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쇼를 하십니다 편집장의 노트

 

D&D Focus 2009년 2월호


생 쇼를 하십니다


 

청와대 지하벙커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비서동 옆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습니다. 연중 대통령 전용 헬기가 뜨고 내리는 곳입니다. 점심시간에 청와대 직원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는 주변은 아름답습니다. 이전에 노무현 대통령도 이곳을 자주 찾아와 자전거를 타면서 국정에 지친 머리를 식히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표면 바로 밑에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전쟁 대비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 시설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차지철 경호실장이 만든 것이라는데요. 뭐라나. 배신은 항상 측근이 한다나. 특히 차 실장은 군부의 반란을 가장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군부 내 사조직을 만든데 이어 비밀 경호시설도 지었습니다. 그게 바로 ‘지하 벙커’입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박 대통령이 측근에게 저격당한 거죠. 

여민2관 동편 구석에 쥐구멍같이 생긴 입구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곳을 지나 지하로 막 들어서면 육중한 철문이 버티고 있습니다. 어떤 폭탄도 그 철문을 파괴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철문을 지나면 낯선 화생방 제독시설이 사천왕처럼 눈 부라리며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그걸 통과하고 나면 잠시 넓은 공간이 있는데 지하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커다란 선풍기가 연중 돌아갑니다. 그 소음을 지나쳐 좁은 복도를 따라 몇 개의 방이 나타납니다. 전쟁 초기에 대통령이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한 비교적 소규모의 대비시설입니다.

그 소음과 탁한 공기! 세상과 밀폐된 이곳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은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립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이 시설에 NSC 사무처의 주요부서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약2년여 만에 40~5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비서동에 가건물로 된 옥탑 방을 짓고서 위기관리 상황실을 제외하고 몽땅 이사를 했습니다. 공기 안 좋은 지하에서 햇볕이 그리워 못 참겠다나요. 이들이 햇볕을 그리워한 나머지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구사했는지는 모르지만 2년여 만에 지하에서 해방된 것은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이제껏 지하 전시시설에서 근무할 때가 좋았노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청와대는 비상경제상황실을 이곳에 설치하면서 ‘워룸(War Room)'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번에 2급 군사기밀인 이 비밀시설이 워룸 설치로 인해 다 공개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지난정부 때부터 그 실체가 슬슬 공개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전시대비 시설이 아니라 관광명소가 되어버렸군요.

청와대에 의하면 경제가 전시나 다름없는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워룸이란 명칭이 붙었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에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경제부처 관료들이 밤낮으로 경제상황을 점검한다는데요.

전쟁 났습니까?

거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갑니까?

그 지하에서 주식 시세나 금리나 환율 동향을 알 수 있는, 말 그대로 경제상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나 합니까? 외환 조기경보체제가 돌아갑니까? 서민경제의 아픔이 느껴집니까? 기껏해야 TV와 인터넷과 전화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 집에도 다 있습니다. 그것 가지고 경제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은 혹시 얼마 전 구속된 희대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흉내 내는 걸까요?  



별 480개


청와대 소식통에 의하면 사무실을 구하기 어려워 그곳에 비상경제상황실을 만들었다는데요. 그만큼 청와대가 낡고 비좁은 건 사실입니다. 얼마 전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의 옛 건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했는데 ‘불합격’ 판정이 나왔데요. 아찔한 일이지요. 최고 권력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런데서 근무한다는 게 이해가 갑니까?

그렇다면 광화문 정부청사에 만들어도 될 것 가지고 굳이 청와대에 이런 상황실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리송합니다. 게다가 지하벙커로 몽땅 쓸어 넣고는 ‘전쟁 방(워룸)’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다분히 뭔가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닌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게 경제가 위험한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경제관련 공무원들을 몽땅 저 깊은 산 속에 있는 국가 전쟁지휘시설로 보내버리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면 더 전쟁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겠습니까?

제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정부가 경제를 관리하는 첫 번째 덕목은 안정성이라고 봅니다. 특히 정부는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면서 시장과 기업, 가계가 안정을 도모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전쟁을 방불케 하는 비상상황을 연출해서 불안 심리를 고조시키는 정부라면 미네르바와 동일한 죄목으로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청와대 지하벙커의 비상경제회의 첫 작품이 미네르바 구속이라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경제 관료들이 꾸역꾸역 전시대비 시설로 모여드는 비슷한 시기에 전선에 있어야 할 장군들은 계룡대로 모여들었습니다. 계룡대에서 뜬 별이 무려 480개. 320명의 장군들이 모여들었답니다. 대한민국 장군의 70%에 달합니다. 창군 이래 처음 있는 별들의 잔치에 위병소 초병이 연실 외쳐대는 ‘충성’ 소리가 요란했답니다.

그런데 이날 회의에서 음주 회식 때 10시까지 귀가해라, 회식은 사전에 보고한다, 본인과 가족 관리에도 만전을 기한다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내용이 꽤 많이 나왔더군요. 물론 주요 정책보고도 있었고 자유토론도 이어졌답니다. 그런데 그게 자유토론입니까? 사전에 발언자 다 정해서 각본에 따라 진행되었거나 극소수만 발언할 수밖에 없는 기획토론이지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장군들에게는 하품 나오는 회의입니다. 계룡대 회의실은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가 회의하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자리 배치하는데 공간이 모자라 무척 애를 먹었답니다. 우리 장군님들도 앉은 자리가 영 불편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뒤쪽에 앉은 장군들 중에 일부는 회의가 진행되면서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장군은 코를 골기도 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만 그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여간 모아놓기만 하면 조는 것은 예비군 훈련장이나 장군들 회의나 똑 같아요.



블라인드 스팟


전선을 지켜야 할 그 많은 장군들이 한자리에 모여도 안보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니 더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게다가 장군들이 전투 위치에서 이탈하여 한자리에 모인다고 사전에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무슨 장군 페스티벌이 열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회의가 열리게 된 배경을 짐작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해 청와대 회의에서 이상희 국방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전방 GP 수류탄사고 등 연이은 군기․안전사고로 인해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전군에 심기일전을 촉구하는 계기가 필요했다는 것이 이번 장군회의를 개최하게 된 배경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렇게 군의 기강과 안전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돌연 국방장관과 공군 참모총장은 제2롯데월드 건립을 허가했습니다. 초고층 건물이 비행장 주변에 들어서도 활주로 방향만 바꾸고 안전장치를 하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난 15년간 자신의 직을 걸고 이를 반대해왔던 역대 공군 총장들은 뭡니까? 이렇게 쉽게 문제를 풀 줄 몰라서 그랬던 걸까요?

최근 공군본부 실무자들 표정을 보면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합니다. 어떤 대령은 “죽겠다”며 하소연합니다. 국방장관을 지낸 김장수 의원은 “차라리 경제 살리기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군이 양보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국회 국방위에서 주문한 바 있습니다. 롯데월드를 허가해도 안전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논리의 근거가 명쾌하지 않다는 거죠. 과거 같으면 이 문제를 가지고 여․야가 의견이 갈라져 다투는 일이 벌어졌을 텐데 이번에는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롯데월드 허가 문제는 정부가 여론에 밀리는 듯합니다. 무언가 중요한 안보문제가 미숙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정부를 볼 때마다 정무기능이 굉장히 취약하다는 느낌을 항상 받습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생기냐? 국민과 여론으로부터 일탈되는 겁니다. 그러니 모처럼 ‘작품’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보여주려고 해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로지 권력자를 추종하면서 작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보여주기 식 쇼’ 밖에 안돼요. 이런 점에서 현 정부에는 ‘시각의 맹점(Blind Spot)’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러한 맹점이 개선되지 않고 계속 방치될 경우, 안보에 대한 일관된 원칙이 상실되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안보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진실 되게 국민여론과 소통하시기 바랍니다. 더 악화되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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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