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방사청, T50 수출 말아먹나? 방위산업

 

국정원과 방사청, T50 수출 말아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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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미스테리


지난해 12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

원래 명단에 없었던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이 밝은 표정으로 이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장 전 청장은 출국 직전에 “대통령의 이번 인니 방문에서 T50 수출이 성사될 것”이라고 설득한 장본인. 청와대에 “방산 수출의 주무 기관장인 자신이 꼭 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여 이 대통령을 따라 나섰다.

오전에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유도요노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는 인도네시아 경제개발계획에서 한국이 주 파트너가 되는데 교통과 인프라, 녹색기술부분을 집중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양국 간의 탱크, 잠수함, 고등훈련기 등 방위산업 분야에서의 공동생산을 협의한 때는 회담 중간 무렵이었다. 이 대통령이 최고 성능의 우리 T50 고등훈련기에 대해 설명하며 인도네시아와 협력할 의향을 말했다. 애초 계획에는 고등훈련기 문제가 정상회담 의제가 아니었다. 듣고 있던 유도요노 대통령은 “베리 굿(very good)”이라고 짧게 반응을 보이고 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정작 인도네시아가 관심을 갖고 있던 무기는 잠수함이었다. 머쓱해진 이 대통령에게 유도요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가 필요로 하는 잠수함의 구체적인 숫자와 협력방식까지 제시했다.

회담을 비롯한 공식 일정이 끝나고 이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측의 T50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를 언급하며 “도대체 수출협상의 진행상황을 아느냐 모르느냐”며 장수만 청장을 크게 질책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에 의하면 모두 4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 16대의 고등훈련기를 도입하는 계획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작년 하반기부터 대상기종을 평가해왔다. 러시아의 훈련기 Yak-130와 경합 중이었던 T50은 1차 평가에서 러시아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한국우주항공(KAI)은 가격을 더 낮추는 등 수정제안을 하여 연말쯤에 T50이 입찰심사에서 1위로 올라서는 대역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늦어도 올해 3월까지 우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도록 한다는 복안을 갖고 인도네시아로 왔던 것. 그런데 유도요노 대통령의 성의 없는 태도에 크게 놀라 장 청장을 질책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이 대통령은 “이런 중요한 시기에 KAI 사장은 왜 안 왔느냐”며 업체의 역할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질책은 1시간 정도 이어졌다.

귀국한 직후 장수만 청장은 최창곤 방산진흥국장을 비롯한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을 불러 호되게 야단을 쳤다. KAI가 해외 수출사업을 제대로 하는지 특별감사를 하겠다는 엄포까지 덧붙여졌다. 그러나 방사청의 이런 ‘오버’는 수출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실제 진행상황과도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는 평가다. T50 수출을 지원하는 또 하나의 정부 조직인 KOTRA의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 관계자는 기자에게 “우리는 청와대에 작년 연말에 T50 수출이 성사된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적이 없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작년 연말에 T50 샴페인을 터뜨릴 거라는 달콤한 기대는 방사청 독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센터의 윤갑석 센터장은 지식경제부의 3급 국장급 공무원으로서 “주어진 팩트 외에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청와대에 내세울 위치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점은 업체도 마찬가지다.


업체에 분풀이


단순히 중간 평가에서 1위로 올라선 것을 가지고 마치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오인한 방사청의 무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방산 관계자들은 “해외 사정에 어두운 방사청이 한 조각의 희망적인 정보를 갖고 대통령에게 생색내려다 빚어진 해프닝”정도로 이 사건을 설명한다. 그러나 때 이르게 축포를 터뜨리려 했던 방위사업청의 경솔한 행동은 업체로 불똥이 튀었다. 장 청장에게 혼 줄이 난 방사청 고위 관계자들은 “수출의 장본인인 KAI가 잘못해서 우리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며 분풀이 대상으로 업체를 꼽았다. 즉시 감사원과 방위사업청 합동으로 업체에 대한 특별감사계획이 작성되었다. 감사 중점은 KAI의 ▲ 수출업무의 적절성 ▲ 재무구조 상황 ▲ 민영화 추진상황 3가지였다. 사실상 KAI를 초토화시키겠다는 뜻이다. 이에 업체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방사청의 감사계획은 최근까지 안하, 안한다만 되풀이하고 있다.

방사청이 수출목표액 달성에 집착하는 정도는 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전임 변무근 청장은 이라크에 민수용 트럭을 수출한 업체가 단지 방위산업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트럭 수출을 방산 수출액에 포함시키려 한 적이 있다. 또한 자주포를 생산하는 삼성 테크윈의 주력 수출품이었던 디지털 카메라도 방산수출이라고 우기며 수출액에 포함시키려다 현행 법규에 방산물자가 엄격히 지정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성식과 법규에 어긋난 이런 지시는 전임 방사청장이 직접 한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에 방산수출액 증가를 내세워 생색내려는 ‘속 보이는’ 태도다. 한편 국회가 10억 달러를 초과 달성했다는 방산수출 내역을 보자고 하면 “업체 영업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기실 파헤쳐 보면 방산수출액 상당수가 거품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내용 없는 실적주의와 대통령에게 잘못된 기대감을 주입하는 기망행위는 국정원까지 전염시켰다. 작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로 출국하기 사흘 전에 국정원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번에 T50 수출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 하마터면 기자도 이 말을 믿을 뻔 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 귀국 후에도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자 그제 서야 이 관계자는 방사청의 진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인도네시아가 우리 방사청이 생각하는 것처럼 ‘물 좋은 동네’가 아니라는 것. 아직까지 투명성이 떨어지는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하려면 ‘비공식 로비’가 상당부분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에 의하면 이번에 잠수함 수출이 진척되고 있는 배경에는 대우 그룹의 인도네시아 권력층에 대한 ‘조용한 로비’가 있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나서고 정부기관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KAI의 경우는 정부가 지분을 소유한 반국영기업으로 기업의 비공식적인 영업방식을 답습하기 어렵고, KOTRA나 방사청도 마찬가지다. 해외 영업이 뭔지 모르는 공무원들이 설치다보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설명이다. 밥이 익기도 전에 이 사람, 저 사람이 와서 솥뚜껑 열어보며 참견하다보면 뜸이 제대로 들 리가 없다. 게다가 인도네시아가 성큼 훈련기를 구매할 만큼 예산이 충분한지도 의문이다.

방산수출의 비전문가인 방사청이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는 조급증을 드러내는 순간, 졸지에 인도네시아의 콧대는 더 높아졌다. 한국과 경제협력에 목을 매는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한국의 눈치를 살피던 중에 대통령이 달려 와 T50 수출에 매달리고 국정원까지 개입하는 모습은 뜻밖이었다. 결국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방사청의 이상한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재작년에 터키에 흑표(K2) 기술수출도 현대 로템이 머뭇거리는 동안 방사청이 주도하여 성사되었다. 이 과정에서 '퍼주기식' 불평등 계약이 체결된 것도 실적에 목몰라하는 방사청이 강행시킨 결과다. 그러나 막상 계약 내용이 문제가 되자 이제와서 방사청은 "나는 모르는 일이고 업체가 다 한 일"이라고 발뺌 하고 있다. 방사청의 기준대로 라면 국가이익은 국가에 이익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청 실무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뜻한다. 이 계약은 현대 로템에게 재앙으로 밀어 닥쳤다.

그런데 실적에 목말라하는 또 하나의 당사자인 국정원마저도 이런 상식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졌다.


‘집권 3년’의 실적 만들기


자원외교, 세일즈 외교를 표방한 이 대통령은 집권 이후 번번이 이 분야에서 물을 먹었다. 집권 초 쿠르드 유전개발 과잉홍보는 사기극으로 밝혀졌고, 이 대통령이 푸틴에게 직접 부탁한 서캄차카 유전개발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자원외교는 초라했다. 중국의 후진타오에게 이 대통령이 눈독들인 원전개발, 철도 건설 등 관심사가 전달되었는데도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애초 국무총리실을 자원외교 진용으로 편성하고도 참담한 실패의 연속에 직면한 청와대는 UAE 원전수출에 100억 달러 제공이라는 이면계약을 체결하고, 특전사를 파병하여 겨우 체면을 살리려 했으나, 이마저도 강한 여론의 역풍에 직면했다. 외국은 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보려 하는데 자꾸만 장사꾼 기질만 발휘하려 하니까 오히려 심리적 거부감만 커졌다.

이 대통령은 외교부와 지식경제부를 질타하며 몹시 신경이 예민해지던 터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반가운 소식이 “이번에 T50이 터진다”는 보고였다. 연평도 사건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해외순방 일정이 무리한 상황이었음에도 이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로 바로 달려갔던 것이다. 이것이 비극의 전말이다.

대통령의 관심사항을 관철시켜야 하는 국정원으로서는 이에 대한 압박감과 함께 무언가 실적을 낼 수 있는 묘안이 필요했다. 그 표적은 2월 16일에 서울에 와 있었던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묵고 있던 소공동의 롯데호텔이었다. 이날 괴한 3명과 아직도 그 신원을 알 수 없는 1명의 ‘협력자’들은 특사단의 방을 침입하여 노트북을 절취했다. 그리고 이 날 남대문 경찰서에는 이들의 범법행위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었고 21일에는 이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후 전개된 상황은 얄팍한 상술과 아마추어 첩보공작이 어우러진 생 쇼였다.

이런 나라가 T50 수출을 제대로 할 수 있나?

집권 3년의 실적이 그처럼 중요한가?

어쩌면 문제는 T50 수출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 국민에게 생색내기 식으로 좌충우돌하는 정부의 잘못된 행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불사하는 정보기관의 도덕불감증이 더 심각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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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