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암함 정부발표, 무엇을 믿을 것인가? 남북군사력

 

D&D Focus 2010년 10월호 


‘논리’는 부상하고 ‘과학’은 침몰되었다!




‘오컴의 면도날’과 ‘흄의 포크’


“과학적으로 규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국방부가 2010년 9월 13일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맨 마지막에 원태제 대변인이 한 말이다. 이제껏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에 기초하여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였다고 말하던 태도에서 한 발 물러선 셈이다.

국방부는 보고서 발간 목적이 ▲ 사건조사 자료를 역사자료로 영구히 보존하고, ▲ 실체적 진실을 국민과 세계 각국에 알리며, ▲ 학회 및 연구기관에 연구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또한 이 보고서는 ▲ 어뢰 공격으로 침몰된 군함의 선체를 인양하고 결정적 증거물(Conclusive evidence)인 어뢰 추진동력장치를 수거하였을 뿐만 아니라 폭약성분까지 검출하여 조사한 ‘사상 최초’의 보고서이며 ▲ 어떠한 은밀한 공격행위도 증거로 남는다는 사실을 북한과 국제사회에 알리고, ▲ 특히 북한이 더 이상의 도발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엄중히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289쪽의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향후 사건 원인과 관련된 의혹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는 ‘희망사항’도 피력했다.

기자가 발표 장면을 지며보고 보고서를 읽어 본 느낌은 일단 성실하고 수준 있게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합조단에 참여한 조사요원과 관련기관, 민간 학자들의 협조된 노력은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물리학과 선체공학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도 정부 보고서치고는 매우 심도 있고 나름대로 겪을 갖추려 했다는 노력이 보였다.

특히 보고서는 그동안 일각에서 주장되어 온 ▲ 비폭발(좌초), ▲ 내부폭발, ▲ 외부폭발(어뢰 또는 기뢰)에 대한 각각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다. 그 중 가능성이 없거나 희박한 가능성을 차례로 삭제하고 나면 나중에는 어뢰로 인한 외부 폭발 가능성 밖에 남지 않는다. 이 지점부터 어뢰 피격 ‘가능성’은 사실, 즉 팩트(fact)로 격상된다. 어뢰 피폭에 대해 보고서는 ▲ 형상 및 흔적 분석 ▲ 증거물 분석 ▲ 생존자 진술 분석 ▲ 생존자 환자 상태 및 시체 검안 결과 ▲ 수중폭발 선체 충격 해석 ▲ 침몰 해역 분석 ▲ 어뢰추진 동력장치를 분석한 결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모든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설명이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일부 의문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하고 과학적 설명의 한계도 일부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히려 5월 20일 민군합동조사단의 중간발표 당시에 제시되었던 ▲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에 대한 설명, ▲ 발견된 물증인 어뢰 추진부의 부식상태를 알 수 있는 시료 분석 ▲ ‘1번’ 잉크에 대한 성분 분석 등은 이번 발표에서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진땀을 빼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중간발표 당시에 잘못 제시된 어뢰 설계도에 대한 설명과 북한 무기체계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도 없었다. 최근 러시아 측에서 제기한 의문과 관련 있는 부분으로 국민적 관심사가 매우 높았던 사안이나 추가 설명은 없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앞으로 국방부가 의문을 제기하는 민간단체와 계속 평행선을 긋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국방부 출입기자는 “합조단 발표는 그동안 정부 발표를 믿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믿게 만들고, 안 믿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더 믿지 못하게 만드는 보고서”라고 평한다.

한편 이 보고서에서는 실재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독특한 논리구조가 발견된다. 첫 번째는 ‘오컴의 면도날’이다. 복잡한 것은 회피하고 설명 불가능한 것은 배제하는 방식으로 가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논법이다. 그러다 보면 맨 나중에 가장 간단하고 경험적인 가설 하나만 남는데,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갑자기 정전이 되었는데 그 원인에 두 가지 가설이 있다. 1 정전이 되었다는 가설, 2 정부가 나를 어두운 방안에 가두기 위해 고의로 집의 전기를 끊었다는 가설이다. 두 번째 가설은 설명 불가능하고 복잡하다. 오컴의 면도날 이론은 이 때 간단한 첫 번째 가설이 진실에 가깝다고 가르친다. 이런 논리적 흐름을 답습하면서 합조단은 좌초설, 재질피로설, 기뢰설 등을 차례로 베어나갔다고 보여 진다.

적어도 보고서의 서술은 이러한 논리구조를 답습하였으나, 진실은 이미 어뢰 폭침으로 결론 내리고 거꾸로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주로 시민단체와 야당에서 제기하는 의혹이다.  

 

 

‘논리학’과 ‘과학’의 차이


두 번째 논리구조는 ‘흄의 포크’이다. 데이비드 흄은 모든 진술이나 주장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1 정의에 의해 참이거나 거짓 2 경험에 의존 3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진실을 찍억 올리는 포크는 이렇게 세 갈레다. 여기에서 흄은 1과 3에는 관심이 없고 2를 채택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뉴요커'의 한 만화에서 법정 증언대에 선 여인이 말한다.

"사실 남편이 나를 때린 건 그의 유년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그를 죽인 건 나의 유년 때문이에요."

어떠한가? 살인사건의 원인을 설명하는데 그럴 듯한 진술이 아닌가?

이번 보고서는 1과 같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생략하고 3과 같이 억지에 불과한 주장은 되도록 취급하지 않는다는 논법을 채택했다. 그러면 자연히 경험과 분석에 의존하는 2의 주장으로 기울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합조단이 말하는 ‘과학적 조사’가 빛을 발한다. 이후 북한이라는 ‘악명을 제대로 활용’하면 법정에 선 여인의 진술과 같이 “북한에 대한 경험의 산물”이라는 설명으로 저절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천안함과 같은 사건을 설명하는데 이번 합조단의 보고서는 매우 논리적이다. 그러나 논리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실과 부합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예컨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압도적 물증’은 얼마든지 많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고 논리적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과학적 진실은 그게 아니라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돈다”는 것이다. 해는 뜨거나 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 아닌 경우다. 마찬가지로 ‘압도적 물증’으로 북한의 소행이 ‘입증’되었다고 하는 설명이 논리적이기는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진리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이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보고서에 ‘과학’, ‘완벽’이라는 말이 5월 20일 중간발표 당시보다 줄어들었고, 또 “완벽한 설명은 없다”는 국방부의 진솔한 태도는 바람직스럽다고 보여 진다. 적어도 은밀성이 요구되는 군사문제에서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태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또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보면 중간발표 당시에 너무 과학을 표방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민군합동조사단의 과욕이거나 경솔한 언사들이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과학’을 표방한 합조단의 설명이 만일 잘못된 것이라면 북한의 소행으로 천안함이 침몰하였다는 기본명제까지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베팅’이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무심코 짜깁기 식으로 궁색한 설명을 늘어놓거나 억지로 꿰어 맞추려다 보면 논리적인 허점이 생긴다. 그 허점은 국방부도 설명을 인정하였듯이 ▲ 검출된 폭약이 굉장히 미량(나노 그램 단위)이어서 분석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폭약 성분이 HDX, RDX, TNT 등이 어떤 방식으로 배합되었는지 규명하지 못했고 ▲ 그로 인해 폭발력이 250kg인지, 360kg인지 결정하기가 어려우며 이는 북한 산 어뢰에 대한 정확한 제원과 성능에 대해 아직도 우리의 판단이 불완전하다는 ‘불편한 진실’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국방부가 중간발표 당시와 어뢰 폭발 수심, 폭발력을 재구성한 새로운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스스로의 과학적 분석을 뒤집은 것은 발표의 신뢰성에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경향」, 「한겨레」 등 진보성향의 매체들이 일제히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대목으로 꼽는 부분이다. 결국 우리 군의 가장 중요한 ‘군사정보’에 여전히 허점이 발견된다는 또 다른 ‘불편한 진실’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제 국방부는 이제껏 천안함 관련 조사는 일부 실험결과 만을 가지고 “‘과학적 분석’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논리적 설명’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검증된 정보’와 ‘추정’


이번 보고서가 새로운 군사정보를 제시하지 못한 채 기존의 국방부 주장을 보완하고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발간된데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먼저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의 존재와 CHT-02D 어뢰의 카달로그와 같은 중요 군사정보들이 4월말에서 5월초까지 물밀듯이 국방부로 흘러들어 오던 것과 대조적으로 어째서 5월 20일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새로운 군사정보들이 한 건도 나오지 않았을까? 새로운 군사정보가 없어 정치․군사적 판단이 중간발표 당시보다 진일보 하지 못한 채, 국방부는 오직 물리적 증거물에 더더욱 매달리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보고서에는 ‘자연과학’은 있는데 반해 ‘사회과학’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의 의문은 북한이 서해와 동해에 각기 2척씩 4척을 배치했다는 연어급 잠수정의 실체가 과연 검증된 것인가, 만일 검증되지 않은 첩보를 중간발표 당시에 서둘러 내놓은 것이라면 왜 그렇게 경솔했는가가 의문이다. 어뢰의 카달로그 역시 단지 문서로 존재하는 첩보라면 반드시 북한이 이 어뢰를 생산한 경위나 유통경로, 실전 배치 여부 등을 정밀하게 검증했어야 한다. 이러한 군사정보는 아직도 검증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군사기밀’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어렵다. 적어도 북한 무기체계에 대해 정보당국이 파악한 실체가 무엇인지 진일보된 설명이 필요했다. 이 설명이 없는 한 북한 무기체계는 ‘검증된 정보’라기 보다는 ‘첩보’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결국 북한 무기체계에 대한 첩보수집→검증→판단으로 이어지는 정보의 프로세스는 5월 20일 이후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이다. 여기에서 너무 과학을 표방한 합조단의 두 번째 위험한 인식, 즉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서둘러 받아들이고자 했던 성급함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의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너무 쉽게 인정하는 바람에 전대미문의 국가적 불행이 초래된 것도 이와 같은 ’정보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

부실한 군사정보는 궁극적으로 북한이 왜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을까, 저질렀다면 왜 부인을 할까, 북한이 이러한 도발을 통해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등 더 많은 의문으로 가지를 칠 것이다.

결국 이번 보고서는 5월 20일 중간발표 당시의 석연치 않은 설명에 대한 빗발치는 여론의 화살을 막아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엄밀하게 말하면 과거의 발표에 비해 더 논리적 설명은 나왔으나 추가적인 군사정보는 없었고, 천안함 사건은 궁극적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냈다.

과연 이것으로 모든 논쟁은 종결된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는 국민이 거의 70퍼센트다. 그동안 거듭된 정부의 말 바꾸기와 잘못된 설명, 실수가 누적되면서 국민 대다수는 “못 믿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무엇을 믿으라고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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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