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 앞세운 허구적 전차 개발논리 기고

 국산전차 흑표(K-2)와 관련해 ‘애국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방위사업청이 23일 '흑표'의 핵심부품인 파워팩을 수입하는 대신 국산품을 쓰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논쟁이다.
 
방사청은 이날 2005년부터 개발을 추진해왔으나 계속 개발이 지연돼온 국산 파워팩(변속기와 엔진)에 대해 오는 10월까지 국산 파워팩의 기술적 문제 해결을 추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김관진 국방장관 주재로 국방부에서 열린 제48차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방사추위) 회의 자리에서였다. 다만 방사추위 회의는 오는 10월까지도 국산 파워팩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외국 제품을 수입해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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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의 체계. <D&D 포커스> 제공

이와 관련해 이런 결정이 과도한 애국주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볼 때 오는 10월까지 군산 파워팩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낮은데도 ‘애국주의’를 외치는 목소리에 눌려 국산 파워팩 개발쪽에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접근은 ‘왜곡된 애국주의’가 아니라 국방력과 방위산업 강화라는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더욱이 이런 ‘왜곡된 애국주의’는 방위산업의 부실과 부조리에 눈 감는 측면이 있어 방위산업에서도 ‘도요타의 재앙’을 부를 가능성도 있다.
 
우선 애국주의 눈쟁을 살펴보자. 방사추위 결정을 앞두고 국방관련 업체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국산 파워팩을 장착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때 아닌 ‘애국주의 논쟁’을 벌여왔다. 2012년부터 생산될 초도 양산물량 100대에 국산 파워팩을 써야 ‘애국자’고, 독일제 수입품을 쓰면 ‘매국노’라는 식의 단순화된 논리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식의 이분법은 바람직스럽지도 않고 사실과도 다르며, 엉뚱한 문제제기다.
 
이를 위해 우선 흑표 사업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흑표 사업은 1990년대 후반 탐색작업을 시작으로 출발했다. 이어 2002년부터 개발작업이 진행됐다. 애초 흑표 사업에서 파워팩은 독일제품을 쓰는 것으로 기획됐으나, 중간에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국내 개발 가능성을 보고하자, 뒤 늦게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와 S&T 중공업이 개발 업체로 선정돼 개발을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국산 파워팩 ‘개발의 실패’라는 위험을 관리할 만한 전문성이 우리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ADD)에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차의 1500마력 엔진을 개발한 나라는 현재까지 독일의 MTU사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도 자체 전차에 파워팩은 독일제를 사다가 쓰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엔진과 변속기는 그 성능도 문제지만 전차 체계와 결합되었을 때 운용성까지 검증되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개발과제다. 양산 후 신뢰성 문제도 입증하는데 몇 년이 소요된다. 운용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차를 생산하는 나라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하느니 차라리 해외도입을 선호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2005년 업체 선정 당시에도 기술도입을 통한 개발을 제안했던 업체들은 모두 탈락하고, 100% 국산화 계획을 제출한 두 업체가 선정됐다.
 
이러한 중요한 구성품을 해외에서 도입하지 않고 국산화한다는 시도 자체는 대단히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은 ‘애국주의’에 바탕을 둔 이런 ‘도전정신’뿐이다. 
 
우리가 파워팩을 국산화하려면 모델이 되는 독일 MTU사의 제품과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의 격차를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와 검증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국내의 권위 있는 기관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국과연이 그런 사전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 많은 관계자들이 국과연은 국방부에서 파워팩의 국산화를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개발업체의 말을 근거로 ‘쟤네들이 할 줄 안다고 했다’는 식이 면피용 생각을 갖고 이제껏 사업을 관리해 왔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왔다. 설령 개발업체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이를 검증해야 했고, 개발 실패에 대비한 ‘우발계획’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보면 그런 위험관리 기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게다가 국방과학연구소는 전차를 개발하면서 국산 파워팩 개발을 전차 체계개발과 분리하여 별도 사업으로 관리해 왔다. K-2전차 탐색개발이 끝나고 체계개발이 진행된 때는 2002년부터다. 그런데 파워팩 개발에 착수한 시기는 이보다 3년이나 늦은 2005년이다. 전차의 가장 중요한 구성품 개발이 뒤늦게 착수되었고 이로 인해 처음부터 개발일정은 촉박하여 짜여 져 있었던 것이다.
 
애초 한국형 전차를 전력화한다는 정책을 수립할 때 초도생산제품부터 국산품을 적용한다는 정책이 있었다면 사전 국내 기술수준을 조사하여 충분한 개발기간을 확보한 정책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술조사와 개발에 대한 기획이 선행되지 않고 체계개발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나서야 별도의 파워팩 개발 사업이 추진된 것을 보면, ‘체계개발 따로, 핵심기술 개발 따로’ 이루어지는 희귀한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하나의 사업을 여러 개로 쪼개는 것은 국과연이 지금 자행하고 있는 가장 악습 중의 악습이다.
 
문제의 본질은 ‘애국주의’가 아니다. 외국제 파워팩을 쓰느냐 국산 파워팩을 쓰느냐가 핵심이 아니라는 소리다. 핵심적인 문제는 국방부와 방사청이 국산 전차 개발과정에서 면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애국주의’ 등을 등에 업고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해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중요한 국방자원의 적기개발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약속한 기한 내 개발에 실패해 놓고는 오히려 큰소리치는 모습 속에서는 그 어떤 미안함과 반성도 찾아볼 길이 없다. 그러면서 국산무기 개발의 과정에 내재된 부조리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이런 이중적 태도에서 우리는 앞으로 국산무기의 대규모 부실사태를 예견하게 된다. 바로 무기체계에서 ‘도요타의 재앙’이 나타날 조짐이다.
 
한편 지난 해 12월 28일에 방위사업청에서 진행된 ‘K-2전차 개발시험평가결과 중간검토회의’에 따르면 총 88개 시험항목에서 70개 항목이 기준을 충족하고 18개 항목에서 국산 파워팩이 기준미달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기준미달 4개 항목은 △ 변속기의 냉각팬 속도제어, 동력장치의 △ 최대출력 냉각성능 △ 냉각팬 속도제어 △ 최고 속도시험이라는 구동성능이다. 또한 아예 미실시 된 14개 항목은 동력장치의 냉각성능(4개)과 구동성능(1개), 차량탑재의 기동성능(9개)이다. 이 때문에 방사청은 ‘운영시험평가 불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국산 파워팩이 앞으로 주어진 10개월 동안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현실을 방치하고 ‘애국주의’ 논쟁을 발화시키는 이면에는 특정업체와 개발자들에 대한 무제한적 면책 논리가 내재되어 있는 것 아닐까? 국가 예산이 낭비된 구조, 즉 핵심을 회피한 이런 논쟁에 흥분하는 여론이 몹시 우려스럽다.  김종대 <D&D 포커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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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