졌던 북한 문제를 진지하고 치열한 담론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통일한국의 실현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룰 수 있는 리더를 염원한다. 그것은 통일에의 확신과 당위, 추진력이 조화된 리더십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그는 분단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동시에 깊은 정치철학과 뚜렷한 역사인식으로 무장된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함을 숨기지 않는다. 6자회담의 성과를 이뤄내고 15년간 북핵 문제와 북한 외교의 실제적 전문가로서 저자가 기대하는 지도자의 모습과 그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외교안보가 국내정치에 갇혀있는 동안 세계는 변하고 있다. 독서광인 저자는 언제나 새로운 관점에 길을 물으며 인식을 확장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구도자와 같은 모습이다. 투명하고 반듯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아직도 공부가 부족하다”며 열정을 불태우는 저자에게서 통일의을 발견하게 되는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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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