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국방장관의 퇴행적 국방개혁 비판 국방개혁

 (월간조선 2009년 1월호)

이상희 국방장관의 퇴행적 국방개혁 비판


 


‘길어야 5년’ 신드롬


지난 11월 중순, <월간조선>이 “우리 정보기관이 8월 중순에 북한 김정일의 뇌 사진을 확보해 뇌졸중임을 정확히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 “우리 정보당국은 ‘김정일의 통치가 5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히면서 “정보당국의 보고서가 지난 9월 9일 노동당 창건일 행사 이전에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전했다.

기사가 보도된 직후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특급 대북정보가 언론에 유출된 진원지는 국정원이 아닌 청와대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청와대 역시 ‘내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한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문제의 보고서는 9월 4일에 열린 청와대 안보정책조정회의에 국정원이 제출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 직후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된 최고 기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이렇게 뒤숭숭한 분위기의 지난 12월초.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 통치, 길어야 5년’이라는 보고서가 정부 외교안보 라인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고 말한다. 현 정부 임기 중에 닥칠지도 모르는 북한 급변사태는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할 중차대한 사안이다. 이 거대한 태풍을 예고하는 기상특보에 중장기 국가안보전략을 준비하지 못한 청와대는 크게 흔들렸다.  

이 기사가 나간 지 일주일 뒤인 11월 24일 국방연구원(KIDA) 강당.

국방부는 언론사와 시민단체, 전문가를 초청해 ‘국방개혁 기본계획 조정안 토론회’를 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에 작성된 ‘국방개혁 2020’에 대해 지난 8개월 동안 국방부가 검토하고 조정한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다. 향후 선진국방의 미래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공청회였다. 그러나 국방부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발표되자마자 몰매를 맞았다. 토론자로 나선 한양대 김경민 교수의 말.

“과연 3군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기득권을 버리면서 가겠다는 것인지, 굉장히 짜증이 난다. 북한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우리 전력이 서로 중첩되지 않고 효율성에 기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발표내용에도 없고) 우리도 모른다. 공청회가 아니라 요식행위 아니냐.”

뒤이어 나선 김훈배 전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유용원 조선일보 기자, 임인창 교수,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등 주요 참석자들도 “어디로 가자는 국방이냐”고 따져 물었다. 예산계획도 없고 목표도 모호한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각군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은 졸속이라는데 비판의 초점이 모아졌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핵심 비켜간 국방개혁 수정안”, <중앙일보>는 “뜬 구름 잡는 국방개혁안”이라며 전날의 국방부 발표내용을 비판했다.

주변국은 적어도 15년 후 미래에 대한 예측과 가정을 전제로 한 국가대전략을 만들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국방정책을 만든다. 미래의 트렌드를 통찰하면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는 최적의 국방력을 도출하고, 그 발전된 미래상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국방력 건설을 위해 중장기 재정정책을 포함한 범국가적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국방계획에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단지 육․해․공군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너도 하나 먹고 나도 하나 먹는’ 기득권의 엉성한 조합이 현 국방개혁안이라는 비판이다. 이 과정에서 향후 변화될 안보위협을 예측하고 한․미 동맹과 미래 국방의 역할까지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전략적 차원의 국방비전은 없었다. 단지 북한의 재래식 현존위협에 대한 대비, 그것도 지상전에 편중된 작전차원의 땜질 처방이 국방개혁 기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앞서 관계자의 계속되는 말.

“비 온다는데 지붕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국방개혁이니, 선진강군이니 하지만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질 때는 현존위협에 최대한 주목하면서 전장의 안정을 도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당장 앞으로 5년이 한반도에서 지극히 예민한 정세가 전개될 것이고, 설상가상으로 국방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다. 일단 있는 군대부터 잘 써먹는 것이 중요하지 선진 강군 건설은 다음 문제 아니냐. 이것이 현재 국방부의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자신이 수립한 정책을 수정 


한편 12월 8일 열린 국방부의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도 이상희 장관은 ‘북한 우발사태’에 대해 몇 번이나 언급을 했다. 이날 이 장관의 말 중에서 “모든 우발사태에 대처해 나가고자 하는 군의 기본적인 임무조차도 북한을 자극하는 불필요한 행동으로 얘기하는가 하면....”이라고 언급한 대목, 그리고 “남북관계가 북한의 의도적인 벼랑 끝 전술로 경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적 도발 가능성이나 불안정 사태의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강조한 부분이다. 앞서 말한 관계자나 이 장관의 말을 종합하면 ‘길어야 5년’이라는 태풍예보에 우리 군 당국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정황이 읽혀진다.

북한의 급변사태야 당연히 군이 대비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북한의 우발적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미래의 안보를 준비하는 창의적 사고까지도 마비시켜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럴 경우 ‘길어야 5년’이라는 이미지는 국방정책의 역동성을 잠재우는 마취제나 다름없다.

오래 전이지만 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한 직후 문민정부는 곧 북한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장기간 안보정책을 표류시켰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대북정책과 우왕좌왕하는 미숙한 국방관리가 겹치면서 문민정부는 주변국으로 따돌림을 받는 외톨이로 전락했었다. 이 시기 안보정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의 이명박 정부의 안보상황은 바로 그 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 표방한 국방정책의 방향은 이전정부에서 소홀히 했던 북한 핵, 미사일, 특수전 전력과 같은 소위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한 전략적 수준으로 한․미동맹을 격상시키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국가 선진화 국정기조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군도 선진화와 발전의 길로 가겠다는 거창한 비전과 다짐도 있었다. 이것이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 이전부터 선거공약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비밀문건을 통해 누차 밝혀온 터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정부가 수립한 국방개혁 2020의 수정이 필연적이었다. 우리 국방의 목표와 방향, 군 상부구조와 부대구조, 전력구조에 대한 기본 설계도를 담은 포괄적 국방계획이 국방개혁 2020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새로운 국방태세를 정비하는 정책의 초점은 이를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에 모아졌다.  

그러나 실제 국방부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문제가 드러난다. 정부가 출범할 당시부터 지난정부의 국방개혁 2020이 현 정부에서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하려는 당사자들이 다름 아닌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안을 수립한 당사자라는 아이러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2005년부터 합참의장으로 재직하면서 현재 국방개혁 2020을 직접 만들었다. 개혁 완료시기인 2020년까지 전력투자비 271조원 소요를 산출하여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당사자다. 국방부에서 국방개혁 수정을 주도하고 있는 김경덕 국방개혁실장은 당시 합참 전투발전부장을 역임하면서 개혁안을 직접 설계한 당사자다.

2005년 국방개혁 2020 작성 당시 자문에 응했던 한 국책연구기관 학자의 말.

“2005년에 국방개혁 2020을 수립하면서 현 국방장관과 국방개혁실장은 ‘퍼펙트한 계획’이라고 했다. 군 병력감축과 구조 개편, 미래 군의 전력구조를 설계한 국방개혁 2020은 더 이상 손 볼 곳이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말한 당사자들이다. 그런데 막상 정권이 바뀌고 자신이 설계한 계획이 잘못되었다고 바꾸겠다고 나서는데 대해 여러 의구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의구심은 정치권으로부터도 왔다. 7월 23일은 한나라당 전당대회 다음날이다. 이날 아침 일찍 이상희 장관은 새로 선출된 박희태 대표 최고위원을 찾아왔다. 지난정부가 법제화한 ‘국방개혁기본법’을 수정해야하니 정치권이 협조해 달라는 취지의 방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이 장관이 박 대표에게 설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정몽준 최고위원이 대표실로 들어와 이 장관이 설명하는 것을 옆에서 듣게 되었다. 이 장관의 말을 들은 정 의원은 발끈했다. “지난 정부에서 국방개혁 2020이 잘 갈수 있게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한 이 장관께서 이제 와서 국방개혁 2020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까닭을 모르겠다”며 따지고 나선 것.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갈 만 했다. 문제는 다음 날.

이 장관은 측근 참모를 불러들여 “어제 정몽준 최고위원으로부터 면전에서 모욕을 당했다, 이제껏 친척의 친구인 정몽준 최고위원을 지지해왔으나 오늘부로 그 지지를 철회한다”고 말하며 받아 적도록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 최고위원에게 직접 전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 장관의 메시지는 얼마 후 정 최고위원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된다.



핵심전력, 미국에 의존한다


이상희 장관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수립한 국방개혁 2020은 미래 우리 군의 핵심전력으로 징후경보수집(눈과 귀), 지휘통제(신경과 혈관), 전략적 억제타격(펀치력)과 같은 미래 전력을 구비하되, 병력감축과 부대구조 개편을 통해 완전성을 갖춘 군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그 요체다. 이러한 방향은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의 ‘장기국방태세발전방향연구(818 계획)’로부터 면면히 계승되어 온 미래 우리 군의 선진화 담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밑그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상황에 맞는 합동전장의 개념이 없었고 새로운 국방운영 기조가 정립되지도 않은 채 병력감축과 부대구조 개편에만 집착했다는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었다. 국방예산도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기체계 플랫폼에 집착함으로써 그 실현성도 의문시되었다.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책무는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부여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임한지 채 한 달도 안 된 올해 4월초, 이상희 장관은 계룡대 워크숍에 내려가 국방개혁 2020에서 제시한 미래 핵심전력은 “미국에 의존한다”며 “현존하는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새로운 전력소요를 5월말까지 제출하라고 각군본부에 지시했다. 한국군이 보강하기로 한 핵심전력을 미국에 의존한다는 발상으로 전환된 배경에는 소위 '연계전력(bridge Capability)'이라는 개념이 제시되었다. 이 개념은 2006년 윤광웅 국방장관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를 두고 힘겨루기를 할 무렵에 처음 등장했다. 럼스펠드 장관은 “한국이 2009년까지 전시작전권을 가져가라”고 압박하면서 2009년도에 한국의 취약한 전력은 미국이 지원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참여한 국방부 정책 책임자의 말이다.

“미국은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와 관련하여 한반도 작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전력요소, 즉 ▲전환시점까지 한국이 보강할 전력 ▲전환 이후 당분간 미국에 의존할 전력 ▲ 동맹이 있는 한(life of alliance) 미국에 영속적으로 의존할 전력으로 구분하여 제시했다. 이중 첫 번째가 바로 국방개혁 2020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징후정보수집, 지휘통제, 정밀타격, 공중우세 등의 기반이 되는 전력이다. 두 번째가 소위 ‘연계전력’으로서 한시적으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정보력과 정밀 타격능력과 같은 것이다. 세 번째는 핵우산과 같이 한미관계에서 미국의 독점적 지위가 영속적으로 보장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 장관은 우리 군이 보강해야할 핵심전력은 럼스펠드가 말한 취지와 달리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는 연계전력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이 장관의 발언은 미국과 사전조율을 거친 것이라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따라서 이라크, 아프간 전쟁으로 지친 미국이 핵심전력을 한국에 보장해준다는 기대는 막연하다 못해 순진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마당에 미국이 한국에 대해 막대한 부담을 자초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관은 핵심전력을 공백으로 남긴 상태에서 육군 군단, 사단 작전능력을 증강한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공격헬기, 신형전차, 자주포, 사단급 무인정찰기, 장갑차와 같은 육군 기동군단 전력에 소요의 우선순위를 부여되었다. 반면에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해군 기동전단 전력, 미사일과 같은 해․공군 전력, 그리고 한국군 지휘통제를 효율화하기 위한 C4I 전력소요는 뒤로 밀렸다.

그러나 이러한 이 장관의 의도는 즉각 반발에 부딪혔다. 우선 미국이 4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선물로 준비한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구매가 물 건너가는데 대한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었다. 한 원로 예비역 장성의 말이다.

“이 장관의 의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뜻밖이라는 느낌이다. 육군 사단과 군단 작전무기들은 지금 꼭 들여오지 않아도 언제든 들여올 수 있는 무기들이다. 반면 정보 전력이라든지 첨단 정밀 시스템들은 지금 들여와도 전력화에 상당한 시일을 요하는 장기 획득사업들이다. 국가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든 살 수 있는 육군 무기들이야 그때그때 조정하면 되지만 장기사업들은 손바닥 뒤집듯이 번복해서는 안 된다.”

한편 이렇듯 다시 지상군 위주로 전력소요가 조정되는 배경에는 새로운 위협인식이 작용했다. 북한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관찰하면서 나름대로 강화시켜 온 경보병전력이 가장 우선적으로 대비해야할 위협이라는 것이다. 후방침투가 용이한 특수작전부대와 경보병전력으로 북한군이 재편되어 왔으므로 우리도 군단과 사단의 작전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작전범위가 확대된 기동군단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경보병전력으로의 변화는 향후 우리 군 구조변환을 좌우할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위협인식이 국방개혁 수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다. 국방부는 2019년까지 50만명 수준으로 병력과 부대를 감축하기로 한 국방개혁 2020은 5년 정도 그 개혁 완결시기를 늦춘 ‘국방개혁 2025’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한 공군 관계자의 말이다.

“합참이 인식에는 두 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다. 첫 번째는 미국이 언제까지나 핵심전력을 한국에 제공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다. 미국의 동맹변환에 대한 큰 틀을 이해한다면 우리도 준비해야 할 것은 준비함이 마땅한데 언제까지 의존한다는 그 사고방식이 문제다.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북한의 노후화된 전차, 야포, 전진배치된 지상군과 같은 현존 재래식 위협에 다시 눈길을 돌렸다. 두 번째 착각은 북한이 경보병전력으로 개편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정작 이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기동군단을 늘린다고 하는 것이다. 북한의 전력재편은 이미 10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사안이다. 북한의 경보병전력이 우리의 해병대처럼 전략적 침투를 위한 주공전력이냐, 아니면 기존 사단의 작전을 보완하기 위한 보조전력이냐가 문제인데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전차나 장갑차, 또는 야포가 아니다. 오히려 특전사와 같은 보병전력이다. 그런데 보병은 줄이고 기동군단을 늘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 노무현 정부가 후방 지원부대는 놔두고 전방 보병부대를 먼저 감축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 정부도 비슷한 길로 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미완성의 ‘이상희 독트린’


군 내부의 자중지란은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해․공군의 위기의식은 도를 넘었다. 한 군 관계자의 말이다.

“북한의 재래식 위협과 비대칭 잠재적 위협에 동시에 대비하기 위한 유력한 방책은 억제 및 응징보복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화된 C4I와 정밀억제타격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적의 지휘부를 마비․제거시켜 조기에 전승을 결정짓는 소위 효과중심 작전(EBO)을 하려면 공중을 필두로 한 선(先)대칭 전력을 구비하는 것이다. 센서에서 슈터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군의 복합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과 같은 비대칭위협을 증강하는데 대비한 한국군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핵심전력 보강을 뒤로 미루면 위기 징후수집으로부터 목표 타격까지 한국군의 전력 공백이 발생한다. 단지 한․미간에 ‘신뢰’라는 고리로 국가생존에 대한 위험을 미국에 전적으로 맡기고 우리 국방을 야전 지상전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상희 장관은 우리 군의 전력구조를 갖춤에 있어 “현존위협에는 작전적으로 대비하고 잠재적 위협에는 전략적으로 대비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여전히 북한의 변화된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비보다는 재래식 전면전에 대한 대비를 우선시하는 태도였다. 

육군 기동군단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 2025를 완성한 시점은 올 8월 1일, 국방부에서 개최된 ‘대장급 컴퍼런스’. 8시간 동안 진행된 이 회의에서 이 장관은 국방예산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상기시키며 기존에 계획된 전력의 우선순위를 조정한다고 말했다. 회의가 끝난 후 이어진 회식자리에서 이 장관은 참모총장들과 폭탄주를 돌리며 현 정부의 국방계획이 완결되었음을 자축했다.

한편 국방부는 8월 14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계룡대 방문 시점에 새로운 국방개혁안과 방위사업청 조직개편 등 중요 국방정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방부의 동향을 관찰해 온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이날 이상희 장관의 대통령 보고를 차단했다. 무언가 국방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동향이 감지되었다.

현재 육군 군단의 작전범위는 가로 30km, 세로 70km다. 국방개혁 2020에서는 이것이 100km×150km로 확장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국방개혁 2025에서는 작전범위가 더 확장된 150km×250km로 작전지역이 설정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기존에 계획된 차기 UAV, 차기전차, 차기장갑차, 차기다련장, 자주포, 공격헬기의 소요를 반영함은 물론 미군의 스트라이커 여단이 보유한 기동 및 타격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육군 기동군단의 능력강화가 지상전을 주축으로 하는 한국적 국방태세의 본질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개혁의 완결시기를 5년 늦추면서 개혁 기간 중 방위력개선비는 오히려 1조를 감축하는 270조원으로 예산을 계획했다. 이럴 경우 해군과 공군 전력소요는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육군의 포병전력이 증강되면 포탄의 고도가 1만 피트를 넘어 2만 피트에 육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현재 우리 군의 공중 공역관리에서는 1만 피트 이상은 공군 영역, 1만 피트 이하는 육군 영역이다. 육군의 무기체계가 공군의 영역을 침범함에 따라 작전이 중첩된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합참의 입장은 단호했다. 공군의 근접항공지원이 육군 포병작전을 방해할 우려가 있으니 공군이 비켜나라는 것이다. 합참 전력부서의 한 회의에서 공군이 이에 대해 항의하자 “병력이 감축되는 당사자는 육군이다. 해군과 공군은 병력이 유지되니 말하지 말라. 전력증강은 육군 몫이다”라고 한 장성이 일축했다. 이 무렵 국방부 자문에 응했던 예비역 장군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육군은 공군의 근접항공지원 필요 없다, 육군은 포병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확산되었다. 때마침 공군의 한국형전투기사업(KFX)의 추진은 경제성이 없다는 언론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공군의 임무를 육군이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판명되면서 합참의 새로운 작전개념은 다시 재검토되었다. 고도로 작전범위를 나누는 것이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작전거리(km)로 나누자는 의견이 합참으로부터 나왔다. 군의 지상작전 계획에는 군 간의 각종 화력운용의 중첩을 피하기 위해 ‘사격협조선(CFL: Fire Coordination Line)이라는 것이 있다. 합참은 군단과 사단의 역할을 높이기 위해 이 선을 조정하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육군의 기동․화력 전력증강을 먼저 결정하고 여기에다가 작전개념을 거꾸로 꿰맞추려고 하니까 이리 맞춰도 안 되고, 저리 맞춰도 안 되는 딱한 상황이 이어졌다.  



청와대 개입, “원점에서 재검토 하라”

 

이 무렵 필자를 만난 한 공군 예비역 장성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일련의 국방개혁 수정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의 말이다.

“앞으로 한반도 전장은 전후방이 따로 없는 장거리 교전, 또는 특수전 양상으로 간다. 이것이 예전의 B. B 벨 연합사령관이나 랜드연구소의 베넷 박사가 밝힌 한반도 전쟁에 대한 예측이다. 그런데 국방부와 합참은 아직도 알파, 브라보와 같은 방어선이나 멸공선, 통일선과 같은 무슨 ‘선 개념’에 극도로 집착하고 있다. 프랑스 군이 마지노선에 집착하다 패전한 것과 같다. 이런 6, 70년대 사상을 아직도 지상군 전력증강에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현대전에 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합참의 사정에 정통한 국방부 관계자 역시 필자에게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무기체계 소요는 먼저 싸우는 방법과 작전개념을 먼저 정립하고, 그 다음에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합참은 일을 거꾸로 하더라. 아무런 작전개념도 없이 5월까지 각군에 전력소요를 제출하라고 지시하니까 각군이 이에 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7월로 검토시기를 연장하더니 그제 서야 각군에 싸우는 방법과 개념을 제시하라고 했다. 일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정부 군 인사에서 합참의 전략과 전력부서에 보직된 인사들은 육군 야전작전 출신들이다. 이들은 전력기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오직 야전의 지상작전에 대한 지식이 전부다. 실무 중령들이 상관에게 보고를 하면서 ‘기획업무에 대한 용어 설명이 힘들다’는 불평이 나오기까지 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현 국방부와 합참은 북한의 새로운 위협과 현대전의 추세와 맞지 않게 재래식 지상전에 한국군의 역할을 고착시킴으로써 국방의 위상을 한 단계 추락시키고 있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국방개혁 수정이 현 정부가 표방한 국방 선진화와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병력과 부대감축으로 불이익을 보는 육군에 대한 보상방안을 찾는 작업으로 전락해버렸다는 비판이다.    

8월 말, 김성한 외교안보수석 주재로 청와대에서는 새로운 국방개혁 2025에 대한 국방부 개혁실의 보고회의가 개최되었다. 김경덕 국방부 개혁실장의 브리핑을 마치고 토론 시간. 청와대를 자문해 온 국방연구원(KIDA), 국방과학연구소(ADD), 방위사업청 전문가들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 수시로 국방부의 국방개혁 수정에 대해 우려를 전달해 온 터였다. 한 전문가는 국방부의 국방개혁 2025는 “미래 국방에 대한 시각이 결여된 2008년 8월에 정지된 시계를 보고 만든 계획”이라고 비판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이미 국방부가 청와대에 국방개혁 수정안을 보고하기 이전인 정권 초기부터 기획재정부는 청와대 지침을 받아 ‘군 소요검증위원회’를 만들어 정밀하게 군 전력구조를 검토해왔다. 기획재정부의 재정기획관실에서는 방위사업청, 국방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민간 군사전문가를 초빙하여 합참을 상대로 전력소요의 절차와 방법, 그리고 소요의 타당성에 대해 검토했다. 그 결과 6월에는 육군의 전력소요 중 차기전차는 현 재정여건상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위원회는 국방부의 소요결정 방식은 타당성이 결여되어 국책사업에서 흔히 사용되는 ‘예비타당성제도’를 무기소요에도 도입하자고 권유했다. 그러자 회의에 참석한 합참 관계자는 “중기국방계획은 대통령 재가 사항이므로 그런 절차는 필요 없다”고 버텼다.

국방부 산하기관이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 직접 자문에 응하면서 국방부와 수시로 대립하는 양상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국방부 안팎에서도 “산하기관은 국방부의 야당”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김성한 외교안보수석은 이날 김경덕 국방개혁실장에게 “이제까지의 검토내용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지상군의 완전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상희 독트린’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국방개혁 2020으로


이상희 장관은 8월말 국회 국방위 상임위에서 “9월까지 국방개혁 수정안을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계속되는 이견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 장관은 10월 6일부터 시작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방개혁 수정은 “아직도 검토 중”이라며 말을 바꿨다. 이 장관의 리더십에 대해 국회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국방개혁이 좌초될지 모른다고 본 김장수 의원은 “선진 강군을 만들기 위한 국방개혁 시기를 연기하려는 시도는 절대 안 된다”며 상임위에서 공개적으로 이 장관을 비판했다.

그러던 중 10월 7일, 북한이 서해상에 10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국회 국방위는 비공개로 그 내용을 보고받았다. 이 사건을 통해 국방위는 국방부가 북한의 새로운 위협에 대해 별다르게 대비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갖게 되었다. 10월에 필자를 만난 김학송 국방위원장, 유승민 의원이나 김무성, 안규백 의원 보좌관들은 한결같이 국방부가 재래식 육군전력에 치중하는데 우려를 표시했다. 이 중 한 의원은 “북한 핵무기가 곧 가시화되고 미사일이 날라 다니는데 국방부는 흑표 전차나 산다고? 아휴~”라며 한숨을 쉬었다. 국회가 이 장관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은 11월에 ‘국회 국방부 연락단 철수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청와대와 국회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은 국방부는 애써 만든 국방개혁 2025를 포기하고 다시 노무현 정부가 만든 국방개혁 2020으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병력과 부대감축은 2020의 목표를 그대로 답습하되, 기동군단을 1개 추가한 2개의 기동군단을 포함하여 2020년까지 50만명 수준의 병력과 7개 군단수를 맞춘다는 것이 수정된 개혁안의 골자다. 그러나 이마저도 향후 추진과정에서 그 성공여부가 불확실하다. 우선 예산문제다. 국방부 실무자가 국방예산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하면 “줄줄이 깨지고 나온다”는 말이 파다하다. 지난 11월, 한 실무자가 기동군단에 대해 청와대에 설명했다. 그러자 외교안보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짜증을 냈다.

“이런 식으로 국방부가 나오면 예산 못줍니다. 기동군단을 만들면 국방의 무엇이 좋아집니까? 현재 국방에서 무엇이 달라지고, 북한의 전체 위협에서 우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게 되는지를 제시해야지요. 그런 설명도 없이 자기도취적으로 무엇을 얼마나 갖겠다는 것이 통합니까? 무작정 달란다고 우리가 줄 것 같습니까?”

최근 국방부 예산부서나 합참 관계자들은 청와대나 기획재정부, 또는 국회를 찾아가는 것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어려움을 국방부 내에서 실장급 이상의 상관에게 하소연하면 “안보를 모르는 놈들”이라고 욕만 하지 본인들이 나서서 설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예비역 장성들의 국방부에 대한 불만의 소리는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가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전시작전권을 한국으로 전환하는데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는 이들은 “현 국방장관이 새로운 한미관계의 전략적 틀을 마련하지 못하고 야전 작전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여 이상희 장관은 지난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은 한국에 지속적으로 보완전력을 제공한다”는 공동선언 문구를 집어넣어 예비역들의 안보불안 심리를 달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다. 이 말을 믿고 한미동맹이 발전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순진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전정부에서 청와대 국방부서의 고위직을 역임한 한 예비역 장성의 말이다.

“우리가 현 정부 첫 국방장관에 기대한 것은 한미동맹이 급격히 변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 안보의 중심적 문제를 한미 간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새로운 전략적 동맹관계로 그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이전정부의 연합사 해체나 전작권 전환에 대한 방침까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 장관은 한 일이 없다. 큰 틀의 국가전략과 동맹발전을 고민하지 않고 야전작전에 함몰된 장관은 장관이 아니다. 영락없는 군 사령관이다.”

한편 11월에 국회 한 토론회에서 국방전문가 홍규덕 교수도 비슷한 말을 한다.

“가치의 동맹, 신뢰의 동맹, 평화구축의 동맹을 내용으로 한 21세기 한미전략동맹의 필요성에는 양국이 합의 했지만 이를 어떻게 진척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밑그림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이미 2006년 SCM/MCM에서 합의한 ‘한미동맹의 비전 공동연구’ 결과보고서에도 한반도, 아태지역, 세계차원에서의 한국군과 미국군의 RMC 즉 역할, 임무, 역량을 분담할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이에 대한 명료한 답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전선 너머 국제관계까지 통찰하는 전략가, 경영자, 정치인으로서의 국방장관은 “전쟁을 억제”하는데 그 임무와 역할이 있다. 그러나 현재 국방장관은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표방하는 합참의장, 야전사령관과 같은 군사 지휘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략적 고민은 ‘연계전력’이라는 이름하에 막연히 미국에 의존하는 기대감 너머로 던져버리고 재래식 지상전에 집중하는 것이 ‘강한 군대’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국회, 기획재정부와 같은 유관기관으로부터 국방부는 사실상 고립되고 있다.


 

육군을 위한 변명

 

한편 국방부가 ‘강한 전사, 강한 군대’를 표방하면서 “전투복 입은 자 전투 위치로”라는 구호를 제기하는데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한 국방부 관계자의 말이다.

“군의 대령이 2600명에 달한다. 그런데 연대장과 같은 전투지휘관을 맡고 있는 대령은 350명 안팎이다. 나머지 대다수의 대령들은 정책부서 참모, 대외기관 파견, 행정부대, 지원부대, 학교기관 같은 곳에 나가있다. 비전투 위치에 더 많은 대령들이 나가있는 것이다. 가고 싶어도 갈 전투위치가 없다. 전투복을 입은 자가 전투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은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다. 따라서 국방조직과 인력에 대한 근본적인 운영체제를 개선함이 없이 전투위치에 있지 않은 장교를 ‘관리형 장교’라고 말한다면 언어도단이다. 장관이 실수하고 있다.”

지난 10월 군 정기인사의 후유증은 너무나도 컸다. 전투 위치에 있는 야전 작전 출신은 대거 진급한데 반해 정책형 기획 장교와 인사, 군수 출신들은 죽을 쒔다. “작전이 아니면 군인이 아니다”라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명박 정부 첫해에 軍心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군 안팎에서 조차 참모의 보고를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하는데 익숙한 장관의 스타일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합참 관계자의 말이다.

“작전에 대해 장관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인지 보고받는 식으로 회의를 진행하지 않는다. 주로 지시하는 것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그런데 그 지시사항을 보면 장관이 군사령관인지, 사단장인지 헷갈린다.”

야전을 중시하는 이 장관의 지휘방침은 이전정부에서의 해이해 진 군 기강을 바로잡는데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행정 군대, 관리형 군대라는 국방의 비효율을 바로잡는데 이 장관은 시의적절한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상희 장관이 훌륭한 군인의 표상이라는데 대해서는 대다수가 이견이 없다. 그러나 장관으로서는? 이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편 이 장관의 국방운용기조를 비판하기에 앞서 육군의 현실을 바로 보자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한 육군 대령의 말이다.

“병력이 감축되고 부대가 해체되는 상황에 처한 육군은 비상사태다. 창군 이래 최악의 인사적체로 우수자원의 장군 진급률도 매우 저조하다. 최근 군인공제회에서 소령 출신 직위 1명을 뽑는데 30명이 몰려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국가가 막대한 투자를 하여 건설해 놓은 군사력이 이제는 개혁의 태풍을 맞아 방황하고 있다. 혹자는 육군이 병력이 남아도는 것처럼 호도하지만 야전에 나가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사려 깊게 배려하지는 못할망정 개혁을 가로막는 주범이 육군이라고 매도하면 곤란하다.”

특히 이제껏 군이 관리형 군대로 기능하면서 야전이 홀대받고 소외되어 온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 장관이 다소 독선적으로 야전 우대 방침을 표방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반론이다.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대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국가안보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 청와대의 ‘무정부 상태’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대다수의 예비역들은 지금의 청와대가 국가안보전략에 관한한 노무현 정부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보수․안보를 명분으로 내걸고 집권한 정권 치고는 실망스럽다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국가차원의 안보전략 없이 국방부가 먼저 정책을 수립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희 장관 체제 하에서 국방부와 합참의 장교들은 쌍코피 터지도록 일했다. 그 결과 한국군 최초로 단독작전을 위한 합동전장 개념을 정립하였으며 극도의 예산압박에도 불구하고 국방을 성공적으로 관리했다. 첫해에 일어난 정책의 난맥상은 과도기적 혼란이며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여론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보다 객관적으로 국방의 공과를 평가해달라는 분위기다.

그러나 안보환경 변화하고 북한의 위협이 변화하는 것이 명확한 상황에서 “현존위협에 대비한다”며 재래식 지상전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국방부의 태도는 설득력이 없다. 이에 대한 조성태 전 국방장관의 말이다.

“장관의 2대 임무는 현존위협과 미래위협에 대한 대비다. 만일 미래 위협에 대한 대비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안보환경 변화는 육군의 사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군 전문가들은 ‘군의 변화’를 주문한다. 한 전문가는 “이제 우리 군은 선진화로 가느냐, 현상태에 안주하느냐는 기로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국방예산 부족, 북한 내부사정과 한미동맹이 더 불확실해져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위기를 관리할 수 없는 정부라면 “이전 노무현 정부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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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