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천안함, 무너진 국방개혁이 초래한 이상한 패배 기고

 [창작과 비평사 간, '천안함을 묻는다(2010년 4월)]

천안함, 무너진 국방개혁이 초래한

아주 이상한 패배


합동성 토론회 날 무너진 합동성


지난 4월 26일 오후 1시, 대전의 육군 교육사령부 대강당.

이상의 합참의장이 수개월 전부터 야심적으로 준비해 온 합동성 강화 대토론회에 육․해․공군 총장을 비롯한 각 군의 주요 작전 직위자들과 합참의 전략발전본부 관계자, 미 합동전력사령부(JFCOM)의 후버 부사령관, 한미연합사 작전 직위자, 국내의 다수 군사전문가 등 약 150명이 모여들었다. 이상의 합참의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이번 토론회는 합참 주도하에 각 군의 전력을 어떻게 통합운용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합동성(jointness)' 강화 방안’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1시에 시작된 1부는 권태영 박사(한국전략문제연구소 자문위원)가 ‘우리 군의 합동성 강화 실태와 발전방안’에 대한 기조발제와 후버 부사령관의 ‘미군의 군사변혁 및 합동성 강화 사례’ 발표로 이어졌다. 이어 2부에서는 ▲ 우리 군의 합동성 실태와 발전방안, ▲ 합동군사교육훈련 및 인사제도 발전방향, ▲ 합동전투발전 및 합동실험 발전방향 등을 주제로 분임별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합참 전력발전본부가 주도가 되어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 가장 논란이 된 대목은 앞으로 합참이 전력에 대한 소요를 실험․검증하고 합동직위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권한이 대폭 강화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육․해․공군 총장의 기득권이 침해되는 예민한 사안들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민구 육군총장, 김성찬 해군총장, 이계훈 공군총장의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군령에 전념해야 할 합참의장이 군정의 영역까지 넘보면서 각 군 총장들을 불러 모았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을 터. 양병(군정)과 용병(군령) 기능이 엄격히 분리된 한국군에서 이와 같은 토론회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 군은 이미 전 세계 군대가 현대적으로 변혁된 군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핵심 의제라 할 수 있는 ‘합동의 문제’를 군 수뇌부가 모여서 단 한 차례도 논의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군은 범군적 차원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목표가 없는 군으로 기능하고 있는 바, “대한민국에는 국군이 없고, 오직 육․해․공군 만 있다”는 비아냥마저 팽배했다. 이날 토론에 대한 불만은 김성찬 해군총장으로부터 가장 먼저 표출되었다.

“나는 합동성을 강화한다는 대의에는 찬성하지만 한국군이 자칫 물오리가 되자는 얘기처럼 느껴진다. 물오리는 물에서 헤엄도 치고 땅 위에서 걸으며 공중으로 날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이런 군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로 합동성이 얘기되어서는 곤란하다. 물에서는 상어처럼, 땅에서는 호랑이처럼, 공중에서는 독수리처럼 싸우는 군이어야 한다. 즉 각 군의 전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합동성이라는 명분으로 다 섞어놔서 결국 물오리가 되자는 얘기는 아닌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

뒤이어 한민구 육군 총장은 합동성을 명분으로 착수된 합참의 2단계 조직개편으로 전력발전본부가 신설되었으나 합동직위에 육군의 비율이 너무 낮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범 국방차원의 통합과 합동을 강조하는 합참과 각 군의 전문성과 고유성을 주장하는 각 군 본부 사이에서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졌다. 어쩌면 총장들은 의장이 이런 일로 자신들을 불러 모았다는 것 자체가 비위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이상의 의장은 ‘창군 이래 최초의 토론회’라며 애써 합동성 구현의 대의를 강조했으나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전력발전본부장인 박정이 중장은 공식적인 토론회에서 합의를 이끌어 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 비공식적인 소통이 필요했다. 이날 토론을 마치고 육․해․공군과 한미연합사 3성 장군급 이상 직위자들은 별도의 만찬이 계획되었고, 이튿날인 토요일 휴무에는 각 군 주요직위자들과 골프 회동도 준비되어 있었다. 서둘러 토론은 정리되었고 참석자 중 주요직위자들은 오후 6시 만찬이 개최되는 유성의 계룡스파텔로 서둘러 자리를 이동했다.

우리 군의 핵심 직위자들이 이처럼 만찬과 다음날의 한가한 휴일의 골프회동을 기약하며 한 자리에 모여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군사 대비태세의 ‘취약시기’가 되고 말았다. 비공식적인 소통과 친선을 도모하는 동안 서북 해역의 어두운 수중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초유의 비상사태가 다가오고 있었다.

각 군의 의기투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만찬을 주재한 이 의장은 술잔을 높게 치켜들며 건배를 제의했다. 3시간이 채 안 되는 만찬을 마치고 일일이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난 합참의장이 상경하기 위해 서대전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22분.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두 동강 난 바로 그 시각이었다.


    

합참, 고속정 근접 접근을 지시


9시 27분에 고속철(KTX)에 몸을 실은 이 의장은 휴식을 취했다. 이 의장이 천안함 침몰에 대한 최초보고를 받은 시각은 기차가 거의 서울에 도착할 무렵인 10시 11분경이었다. 이때는 이미 9시 45분에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사건을 보고받은 합참이 청와대 위기상황실로 사건을 보고한 지 26분이 지난 시점이다. 또한 10시에 청와대가 안보관계장관회의 소집을 결정하고도 11분이 지난 시점이다. 사건 발생 이후 49분 간 군 최고지휘부가 공백이었던 셈이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합참의장보다 3분 더 늦게 보고 받은 점을 고려한다면 청와대가 위기관리체제로 전환된 시점에서도 오직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만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정상적 머리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건의 초동 단계에서 이러한 ‘지휘의 공백’은 우리 안보태세에 있어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은 국회 국방위에서 “전쟁 나면 한 시간 뒤에 보고 받을 거냐”며 국방부를 매섭게 질타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러한 보고지연을 “합참 지휘통제반장의 보고착오로 인한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합참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실이라면 이러한 해명에 고개를 젓는다.

합참에서 주요 직위를 거치고 전역한 한 예비역 대령의 말이다.

“합참의 지휘통제실 책임자는 잘 진급이 안 되는 자리다. 그러나 대체로 여기에 근무하는 실장은 자신도 언젠가 합동작전과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죽어라고 일한다. 그의 첫째 임무가 바로 보고 철저다. 오직 그걸 잘하기 위해 근무하는 지휘통제실장이 보고에 태만했다면 누가 이걸 믿겠는가? 이건 필경 하급자에게 뒤집어씌우기가 아닌지 의혹이 생긴다.” 

사건 발생 자체가 보고되지 않았으니 사건의 원인을 짐작케 하는 중요정보가 해군에서 합참으로 보고되지 않은 것은 불문가지다. 감사원은 5월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직무감사를 하면서 ‘어뢰 피격’에 대한 천안함장 최초보고와 속초함장의 ‘반잠수정 보고’, 해안초병의 ‘폭발음 청취’등 긴급한 중요보고가 거의 전부 합참에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하였고, 6월 10일 감사결과 발표에서 이를 공개했다. 해군의 2함대사령과 작전사령부가 중요정보를 대부분 숨기고 합참에는 단지 “무언가에 맞은 것 같다”, “(천안함에) 파공이 형성되어 ‘50% 침수되었다’, ‘60% 침수되었다’”라는 단순한 보고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고 청와대․국방부․합참은 사실상 북한 공격 가능성을 배제한 ‘좌초설’로 경도되었고, 이는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이 다 되는 6월말 현재에도 합참과 해군 간에 갈등의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상적인 소통의 부재는 합동성의 기본가치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합동성이란 무기체계나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 즉 소프트파워의 핵심인 문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인데 한국군의 정보작전에서 바로 이것이 결여된 것이다. 모처럼 합동성을 증진하자고 군 수뇌부가 결의하는 날 무너진 합동성은 우리 군에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천안함 사건을 처리하는 군 당국에 대한 국민적 의혹과 질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증폭되었다.

그러나 필자의 취재 결과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 직후부터 현재 이르기까지 우리 군의 작전지휘에는 더욱더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지휘한 합참이 스스로 합동성에 대한 이해 결여와 부적절한 작전지휘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각 군에 합동성을 말하기 전에 합참 스스로 합동성 구현을 위한 인력구조를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천안함 사건을 지휘하는데 심각한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다.

바다에 대해 잘 모르는 합참이 무엇을 해군에 위임하고, 무엇을 지휘할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애초 불가능했다. 한편 교전이나 다름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공군 전투기 편대도 사건 발생 1시간 14분이 지난 밤 10시 36분이었다. 긴박한 사태에서 각 군의 가용전력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모습이 보여 지지 않았는데, 이것도 바로 합동성의 결여다.



두 동강 난 정보본부, 실종된 핵심정보


합동성이 붕괴된 사연에는 보고 및 지휘체계 만이 아니라 정보와 작전의 ‘부적절한 관계’도 빼 놓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이번 사건에 동원된 북한의 수중무기의 종류와 침투 및 도주경로 등 군사사항에 대해서는 여전히 ‘판단’과 ‘추정’에는 의존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 단지 “사건 직전 2~3일 전 두 대의 잠수함이 비파곶에서 출항했다가 사건 2~3일 후에 귀환한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사라졌다 나타난 잠수함이 이번 도발의 주범인지도 알 수 없다.

한편 북한 잠수함 정보는 전적으로 미군의 위성정보에 의존하는데 실제로 사건이 발생한 26일 전후, 즉 25일부터 28일까지 미국이 제공한 군사정보는 지극히 모호하다. 북한 주요 잠수함에 대해 다른 시기에는 잘 관측되던 것이 유독 이 4일 간만 “시계 불량으로 관측불가”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전후에 ‘정보공백’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한편 6월 20일 민군합동조사단 발표 이후에 합참 일각에서는 “북한 잠수함이 사건 직전에 남하했다”는 미확인 정보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어 관심을 끌었으나 이마저도 ‘추정’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주한미군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사전에 경고가 있었고, 분명히 예방 및 차단이 가능한 사건이었다”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년 11월 대청해전과 올해 1월 북한 해안포의 사격 훈련 전후의 정보이고, 정작 사건 발생 전후의 군사정보에 대해서도 미국은 일체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군의 공식 발표만 본다면 북한이 잠수함을 동원해 도발할 징후는 전혀 없었고, 그럴 가능성과 개연성도 인정되지 않았다. 사건 당시에 잠수함이 온 것도 몰랐고, 발사된 어뢰는 탐지되지 않았으며, 교전 상황으로 간주했음에도 도주하는 적도 발견하거나 차단하지 못했고, 결국 아무런 특이동향은 발표 이후에도 드러난 것이 없다. 당시 사건이 일어난 해역 인근에 훈련 중이던 해군의 이지스함과 구축함, 초계함이 배치되어 있었고, 사건 발생 이후에도 대잠 링스헬기, P-3C 해상초계기, 금강․백두 정찰기, 백령도 인근에 배치된 레이더 등 이중삼중으로 감시전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주한미군 대변인이 밝힌 대로 사건 발생 시점에 서해에서 한미연합 ‘대잠수한 훈련’이 진행되던 정황을 고려하면 주한미군을 통해 군사위성정보, 최첨단 스텔스 무인정찰기 센티널(RQ-170) 등 첨단 정보전력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이 무인정찰기는 작년 말에 북한제 무기를 실은 그루지야 수송기를 공중에서 전자적으로 스캔하고 전자적 압박을 가해 태국에 불시착하도록 한 최첨단 정찰장비다. 연어급 북한 잠수함이 이번 공격에 투입되었다면 수중 8노트 속력으로는 45km 이상 떨어진 비파곶에 직선으로 가도 3시간 이상 소요되고 우회한다면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어떤 징후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완전한 ‘정보공백’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5월 15일에 찾아낸 물증, 즉 북한 어뢰 추진부로 추정되는 파편을 근거로 작전을 거꾸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미 정보공조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상시적 공조체제다. 과거 자료를 기준으로 한다 해도 미국은 일명 ‘헬멧’으로 불리는 군사위성사진을 한국에 2만5000장 이상 제공하는데, 그 사진의 총 가치는 1년에 3억불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 사진을 기초로 북한 후방의 주요 기지 동향을 연중 감시할 수 있고 그 외에도 우리의 금강․백두 정찰기는 북한의 의도와 동향을 관찰하는데 톡톡히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 정보당국은 백두정찰기 추가도입을 작년부터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제공하는 ‘정보 우산’과 한국의 ‘자주정보력’이 융합되면 한반도의 군사정세를 관리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 즉 ‘지식의 힘’이 창출된다. 우리가 얼마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비하느냐에 따라서는 분명 천안함 사건과 같은 도발은 사전에 예방이 가능하고, 또 예방에 실패했다 할지라도 정보․작전 태세는 신속하게 가동되어 도주하는 북한 잠수정에 대한 추적, 북한의 도발정황과 증거에 대한 추가 수집이라는 성과를 내와야 했다. 그러나 거짓말같이 이번 사건 발표 전후에는 그런 정황이 없는 완벽한 진공상태에서 해군 고위관계자들이 “잠수함 들어오는 것은 못 잡는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 물론 잠수함 탐지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바로 옆구리에서 어뢰를 쏘고 도주하는 잠수함가지 못 잡는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팩트


이러다보니 불가피하게 초기단계의 군 발표와 5월 20일 민군합동조사단 발표 사이에서는 이전의 진술을 뒤집는 새로운 ‘팩트’도 쏟아졌다. 실제 목격된 ‘하얀 섬광’이 물기둥으로 비약했고, 처음에는 천안함 생존자들이 달빛이 비치는 찰랑이는 물결 밖에 본 것이 없다더니 이번에는 ‘물방울’이 튀었다고 합조단은 발표했다. 합조단의 5월 20일 중간발표는 여러모로 논란거리다. 우선 물증이 발견된 지 단 5일 만에, 무엇이 그리 급해 발표를 하였는지, 물증에 대한 물리․화학적 분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정’과 ‘판단’에 의한 발표가 나왔고, 단순한 ‘추정’만으로 북한 잠수정의 침투경로와 사용된 무기의 대략적인 성능이 제시된 것이다. 아마도 지방선거 선거운동 개시일 이전에 발표한다고 시간에 쫓긴 것으로 추정되나 논리적 엄밀성과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선행되지 않은 발표였다는 비판에 직면할 소지는 처음부터 매우 농후했다. 게다가 일부 분석의 오류, 즉 합조단이 어뢰공격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은 합조단 스스로도 추후에 번복을 하는 등 난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편 이제껏 존재조차 몰랐던 북한의 신형 스텔스 잠수함이 등장했다.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북의 수중무기는 언제, 어떻게 수집된 정보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또한 북이 어떤 연습과 훈련을 통해 신출귀몰한 작전을 성공시킨 것인지, 북한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준비되지 않았다. 우리가 무능한 것인지, 북한이 탁월한 것인지, 정보의 총체적인 혼란과 모호성이 고조되고 있다. 클라우제비치가 「전쟁론」에서 말한 ‘전장의 안개와 마찰’이 오히려 짙어지는 형국이다. 만일 그렇다면 엄청난 국방예산과 동맹국 지원까지 등에 업은 우리의 국방에 있어 ‘징후경보수집체계’는 총체적인 비효율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충격적인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전인 작년 초에 기존에 합참에 설치된 정보본부가 전격적으로 해체되어 국방부장관이 직접 관할하는 국방부정보본부와 합참 작전본부가 관할하는 정보참모부로 이원화되는 등 군사정보 수집 및 판단기능이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합참의 정보본부는 1990년 합참 창설 이래 20년 동안 그 역량을 발전시키며 여러 신호․영상․인간 정보를 융합시키는 최고의 군사정보기관으로 합참에 설치되고 유지되어 왔다. 1999년에는 그간 분산되어 있던 군 정보부대의 지휘권을 정보본부로 통합하면서 미국의 국방정보국(DIA)에 비견되는 군사정보의 최고기관으로서 그 위상을 확대해왔다. 그리고 지난정부의 국방개혁 2020에서는 자주정보력의 핵심인 금강․백두 정찰기, 조기경보기, 무인정찰기 등을 통합 운용하는 ‘전략정찰부대’의 창설까지 예견되는 등, 미래 자주정보력의 심장이자 엔진인 정보본부의 위상은 더욱 제고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8년에 전임 이상희 국방장관은 돌연 이러한 전략 정보기능의 확충을 백지화하고 기존의 정보본부 자체를 해체시키는 합참 조직개편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조치는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도입 백지화다. 2008년 4월에 워크숍 참석차 계룡대를 방문한 이상의 전 장관은 정보본부가 공군에 배치하려던 이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을 취소하는 대신 육군 사단이 운용하게 될 저성능의 중고도 무인정찰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한다. 전형적인 육군 편중 정책으로 향후 한국군의 자주 정보력 확충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계룡대에서 이 장관은 “국방개혁 2020에서 표방한 미래 핵심전력은 미국에 의존한다”며 이를 일컬어 ‘연계전력(bridging capability)'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우리가 글로벌호크를 사지 않으면 미국이 배치하지 않겠느냐”는 순진한 믿음도 드러냈다.

그 직후부터 이 장관은 지난정부의 국방개혁 2020에 담겨있는 합참 조직개편안을 수정하기 시작하여 2008년 하반기에는 그 밑그림을 완성한다. 여기에서 바로 기존에 합참에 설치되어 있던 정보본부를 전격적으로 해체하되, 2성장군인 정보참모부를 합동작전본부장 밑에 위치시킨다. 합동작전본부는 사실상 한국군 합동사령부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J2인 정보참모부를 참모조직으로 거느리게 된 것이다. 반면 기존의 정보본부장은 합참의장이 아닌 국방부 장관이 통제하는 구조로 전환하여 합참과 분리된다. 이렇게 해서 정보본부는 마치 천안함처럼 두 동강으로 쪼개진다.

이러한 합참 조직개편안은 2008년 말에 본격적으로 실행되어 2009년 4월에는 현행 조직체계로 재편된다. 그런데 이 당시 합참의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태영 현 장관을 비롯한 합참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당시 김태영 의장은 정보기능의 위축을 우려하며 이 장관의 합참개편 의도를 반대하였으나 경기고와 육사 선배인 이 장관의 위세에 밀려 뜻을 관철하지 못하고 결국 끌려 다녔다”고 말한다.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기능해야 할 정보가 합참에서는 사실상 작전에 종속되어 객관성이 침해되고, 정보라인 지휘구조가 이원화되면서 지휘문란의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서 천안함 사건을 재구성하는 한국군의 정보력은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그것이 예전의 군 특유한 예리한 정보판단이 천안함 사건에서는 느껴지지 않은 이유다.

한편 작전 라인의 운용실태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현재 합참의 작전지휘 계통을 보면 합참의장(육사 30기), 합동작전본부장(육사 32기), 작전참모부장(육사 35기), 작전처장(육사 38기), 합동작전과장(육사 41기)로 주요 직위자 전원이 육사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통상 이 5개 직위가 현행 작전을 지휘하는 핵심 라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정군에 완전히 편중된 현 지휘구조는 합동성과 동떨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합참 작전참모부는 이 직위 외에 대령급으로 해상작전과장, 공중작전과장, 통합방위과장 등을 운용하고 있으나, 이들은 주로 자기 분야에만 정통하지 각 군 간의 협조된 합동작전은 엄연히 합동작전과 소관이다. 이번 사건의 초기에 언론브리핑을 도맡아 한 이기식 준장은 해군 출신(해사 35기)인데, 그는 현행 작전을 직접 지휘하는 계선에서 벗어난 정보작전처장이다. 작전의 핵심 직위자들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계선 밖에 있는 해군 출신인 이기식 준장을 앞세운 것이다.

한편 위에서 거명한 작전의 주요 직위자들이 육․해․공군 합동작전에 정통한 합동작전 직위 출신이 아니라 대부분이 육군 야전 작전참모 출신이거나 육군본부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이상의 합참의장은 영관급 이후 국방부와 합참의 정책직위 경력이 전무하고 오직 야전 사단, 군단, 군사령부에서 잔뼈가 굵은 육군 야전파 군인이었다. 전임 김태영, 이상희 의장이 합참과 국방부 핵심 직위에서 경력을 쌓은 것과 대조적인 경력을 갖고 있어 부임 당시부터 의외의 인사로 거론되었다.

합동작전본부장인 황중선 중장은 합참에서 작전처장을 역임했고 연합사에서 작전차장을 역임한 유일한 작전통으로 그나마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 외에 작전참모부장, 작전처장, 합동작전과장의 경우 합동작전과 관련된 근무경력이 없는 것으로 발견된다. 물론 경력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천안함 사건을 잘못 처리했다는 원인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에서도 드러난 핵심 문제, 즉 다른 군 사이에서 합동을 도모하기 위한 ‘존중과 배려’의 기풍이 시라지고 ‘기만과 ‘은폐’의 분위기가 팽배한 이유가 바로 비슷한 경험의 야전 육군 출신들로 작전 직위가 독식된 결과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단사고(group thinking)'에서 연유된 것임을 간과하기 어렵다. 그 결과 합참의 작전 라인과 해군 사이에 상대방의 전문성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원 감사 이후 이들 간의 불신과 비방은 더욱더 심화되었다.



거꾸로 가는 국방개혁


이러한 합동성의 결여는 우리 군의 작전수준을 지상군 작전으로 격하시킨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합동 작전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다. 악기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거대한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지휘자들은 모든 악기에 정통해야 하는데 현재 합참의 구조는 바이올린 주자가 대신 나서서 지휘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악기의 효과음은 제한되고 특정 악기의 독주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현재 천안함과 같은 비상사태에서 합참 작전본부는 국가 위기관리 본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군사정세에 대한 통찰력과 국가 위기관리 차원에서의 현 군사력의 효과를 최대한 발휘하는 수준 높은 합동작전이 나와야 한다. 그러한 노력과 구상과 계획을 입안한 핵심역량이 현재 합참 작전본부에는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이는 작년 6월에 국방부가 지난정부의 ‘국방개혁 2020’을 대폭 수정한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재가 받던 당시의 취지와 비슷하다. 국방부는 “향후 남북한 간 전쟁은 대규모 지상군 교전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해․공군 전력을 삭감하고 육군의 전차, 장갑차, 자주포, 무인정찰기와 같은 지상 기동․화력분야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이 당시부터 육군본부를 중심으로 “지난 좌파정부 10년 간 국방개혁은 해․공군에 편중되었다”는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공공연히 거론되었다. 당연히 국방개혁 수정의 방향은 과거 육군 야전 중심으로 회귀하려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던 것. 이러한 기조는 육군의 야전사령부 작전참모 출신들이 대거 합참에 진입하면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인력구조는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드러냈다. 합참의 해양 작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작전 양상을 설명하면서 해양에 적용되는 ‘해역’, 또는 ‘수역’이라는 말 대신 ‘지역’이라는 표현하는 구사한다든지, 구조작전 시에 고속정을 침몰 직전의 선수로 붙이라고 지시한 일, 지상에서의 순찰과 다른 ‘무작위 초계활동(random patrol)’이라는 해군의 초계활동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설명 자료를 작성하는데 애로를 겪은 일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백령도 일원의 군사정세를 정확히 이해하고 비상사태에서 각 군이 갖고 있는 특성과 장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기반 위에서 어떻게 작전의 판을 짤 것인지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각 군 간의 소통 및 실행력의 결여, 즉 합동성이 결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 구조 작전 중 해군의 핵심전력 대부분이 접적지역이 백령도 인근에 대거 집결하여 북한에 노출되는 대비태세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이명박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백령도 방문으로 대비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할 해공군의 핵심전력이 비정상적으로 경호작전에 투입된 일 등등, 이번 작전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특히 합참은 작전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끌려 다니는 존재였다. 작전의 중심과 목표는 무엇인지, 통찰력 있게 각 군을 지도하는 군사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합참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이와 같은 비정상적 인력구조에서 해군이 현재 합참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은 상당한 것으로 보여 진다. 해군은 사건 초기부터 정상적 지휘계통과 별도의 ‘해군 핫라인’을 가동시켰다. 청와대 국방비서실에 근무하는 해군 대령에게 사적으로 사건 발생 사실을 통보하여 결과적으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보다 대통령이 먼저 사건 발생 사실을 알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해군의 사적 라인이 공식 라인보다 더 신속했던 셈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 김성찬 해군 총장, 박정화 해군 작전사령관, 김중련 합참차장이 모두 해사 30기 동기생이다. 총장 부임 후 일주일 만에 벌어진 천안함 사건으로 후속 인사가 연기되자 졸지에 해군 핵심 지휘라인이 진급의 경쟁자였던 동기생으로 채워져 있다. 천안함 사건이 작전사령관과 합참차장의 ‘정년 연장’에 기여한 셈이고, 이로 인해 당분간 해군은 비정상적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은 해군 총장이 국회와 언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현장에 나가 현장 지휘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거듭 연결된다. 해군의 주요 직위자들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아무리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총장은 총장 역할이 있는 것인데, 총장인지 작전사령관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이러한 부적절한 인력구조에서 현재 해군에서는 이 난국을 타개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체제가 최근 거듭되는 해군의 링스 헬기 실종 및 불시착 등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데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 군령과 군정 사항이 혼재되어 있고, 사건에 대한 성격 진단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채 우왕좌왕했던 혼란이 천안함 사건 이후에 더 많은 인명손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발견되는 것이다. 

바로 총체적인 무능력이다.  

한편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합참의 작전예규 변경, 서해상에서의 교전수칙 변경 등 예민한 문제를 처리하면서 서해 NLL 일원의 군사정세의 변화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는 전략적 통찰력이 필요했었다고 주장된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 대청해전 이후 해안포 사격 훈련 등 과거와 다른 ‘비대칭적 대결태세’로의 변화를 모색해 왔다. 따라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새로운 무력충돌의 위험이 고조된 상황에서 과연 서해 일원을 과거와 같은 양상으로 방위할 수 있겠느냐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했다. 한 예비역 육군 대령의 설명이다.

“우리가 지․해․공 전력을 압도적으로 동원하여 응징하겠다는 태세만 갖추면 북한은 스스로 굴복할 것이란 안이한 인식을 갖고 이 문제를 접근한 것은 아닐까? 급기야 이번에 원인불명으로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태를 겪었지만 현재 합참의 역량으로 그 교훈이 제대로 토론이나 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이러한 합참의 문제점 지적은 주로 군 내부로부터 표출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필자의 입장은 이와 다른 점이 있다. 만일 사건 발생 당시에 합참이 불완전한 정보를 근거로 ‘교전상황’이라고 판단하고 북한의 잠수함기지 공격까지 포함하는 전면적 응징․보복을 결심했다고 한다면, 이는 지난 한국전쟁 이래 6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전쟁의 위기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상의 합참의장은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북한 어뢰공격임을 알았다면 제 대응은 확 달라졌을겁니다”라며 북한의 영해와 영공을 침범하는 것을 불문하고 응징․보복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럴 경우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면전 위험을 감수하는 역사적 순간을 맞게 되었을 것이며, 대통령으로서 가장 어려운 결단을 내렸어야 한다. 또한 미국은 한반도 전쟁 위기에 어느 정도 동조할 것인지를 두고 ‘데프콘 2’를 선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검토했을 것이다. 그러한 위기가 바로 해군의 ‘허위보고’와 합참의 ‘적당한 무능력(?)’ 때문에 회피되었다고 하는 이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군의 우왕좌왕과 정치권력이 혼란스러워 하는 초기 양상에 대해 예비역들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한 육군 예비역 대령의 말이다.

“천안함이 어떤 원인으로 침몰되었든지 간에, 예컨대 내부폭발이건 외부 공격이건 그 원인을 불문하고 이번 사태는 비상사태였다. 그런데 군사대비태세를 관장하는 국방의 최고 지휘부나 군 수뇌부가 이번 사태를 단지 재난구조 쯤으로 인식하고 대응하려 한 것 아닌가? 그러한 안이함이 결국 국방장관의 대국민 담화가 사건 발생 22일이 지난 4월 16일에야 나오는 촌극으로 이어졌다. 이 담화는 처음부터 나왔어야 한다. 결국 22일 간 대한민국은 정치적 리더십의 마비상태였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관리하는 역량의 결여다.”

바로 이것, 전쟁으로 내 몰리는 강제된 상황으로부터 스스로 몸을 피하는 ‘적당한 무능력’과 ‘아주 적절한 리더십의 공백’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죄할 수 없는 우리의 곤혹스러움이 여기에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런대로 평화가 유지되어 온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을 결심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면책 받은 것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이제는 ‘결정적 물증’을 앞세워 이에 의문을 표시하는 반대자들을 억압하는 태도는 이중적이다. 청와대가 당시 “북한 소행은 아니다”라고 예단해 놓고 이제 와서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검찰을 동원하여 억압하는 것은 자신의 원죄를 남에게 전가하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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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