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막]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사퇴 및 수사 안팎 기고

 

 D&D Focus 201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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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부패’한 ‘절대 권력'

문일섭 VS 장수만


김종대 편집장(jdkim2010@naver.com)


장면 #1.


2001년 3월 중순의 어느 날.

조성태 국방장관실에 서영득 국방부 검찰단장(당시 대령)이 급히 들어 왔다. 서 단장은 조 장관에게 ‘차관 관련사항 보고’라는 수사 첩보 보고서를 들이 밀었다.

이 보고서에는 당시 국방차관이었던 문일섭 씨가 최근 자택에서 도난당한 10만원권 자기앞수표 66장, 미화 1만6천달러 등 3천840만원에 대해 그 출처를 조사하겠다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 차관은 이 돈을 포함한 현금을 사과상자 몇 개에 담아 자신의 집 베란다에 쌓아놓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중 한 상자가 없어졌다. 문 차관은 즉시 관할 경찰서에 도난 사실을 신고하여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었는데 범인은 다름 아닌 문 차관의 운전병이었다. 이 운전병은 절취한 돈을 가지고 캠코더 구입비, 유흥비 등으로 흥청망청 쓰고 있던 터였다. 범인을 잡았으니 사건은 다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서영득 단장은 과연 차관이 보관한 그 막대한 현금뭉치의 출처가 무엇인지,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보고서를 본 조성태 장관의 얼굴에 긴장감이 보였다.

“이것 참 큰일이네. 당신 문일섭이 어떤 사람인 줄 알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인물이야. 이걸 어떻게 수사한단 말이야?”

조 장관은 ‘실세 차관’을 잘못 건드렸다가 거꾸로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올 것 같은 불안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서 단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차관이 청와대하고 직거래하는 실세라는 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수사를 안 하면 더 큰 일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조 장관이 놀라서 물었다.

“큰일? 뭐가 큰일이야?”

“며칠 전에 구속된 운전병을 여자 친구가 면회왔었습니다. 거기서 중요한 말이 오갔습니다.”

“무슨 말?”

“운전병이 문 차관 집에 현금 상자가 수도 없이 쌓여있다는 사실을 여자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쌓아놓고 한 상자 정도 자기가 빼돌린 것이 왜 문제냐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모 대학의 운동권 출신입니다. 이 애가 학교에서 양심선언을 할 지 모릅니다. 문 차관이 축재 의혹이 있다고 언론에 제보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수사를 안 하면 거꾸로 은폐의혹을 뒤집어 쓸 수 있습니다.”

“뭐야? 당신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니 수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조 장관은 깊은 상념에 빠졌다. 문 차관은 평소에도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통하는 인물로 소문이 파다했고,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 문일섭이 누구인가. 제15대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 출신이고, 거기서 맺은 정치권력과의 인연은 막강했다. 천용택 전 장관도 그에게 수시로 자문을 구하고 또한 의지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도 언제 장관직에서 물러날 지 알 수 없는 터. 조 장관이 말했다.

“가만있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청와대하고 상의해야 돼. 내가 대통령께 재가를 받아올 때까지 기다려.”

  


장면 #2.


조 장관은 몇일 후 김대중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났다. 조 장관이 떠듬거리며 말했다.

“대통령님, 문 차관과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김 대통령이 되물었다.

“누구?”

“문일섭 차관 말입니다.”

“문일섭이 누구야? 국방부 차관이야?”

김대중 대통령이 문 차관을 직접 모른다는 사실은 조 장관은 충격이었다. 아니 뭐 이런 걸 가지고 실세 차관이니 했단 말인가? 어쩌면 실세니 허세니 하는 말들은 실체와 관계없는 세간에 비춰진 이미지에 불과할런 지 모른다. 조 장관은 정치를 볼 줄 모르는 자신의 어두운 눈을 탓해야 했다.

“예, 그런데 문 차관이 얼마 전 현금 상자를 도독 맞았는데 그 돈의 출처가 의심스러운 점이 많고 해서.......”

“법대로 하세요. 뭐 그런 것까지 일일이 내게 보고하고 할 필요 없어요.”

“........”

국방부로 돌아 온 조 장관은 다시 서영득 단장을 불렀다.

“문 차관은 곧 경질될 터이니 제대로 수사하시오.”

서 단장이 놀라서 물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법대로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시오.”

4월이 되자 문 차관의 경질이 발표되었다. 그 직전인 3월 말에 조 장관도 경질되었다. 장관과 차관이 한꺼번에 물러 난 국방부는 어수선했다.

그해 6월에 구속된 문 차관 사건에 대한 검찰의 발표는 이러하다. 문씨가 국방부 획득실장 재직 시절인 지난 99년 초. 강남구 대치동모 일식당에서 군납 중개업자 서 모씨로부터 `군납과 관련해 잘 부탁한다'는 청탁과 함께 1천만원을 받는 등 획득실장․차관 재직 시절인 98년부터 3월부터 2001년 4월까지 2개 군납업체와 군납 중개업자 2명으로부터 모두 4천100만원을 받은 혐의라는 것. 문 씨는 차관 재직 시절인 지난해 12월 압구정동 일식당에서 군납업체인 S기술㈜사장 김 모 씨로부터 군납편의 제공 등 명목으로 미화 5천달러(650만원 상당) 등 700만원을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면 #3.


이명박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리는 장수만 전 차관의 위세를 짐작케 하는 사례.

천안함 폭침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힌 지 두 달 가까이 지난 5월 20일에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은 인양된 북한 어뢰 추진체를 공개하면서 “천안함은 북한의 연어급 잠수함이 쏜 중어뢰에 의해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 사건 발생 당시 군 작전이 적절했는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군 작전 라인을 송두리째 거덜 낸 감사원 감사를 국방장관이 자청해서 요청한 배경은 이러했다.

5월 20일 발표 하루 전에 장수만 청장이 국방부 국장 한 명을 데리고 김태영 장관에게 찾아왔다. 대뜸 장 차관이 천안함 사건 당시 우리 군 작전의 문제점을 늘어놓더니 고압적으로 말했다.

“장관님, 감사원에 해군과 합참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청해야겠습니다.”

김 장관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군 작전에 대한 걸 어떻게 감사원에다가 감사 요청을 하라는 거요?”

“그럼 그냥 이대로 넘어 가시렵니까? 대통령께서도 군에 대해 실망이 크십니다. 군 내부에서 규명이 안 되니 감사원이라도 나서야 할 것 아닙니까?”

장 차관의 이 말을 김 장관은 ‘대통령의 뜻’으로 알아들었다.

김 장관이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 지인이 김 장관에게 물었다.

“아니 왜 감사원에 그런 요청을 했습니까?”

김 장관이 대답했다.

“내가 그러고 싶어 그랬나? 장 차관이 하라고 해서 그랬지.”

“그럼 차관이 시켜서 했단 말입니까?”

“.............”

김 장관은 유규무언이었다.

합참 일각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장 차관이 화상회의로 해군 작전사령부에 이러저런 지시를 하는데 대해 “작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며 몹시 불쾌해 했다. 특히 구출작전 당시 “고속정을 왜 천안함에 대지 않느냐”고 호통 친 당사자가 장 차관 아닌가? 그런 그가 작전이 잘못되었다고 불호령을 내리는 데 대해서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천안함 사건이 나기 전에 국방선진화위원회(위원장 이상우)는 국방개혁에 대한 그간의 연구결과를 3월 31일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으로 보고가 무기 연기되자 장수만 차관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국방개혁안을 성안하여 청와대 외교안보실을 비롯한 주요 요로에 개인자격으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선진화위원회는 물론이고 김태영 국방장관도 전혀 컨트롤하지 못했다. 장 차관의 보고서를 제출한 이유는 방위사업청 개편을 비롯한 국방획득체계개선을 자신이 주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상희 장관 시절에 장 차관은 국방예산 증가율을 3%대로 하는 예산안을 별도로 작성하여 청와대에 보고한 바 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안 이 장관은 “하극상”이라고 반발하며 청와대에 편지를 보냈다(상자기사 참조). 그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이상희 장관은 옷을 벗었다. ‘장관 위의 차관’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역대 장관들은 대통령직인수위 출신으로 소망교회에서 쌓은 강만수 전 지식경제부 장관 등 정권 실세와 탄탄한 인맥을 자랑하는 장 차관을 버거워했다.



장면 #4.


이명박 정부가 후반기로 접어드는 2010년 말에 터진 소위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운영권 비리사건은 경찰의 수뇌부와 주요 직위자들이 대거 입건된 사상 초유의 스캔들이었다. 이 사건이 터질 무렵만 해도 이것이 장차 국방부로 불똥이 튈지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

그동안 함바집 운영과 관련된 브로커 유상봉 씨가 “장수만 전 청장이 조달청에 재직할 무렵 수천만원을 건넨 적 있다”는 진술이 나와 비리 혐의를 받고 있던 1월에만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장수만 청장에 대한 신임은 흔들리지 않았다. 개혁의 전도사이자 이 대통령의 ‘아바타(분신)’라는 장 청장의 지위는 웬만한 비리 의혹에도 끄떡없이 버틸 만 했다.

그런데 2월 14일에 동아일보가 깜짝 놀랄 보도를 했다. 다음은 그 보도 내용.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지난달(1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세무사 이모 씨에게서 “친구인 장 청장이 함바집 비리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거론되자 나에게 현금 5000만 원과 130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맡겼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 씨는 검찰이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현금 뭉치와 백화점 상품권을 발견하고 출처를 추궁하자 이같이 진술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이 씨에게서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뒤 최근 서울동부지검에 이를 이첩했다. 서울동부지검은 이 씨의 진술을 토대로 이 현금과 백화점 상품권이 함바집 브로커 유상봉 씨(구속 기소)에게서 장 청장에게 건네진 것인지, 아니면 이 씨가 허위진술을 한 것인지 확인하고 있다. 특히 L백화점 등에서 발행한 상품권이 언제 누구에게 판매됐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 중 장 청장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백화점 상품권 및 현금의 출처와 경로를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청장은 함바집 비리가 불거진 뒤인 지난달 초 일부 언론이 ‘유 씨에게서 수천만 원을 건네받았다’고 보도하자 “유 씨는 예전에 아는 사이였지만 돈을 받은 것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씨는 세무서 등에 로비를 해주겠다며 H금속 측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보도가 나온 다음날인 2월 15일 저녁.

김관진 장관은 청와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장 청장에게 경질을 통보하라”는 청와대의 지시였다. 이 대통령은 장 청장에 대한 신임을 거두고 이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한 터였다. 김 장관은 즉시 장 청장을 호출하여 이를 통보했다.

2월 16일. 장 청장은 사퇴한다고 발표했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동안 방위산업체 비리 척결을 내세우며 무기체계 가격 산정 시 원가부정 방지, 방산 리베이트 척결, 방위산업 체제 개편 등 굵직한 개혁을 주장해 온 바로 그 당사자가 거액의 금품을 기업으로부터 수수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고 배신이었다.



또 다른 의혹 있다!


한편 장 전 청장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준 대우 건설의 대가성 로비는 초유의 관심사다. 이와 관련하여 검찰 소식에 밝은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지난해 4월 대우건설이 특전사 이전 관련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당시 장수만 국방차관에게 대가성 금품을 제공했는지 여부 외에도 검찰은 두 가지 가능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황금박쥐 사업’으로 알려진 서초동 정보사령부 이전사업이다. 이 관계자는 “장 전 차관이 이 사업에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 검찰의 관심은 비상하다”고 전한다.

두 번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검찰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 상대가 주한미군이라서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한미군 기지이전 사업은 현재 주한미8군 산하의 극동건설공병단(FED)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FED는 한국군 공병장교들과 수시로 교류하면서 우리 정부의 국책사업에 대한 정책을 무력화하고 한국정부의 공사 발주권을 회수해 갔다. 이 과정에서 애초 공사계획이 무산되고 비용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조직에서 벌어진 여러 잡음과 비리는 미8군사령관에게도 골치 거리다. 8군사령관이던 전임 필 중장도 이 조직을 손보려 하다가 거센 저항에 밀려 개혁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문일섭과 장수만, 일찌감치 대통령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면서 정권 실세들과 교분을 쌓았다. 권력이 자라는 ‘줄기세포’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전문위원이라는 노른자위 직함을 거쳤다. 그리고 둘 다 국방 획득분야에 몸을 담으며 국방개혁을 주도했다. 실세 차관으로서 그들은 자신에게 쏠려있는 세간의 관심과 엄청난 권한을 스스로도 놀랐다. 획득실장을 거쳐 차관으로 일했던 문일섭 씨의 경우 재직 시에 한 지인에게 “내가 결심만 하면 획득사업의 어떤 결정도 가능하다”며 경탄조의 느낌을 말한 적 있다.

그리고 이 둘은 각기 김대중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는 집권 초기에는 관심 밖의 인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세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 둘이 비리 혐의로 낙마하면 어김없이 권력은 그들을 버리는 비정한 현실도 똑같다. 장 전 청장이 검찰에 소환된 2월 17일부터 기자와 전화를 통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제히 “장 전 청장은 실세가 아니었다”며 선을 그었다. 장 전 청장 비리가 권력 핵심부를 향한 권력형 비리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도에서 일제히 장 전 청장의 위상을 격하하는 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장 전 청장의 경우 곽승준, 박영준, 신재민 차관 등 정권 실세들의 이 대통령과 지근거리를 ‘1촌’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2촌 밖’에 위치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2009년에 장수만 차관이 이상희 장관과 국방예산과 관련하여 잡음이 일자 이를 보고받은 이 대통령이 ‘장수만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실세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물론 대통령과의 지근거리를 강조하고 나선 당사자는 장수만 본인이었다. 2008년 초에 차관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국방부 전직원이 모인 취임식에서 “대통령께서 저의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습니다”라며 자신이 이 대통령으로부터 국방개혁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당사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부 국방부 직원들은 “저런 취임사가 다 있구나”라며 놀랐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실세가 아닌데 실세 행세를 하는 동안 청와대는 어떠한 경고와 주의조치를 했는가? 오히려 장 청장에게 힘을 실어주어 국방부와 합참의 현역 장교들을 견제하는데 활용한 주체가 청와대가 아니란 누구란 말인가?

실제로 장 청장이 방위사업청장으로 부임하면서 이 대통령과의 지근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고 보아야 한다. 방위사업청장은 국방차관과 동렬의 차관직 직위지만 이 대통령에게 무기획득 사업을 직접 보고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더군다나 2009년부터는 이 대통령이 기존에 3000억원 이상의 무기도입 사업만 보고받던 관행을 깨고 “모든 무기획득 사업을 보고하라”고 지시하여 방위사업청장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늘어났다. 이 무렵 변무근 전 방위사업청장은 획득 업무 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의 소나기식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쩔쩔 매기도 했다. 이후 2010년에 장 청장이 새로 부임하고 나서 이 대통령은 보고 자리에서 국방 효율화를 위한 개혁을 장 청장에게 당부하는 등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특히 작년 10월 19일 미래기획위원회의 ‘국방산업 G7 발전전략’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배석한 장 청장에게 “무기획득 소요를 방위사업청이 철저히 검증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만큼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로 들어오면서 장수만 청장과 방위사업청에 기대감을 내비친 것이다.

현 정부 출범 후 양치규(10개월), 변무근(19개월), 장수만(6개월) 등 초단기 임기로 끝난 방위사업청장들의 불운이 줄을 잇고 있다. 장 청장 이전에 두 명의 청장이 단명으로 그친 것은 지금 보아도 의문투성이다. 변 전 청장의 경우 재임 시에 장수만 차관과 잦은 불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터. 조기에 낙마한 배경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년 임기도 채우지 못한 진짜 사정이 뭘까? 이와 관련하여 변 청장 퇴임 전후에 모종의 알려지지 않은 잡음이 있었다는 소문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방사청 관계자들은 “변 전 청장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내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기자에게 시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것은 비리가 있었다기 보다는 변 전 청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압력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다”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변 전 청장은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서 일했으며, 김인종 현 청와대 경처장이 이끄는 서초포럼 출신이다.

정치적 실세들의 공직 진입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장수만 청장의 경우처럼 방산비리 척결을 절체절명의 과제로 내세우고 점령군처럼 진입한 기관장이 정작 비리에 연루되었다면 그 충격파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에다가 우리 공직사회에 만연한 출세주의, 줄 서기 문화에서 정치적 실세는 무언가 초월적 존재로 부각되는 풍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 권한보다 더 막강한 권력자의 이미지를 갖추게 되는 순간 여러 로비가 집중되고 청탁이 줄을 잇는다. 이는 결국 조직은 물론 당사자인 개인에게도 불행의 원천이 된다.

이명박 정부에서만큼 고위공직자의 도덕성 문제에 둔감한 경우도 드물다. 정권의 실세들이 위장전입, 탈세, 병역면제 등 도덕성 시비에 휘말린 경우가 이 정부처럼 많았던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법을 집행하는 경찰 주요 직위자들이 통째로 함바집 로비사건에 휘말리고, 비리 척결을 외치던 고위 공직자가 비리의 당사자라면 국민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역사학자 액튼 경이 말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가 새삼 가슴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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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