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세상읽기] ‘효율’의 덫에 걸린 국방개혁 논쟁 기고

 김종대
민주주의의 군대가 효율을 지향한 파시즘의 군대를 이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등록 : 20110602 19:37 | 수정 : 2011060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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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방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민주주의란 매우 거추장스러운 짐이다. 근대의 여명기에 ‘전쟁을 하는 기계’로 발명된 정부체제는 대부분 독재를 선호했다. 태평양전쟁 당시에 일본은 군사에 관한 문제는 여론을 수렴하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여론을 지배하는 ‘통치’의 영역이라고 아예 선을 그었다. 일본 대본영이 발간한 ‘통수강령’은 극비로 분류되어 일반인들이 절대 열람할 수 없도록 했다. 우리 헌법의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한다”는 조항도 여기서 유래했다. 일본군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안 이 나라에는 두 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병영국가를 지향했다.

    과연 독재의 군대는 강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파시즘의 군대가 파죽지세로 민주국가들을 점령했다. 국가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해 국민동원하고 일관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군대를 운용하는 데는 파시즘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정치체제였다. 반대 의견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정치를 채택한 나라의 군대는 나약하고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존재였다. 민주주의는 전쟁 수행의 결함처럼 인식되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인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미국의 정부 형태는 효율성을 증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자의적 권력행사를 막고 국민들을 독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정부 기능 중에 특히 군대, 그중에서도 합동참모본부는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존재였다. 각 군 간에도 갈등과 경쟁이 만연해 내부의 적과 싸우는 데 몰입했으나 이를 조정할 합참의 리더십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1947년에 국가안보법이 제정될 무렵 미 육군과 해군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우리 육군과 해군이 서로를 향해 싸우듯이 적과 싸웠다면 2차대전은 더 일찍 끝났을 것이다”라고 탄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군대가 효율을 지향한 파시즘의 군대를 이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일견 독재의 군대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세력에 의해 군 지휘가 전횡되어 다양한 군사적 전문성이 무시되는 치명적 약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무모한 작전으로 자기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민주정치 체제를 수용한 군대는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다양한 창의와 전문성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강하다.

    만일 국방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군의 민주적 기제를 더더욱 강화함으로써 특정군의 전횡을 막고 정의롭고 공정한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 정점에 합동참모회의가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육군이 모든 중요 직위를 독식하고 해·공군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체제로 간다면 그것은 파시즘의 군대와 유사하기 때문에 ‘지는 군대’로 가는 길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는 서해에서 일어난 두차례의 연평해전과 천안함·연평도 사건에서 육군 출신 작전 직위자들의 비전문성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합참이 ‘제2의 육군본부’로 기능한 결과다.

    이런 사건을 겪고 나온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안이 육군 출신 합참의장에게 더 많은 권한을 몰아주는 ‘권력 집중’을 도모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언젠가 예상치 못한 안보위기가 도래했을 때 견제가 어려운 군 지휘권이 초래할 부정적 여파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반면 현대적인 민주군대를 정착시키는 문민통제의 규범과 철학은 매우 빈곤하다. 오직 효율만 추구하는 단선적 인식의 결과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위협받는 운명적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민주주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황소개구리들이 한반도의 평화까지 먹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개연성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국방개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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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