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한국군의 무기체계 소요기획 난맥상 국방개혁

 

                                                                                                    

탑-다운식 무기소요기획 체계의 붕괴,

각군의 소요경쟁에 함몰된 합참의 무능  


오는 2012년은 그 동안 미군에게 귀속되어 있던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로 전환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건군 이래 처음으로 독자적인 작전기획능력을 갖추게 되는 한국군은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군의 작전능력을 뒷받침할 소요기획 분야에 있어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위협에 기반하는 한국군의 소요제기


현재 한국군의 소요제기는 냉전 시절 널리 사용된 위협기반기획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위협기반기획은 운용당사자인 소요군(육, 해, 공군)이 적의 강점과 약점, 획득 프로그램, 의도 등을 평가하고,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구체적 수준에서 세밀하게 개발하여 최악의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전력의 목록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매우 공식화된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는 상향식(Bottom-up)접근으로 무기체계의 ‘성능’이 세밀하게 설정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협기반기획은 오랫동안 많은 국가에서 각 군의 단독작전을 위한 전력획득 프로그램과 예산을 정당화하는 기초로 사용되어왔다. 특히 적과의 대칭적 위협을 기준으로 한 소요기획에서는 각 군의 대응전략수립에 필요한 논리를 명쾌하게 제공해왔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기술의 진보가 가속화됨에 따라 기존의 위협기반기획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한국군은 미군이 2003년부터 소요기획에 적용하고 있는 합동능력통합개발체계(JCIDS)를 일부 수용하여 기존의 소요기획을 보완한 국방전력발전업무규정을 만들게 된다.

보완된 국방전력발전업무규정에 따르면, 합참이 통합적 관점에서 소요를 기획하면 국방부는 국방정책과 예산을 고려하여 소요를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써 각 군별로 이루어지던 상향식 소요제기가 합참에 의한 하향식(Top-down)소요제기로 전환되어 각 군의 상호운용성과 합동성 강화, 국방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제도적 변화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여전히 예전의 위협기반기획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국방전력발전업무규정은 지난해 규정 작업이 끝났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 국방전력발전업무규정은 사실상 깨지고 말았다. 합참과 각 군의 담당자들이 미국의 합동능력개발체계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예전의 상향식 소요기획으로 되돌아가면서 ‘규정 따로 실행 따로’ 움직이는, 각 군이 하자는 대로 하는 소요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군 간 합동성과 상호운용성 향상을 위해 1999년에 만들어진 합동전장운영개념서는 각 군의 개념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사장되어 있으며, 소요분석 역시 비용 대 효과 분석위주로만 진행되고 있다. 각 군의 전력소요를 합동성, 상호운용성, 통합성 등에 기초하여 소요를 기획해야 할 합참 역시 소요분석/평가 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효과적인 소요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아 각 군의 경쟁적 소요제기를 효과적으로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군이 ‘능력(Capability)'에 기반한 전력소요를 정립하지 못한 결과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국방부가 청와대와 국회에 제출하는 모든 중기계획 관련 보고서에는 항상 ’통합성, 합동성, 상호운영성‘을 고려한다‘고 해 놓고 실제로 일은 각군의 너절너절한 무기소요를 전부 나열식으로 망라하는 방식이 여전히 판치고 있는 것이다.   


주먹구구식 소요제기에 병드는 무기도입


이처럼 각 군의 비효율적인 소요제기를 합참이 조정하지 못하면서 각 군의 무기도입사업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무인정찰기 사업이다. 무인정찰기 사업은 공군에서 소요를 제기한 고고도 무인정찰기(HUAV)사업과 중고도 무인정찰기(MUAV)사업, 육군에서 소요가 제기된 차기 군단, 사단 급 무인정찰기 사업이 있다.

이 중에서 고고도 무인정찰기 사업은 미국에서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를 직도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중고도 무인정찰기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연구개발로 사업추진이 결정된 바 있다. 문제는 공군이 요구한 중고도 무인정찰기 사업의 군 요구성능(ROC)이 매우 높다는데 있다. 미국에서 운용중인 중고도 무인정찰기 프레데터보다 높고,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보다는 낮은 단계에서 ROC가 결정된 것이다. 여기에 육군이 추진 중인 차기 군단 급 무인정찰기 역시 ROC가 높아 공군의 중고도 무인정찰기 사업과 중복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공군의 근접항공지원과 육군의 포병전력을 둘러싼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슈 중 하나이다. 본래 공군의 근접항공지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광석화와 같은 전격전 이후 육군을 지원하는 강력한 지원수단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꾸준히 진행되어온 지상군의 포병전력과 항공전력 증강은 공군의 근접항공지원 임무와 충돌을 빚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 육군의 주력 포병전력인 K-9 자주포와 MLRS는 예전의 포병화기에 비해 사정거리가 훨씬 긴 무기체계이다. K-9 자주포는 40Km 밖의 표적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AH-1 공격헬기 역시 장시간 전장에서 체공하며 적시에 아군에게 근접항공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육군에서 추진되고 있는 AH-X사업과 KAH 사업, 공군에서 추진되고 있는 FA-50경공격기 사업은 상호운용성이나 합동성 등의 측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상태에서 소요군의 요구에 합참이 그대로 따라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위의 두 가지 예는 합참 차원에서 각 사업의 필요성을 합동성과 상호운용성을 기준으로 검증하여 소요결정을 하지 않고 각 군의 의사를 소요에 그대로 반영할 경우 수조원의 예산을 불필요하게 집행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전방 축선에는 8중으로 북한 기갑전력에 대한 대응 무기체계가 깔려있다. 대전차 지뢰, 무반동총, 토우, 헬기, 전차 등 그야말로 대전차무기의 전시장이다. 그런데 북한의 기갑전력이 아직도 우리 군보다 우세하다는 맹신에 사로잡혀 우리도 신형 전차, 성능개량 전차를 또다시 도입하고 있고 공격헬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 각 군의 합동성과 상호운용성의 고려가 상대적으로 덜한 무기체계 역시 명확한 분석 없이 소요가 제기되면서 시행착오로 인한 전력화 지연과 비용 증가, 전투력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K1A1 전차의 성능개량사업이 계획되었을 때, 육군은 전차 내부에 냉방기를 장착해야 한다는 점을 ROC에 삽입했다. 사실 여름철 전차 내부의 온도는 한여름의 기온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때문에 장시간 전차에 탑승해 있을 경우 전차 승무원이 더위로 탈진할 수도 있어서 육군의 냉방기 장착 요구는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육군의 요청을 받은 합참은 담당 본부장의 지시에 의해 논리적으로 타당한 K1A1 전차 내 냉방기 장착을 ROC에서 삭제해 버렸다. “군인이 무슨 에어콘이냐”는 고리타분한 말이 덧붙여졌다. 우리의 기동장비는 아무런 냉방장치도 없고 화생방 방호장치도 없으며 군 위성과 연동되는 GPS 체계도 없다. 그저 숫자만 늘려왔지 전장 상황에서의 효과는 뒷전이다. 


작전운용개념 정립보다 무기도입을 우선시


2009년에 2,729억원이 투입되는 신형 K-21 보병전투장갑차 사업 역시 논쟁거리다. K-21 보병전투장갑차 사업을 추진하면서 K-200 장갑차의 개량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적정한지, 적정하다면 소요량에는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으나 사업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K-55 자주포에 사용될 신형 탄약운반차 사업 역시 구형 자주포에 사용하기 위해 신형 탄약운반차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군이 호위함(FF)과 초계함(PCC)를 대체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차기 호위함 울산급 Batch-1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본래 울산급 Batch-1 은 선령이 30년이 넘은 기존의 울산급 호위함을 대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2차 연평해전으로 인한 북한의 위협과 중국․일본의 건함계획에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울산급 Batch-1 은 다양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우수한 전투함의 개념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해군은 잠수함 전력 증강,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등의 문제로 우수한 연안전투함을 확보할 자원이 부족했다. 따라서 울산급 Batch-1의 획득비용을 2,900억 원(무장 포함)에 고정한 상태에서 요구성능을 충족시키는 상향식(Bottom-up) 구조로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 결과 울산급 Batch-1의 1차 설계는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예산상의 문제로 반려되고 선체구조와 스텔스 성능, 무장의 확장성은 떨어지지만 예산이 적게 드는 2차 설계안이 채택되어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연안에서 활동하는 함정이 고성능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연안에서 작전하는데 꼭 필요한 워터제트 추진체계와 함 내 거주성 등이 예산 문제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울산급 Batch-1 호위함은 ‘예산을 위해 전투력을 희생한’ 주객이 전도된 무기체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K-21 보병전투장갑차 사업과 신형 탄약운반차 사업, 울산급 Batch-1 등에서 나타난 무기도입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무기도입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충분한 작전운영개념 검토 없이 주어진 재원에 짜맞추는 방식으로 소요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력화시기도 늦어지고 무기체계의 성능도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합동능력통합개발체계(JCIDS)


위협기반기획에 근거한 소요제기가 안고 있는 문제점 - 합동성과 상호운용성 부족, 과다한 검토시간 등 - 을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미국의 합동능력통합개발체계(JCIDS)이다. 2002년 3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획득체계 개선 지시에 따라 2003년 6월 24일 제정된 합동능력통합개발체계(JCIDS)는 적이 ‘어떻게(how)'위협을 가할 것인가, 그런 적을 억제하고 격퇴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능력기반기획‘의 전형적인 모델로 손꼽힌다.

JCIDS는 ‘네트워크중심프레임워크’를 활용한 능력기반접근으로 미 합참은 2005년에 발간된 JCIDS 운영 메뉴얼에서 JCIDS의 초점을 “합동군이 합동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가지는 것을 보장하는 것으로, 통합되고 상호운용적인 합동전투능력의 필요성”에 맞추고 있다. 이것은 JCIDS가 전략지침으로부터 합동전투수행개념을 발전시키고, 합동시험과 분석/평가를 거쳐, 전략지침 구현에 필요한 대안을 선택, 각 군과 통합사령부의 참여하에 합동능력을 향상시키는 하향식(Top-down)구조라는 것을 뜻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JCIDS는 네트워크중심전(NCW)의 원칙을 적용하여 각 군의 무기체계를 더 큰 하나의 체계(system of system : 복합체계)속으로 통합하는 것을 중시한다. 즉 무기체계, 의사소통체계, 센서를 전투원과 정책결정자, 지원인력에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국이 미사일방어망(MD)을 구축하는 과정은 JCIDS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요격미사일과 탐지 위성 및 레이더, 각 기지를 연결하는 의사소통체계를 한데 묶어 이를 북한과 이란의 탄도미사일 능력에 기초하여 MD 체계를 구축한 것은 JCIDS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JCIDS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 또한 노출하고 있다.

우선 JCIDS에서 강조하는 “능력”의 개념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혼란이 일고 있다. 2004년 미 국방부는 ‘능력’의 의미를 “일련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의 결합을 통해 특정 표준과 조건하에서 바람직한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능력”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개념정의에도 불구하고 JCIDS에서의 ‘능력’이 적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군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전략적 차원에서 볼 때 JCIDS는 적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전술 - 기만, 기습, 비대칭전 - 에 대비하는 것을 강조한다. 2001년 미 국방부의 4개년 국방검토(QDR)에서 언급된 “국방부의 선임 지도자들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기습에 대응할 수 있는 미국의 방어를 위한 새로운 전략수립에 착수해야 한다”는 표현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적의 능력에 대비하여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을 배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에 순수한 군사력 소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적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 능력기반기획의 대표주자 JCIDS는 전통적인 위협기반기획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복잡한 소요기획 체계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하여 한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등의 국가들은 JCIDS를 부분 도입했거나 수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JCIDS가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의 군 전력구조를 기획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하고 불확실한 위협에 직면한 국가에게 JCIDS는 매력적인 소요기획체계이기도 하다.


한국군의 합리적 소요기획에 필요한 6가지


지금까지 한국군은 위협기반기획의 원리에 근거한 소요기획과 소요제기가 이루어지면서 전력화 지연에 따른 무기체계 성능저하, 합동성 및 상호운용성 부족 등의 문제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서둘러 보완하기 위해 능력기반기획 개념이나 미국의 JCIDS를 준비 없이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능력기반기획 개념이나 미국의 JCIDS를 한국군의 소요기획에 접목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능력기반기획 개념이나 미국의 JCIDS를 도입하는데 필요한 준비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우선 합참 중심의 소요기획체계인 ‘합동전투발전체계’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전략기반 문서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와대, 국방부, 합참의 ‘전략지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현 체제는 5년 주기로 「국가안보전략지침서」를 통해 대통령이 안보와 군 통수 지침을 전달하고, 「국방기본정책서」를 통해 5년 주기로 국방부 수준의 전략지침을, 「합동군사전략서」를 통해 3년 마다 합참 수준의 전략적 지침이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지침들은 「국방중기계획」「합동군사전략기획서」「국방연구개발정책서」와 같은 하위문서에 제대로 된 지침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방부, 합참 차원의 전략지침 발표주기가 달라 어떤 때에는 상위문서가 하위문서보다 늦게 나와 하위문서를 보고 상위문서를 만드는 촌극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략지침의 주기를 일치시켜 하향식(Top-down) 체계를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각 군이 요청한 소요를 합참차원에서 분석할 소요분석능력의 강화 또한 필수적이다. 소요기획에 정통한 한 학자는 미국과 한국의 소요분석능력에 대해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JCIDS를 만든 미국도 JCIDS를 잘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JCIDS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났지만 미 합참은 여전히 자체적인 소요기획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각 군에서 파견된 장교들이 소요를 대신 기획한다. 그런데 각 군에서 합참에 파견 나온 장교들의 인사권은 각 군 총장이 쥐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각 군 총장들의 손에서 소요가 제기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 합참은 5년 동안 JCIDS를 적용하려고 노력한 끝에 적어도 소요의 우선순위는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한국 합참은 소요의 우선순위를 분석할 능력도 부족하여 각 군의 소요요청을 그대로 소요제기에 반영 한다”


선진기법에 아무런 투자도 안한다


이에 필자는 한국 합참이 JCIDS를 도입하는데 꼭 필요한 소요분석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고, 위의 학자는 ‘투자’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한국이 JCIDS를 잘 못하는 것은 JCIDS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교육에도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JCIDS 못하겠다’라고 하면 ‘인력과 예산을 줄 테니 해봐라’ 해야지 이론만 던져주면 누가 JCIDS를 하겠나?  담당 인력과 그에 맞는 예산이 있어야 JCIDS를 하고 소요분석능력도 갖출 수 있다. 미국은 끊임없이 담당 간부들을 재교육시켜 새로운 지식을 익히게 하지만 한국은 한번 배우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 미군의 소요기획서가 대학원 논문 수준이라면 한국군의 소요기획서는 초등학생 과제 수준이라고 할 만큼 수준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이다”

청와대나 국방부와 같은 고위 정책결정자들의 의사결정을 도울 ‘모의기반획득’ 도구(예 : 모델링 & 시뮬레이션)의 적극적인 활용도 JCIDS를 도입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다. 전면전과 같은 전투결과와 비정규전, 대량살상무기의 영향 등도 함께 평가할 수 있는 ‘모의기반획득 도구를 통해 미래의 소요를 측정하고 소요제기의 타당성에 대한 분석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요기획에 정통한 한 학자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미군의 소요제기는 모델링 & 시뮬레이션에 의해 소요제기의 논리적 타당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군은 모델링 & 시뮬레이션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모델링 & 시뮬레이션을 잘 모르고, 이를 가르치는 기관도 많지 않아 실제 소요제기 과정에서 모델링 & 시뮬레이션을 잘 쓰지 않는다. 그저 ‘몇대 도태되었으니 도태된 만큼 채워야 한다’는 식으로 소요제기를 하니 어느 쪽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겠는가?”

이외에도 국내외의 기술수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2003년 국방과학연구소가 출간한 ‘국방과학기술조사서’나 국방부 차원의 ‘국방연구개발정책서’는 소요기획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소요기획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핵심기술이 어느 나라 어느 업체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데이터베이스 또한 소요기획 담당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신개념기술시범(ACTD) 기법을 소요기획과 획득과정에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 현대 무기체계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검토와 시험과정에서 더욱 정교하고 엄격한 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 사업관리규정(제442조)에 신개념기술시범에 대한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실행할 인력과 예산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마지막으로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내 방산업체의 연구개발능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지원이 필요하다. 국내 연구개발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지 않는다면 능력기반기획 개념이나 미국의 JCIDS에 꼭 필요한 네트워크중심전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중심전에 필수적인 지휘통제, 감시정찰, 정밀타격 등의 기술은 선진국에서 이전을 꺼리기 때문에 국내 개발을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필자가 언급한 현 소요기획체계의 문제점과 능력기반기획 개념에 입각한 미국의 JCIDS를 도입하는데 필요한 선제조건들은 단기간 내에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전통적인 위협기반기획 원리에 익숙한 한국군의 현실에 능력기반기획 개념에 입각한 미국의 JCIDS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10년 동안 수많은 연구와 토론, 철저한 준비과정을 통해 능력기반기획에 단계적으로 접근해 나간다면 한국군의 능력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 행사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획득체계 개선과정에 1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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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