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파일-서해전쟁>을 말한다. 국방개혁

 

<디펜스21+> 2013년 11월호

 

질문이 없는 국가는 위험국가

교훈 없는 군대는 피를 부른다!

 

 

필자가 최근 펴낸 <시크릿파일-서해전쟁>에 대해 말들이 많다. 발간된 지 한 달여 만에 5쇄를 찍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둘러쌓고 벌어지는 책임공방과 사실 여부를 다투는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다가 과연 이 책이 해군을 비롯한 군 전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인지, 불편한 진실을 굳이 들춰내야만 했는지, 집필 의도에 대해서도 여러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결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 개정판을 낼 계획도 세우고 있지만 작가로서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적확하게 밝혀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여 이 글을 집필하게 되었다.

 

도대체 교전은 왜 일어났나?

 

1999년의 제1연평해전으로부터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까지 남과 북은 서해 에서 5번 충돌했다. 지난 14년 간 이 교전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이해하기 곤란한 불편한 진실과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1999년의 제1연평해전의 경우 우리는 이제껏 북한 어선과 경비정들이 NLL을 침범하는 도발을 해왔기 때문에 해군이 이를 차단하다가 벌어진 교전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해 6월 6일에 시작된 무력시위 기간 중에 남과 북의 해군은 똑같이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서로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를 하늘로 쳐들었다. 교전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9일이 지난 6월 15일에 북한군 1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대규모 교전이 벌어진 이유가 도대체 뭘까? 9일 동안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02년의 제2연평해전의 경우는 더 황당하다. 3년 전의 충격적인 패배로 피에 굶주린 북한의 기습공격이 예상되어 2함대사령관이 “적 함정과 3km 거리를 유지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정상적인 지휘계통이 무력화되고 작전에 간섭하는 세력이 2함대 지휘계통에 개입하였다. 마치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우리 고속정 두 척이 최저 속도로 북한 경비정에 150미터라는 ‘섬뜩한 거리’로 접근하였다가 공격을 받았다. 이 일이 있고나서 보직해임을 당한 2함대사령관이 얼마 후 화병으로 숨진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 해군 선배에게 털어놓은 교전의 진실은 도대체 뭔가?

2009년 대청해전은 우리의 단호한 대응으로 북 함정을 격파하고 6명을 사상케 한 교전이다. 이전의 두 번의 교전에 비해 매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북한 함정을 제압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비밀접촉을 하고 있던 이명박 정부는 우리 해군의 과잉대응 여부를 조사한다. 당시 청와대가 군에 대해 갖고 있던 불편한 심기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2010년의 천안함 폭침사건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또 드러난다. 사건이 발생하기 일주일 전에 한 예비역 해군 제독은 북한의 보복공격이 임박했음을 예견하고, 북의 수중도발을 경고한다. 한미연합사 역시 대청해전 직후부터 북의 비대칭 도발을 우리 합참에 경고한다. 무언가 긴박한 경고와 대비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

그해 벌어진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도 이미 사건 전날에도 북의 경고 메시지가 날아들어 왔고, 사건 당일 오전에도 합참 정보본부는 “적의 화력도발에 대한 대비 필요”를 강조하는 첩보를 작전본부로 전달한다. 그런데도 연평도에서 우리 해병대가 이에 대해 대비하지 못한 채 북의 지상포로부터 대규모 공격을 받았다.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의 수상함과 우세한 정보력, 필요시 후방지원전력을 갖춘 우리 군은 서해에서 분쟁을 관리하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그런데도 서해의 분쟁상황을 과연 우리가 제대로 통제하였는지, 군사력 운용이 과연 합리적이었는지, 이 5번의 교전을 보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누구도 그 원인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 예컨대 가장 충격적인 천안함 폭침사건의 경우 벌써 3년이 더 지났지만 그동안 이에 대한 세미나, 학술대회도 없고 제대로 된 논문 하나 발표된 적이 없다. 무언가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이를 제대로 해석하고 재평가하는 일이 꽤 많이 있었을 법도 한 데 이상하게도 그런 것이 없다. 그러니 앞에서 필자가 제기한 의문에 대해 우리 정부는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북한이 계획적으로 도발한 사건” 외에 아무런 추가 설명을 하지 않는다.

 

 

왜 질문하지 않는가?

 

서해에서의 안보문제를 돌이켜볼 때 우리는 그 핵심원인에 대해 제대로 질문한 적이 없으며, 당연히 합리적인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이 없으니 더 연구할 필요도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교훈을 얻기 위해 몇 년이고 검증, 또 검증한다. 1960년대의 피그스만 사건과 쿠바 미사일 위기, 1970년대의 월남전 패배, 1980년대의 이란 인질구출작전 등 비록 실패한 작전이라고 해도 재검증하고 분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교훈을 얻을 수 없는 군은 계속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앞으로 서해에서 우리 전투원들이 또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것, 어쩌면 우리의 무능과 게으름이 미래에 또 다른 희생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5번의 교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서해에서 안보 위기가 진행될 때도 유니폼이 다른 육․해․공군 조직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것이다. 조직은 “우리가 가장 스마트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조직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로 인해 서로 자기 조직이 상황을 통제하려고 다른 조직과 경쟁하며, 더 많은 권력과 명성에 집착하는 행태를 보인다. 그리고 위기가 끝나도 조직 간에는 감정적 갈등과 앙금을 갖게 된다. 서해의 사건에 대해 말하자면 바다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육군 위주로 된 합참과 해군 2함대사령부 사이에 권한과 책임에 대한 분쟁이 벌어지고 극도로 불신하며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 결과 국가차원에서 군사적 대응의 합리성이 붕괴되고 위기는 더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필자가 고발하는 것은 바로 작전의 최고단위인 합참, 즉 ‘최고사령부의 무능’이다. 주로 육군 출신들이다보니 해양에서의 국지전에 대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는 조직이 바로 합참이다. 이 때문에 위기가 진정되고 관리되어야 할 순간에 거꾸로 위기를 더 고조하는 잘못된 지시가 내려가고 예하부대는 이에 반발한다. 한편 전투현장에서는 남과 북의 군대라는 조직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국면이 전개되며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초래된다.

필자가 지난 8월에 펴낸 <시크릿파일-서해전쟁>은 청와대라는 정치권력과 합참-2함대사령부로 연결되는 작전 지휘계통이 서해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상호작용을 하였는지를 추적한 기록물이다. 전․현직 장성과 영관급 장교들을 인터뷰하고 청와대, 국정원, 국회 주요 인사들의 증언을 보완하여 5번의 교전에 숨어있는 비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바로 합리성의 붕괴되는 그 순간에 남북한 간에 분쟁이 발화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남북한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북한의 경우 경비정으로 NLL을 도발한 제1, 2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즉 3번의 교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자동화된 사격통제와 속사포로 무장한 현대식 우리 함정에 함포도 없고 속도도 느린 북한 경비정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불리한 줄 뻔히 알면서 왜 그처럼 무모한 도발을 3번이나 반복했는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 3번의 교전이 북의 계획된 도발이라는 건 이미 정설이 되었지만 무슨 계획된 도발이 할 때마다 패전이란 말인가? 만일 북한이 우리를 효과적으로 공격하려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수상함으로 도발하지 말고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상화력을 동원하면 훨씬 손 쉬었을 텐데 왜 그렇게 불리한 방법을 반복적으로 구사했는지 합리적 의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조직의 일상업무에 주목하자

 

북한의 군사적 합리성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춘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북한이 비밀리에 기습공격을 했다면 어뢰 추진체에 버젓이 ‘1번’이라는 표기를 함으로써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여기에 조직의 일상적 업무수행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대입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이 과거 캄차카 반도 부근에서 소련 영해에 비밀리에 들어가 작전을 하면서 해상에 부이를 설치한 일이 있다. 그 비밀작전이 소련에 의해 발각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미군이 설치한 부이에 “미국정부의 재산(The poverty of U.S government)”이라고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방법령에는 모든 미국 장비에 의무적으로 이런 글귀를 새겨 넣도록 했다. 조직의 일상적 업무수행은 아무리 중차대한 비상사태라 하더라도 기존의 행동절차나 규정을 준수하느라고 더 큰 목적을 간과하는 속성을 보인다.

이런 조직의 행태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제1연평해전 당시에 급격히 사태가 악화된 배경에는 “NLL 선상에 대형 함정을 일렬로 늘어서서 지키라”는 합참의 어처구니없는 지시가 있었다. 큰 배가 NLL 선상에 늘어서 버티라는 건 합참의 지상군 문화의 산물이었다. 못 보던 큰 배가 전투해역에 나타나니까 북한도 어뢰정을 출동시키기 시작했고, 이에 우리가 어뢰정을 무력화하기 위해 선체 충돌을 감행했다. 그런데 이것도 엉뚱한 발상이었다. 선체가 충돌시키는 해전은 고대 로마의 래밍 해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왜 합참은 현대식 함정으로 고대의 전술을 답습한 것일까? 여기에는 청와대와 합참, 2함대 사이의 이상한 의사소통이 작용하고 있다. 이후 통제하기 어려운 분쟁으로 치달았다. 제2연평해전의 경우도 “북 함정과 3km 거리를 유지하라”는 2함대사령관의 지침과 근접차단기동을 선호하는 합참의 작전지침과 작전예규가 서로 충돌하면서 시작된 비극이다. 서로 다른 지시가 전투현장에 하달되면서 2함대 지휘체계는 붕괴 조짐을 보이고 이는 현장에서 전투원의 희생이라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 진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는 우리 합참이 거의 공항상태가 된다. 사건 발생 이후에도 청와대, 국방부, 합참, 민군합동조사단으로 나뉜 행위자들이 각기 언론에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자 정부 자체는 통제 불능 상태로 가고 극심한 혼선이 초래된다. 이런 안보위기는 원래 선거에서 보수 여당에 유리한 것이지만 거꾸로 야당이 그 반사이익을 얻는다. 정부가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는 합참과 주한미군 사이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항공기를 동원하여 폭격해도 되느냐”고 물어보는 합참에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묻지 말고 한국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답변하며 서로 갈등을 겪는다. 항공기로 북한의 포격 도발 원점을 때려도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우리 장성들의 의견이 양분되어 대혼란이 초래된다.

천안함 사건 이후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에 진입하는 문제로 한미동맹은 또 한 번 시련을 겪는다. 6월까지 미국에 “항공모함을 보내달라”는 한국정부 요청에 미국은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8월에는 미국이 “항공모함을 서해로 보내겠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가 “보내지 말라”고 한다. 두 달 사이에 한미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뀐 이유가 뭘까? “보내겠다”는 미국과 “오지 말라”는 한국정부가 옥신각신하면서 이미 서해로 진입하던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이 두 번이나 되돌아가는 사건이 벌어진다. 결국 11월 말로 조지워싱턴호의 서해 진입이 연기되는데 그 사이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진다. 그 직후 서해에 들어 온 조지워싱턴호는 자연스럽게 연평도 포격사건 때문에 들어온 것으로 정리된다.

이 소동의 전말에는 서해에서 미․중 대결이라는 강대국 정치의 논리가 작동한다. 천안함 사건은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지 않는 남북한 간의 문제였다. 그런데 막상 조지워싱턴호의 서해진입으로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겪자 안보의 주역이었던 남북한은 모두 조역으로 밀려나고 서해는 국제분쟁의 무대가 된다. 두 거인이 직접 대결을 하려는 양상을 보이자 서로 으르렁거리던 남과 북은 모두 입을 닫는다.

 

 

대통령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에 공군의 전투기 출동문제도 미스터리다. 전투가 벌어질 당시에 부근 해역에서는 F-15K 전투기 3대가 비행하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광판에 표기된 전투기를 가르키며 “저걸로 라도 쏘라”고 했는데 문제는 당시 전투기가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하지 않았던 걸 청와대 지하벙커에 앉아있던 참모들 중 누구도 몰랐다. 사실 때릴 수 없는 전투기였다. 그런데 엉뚱하게 때릴 수 없는 이유가 유엔사 정전시 교전규칙 때문이라고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이에 합참의장은 자신의 권한으로 공대지 임무의 F-15K 전투기를 출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전투가 다 끝나고 2시간이 지나서야 그 전투기들이 왔다. 어차피 공중작전은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퇴임 직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군이 반대해서 전투기로 때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말하는 군은 도대체 누구인가? 한민구 합참의장은 전투기로 때리라는 지시를 받은 적도 없고 반대한 적도 없다. 합참의장을 통하지 않는 군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퇴임하기 전날가지 계속된다. 군에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의도이다.

연이는 안보위기는 육․해․공군의 치열한 경쟁을 낳았다. 안보위기는 각 군이 자신의 조직과 예산을 확장하는 좋은 명분이었다. 육군은 산악여단과 국방어학원을 창설하는 명분으로 활용했고, 해군은 잠수함사령부를 창설하는 명분으로, 해병대는 서북도서방어사령부를 창설하는 명분으로, 공군은 전투정보단을 창설하는 명분으로 활용했다. 여기에다 육군은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온 통합군으로 가기 위한 군 상부구조 개혁의 명분으로 안보위기를 적극 활용할 조짐을 보였다. 여기에 해군과 공군이 극렬하게 반발한다. 결국 안보위기는 북한이라는 적을 상대로 하여 국가차원의 군사적 합리성을 도모하기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우리 내부에서 군 조직 사이에 더한 경쟁과 갈등의 장으로 변질된다. 정치적으로는 안보위기가 보수 정치권력이 정치적 반대자를 비판하기 위한 의도로도 활용된다. 이것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NLL 논란이라는 북풍으로 비화된다.

국가 위기관리가 국내정치에 악용되니까 안보 자체의 합리성은 더욱 심각하게 훼손된다. 정치화되고 권력화 된 안보담론은 안보 그 자체에도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 반목과 대립이라는 지기 파괴적 속성도 드러낸다. 이렇게 분열된 국민들 사이에 선동가들은 “얼마나 상대방을 창의적으로 모욕하느냐”라는 경쟁을 한다. 인터넷 댓글로 표출되는 ‘상대방 모욕하기’ 경쟁은 서해에서의 전쟁에 앞서 우리 사회를 내전 양상으로 몰고 간다. 절대 하루아침에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감정싸움은 북한에 대한 더욱 상반된 태도로 분화되면서 우리의 서해를 위태롭게 하는 ‘마물’이 된다. 군 조직은 서해의 교전에 참여한 전투원들을 더욱더 영웅시하고 신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서해의 진실에 접근하는 길은 더욱더 봉쇄되고 모든 교전을 둘러싼 진실은 군 조직에 의해 독점되며 더 이상의 공론화를 봉쇄한다. 묻지도 않고 답하지도 않는 암흑시대에서 전문가들은 더 이상의 연구를 포기한다. 그게 바로 서해에서의 진실을 수장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서해에서 전쟁이 일어날까?

 

이런 풍조에 도전하며 책을 쓴다는 것 자체는 사실 겁나는 일이다. 그러나 쓰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 대가는 피로써 되돌아올 수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책을 쓰면서 중요한 결심을 했다. 인터뷰한 증언자들을 대부분 실명으로 게재한 것이다. 책이 발간되고 나서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항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부 필자와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필자가 반드시 강조하고자 하는 사실이 있다. 서해에서 바야흐로 결전의 시대가 온 것이다. 필자는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남북한의 충돌이 벌어진다면 그 무대는 서해가 될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여섯 가지 논리가 작동한다.

첫째, 국가의 ‘핵심이익’이 있는 서해에서 남북한은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한은 서해가 국가의 핵심이익이라고 판단하고 핵심 무기체계와 신속한 지휘체계를 전진 배치하여 군사적 위험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둘째, 남북한 분쟁에 편승한 강대국의 재균형 정책이 평화를 파괴한다. 주변국은 남북한의 이러한 대립을 완화시키기 보다 자신들이 개입하여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움직인다. 이들에게는 남북한이 짊어져야 할 막대한 희생과 부담이 ‘강 건너 불’이다.

셋째, 국가 장기전략과 시스템의 붕괴가 해역의 안정을 파괴했다. 해역에서 억지력을 갖춰서 방위한다는 건 국가가 우선적으로 고려할 대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효과는 일시적인 반면에 장기적인 전략과 유능한 시스템은 지속적이다.

넷째,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실종이 평화를 파괴했다. 군사작전을 계획함에 있어 정부의 통제가 느슨하게 작동되면 국방부가 남북관계 전체를 주도하게 된다.

다섯째, 작전본부와 사령부의 무능이 평화를 파괴했다. 특정군과 특정한 전문성이 배타적이고 패권적으로 작동하는 합동참모본부는 위기 때마다 해군과 갈등을 겪으며, 위기 이후에도 더 심각한 감정적 후유증으로 인해 협조와 조정에 무능한 일면을 드러냈다.

여섯째, 안보 실패를 국내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한 정치권력이야말로 가장 큰 평화의 적이다. 안보실패의 원인을 군 조직 탓, 정치적 반대자 탓으로 전가하게 되면 안보의 본질이 국내정치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된다.

이러한 내외적 요인을 감안하여 우리는 서해 평화 정착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우리 정치권력은 과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째, 자신의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서해에서 평화와 안정,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불굴의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내정치적 요인으로부터 틸피하여 평화와 안보의 문제를 그 자체로 인식할 수 있는 정치권력이 안보의 제1의 조건이다.

둘째, 국가의 외교, 군사, 정보력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기 위해 유능한 관료와 효율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한다. 각기 다른 전문성이 존중과 배려의 정신으로 재결합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평화공존의 시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한다는 정권 차원의 높은 결의가 나와야 하고, 서해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탄탄한 전문성과 행동전략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가 투명하게 지난 시기 교전의 진상을 밝히고 정직하게 그 진실을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질문을 하지 않고 설명을 하지 않는 정부는 아주 위험한 정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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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