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막] 남북군사회담 결렬과 문책성 보안조사 사건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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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회담 성사” 훈령 내린 MB,

회담 결렬에 격분, 문책성 보안조사 지시



올해 들어와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이 대통령의 ‘출구전략’이 심상치 않다. 반드시 올해 안에 남북관계에서의 ‘위기’를 ‘안정’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투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과 정부가 어느새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갑작스런 전환은 왜 일어난 것일까? 정권의 진정한 속내는 무엇인가?


김종대 편집장(jdkim2010@naver.com)



회담 의제선정의 의혹들


지난 2월 9일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위한 대령급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되어 고위급 본회담이 무산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외교안보라인과 국방부를 호되게 질책했다. 이 대통령은 “반드시 고위급 본회담을 성사시키라”는 자신의 지침이 회담 전에 하달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회담이 결렬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통령의 ‘회담 성사’ 훈령이 있었음에도 석연치 않게 결렬된 것은 충격적이다. 이 같은 사실은 1992년 9월에 당시의 ‘훈령 조작사건’에 비견된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반드시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합의하라”를 훈령을 평양에 가 있던 남북 총리급 회담의 우리 대표단에게 하달했다. 그러나 당시 안기부에 의해 이 훈령은 묵살되었고, 회담장에 가있던 이동복 안기부장 특보는 “협상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지 않을 경우 협의하지 말 것”이라는 가짜 훈령으로 바꿔치기 하여 우리 대표단은 이산가족 상봉을 결렬시켰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2월의 남북 군사실무회담 결렬이 ▲ 협상 대표의 자질부족 ▲ 첫날 협의내용의 언론 누설로 인해 석연치 않게 결렬되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 협상 실무진 재교육 ▲ 보안누설자에 대한 고강도 보안조사를 실시하기로 하는 등 초강경 조치를 시행했다. 한편 우리 언론은 청와대의 후속조치를 보도하면서도 청와대 내부의 사정에 대해서는 일체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의 취재결과 이 같은 조치들은 회담 결렬에 격분한 청와대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협상실무자에 대한 재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총 22명에 이르는 회담 관계자들에 대한 고강도 보안조사가 이어지는 등 파격적인 후속조치가 줄을 잇고 있다.

회담이 결렬된 사정은 이러하다. 2월 8일 열린 첫날 실무회담에서 우리 측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측의 책임 있는 조치와 도발방지 확약이 있어야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전, 쌍방 군부 사이의 상호도발로 간주될 수 있는 군사적 행동을 중지(군사적 긴장완화 조치)할 데 대하여 논의하자,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만을 다루자고 하는 것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본회담(고위급 회담)에 가면 (천안함․연평도 공격 문제 등) 모든 것이 깨끗이 해결될 것”이라며 대화공세를 계속 했다.

회담이 결렬된 2월 9일 나온 국방부 보도 자료와 북한 <조선중앙통신> 공보 전문을 검토해보면 북 측은 3차례에 걸쳐 의제를 수정하여 제의했음이 드러난다. 남측의 의견을 반영하여 회담 의제를 ▲ 천안호 사건에 대하여 ▲ 연평도 포격전에 대하여 ▲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할 데 대하여로 된 것이 첫 번째 수정안이다. 이에 우리 측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자 북은 “천안호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쌍방이 도발로 간주되는 모든 군사적 행동을 엄금할 데 대하여”로 정하자고 또 다시 수정제안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우리 측이 앞의 입장을 계속 고수하자 북측은 “(본회담이 열리면) 먼저 남측이 주장하는 두 사건을 다루고 그 다음에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할 데 대한 문제 혹은 호상도발로 간주될 수 있는 군사적 행위를 엄금할 데 대한 문제를 협의하자”는 절충안을 또다시 내놓았다. 이러한 3차례 수정제안이 나온 경위를 보면 아무래도 회담이 결렬된 원인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에 대해 남측 국민이 만족할만한 북의 조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데서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설명하는 우리 대표단의 입에서 ‘국민정서’와 ‘진성성’이란 단어가 자주 튀어 나왔다. 국방부는 ‘대화’ 보다는 북한의 ‘책임 있는 행동’이 우선이라는 입장이 변치 않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한편 첫날 협상에 임하면서 북한 대표단은 우리 측의 대표단 구성에도 극도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군사실무회담이면 군인이 나와야 하는데 여성인 정소운 통일부 회담1과장이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 자체가 눈에 거슬린다는 반응이었다. 북 대표단들이 정회 시간에 “저 여성 애가 누구냐”는 수군거리는 소리까지 우리 측에 들리기까지 했다.

한편 문상균 대령을 비롯한 우리 대표단은 회담 내내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의 주범인 부 군부에 대해 ‘까칠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북 측은 <공보>를 통해 “회담이 끝나면 배웅해주던 예전의 관례조차 남측 대표는 무시하는 결례를 범했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대화 자체를 성사시킬 수 없는 협상단의 태도가 청와대까지 자극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이 대표단에 대해 청와대 지침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문책성 보안조사’로 이어진 배경이다. 결국 우리 협상 대표단은 북한과 청와대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이상한 국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중 정상회담과 국무부 부장관


청와대와 이 대통령이 ‘천안함 출구전략’으로 가는 조짐은 지난 해 말부터 나타났다. 작년 11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은 내외신 회견에서 “(대화의) 제일 중요한 조건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여부”라며 천안함 사과 문제를 6자회담 재개와 직접 연계하지 않을 방침을 시사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정부 당국자들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대화 재개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남북대화 재개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이 나온 때는 올해 1월 1일 신년 좌담회. 이 대통령은 “필요하면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뒤이어 1월 20일 출입 기자단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북한과 진정한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한국은 그러한 자세가 돼 있다”고 말했다. 2월 9일에 남북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되고 나서도 이 대통령의 대화 퍼레이드는 계속되었다. 2월 20일에 집권 3년을 맞아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북악산을 등반한 이 대통령은 “(북한과) 진정한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한국은 그러한 자세가 돼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핵을 포기하고 화해·협력하자고 제안하면서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반드시 주목할 것은 이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강조하면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북대화의 선결조건이 두 사건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이 담긴 ‘책임 있는 조치’라고 말하는 국방부와는 사뭇 다른 맥락이다.

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대화 쪽으로 경도되는 일차적 배경은 1월 19일 워싱ㅊ턴에서 열린 열린 역사적인 오바마-후진타오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은 탈냉전이라는 과도기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새판을 짠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 전쟁위기 해소 방안과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위기가 재발되지 않도록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그 합의사항은 ▲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매우 중요함을 지적하고 한반도 문제 대한 미․중의 면밀한 협조의 지속 ▲ 남북관계 증진의 중요성, 구체적으로 남북대화의 중요성 지적 ▲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 지적, 9.19공동성명의 비핵화 목표 달성과 완전한 이행의 필요성 강조 ▲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 표명과 6자회담 조속한 재개 요구였다. 워싱턴 미중정상회담을 마친 후 미국은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을 한국에 보내서 미중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알려주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한이 북한과 협상에 나서도록 강력히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한미양국은 천안함 사건의 해결과 6자회담 재개를 ‘연계’하였던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고 대화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6자회담 개최 전에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형태의 ‘3자회담’을 여는 방안을 정부에 제시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이 같은 미국의 제안은 2006년 11월에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남․북․미 3자회담’을 제안한 것에 비견되는 매우 파격적인 입장 전환이다.



청와대, 내년 핵 정상회의에 올인


청와대가 대화를 재개하여 남북관계를 올해 안에 안정화시키겠다는 의도는 내년 정국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통해 굳어지고 있다. 내년 4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는 작년의 G20회의에 이은 또 하나의 외교적 쾌거로 평가되고 있다. 작년의 1차 정상회의에서는 47개국 정상이 참가했으나 내년 4월에는 50개 주요국의 정상들과 유엔·EU등 주요 국제기구 수장들이 참석하는 지구촌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가 대한민국에서 열린다. ‘G50'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세계 최대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정부는 벌써부터 경기도 한 도시를 개최지로 선정하고 준비단을 편성하는 등 발 빠른 채비를 하고 있다. 그 준비상황은 일체 외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청와대가 이 회의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대목이 바로 남북관계다. 이 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북한 비핵화’이기 때문에 서울 회의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올 공산이 크다. 더군다나 북한이 강성대국을 완결하기로 한 2012년에 4월로 예상되는 개최 시점은 4월 15일이 김일성 탄생 100주년과 거의 겹쳐 있다. 국제적 고립에 처한 북한이 3차 핵실험이나 경수로 재가동 등 전략적 단위에서의 핵 도발 가능성도 있지만 재래식 군사위협으로 남한을 흔들 가능성도 있다는데 청와대의 고민이 있다. 또한 국회의원 총선 직후로 국내정치에서도 격동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내년 4월 이전에, 가급적 올해 안에 남북관계를 반드시 안정시켜야만 하는 절박한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 대통령이 남북 대화 재개에 기대를 거는 명확한 이유가 드러난다. 우리 사회가 장기간 북한과의 긴장을 감내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국제회의도 지장을 받고 3년 후 인천에서 개최될 아시안게임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도록 하는 결정적 걸림돌이 바로 남북관계다.

이에 청와대는 최근 미국과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을 앞두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북한 비핵화 문제를 정상회의 의제로 올리지 않는 것으로 한미 간에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북한 대표를 이 회의에 초청하는 방안까지 청와대 일각에서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 같은 의사를 대북 비밀 특사를 통해 북한에 전달하는 방안까지 수립했다.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한 사석에서 남북 물밑접촉 사실을 시인하면서 “이재오 특임장관이 향후 대북 특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여 좌중을 놀라게 했다. 특사를 통해 북한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명박 정부의 집권 말기에 남북관계의 안정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사항과 더불어 북한이 남북대화에 성의만 보여준다면 식량지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무 부처들의 변함없는 정서


이상의 상황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본격적인 천안함 출구전략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처럼 단순치 않다. 지난해 5월 24일 발표한 우리 정부의 대북조치가 아직도 유효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명한 ‘단호한 대북조치’를 우리 스스로 철회한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적어도 국방부와 같은 실무 부처들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따른 작년 5월의 대북조치의 연장선 위에서 남북관계를 다루고 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기자에게 “북한이 최근 우리에게 대화하자는 것은 배고프니 돈 달라는 것 아니고 무어냐”며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일축했다. 특히 우리 군부는 북한의 대화공세는 경제지원을 바라는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데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집단의식이 너무도 확연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청와대 훈령이 있었더라도 일개 대령이 북한과 원만히 협상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일은 과거에도 비일비재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앞 둔 6월에 열린 6차 장성급 회담 당시 회담 진행 장면을 지켜보던 통일부 관계자가 청와대로 달려가 백종천 안보실장에게 “국방부의 판을 깨는 태도를 통제해 달라”고 읍소하던 장면과 유사하다. 역사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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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