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정신] 2013년 한반도의 봄, 동북아 협력과 갈등의 분기점 국제안보

  

 

 

 

 

<독립정신> 69호. 2013년 5,6월호.

 

2013년 한반도의 봄은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쌍끌이 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남쪽에서는 일본의 환율 공세로 세계 15위의 한국경제의 수출에 치명적 타격이 예상된다. 일본은 이참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통해 한반도에 역사․문화적 침략도 병행함으로써 한반도는 21세기판 임진왜란의 형국이다. 북쪽으로부터는 어떠한가? 지난해 12월의 로켓 발사에 이어 올해 핵실험과 추가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북한에 미국이 무력시위로 강압적인 대응을 하는 지금은 21세기판 병자호란과 같은 안보위기다.

경제의 임진왜란과 안보의 병자호란을 동시에 겪고 있는 한반도의 2013년은 시련과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시선을 더 먼 곳으로 돌리면 작금의 진통은 사실 동북아시아 질서의 새판을 짜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불안정한 단면이다. 대륙과 해양의 지각판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 먼저 분화구가 폭발한 셈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일어나는 지각변동, 즉 국제정치에서 세력균형이 변화하려는 조짐이다. 지난 3~4월, 약 70일 간 지속된 한반도 안보위기는 이 심대한 변화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국제질서의 안정을 위한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도록 촉구하는 새 아침의 모닝콜이었다.

2013년 한반도 핵 위기는 과거 유사한 한반도 위기와 다른 맥락에 배치되어 있다. 북 핵 위기는 미중 간의 세력균형의 변화가 국가 간 갈등과 폭력에 의한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아니면 점진적이고 수용가능한 평화적 방식으로 진행되느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만일 북 핵 위기가 동북아시아의 신냉전체제를 강화하는 대결과 긴장으로 이어진다면 향후 미국과 중국 간의 협력에도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주는 국면이 출현하게 되며, 이는 국제정치에서 공세적 현실주의자들이 경고하는 대로 미중 간에는 피할 수 없는 대결과 대치의 구조가 정착되는 '벽이 있는 세계(walled world)'로 이어진다. 반면에 북 핵 위기가 미국과 중국 간의 협력으로 원만하게 해소된다면 동북아 지역에서 국가 간 상호의존이 자연스럽게 증진되는 국면이 출현하게 되며, 이는 국제정치에서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류하는 '평평한 세계(flat world)'로 이어진다.

위 두 가지 경로 중에 어느 것이 바람직하냐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다만 과거 1994년 제네바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의 10․3 합의와 달리 이번 위기는 그 해결방식이 매우 모모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우선 과거의 위기의 경우는 미국과 북한 어느 한쪽이 상대방으로부터 제시된 금지선(red line)을 넘으면 곧바로 전쟁 위기로 발전했으나, 다시 그 금지선을 되넘어 오면 위기가 해결되었다. 예컨대 1994년의 경우 미국에 북한에 제시한 금지선은 영변 핵 재처리시설에서 핵 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것이고, 북한이 미국에 제시한 금지선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안이었다. 쌍방이 이 금지선을 넘어가려는 벼랑 끝 위기에서 대타협이 이루어져 서로 금지선을 넘지 않기로 합의하면 그것으로 위기는 끝이었다.

이렇듯 과거에는 갈등과 협력을 결정짓는 시점과 조건이 명확했다면 지금의 위기는 그 금지선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우선 미국의 경우 대북정책이 비핵화인지, 비확산인지 명료하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이 북한 핵을 묵인하면서 해외로 유출되는 확산방지에만 주력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나타나면서 한국 내에서도 독자적인 핵 무장론자까지 출현하는 형국이다. 반면 북한의 경우도 핵 개발에 바탕을 둔 노골적인 협박을 구사하는 것이 핵무기 보유 자체가 목적인지, 아니면 핵을 내세워 통 큰 협상을 도모하겠다는 것인지 명확치 않다. 게다가 북한은 과거에 협상의 대상이었던 경제적 지원문제까지도 배제하면서 오직 핵 보유국이라는 목적으로만 치닫는 것처럼 보여 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미국의 대화제의를 기다리며 중거리미사일 발사를 자제하는 이중적인 행태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협력을 한다면 무엇을 협력하자는 것인지, 협력을 안 하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반도 위기는 장기간 소강상태로 돌입할 조짐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반도 위기의 본질을 더욱더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도 있다. 지난 20여년 간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한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 즉 북미 수교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 즉 평화협정 체결 셋째,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이다. 이 중에서 세 번째 경제지원은 최근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우선순위가 낮다. 그렇다면 핵 문제의 본질은 앞의 두 가지인 안보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 점에서 북한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자본주의 방식을 수용해서라도 경제를 개선하겠다는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군부를 중심으로 한 북한 내 보수파들은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한 어떠한 경제 개혁과 개방조치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일관되게 선군노선을 고수해 왔다. 통치기반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김정은은 군부와 친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을 위협하여 적대관계를 청산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이것이 성공해야만 경제개선도 도모할 수 있다는 보수적인 사고로 기운 듯 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수정해야 한다. 지금껏 우리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경제교류와 문화협력을 활성화하면 한반도 안보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에 머물렀다. 때로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면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기능주의적 사고로 남북관계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즉 우리의 경제력으로 북한의 호전성을 변화시키는 경제-안보 교환모델에 익숙해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돈으로 평화를 사자”는 접근법이 2007년의 10․4 남북공동선언과 개성공단에서 그 결실을 맺었고, 지난 대선 때는 서해 평화를 해결하는 처방으로 남북 공동어로구역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엄연한 진실은 남북 간에 경제협력으로 관계가 증진되는 상황에서도 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더 이상 경제와 안보를 일대일로 교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오직 안보-안보 교환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안보와 안보를 교환한다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를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경제지원이 아니라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가 있다면 이를 해소하는 것, 즉 평화협정 체결을 필두로 한 한반도 평화체제 밖에 없다.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북한이 평평한 세계로 나오기 위해서는 북한 스스로 안보문제가 해소되었다고 인식해야 하고 적대관계가 종식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비정상적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전망이 열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아직도 북한 코앞에서 돈지갑이나 흔들어대는 식으로 북한 문제를 접근하거나, 불량한 북한에 체벌을 가한다는 명분으로 전술핵과 첨단무기를 마구 반입하는 식으로는 그 어떤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너무 멀리 와 있다는 느낌이다.

이 점에서 북한 문제가 갈등이냐, 협력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고 한다면, 안보의 당사자인 우리가 강대국이 한반도를 문제를 주도하는데 끌려갈 경우 새로운 동북아 질서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도 평화협정이 그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북한의 기만전술로 치부되는가 하면, 대화와 협상 그 자체도 불온시 되는 소위 종북 바람몰이 속에서는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그 어떤 긍정의 확신을 도모하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의 위기구도가 지속되는 현상유지 논리로서의 안보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현상타파의 논리로서 긍정과 낙관의 전망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실낱같이 나타나는 대화의 국면을 기회의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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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