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다 내주고 배신당한 국방부, 침몰한 국방개혁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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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상부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한 정부의 국방개혁안이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 안건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회의 직전에 김관진 국방장관의 애처로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방위는 아예 표결조차 하지 않았다. 임시국회를 앞두고 김 장관은 선거를 앞 둔 국방위원들의 출판기념회에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녔다. 김 장관의 국회에 대한 스킨십, 즉 비공식 접촉만 200회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국회 상정이 무산된 2월 8일에 국방부 일부 장군들은 부아가 치밀러 국회를 일제히 성토했다. 한 장군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혼자 소주만 마셨다”며, “도대체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국회의원인지 의문이다”라고 말한다. 

국방개혁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방부는 여러모로 의원들을 회유하려고 했다. 특히 국방부는 국회에 귀가 솔깃할 만한 파격적인 양보를 했다. 작년 12월에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자 국방부가 “국방개혁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 협조하겠다”는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 법은 소음 피해로 고통 받는 군의 전술항공기지를 이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여 향후 기지이전이 원활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당연히 대구, 광주, 수원과 같은 도심 군 공항으로 몸살을 앓는 국회의원들에게는 이 소식은 복음과 같다. 여기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군 공항 이전에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대구, 광주, 수원의 국회의원들이 정부의 국방개혁에도 협조적이거나, 최소한 반대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철저히 이용당한 국방부


그런데 그는 다름 아닌 군 공항 이전 및 지원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의원은 3명이다. 광주를 지역구로 둔 민주통합당의 김동철 의원은 자신이 14대 국회에서 국방위 보좌관 당시 겪은 일까지 소개하며 “당시에는 통합군 논의에 반대였으나 이제는 그 논거가 사라졌다”며 “이제는 상부구조 개편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수원을 지역구로 둔 민주통합당의 김진표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도 역시 “본인은 국방개혁을 반대하지 않는데 신학용 국방위 간사가 손학규 대표로부터 지시를 받아 처리할 것”이라며 소극적 찬성이다. 김 의원 지역구 역시 군 공항 이전 문제가 이번 총선에서 핫 이슈로 부각되어 있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국방개혁에 대해 찬성 입장이다. 그는 지난해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국방개혁에 유보적인 입장인 같은 당의 김장수 의원과 언쟁까지 하며 국방개혁을 지지했던 인물이다. 김 의원이 “정권 말기에 통과된 국방개혁안을 다음 대통령이 부정하면 물거품이 되니 차기 대권주자 의도가 중요하다”며 “박근혜 대표의 경우 국방개혁에 유보적일 것”이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유 의원이 “박근혜 대표가 국방개혁안에 유보적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김 의원의 말을 반박했다. 이런 논쟁을 의식했는지 김 장관이 최근 박근혜 대표 면담을 신청했으나 박 대표 측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국방개혁 처리가 지지부진하자 각 당 원내대표와 국방위원장, 국방위 간사 5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자고 제안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유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는 군 공항의 소음 문제가 골치 덩어리다. 이 3명의 국회의원 외에 이원종 충청북도 지사 역시 청주 인근에 군 공항을 둔 관계로 유사한 법률을 발의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국방개혁안을 상정하지 않은 국방위원회가 군 공항 이전 관련 법률은 곧바로 상정한데 이어 법안소위를 통과시켜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심의되도록 재빨리 처리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국방부는 철저히 이용당했다. 애초 이 법은 내용상으로도 많은 문제점이 있을 분만 아니라, 설령 통과된다 하더라도 재원이 조성되지 않으면 도심 군 공항 이전은 어렵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다만 공항이전의 요건과 기준을 정립하면서 국방장관에게 대체 부지를 선정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에서 “군 공항 이전의 물고를 텄다”는 과장된 홍보로 이어지고 있어 군 공항 문제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여기에다가 국방부 역시 지난해 연말에 이 법안이 발의되자마자 “국방개혁에 도움이 된다면 협조해 줄 것”이라고 말하며 유사한 법을 제정할 의도를 공표하면서 정치권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 결과 국회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국방개혁에 반대하는 의원을 찾기가 거의 어렵게 되었다. 막강한 재산과 인허가권을 가진 국방부의 위력이 국방개혁에 대한 논의까지 잠재워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국방개혁안은 국방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였다.  


국방부는 민원 해결부

 

국방개혁은 우리나라 국방체제의 문제점과 그 개편방향에 대한 논쟁이라기보다는 ‘이익 거래’라는 이상한 국면으로 진행되었다. 여당은 작년에 국회는 한미 FTA를 단독으로 처리한 이후 정치적 부담을 느꼈는지, 국방개혁은 여야 원내대표와 국방위원장, 여야 국방위 간사로 구성되는 5인위원회에서 합의해서 처리하기로 결정했고, 야당도 이에 응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5인위원회는 열리지 않았고 국방부가 개별 국회의원들을 접촉하며 회유하고 설득하는 일이 이어져왔다. 선거를 앞 둔 국회의원들은 국방개혁 통과라는 카드를 흔들며 국방부로부터 하나라도 더 많은 전리품을 챙기려 했다. 군 공항이전, 군사보호구역 해제, 군사시설 이전 등등 민원도 가지각색이었고, 국방부는 민원처리부로 전락했다. 여기에 국방부가 응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5인위원회를 다른 밀실협상이 대체해 버린 것이다. 가끔 열리는 국방위의 국방개혁 공청회에서 일부 의원은 군정과 군령의 개념도 구분하지 못했고, 겉도는 토론이 지루하게 이어지며 국방개혁은안은 통과도 아니고 부결도 아닌 애매한 상황으로 갔다.

18대 국회 국방위원회의 구성은 애초부터 국방에 대한 전문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역구에 국방관련 민원의 정도에 따라 구성된 느낌이 강하다. 군사보호구역 문제에 민감한 경기북부와 수도권 의원들이 국방위에 수시로 포진되었으며, “군 공항 문제를 처리하려고 국방위에 왔다”고 공언하는 대도시 출신의 의원들도 심심찮게 있었던 것이다. 이러는 동안 정치권 일부 인사들의 가족과 연계된 세력들이 군이 부대 통폐합에 따라 민간에 매각하는 시설과 토지를 사들이는 일이 발생했고, 이들은 국민권익위 등에 “매각된 사격장 부지의 불발탄, 폐타이어 등을 치워 달라”는 민원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군부대가 나서서 부지정리를 해주면 지가가 상승하여 상당한 차익이 발생하는 것을 노린 것이다. 한 관계자는 “정치권과 연계된 인사의 군부대 민원 때문에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겠다”며 정권 말기에 이런 민원이 쏟아진 것을 곱지 않게 말한다. 현재 이런 민원을 제기한 정치권 인사로는 K씨, L씨, S씨, Y씨 등이 꼽힌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 눈길이 쏠리는 국회를 상대하는 국방부는 국회의원의 반대의견만 제압하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에 머물렀다. 국방개혁에 반대하는 예비역들은 언로가 막히자 역시 비공식적으로 국회를 압박했다. 열세에 놓인 예비역들은 ‘비대칭전술’을 구사했다. “공감대가 부족한 국방개혁안에 대한 논의를 연기해 달라”는 지연전술이었고, 여기에 야당이 부응했다. 물론 예비역들 상당수가 반대하는 이러한 지연의 요구는 일견 타당한 것이기도 하고, 일리도 있다. 국방개혁에 비판적이던 예비역들은 그동안 청와대와 보수언론으로부터 정밀타격을 당한 입장이고, 나서서 반대운동을 하기에는 너무나 역량이 취약했다. 두 번째 비대칭 전술은 “예비역들이 반대하니 여당은 국방개혁을 당론으로 정하지 말라”는 압력이었다. 여기에는 여당이 적극 부응했다. 특히 예비역들의 요구에 민감한 군 출신 장성이 즐비한 새누리당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예비역들의 비대칭 전술

선거를 앞 둔 상황에서  국방개혁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애초 없었다. 1990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통합형 군사제도를 표방한 국군조직법을 국회에 제출하자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단식 농성까지 하면서 이를 반대했고 막아냈다. 만약 현재 국방개혁안이 문제가 있다면 이를 낱낱이 밝히면서 확실히 반대해야 하는 것이 야당의 임무이지만 지금의 태도는 아리송하기 짝이 없다. 여당은 정권 말기에 예비역들의 눈치를 부담스러워 하며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으려 한다. 결국 국회의원들에게 속을 다 까발려 준 국방부만 낭패를 보게 생겼다.

국방개혁에 대한 논쟁의 본질은 군 상부구조 개혁을 왜 하느냐는 점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은 군이 군 지휘체계의 문제점의 무엇을 발견하였는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준비하는데 현행 군 지휘체계의 어떤 문제점이 드러났는지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미국은 1986년에 골드워터-니콜스법을 통과시키면서 1981년의 이란 인질구출 실패사건을 비롯하여 베이루트 해병대 막사 폭파사건, 파나마의 노리에가 체포 작전의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냈다. 5년의 논쟁을 거친 끝에 2차 대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노구의 골드워터 의원이 휠체어를 타고 나와 법의 통과를 간곡히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군의 국방개혁 논쟁에는 지난 작전의 문제점이 하나도 드러나 있지 않고, 현행 지휘구조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어떠한 데이터도 없다. 막연한 방향뿐이다. 게다가 국방개혁을 짊어진 정치인은 없고 모두가 기회만 살핀다. 이렇게 되면 설령 국방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그 실행 단계에서 디테일한 영역에서 새로운 문제점이 발견될 것이 자명하다. 그 때 가서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따라서 국방개혁 논쟁은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방법이 문제였다. 개혁의 방향을 도출하는데 충실한 자료와 데이터, 그리고 각 군과 기능의 공평한 참여가 보장되는 여건이 문제였다. 국방개혁안이 실패한 진짜 이유다. 정권이 출범하고 지난정부의 국방개혁을 재검토했다고 하는 청와대와 국방부가 3년 동안 현재와 같은 상부구조 개편을 추진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작년에 307계획을 표방하면서 참모총장이 합참의장 지휘를 받는 상부구조개편안을 발표하는 깜짝 쇼를 했다. 작년 1월에 국방개혁 과제를 검토하고 3월에 이를 발표했으니 두 달 만에 해치운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반대하는 해군과 공군 예비역들은 “육군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개혁안에 반대하는 현역들을 “항명죄로 다스려야” 하며, “참모총장을 3성으로 강등하겠다”는 막말이 청와대로부터 터져 나왔다. 결국 예비역을 설득해야 하는 국방부를 청와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고춧가루 뿌리는 일만 했다. 이렇게 소통이 안 되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국방개혁 논의라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잘못 논의되는 것보다는 논의를 안 하는 것이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게 실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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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