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추락에 대한 <조선일보>의 미친 사설 국제안보

김종대(디펜스21+) 편집장

 

조만간 미국의 국가부채는 15조 달러(1경6860조원)에 달할 전망이며, 실업률은 9%대에 근접하고, 연간 재정적자는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역대 최고기록을 모두 경신하는 수준이다. 국가부채는 미국의 GDP 대비 100%다. 오바마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조지 부시의 책임이다. 만일에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무모한 이라크 전쟁을 하지 않고, 부자 감세도 추진하지 않은 채 균형재정을 유지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이 안보와 경제가 다 같이 추락하는 미국의 위기가 왔겠는가?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착수할 당시에 조지 부시는 10년 간 3800억 달러에 달하는 감세 법안에 서명했다. 럼스펠드는 당시 ABC 방송에서 “이라크 전쟁 비용은 500억 달러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전쟁을 지휘한 프랭크스 중부군 사령관의 성급한 성미는 전쟁을 단 3 주 만에 해치웠다. 그것도 단 13만 명이라는 매우 적은 병력으로 했다.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라크는 석유가 많기 때문에 미국이 재건비용을 대지 않아도 된다”며 “미국의 재건비용은 17억 달러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석유에 눈독 들인 미국은 이라크 전쟁 이후 석유 값이 크게 안정되기 때문에 이 전쟁은 경제를 살리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전쟁 비용은 관심 밖이었고, 네오콘들에게는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다.

실제로 2003년에 이라크 전쟁에 배정된 예산은 500억불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듬해부터 전비소요가 줄어들지 않았다. ‘04년에 564억불로 늘어난 전비는 ’05년 834억불, 06년 981억불로 자꾸만 늘어났다. 이때까지도 조지 부시는 향후 전쟁비용 조달과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이라크의 석유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막연한 인식으로 부자 감세를 강행했다. 당연히 재정이 악화되었다. 당시 미 행정부 내에서 전쟁과 국내경제를 종합적으로 연계하여 전략을 구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즉 미국은 ‘주인 없는 나라’였다. 네오콘의 오만과 독선은 그들 스스로 국가경영으로부터 눈이 멀었다. 2006년 중반이 지나서야 이라크에 대한 전망이 악화된 데 대해 ‘이라크 스터디 그룹(ISG)'이 뒤늦게 구성되었다. 이들의 보고서는 네오콘의 오만을 벗겨냈고, 이에 따라 럼스펠드가 경질되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이라크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미국은 ‘07년 1272억불, ’08년 1385억을 전비로 지출하여 이제 이라크는 미국의 재앙이 되었다. 오바마가 집권한 ‘09년에야 920억불, ’10년에 665억불로 줄어들기 시작한 전비는 ‘11년에는 500억불 수준으로 낮아졌다. 총 8000억불(992조원)을 쏟아 부은 셈이다.

전쟁 비용도 문제지만,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 남의 나라 주권을 마음대로 유린해도 된다는 오만한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보수 세력은 미국의 전쟁에 한국도 동참할 것을 주장했고, 2003년부터 노무현 대통령에게 조속한 파병 결정을 압박했다. 적어도 <조선일보>등 보수지가 지난 10년 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단 한 번이라도 비판한 적이 있었는가?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동맹”이라고 하던 이들은 친구의 잘못을 지적할 줄도 몰랐고, ‘묻지 마 파병 주장’으로 일관했다. 적어도 한국의 진보세력은 이라크 전쟁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옳았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그런데 최근 2월 10일자 <조선일보>의 아주 낯 뜨거운 사설 한 편이 필자의 눈길을 끈다.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국가 전략 문제의 태두(泰斗) 브레진스키가 가까운 미래에 중국과 인도가 부상하고 미국이 쇠퇴하면서 '지정학적 위험'에 빠질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그가 최신 저서에서 세계 패권 국가의 질서 변화에 따른 영향을 가장 먼저, 그리고 직접적으로 받을 나라로 한국보다 앞서 든 나라는 구(舊) 소련에 속해 있던 인구 460만 명의 소국(小國) 조지아와 대만뿐이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쇠퇴는 한국이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한국 앞에 놓인 길로 '중국의 지역적 패권을 받아들여 중국에 더 기대는 방안'과 '역사적 반감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관계를 더 강화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의 강력한 지원이 없을 경우 일본이 중국에 맞설 수 있는가는 회의적’이라면서 ‘한국과 일본 등은 미국의 쇠퇴로 미국이 제공해온 핵우산(雨傘)에 대한 신뢰 위기가 닥쳐올 경우 (미국이 아닌) 새로운 핵우산을 찾거나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이 한반도 통일 문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한국은 '중국이 지원하는 통일'과 '한·미 동맹 축소'를 주고받기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건 협박이다. 미국의 쇠퇴하면 한국이 어려워 질 터이니 한미 FTA를 비롯한 현안을 흔들어대지 말라는 아주 노골적인 협박이다. 중국과 미국 중에서 한국은 양자택일 하라는 얘기다. 국가경영에 눈과 귀가 멀은 네오콘을 쏙 빼닮은 논리다. 중국에 기댄다는 것을 계속해서 사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브레진스키는 대한민국의 생존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국제 환경의 변화 시기를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미국을 추월할 향후 20년 전후로 내다봤다. 세계의 패권 국가 미국이 태평양 건너편에서 자기들에게 맞설 수 있는 경쟁적 패권 국가 중국이 부상(浮上)하는 영향을 20년 후에 받게 된다면 중국과 육지와 바다로 접속(接續)돼 있는 한국은 그보다 훨씬 이른 앞으로 5년 10년 후부터 거대(巨大) 중국의 압박감을 정치·경제·군사 면에서 절감하게 되리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에 기댈 것이냐 일본과 손잡을 것이냐'고 묻고 있다. 중국에 기댄다는 말은 중국의 패권적 국제 질서 속에서 부속품처럼 굴종(屈從)하고 연명(延命)하면서 중국의 압도적 영향 아래 살아간다는 뜻이다. 일본과 손잡을 것이냐의 의미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與)든 야(野)든, 좌(左)든 우(右)든 한국 정치 세력은 이 상황에서 5000만 국민을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를 대답해야 한다.”


이 사설을 쓴 사람의 뇌의 회로도가 의심스럽다. 바꿔 말하면 미국이 망할 때 한국도 같이 망하는 편이 낫지, 중국에 기웃거리면 노예가 될 것이라는 섬뜩한 주장이다. 논리적 엄밀성도 없고 객관적 사실도 아닌 걸 같고 저 혼자 흥분하는 꼴이 가관이다. 이런 사람들은 국제정치에서도 비현실적인 세력균형론을 선교한다. 그리스 아테나가 새로 부상하는 스파르타를 견제하려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사례처럼 중국의 부상 그 자체는 위기로 간다는 전쟁 불가피론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의 충격을 흡수한 나라가 다름 아닌 중국이며, 현재 전 세계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도 중국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미국과 중국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는 전제에서 한국은 어느 한 쪽에든 줄서야 한다는 자괴적 역사관과 패배주의와 굴종주의가 뼈 속까지 배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스 역사가 투기디데스는 일찍이 이런 자들을 경고한 바 있다. 즉 충돌의 불가피성을 믿는 행위 그 자체가 그런 충돌을 자아내는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된다는 경고다. 실제로 1,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많은 전쟁은 세력균형이 파괴된 그 자체는 하나의 배경에 불과했고, 이를 충돌로 연결시키는 호전주의자들 때문에 일어났다. 얼마든지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인류는 전쟁을 하는 방법도 발전시켰지만 전쟁을 막고 평화공존하는 지혜도 발전시켜 왔다. 한국은 분단과 전쟁을 겪었지만 주변 국가들과 평화번영의 길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발전시켜 왔다. 이를 믿고 낙관적인 비전과 전망을 갖추는 것이 바로 진보의 길이고, 퇴행적인 동맹론에 안주하는 것이 조선일보의 길이다. <조선일보>는 왜 미국이 쇠퇴했는지, 한국도 그러한 실패의 길을 답습해야 한다고 보는지, 한미가 같이 쇠퇴해야 한다고 보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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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